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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시모음 1

날개에 관한 시모음 2)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16|조회수65 목록 댓글 0

날개에 관한 시모음 2)

 

그 작은 날개로    /박노해

 

​그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다

정든 동료들과의 이별이 괴로운듯

천천히 지붕 위를 세 바퀴쯤 돈 다음

단호한 날갯짓으로 어디론가 날아간다

 

그는 자기 몸에 병이 들었다는 걸 안다

식구들에게 자기 병이 옮아 퍼질까 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자꾸만 돌아보며

홀로 정든 집을 떠나가고 있다

 

뒤늦게 동료 벌 두 마리가 그를 부축하듯

안타까이 곁에서 날아주고 있다

그는 가라, 어서 가 살으라,

여윈 미소로 손짓하며 돌려보내고

홀로 비틀거리며 허공 길을 걸어간다

 

아 그는 일생동안 저 작은 날개로

얼마나 먼 거리를 날아다녔던가

저 가는 손발로 얼마나 많은 꽃가루를 이어주고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맺게 해주었던가

저 가벼운 몸으로 얼마나 많은 꿀을 담아

쓰디쓴 인류를 달콤하게 해주었던가

 

그는 찔레꽃 한송이를 찾아 좌정한다

노란 꽃술을 움켜쥔 그의 손발이 멈춰지고

그의 가느란 날개마저 잠잠해졌다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세상에 단 한 점의 해악도 남기지 않고

비바람과 천둥 속을 오가며

말없이 자기의 사명을 다 해내고

한 점 꽃 속에서 고요히 사라져간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

 

 

날개        /심언주

 

무덤 앞 풀잎이 피리 소리를 낸다.

나는 피리의 모가지를 비튼다.

피리가 비틀린 모가지로 흐느낀다.

한 번 울 때마다 소리에 주름이 잡힌다.

여름내 주름은 달구어진다.

주름을 펄럭이며 할머니가 운다.

 

울다울다 입술이 마르면 립글로스를 바르고서 풀잎이 운다.

흐느낄 때마다 벌레들 망사 스커트가 말려 올라간다.

할머니의 수의가 점점 짧아진다.

눈이 퀭한 할머니.

부엉이가 운다.

나는 날개에 묻은 얼룩을 도려낸다.

볼이 파이는 줄도 모르고 벌레들이 운다.

 

 

하루살이 날개       /이귀영

 

오늘 하늘을 처음 본 느낌인데

첫 키스의 영원한 순간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낮 다시 오지 않을 밤

사랑도 오늘 하루

폭우도 오늘 하루

질투도 오늘의 것

영원하지 못한 것들이 찬란하다

동토凍土를 지나온 우리의 만남이 영원하지 못하다

승부를 건너던 발자취도 공룡을 잃어버린 기억도

언제 배 불렀던가 굶주린 하루는 영원의 한 점

지상의 역사가 영원하지 못해 지구는 늘 찬란하다

한 줌 모래도 남기지 않고 오늘은 끝나는 것

그대 떠나고 낡은 옷만 남아있는 벽

구르다가 그대의 지문이 지워지는 날

내일이 있다면, 어느 허공에서

어느 심장으로 부유할지?

살아있는 오늘은 몸으로 듣고 몸으로 취하는 하루

당신을 향한 아픔도 나의 사역事役이니 날개를 접을 수 없습니다

두려워요; 녹슨 방충망에 끼어있는 힘으로

내 안의 허공을 종일 퍼내고

모독의 시간을 퍼내면 그날은 오고 있는가

타르 같은 삶과 죽음이 사라지는 그날은 오고 있는가

 

창밖이 깜깜하다 영원이 보이지 않는다

 

 

날개 한번 펴지 못하고    /김윤선

 

내 몸이 흙에 있을 때

내 날개는 허공에 있어

날고 싶어 날개를 찾아 헤매다녔네

 

내가 밤이었을 때

내 눈동자는 한낮의 동굴에 갇혀 있어

빛을 보고 싶어 눈동자를 찾아 다녔네

 

내가 또 허공 속에 있을 때

내 발은 강물 따라 흘러가버려, 대지에 닿고 싶어

존재를 찾고 싶어 발을 찾아 헤매다녔네

 

그토록 찾아 헤맬 때 찾을 수 없었던 전부가

나마스떼(namaste)*와 함께 내게로 왔네

날개 한번 펴지 않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네

 

*나마스떼; ‘당신 안의 신께 경배를’ 라는 산스크리스트어이며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자세를 말함.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박형준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반쯤 열려 있는 절방

여자는 머리를 깎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릎에 경전을 단정히 펴놓고 있다

들끓는 침묵을 안에 가두고 있다

남해 금산 푸른 물빛

고개 숙인 얼굴에 어른거린다

연꽃무늬 새겨진 문살에 앉아 있는

잠자리 한마리

여자는 경전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는다

절 마당에 켜지는 石燈

반쯤 열려 있는 절방 문에 황혼이 번진다

암자 밑 천길 낭떠러지

잘 말린 날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날아가는 잠자리

 

