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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 동시 창작실

108동에서 온 친구

작성자김미순|작성시간26.06.15|조회수23 목록 댓글 0

<동화>
108동에서 온 친구
선 경
밖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계속 집에 있다간 지수가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 군밤 한 대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방학숙제를 하려고 하면 놀아 달라고 매달리고, 놀아 주면 내 다리를 걸곤 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지수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원이는 집을 나와 놀이터 벤치에 털썩 앉았다.
하얀 계란꽃이 발목을 간질이고 개미들이 줄지어 다녔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깔깔 웃었다.
지원이도 저렇게 뛰어놀고 싶었다. 지수는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오전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재활센터에 다녀와야 했다.
지원이는 동생이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늘 동생을 챙겨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고 싶었다.
그때였다.
"애!"
지원이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자기 또래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나랑 시소 타자."
지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는 애가 없어서 그래. 같이 놀자."
낯선 아이는 씩 웃었다.
"나 108동에서 왔어.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와 있거든."
지원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게 둘은 시소를 탔다.
달리기도 했다.
현우는 자기가 엄청 빠르다며 자랑했다.
"100미터를 2분 안에 달릴 수 있어."
"거짓말."
"진짜야!"
지원이가 시계를 재 보니 현우는 정말 빨랐다.
둘은 달리기 시합도 하고 빨리 걷기 시합도 하며 오후를 보냈다.
오랜만에 웃은 하루였다.
다음 날도 현우는 놀이터에 나왔다.
그 다음 날도 그랬다.
지원이는 어느새 현우를 기다리게 되었다.
며칠 뒤 현우가 물었다.
"너 동생 있다며?"
"응."
"같이 데리고 나와."
지원이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잘 못 걷거든."
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같이 놀면 좋잖아."
지원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지수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다.
지수는 보조기를 차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었다.
"안녕!"
현우가 먼저 인사했다.
지수는 형 뒤로 숨었다.
"형, 저 사람 누구야?"
"내 친구."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원이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친구.
그 말을 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셋은 함께 놀았다.
그런데 잠시 후 일이 생겼다.
지수가 미끄럼틀 쪽으로 가다가 넘어지고 만 것이다.
쿵!
지원이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괜찮아?"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지원이는 화가 났다.
"그래서 내가 안 데리고 나오려고 했잖아!"
지수는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본 현우가 조용히 말했다.
"지원아."
"뭐?"
"넘어진 건 지수 잘못도 아니고 네 잘못도 아니야."
지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하는 거잖아."
현우는 지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리 다시 걸어 보자."
지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금씩 걸어가는 지수를 보며 지원이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이후 지수도 놀이터에 자주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은 지수가 보조기를 차고 달리겠다고 우겼다.
넘어지면서도 웃었다.
현우도 같이 웃었다.
지원이도 웃었다.
놀이터는 더 이상 혼자 앉아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현우가 말했다.
"이제 집에 가야 해."
"언제 또 와?"
"겨울방학."
지원이는 괜히 서운했다.
그런데 현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뭘?"
"너 이제 혼자 아니잖아."
그러고는 지수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도 또 올 거고."
지원이는 고개를 숙였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수가 형 손을 꼭 잡았다.
"형."
"왜?"
"현우 형 또 오지?"
"응."
"좋다."
지원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하느님이 정말 소중한 친구를 보내 주셨다고.
그리고 동생도, 친구도, 자신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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