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에 관한 시모음 3)
날개 /최수홍
나는 날고 싶다
하늘을 훨 훨
한 번 날 면
날개를 접지 않고
영원히 날갯짓하는
이름 모를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길고 먼 하늘 끝까지..
파란 날개를 만들어 /정세일
장미꽃으로 만들어진 초콜릿
마음에 닿기만 해도
달콤함이 묻어날 것만 같은
보랏빛 옅은 숨소리
봄을 알고 있는
긴 한숨소리
어머니가 골목에서 달빛에게
하나둘씩 간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작은 틀에 넣어서
장미꽃 작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보랏빛 장미잎
너무 아까워 가슴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어보면
마음에 뜨거움에
장미의 보랏빛 숨소리는
이미 녹아내려서
가슴에 뛰는 심장소리만
크게 남아있고
장미꽃으로 만들어진
이제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떨리지 않는 새들이 심장
파란 날개를 만들어
이제 행복을 향해 날아가는
아기 새들의 품에 넣어주고
길을 가다가
힘이 들거나 혹은 외로워질 때에도
다시 꺼내어 날개위에 덧입을 수 있도록
파란 날개를 넉넉하게
크기를 재어보지 않고 만들어
어머니의 아늑한 품처럼
날개 /돌샘 이길옥
잠에서 돌아와
세숫대야에 퍼 올린
정화수 한 모금을 얼굴에 바르면
아침이
무수한 빛을 더불어 날개를 단다.
한밤 내
수시로 일던
꿈의 날개들이
아예
아침을 접하고 있다.
훨훨
떠날 수 있으므로
날개는
언제나 나의 꿈으로 커서
내 안 깊숙이 고인
인고의 발바닥을
달콤하게 핥고 있다.
아침을 담아온
정화수 가득
빛의 날개들이
얼굴을 간질이며 비상(飛翔)의 꿈을 꾸고 있다.
날개 달린 처마 /이여원
언제든 접고 펼 수 있는 처마를 하나 샀지
이 처마 끝으로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기도 했지
치맛단에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홑처마 비가람 아래 발뒤꿈치를 세우고 젖은 유성을 바라보고 있었지
몇 다발의 울음이 소나기줄기 사이를 지나가고
흔들리는 건 밖의 일이라 생각했었지
주변의 그림자를 빌려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지
이웃의 처마 밑에는
무청이 푸른색으로 말라가고 있었지
변방을 떠돌던 구름들이 꼭짓점도 없는 처마아래 숨어들기 시작했지만
접힌 가슴속으론 들어오지 못했지
손잡이 없는 처마는 바람에겐 끄덕 하지도 않지만
제비의 무허가 흙벽 집은 눈감아주고 있었지
움직이는 원형의 처마는 무엇이든 둥근 것을 좋아하지
모서리 없는 악보 속에는 물방울이 튀어 올랐지
우산은 열려 있는 것 같지만
가장 닫혀있는 공간이어서
비의 문양마저도 뛰어들지 못했지
손잡이가 달린 처마 곁으로 들이치던 빗방울들
둥근 처마아래 눅눅하게 얼룩진 어깨가 있었지
뜻밖의 비는 항상 내릴 수 있지만
날개 달린 처마를 팔아
날개달린 치마를 사고 싶은 날들은 가끔 있다는 거지
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라정식(22)이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뿐이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들을 하는데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정은(19)이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이를 봤다. 그리 오래 심하게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얼굴 일그러뜨리며 가까스로 막 펴낸 것,
안심이다. 이 고요야말로 저 시원하게 잘 닦인 창공이다.
무거워진 날개여 /박현웅
나비가 날아간 뒤 나는 추해졌다네
떠내려가는 발자국으로 산을 넘는 빗줄기
먹구름을 들먹이며
휘청거리네, 늘어지는 발목 이끌고
떠나는 섬 되어 세상 밖으로 밀려나네
이제 상처는 시들어 아프지 않네
그곳에서 죽은 나비를 보았지
이렇게 소리 없는 존재로 다시 재회하는구나
원망도 용서도 다 사라진 뒤
더는 잡을 세상도 디딜 운명도 없는데
이제야 침묵으로 겹쳐지는 우리
한때 서로에게 살아야 하는 향기였지
황홀함으로 춤추던 때를 기억하는가
내게 오는 사람은 애초에
가슴을 뚫고 떠날 화살이라 여겨야 했어
추억은 더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비에 젖어 더 무거워진 날개여
웅덩이에 갇혀 바짝 말라가는 태양이여
노래의 날개를 타고 /하이네
노래의 날개를 타고,
나의 사랑이여, 내 너와 함께 가련다.
