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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가족

작성자김미순|작성시간26.06.15|조회수25 목록 댓글 0

<동화>
모닥불 가족
선 경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시끌벅적한 복도를 빠져나오자 출입구 앞에서 수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등보다 더 큰 분홍색 가방을 벗어 민수에게 건네주고는 바삐 걸어갔다. 보랏빛 꽃이 주렁주렁 매달린 등나무 벤치로 향하는 것이다. 그곳은 엄마가 학교에 데리러 와 기다리던 자리였다. 수진이는 엄마 생각이 나면 늘 그 벤치에 앉곤 했다.
"오빠, 아빠가 방학하면 캠핑 가자고 했잖아. 갈 거지?"
"너는 가고 싶어?"
수진이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빠랑만 가면 좋은데…."
민수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운동장 위로 먼지만 하얗게 일고 있었다.
퇴근한 아빠는 어느 때보다 신이 나 있었다.
일주일 휴가를 냈다며 계곡 옆 캠핑장을 예약했다고 자랑했다. 친구에게 텐트도 빌려 왔다고 했다.
"텐트는 두 동이야. 하나는 어른들, 하나는 너희들."
"제가 누굽니까? 학생회장 소영입니다."
소영이가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소영아, 아저씨가 뭐니? 이제 아빠라고 불러야지."
새엄마의 말에 소영이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직은 좀 어색해요."
아빠는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수도 엄마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 순간 수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수진이를 안아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꼭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부터 집안은 분주했다.
새엄마와 소영이는 김밥을 싸고 과일을 챙겼다. 아빠는 수진이 머리를 땋아 주고 있었다.
새엄마가 해 주겠다고 해도 수진이는 꼭 아빠를 찾았다.
다섯 사람이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하지만 민수의 마음은 무거웠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계곡물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소영이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아저씨! 여기 물놀이할 수 있어요!"
민수는 괜히 심술이 났다.
'아빠는 내 아빠인데.'
작게 중얼거렸지만 소영이가 들은 것 같았다.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저녁 무렵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민수야, 이쪽 줄 좀 잡아."
아빠가 말했다.
민수는 마지못해 줄을 잡았다. 하지만 힘없이 놓아버렸다.
쿵!
텐트가 한쪽으로 쓰러졌다.
"오빠!"
수진이가 놀라 소리쳤다. 소영이가 먼저 달려왔다.
"야, 괜찮아?"
하지만 민수는 소영이 손을 뿌리쳤다.
"소영이 시켜요."
울먹이며 돌아서는 민수를 보며 새엄마가 다가왔다.
"많이 속상했구나."
새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민수는 말없이 받아들었다.
밤이 되어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숯불 냄새가 숲속에 퍼졌다.
"민수야."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생각 나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아빠는 잠시 불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엄마를 잊자는 게 아니야. 엄마를 기억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민수는 아무 말 없이 수진이에게 쌈을 싸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새엄마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계곡에는 피서객들로 북적였다.
민수와 소영이는 물가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수진이가 어디 갔지?"
모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계곡을 샅샅이 뒤졌다.
새엄마는 울먹이며 이름을 불렀다.
"수진아!"
소영이도 목이 쉬도록 외쳤다.
"수진아! 어디 있어!"
그때 민수는 문득 생각났다.
꽃을 좋아하는 수진이.
캠핑장 뒤 절 입구에 노란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절 쪽에 가 볼게요!"
민수와 소영이는 숨이 차도록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
수진이는 풀밭에 앉아 울고 있었다.
무릎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왜 여기 왔어?"
수진이는 손에 쥔 꽃다발을 들어 보였다.
"새엄마 주려고…."
순간 민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소독했다.
"정말 놀랐단다."
말은 웃으며 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수진이는 꽃다발을 내밀었다.
"엄마, 선물이야."
새엄마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수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날 밤.
캠핑장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장작 타는 냄새가 숲속에 퍼졌다.
불꽃은 별처럼 밤하늘로 튀어 올랐다.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수진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새엄마는 말없이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잠시 후 소영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아빠가 보고 싶어."
모두가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공장에서 사고가 났대. 그래서 난 아빠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
소영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아저씨가 좋아."
민수는 그제야 알았다.
자기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소영도 아빠를 잃었고, 새엄마도 남편을 잃었고, 아빠도 아내를 잃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모닥불은 밤늦도록 타올랐다. 민수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장작들이었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달랐다. 하지만 불 속에서는 함께 타며 하나의 따뜻한 빛이 되고 있었다.
민수는 조용히 말했다.
"가을에도 또 오면 좋겠어요."
아빠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소영이는 환하게 웃었다.
새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본 수진이가 말했다.
"우리 가족이니까 또 와야지."
모두가 웃었다.
모닥불은 더욱 환하게 타올랐다.
민수는 생각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닥불처럼,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도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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