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습도 평생을 글도 하나 남기지 않고 오직 땅바닥에 몇 줄의 낙서만이 그 분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일진데, 그러나 복음서에는 그 분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요.
저는 예수를 만난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음서에서 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예수를 직접 본 사람들의 감격이나 기쁨은 보이지 않는군요. 오히려 그들은 고향을 찾은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마6:2) 다시 말해서 그들이 예수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과 그 집안을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예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절을 보면 "이 사람은 목수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꺼려하였다"(3절)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확실히 그 고향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달갑지 않게 여긴 이유를 알 것 같군요. 그 이유는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 답을 찾아봤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를 대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목수'라는 직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에 저의 사무실에서 현장관련일로 목수오야지(책임자)를 면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손을 보니 여기저기 찢긴 상처투성이의 투박한 손을 봤을 때 그동안의 세월의 흔적을 손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손도 우리 현장의 목수 아저씨의 손과 같은 모습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를 잘 아는 고향사람들은 어떻게 '그 손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묻듯이, 저 역시 예수님은 부드럽고 가는 긴 손을 가지고 평생 노동을 해 본 적도 없는 근육 없는 어깨를 가진 성화속의 잘 생긴 북유럽 젊은이를 상상하고 그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착각속에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목수'예수를 모르는 것이 문제 이지만, 고향사람들은 오히려 목수인 예수를 아는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직접 보면서도 그들이 알고 있는 과거의 목수예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눈이 가려져서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던 거지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직업을 목수라고 밝히고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목수의 아들'(13:55)로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의 아들'(4:22)로 바꾸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도 분명히 예수의 직업이 목수라고 밝히기를 그리 유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러기에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졌고 평범한 예수의 직업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마가복음의 기록이 다른복음서의 기록보다도 믿음이 가고 진정성이 엿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학력을 속이고 과장하고 포장하는 일로 인하여 무척이나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약한 부분을 솔직히 드러내기 보다는 포장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그 포장된 모습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기에 서로가 속고 속이고 위선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교회안에서도 외국의 가짜대학에서 가짜 박사학위를 돈 주고 받아와서 성도들 앞에 자랑하는 목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고정관념과 이 세상 기준으로 볼때 육신을 따라가는 잘못된 신앙과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