 

꿈은 날개가 있다      /박재희

 

나는 날마다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처럼

A4용지에 쓰다 만 내 생의 한 페이지를 떨어뜨린다

가을도 아닌데 凋落을 느끼며 떨어지는 나뭇잎

생각의 깊이가, 사랑의 깊이가, 어떤 짐승 같은 증오

의 깊이가……

구겨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던져버린 나뭇잎

그것은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소박한 열정이다

꿈꾸다 깨어져버린 조각

 

꿈은 날개가 있다

아침이면

꿈을 쫓던 내가 잎들에게 벌레 먹힌 헌것처럼 벼려

져 있다

 

 

꼬리를 자르면 날개가 돋을지     /정희성

 

손에서 일을 놓았다

나도 이제 이 지상에서 발을 떼고 싶다

샤갈이 그 아내와 함께 하늘로 떠오르듯

중력을 버리고 이 병든 도시로부터 가벼이

사는 동안 꼬리가 너무 길어졌다

꼬리가 끌고 온 무거운 길을 돌아보며

이쯤에서 나도 길을 내려놓고 싶다

돌아가는 길을 지워버리고

길섶에 핀 풀꽃과 인간들의 거처를 지나온

이 보잘것없는

흉측한 짐승 같은 삶의 꼬리가 밟히기 전에

꼬리를 자르면 길이 사라질까

꼬리를 자르면 날개가 돋을까

영혼이 깃털처럼 가벼워질까

 

 

기러기는 날개가 없다    /최형심

 

6:30 PM

그의 등에는 태양이 눌러 붙었던 자국이 있다

가족이 다른 행성으로 떠난 뒤 등이 녹아내리고

이카루스의 날개가 있던 자리, 태양은 날개 없이도 난다

 

9:45 PM

날개를 빌어 하늘을 날던 때

뉴욕은 짐칸에 구겨 넣어주세요

붉은 노을을 쟁반에 받쳐 들고 승무원이 말했다

 

11:55 PM

그가 어둠을 끌어다 시린 목을 덮자

뉴욕은 늘 겨울이야

짧은 민소매가 몸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7:50 AM

그가 주섬주섬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첫차는 5시였어요, 자명종이 짜증을 낸다

손톱 밑에 까만 어둠이 끼어있다

 

9:10 AM

영등포역, 그는 자판기에서 뉴욕을 하나 구입

비행기 날개가 박힌 종이컵이 착륙하고

그가 수화기를 들자, 시계바늘이 바람에 흔들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외환창구에 밀어 넣는 기러기 울음

마이너스 통장이 날개를 접는다

 

 

날개의 영역         /이만섭

 

새의 공중이 있다

허공뿐인 듯해도 수많은 능선으로 이루어진

산들을 좇는 분망함은

외경에 해상도를 들여놓았을 뿐인데

날갯짓은 한사코 산맥을 넘는다

첫 비상에서부터 끊임없이 진화해온 날개는

여전히 어디론가 팽창 중인 듯

좌우대칭의 너비를 긋는 동선이 활기차다

저 반원의 높낮이로 옷깃을 터는 외재율은

바람을 불러 부양하는 듯싶지만

숫제 깃털에 힘입은 터에

비상하는 소리 자연스러워지면 허공은 더욱 가벼워질 것이다

무릇 날개는 무게를 줄여야 날개답다

절벽에서 추락하는 경우나

유사한 행위는 무게를 단 듯 억지스럽다

그것들은 깃털도 없이 허공을 나는 위험한 족속들이다

진정한 날개의 공중이란

스스로 부양된 채 보이지 않는 길을 트며

조감도를 그리는 일이다

그래서 새들은 제 형세를 지우고 산 너머로 떠난

새털구름의 길을 좇지 않는다

오직 날개를 가진 자부심으로 공중을 비상할 뿐

어떤 허세도 깃털 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그것을 자유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날개도 장애가 된다     /김광기

 

고층 빌딩의 건물 안으로 벌 한 마리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재빨리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거대한 통유리가 앞을 막고 있다.

아래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와다닥 들어와서는

한 바퀴 도는 사이 방향을 잃고 만 것이다.

온갖 힘을 다해 유리창에 머리박기를 하고 있다.

엄청난 두께에 이중창으로 되어 있는 통유리,

벌이 다시 밖으로 나갈 방도는

아래로 내려와서 작은 창문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벌은 오로지 위로만 오르려 하고 있다.

미물이라도 날개가 있는 것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모양이다.

온몸을 불사르듯 파닥거리며

위로만 오르다가 힘이 빠져 떨어진다.

착지점, 바로 그 턱 아래에 창문이 있었지만

벌은 다시 몸을 추슬러 유리창 너머에 있는

세상 쪽으로 머리를 박고 있다.

날개가 있다는 것이 장애가 된다.

거슬러 오르기만 하는 것이 눈앞을 가리고 있다.

 

 

날개를 깁는 여자      /김경선

 

수십 년을 재봉틀에 앉아 날개를 깁는 여자

한번도 시린 날개를 펴지 못해 앉은뱅이가 된 여자

퇴화된 날개를 방석 삼아 바느질을 한다

태양의 빛을 낚아 동정으로 달고

나무를 심어 열두 폭 크기로 날개를 저장한다.

꽃술에 날아드는 벌, 나비

날개를 수선해 주는 여자

날개의 비밀을 지켜주다 시력을 놓친 여자

돋보기 속에 날개란 날개는 다 감추어 놓고

절대 꺼내 자랑하는 법이 없다.

 

여자의 주소는 재개발동 접근금지호

 

날다가 죽을 너

걷다가 죽을 나

가볍긴 마찬가지

내 날개 오래전 끈 떨어졌어도

나에겐 기부할 날개가 남았단다.

날아봐라 날아봐 날개가 자랄 테니

살아봐라 살아봐 날개가 보일 테니

 

깃털에 꽂히는 여자의 자작 타령

그 여자 반찬은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

그 여자 낡은 골무처럼 굽은 등 새털 날개 푸르게 돋네.

 

 

조세핀*의 날개       /박시하

 

오르막을 올라

내리막에서 바퀴를 굴리는 이에겐

언덕의 감정들이 있어

 

슬픔으로

너를 묶어 놓았다

 

편지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고통만 담긴 날개를 굴려 보냈니?

 

궁금한 게 있고

굴러가고 싶은 곳이 있니?

 

나를 통해 너를 떠올리지 마

 

외로울 수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공중부양처럼

목소리가 목소리를 찾다가

텅 비어서 되돌아와

 

우리가 날개를 달지 않은 이유가 뭐였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니야

 

흰 귓불이

붉은 바퀴들이

 

먼저 떨어지는지

어디에 묻히는지를

 

덜컹덜컹

울면서 두근거리면서

날려 보내는 일

 

* 1. 낡아빠진 자전거의 이름

2. Teitur Lassen, Josephine

 

 

욕심에 날개를 달고      /이혜우

 

언제나 그러하듯 심심한 하루가 열린다

답답하고 지루함에 끌려

위험한 망상에 거리를 배회하며

그립다는 핑계가 우선멈춤 없이 나선다

 

평소에 가장 아끼던 핑크 하트

간곡히 불러낼 유혹의 프로그램

체면을 세워주고 예의를 갖추더니

소유의 욕심은 철조망 없이 접근한다

 

어제저녁 입맛에 맞게 과음한 탓인지

순간 불안했던 존엄이 허물어지고

기다렸다는 듯 은장도 값이 흥정 되어

입산 금지 표지판이 웃으며 비켜선다

 

서로의 존재감에 소방차가 울부짖고

고이 간직한 밀어들이 회식하고 있다.

 

 

날개         /박상희

 

한쪽 팔이 고장이 나

다른 또 하나의 팔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참 많이도 불편 하다

느끼지 못해

잊고 살았다

 

늘 한쪽 팔로 살아가는 아들

오늘 생각하니

장하기 짝이 없다

 

아픈 한쪽 팔이

고맙기가 그지없다

내게 깨달음을 주었으니

하지만

또 잊고 살까 두렵다.

 

 

날개 달린 금붕어      /김수현

 

온몸이 근질근질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나려는지

 

참을 수 없는 신음 소리에

내 안에 갇혀있던 想念 하나, 둘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 헤엄을 친다

 

무표정한 시선 중얼중얼

나를 감아버린 뒤엉킨 수초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어둠과 빛의 공간에서 숨소리도 내질 못하고

출구를 향한 나의 몸짓은 또 점령당했다

 

알 수가 없다

세상일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아,

날고 싶은 욕망은 이대로 끝이 났는가

 

난 날개 달고 하늘로 날고 싶다

난 날개 달고 저 바다로 날고 싶다

 

 

날개 1       /이채

 

새들은 모두 날개가 있다

잠자리는 네개나 있다

그래서 하늘은 파랗다

 

 

날개 2      /이채

 

새는 두개를 달고

자유가 되었다

 

나는 네개를 달고

잠자리가 되었다

 

 

폭풍의 날개     /박형준

 

심연에 내려가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리

 

버드나무 가지가

물 아래 잠겨 있다

잎사귀가

물 속까지 피어 있다

 

깊은 곳에서

날갯짓을 하며

요동치고 있다

 

심연을 잃고

물 밖에 떨어진 잎사귀

그게 나다

도망이 끝난 지 오래다

물을 움켜쥘 어떤 발톱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심연 속에

가득한 날개가

모래와 자갈을 헤치며

물 속을 뒤엎을 때

흐린 잎맥의 기억으로

폭풍을 예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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