갠지스 강의 들판 저편으로,
거기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빠알간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있고,
연꽃들은 그곳에서
사랑스런 자매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소리죽여 웃으며 애무하고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장미꽃들은 몰래 귓속말로
향기로운 동화를 주고받는다.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羚羊)들은
깡충깡충 뛰어와 숨어서 기다리고,
머얼리서 성스러운 강의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 들려온다.
그곳 야자나무 아래
우리 함께 내려앉아,
사랑과 안식을 마시며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은빛 날개 타고서 /은파 오애숙
슬픔이 빗물처럼 가슴 적셔도
초연히 푸른 하늘 바라보나니
수미진 곳에서 고뇌苦惱비 맞으며
굳센 의지 날개로 대양 향하리
소곤대는 별빛 노랫가락 사이로
날갯짓에 신비한 음률이 춤출 때
글이 별빛 분수로 쏟아지는 믿음에
은빛 날개 타고서 해 뜨는 줄 몰랐어라
날개가 부러지네 /鞍山백원기
승리의 날개로 자신에 찬 비상
저 푸른 창공을 향해 솟구치던 때가
한 낱 꿈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태풍 소리 거세 저
몰려오는 기세에 무참히 꺾이고
흔들리지 않아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불가침의 기둥이 부러지려나
무지갯빛 꿈은 사라지고
채우려는 마음 줄 놓더니
기어코 부러지려는가
쏘지는 못하고 나비처럼 날뿐
갑에서 떨어진 을은
벌 같던 때가 그리워
풀어진 허리끈 부여잡고
추스르는 마음 힘겹기만 하다
빨간 나비는 한쪽 날개를 잃고 /김종석
네가 빨간 나비인 줄 이제야 알았지
네가 무지개 색을 하고 날고 있을 땐
너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지
무지개 날개 빛.
그 빛이 너무 고아서
매일 쫓아다녔지
동녘이 빨갛기도 전에
너는 내 앞에서 날갯짓했었어
이슬 먹은 꽃밭에 앉아있다
너를 따라 나섰지
그런데 말이야 너의 무지개 색이
점점 엷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어
그랬었어
너는 기어이 네 색깔을 드러내고 말았지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날개 하나를 잃었니?
날갯짓을 하려 몸부림치다
펴지지도 않은 장미꽃 위에 앉고 말았지
너는 한 잎의 장미꽃이었나 보다.
푸른 날개 /오문경
봄 출산을 앞둔 창공 풀물이다
날개도 없이 높이 올라
황망한 두려움에 떠는 새를 본 적이 있다
허공이 넓은지
내 삶이 허한지. 꿈결에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러워 만져본다
날개는 돋지도 않았는데
깃털 하나 묻어나온다
오리털 패딩에서 뾰죽이 삐져나온 깃
언졘가, 이 몸 춤추고 노래하게 할
아직 덜 여문 풋 날개
훌쩍 자라 어느 숲,
여린 가지에라도 내려
야윈 가슴,
붉게 물들이고픈 날개
세상이 넓은지
사랑이 넓은지 궁금한 날개
날개 없이 날아본다 /황인숙
하늘을 날고 있다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구름이 솜사탕 처럼 아름다운
비누거품처렴 뭉개 뭉개
날개도 없는데 둥둥 떠 있는
날개 없이도 날아가고 있지
구름보다 높게 구름을 내려다보며
날개 없이도 날아보는
바다 위를 지나 높은 산맥을 지나고
구름 위를 하늘을 날아본다
비행기 큰 날개를 달고
날개로 /김덕성
분별없이 영혼을 사르며
욕망과 정열로
달려와 생각해 보니
너무 아까운 세월이었습니다
지금은 동그라미
상처만 남은 쓰린 인생
당신을 만나 흔들림이 없는
사랑으로 묶인바 되어
당신에게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향기로
기득 채워져
두렴이 없이 과감히 섰습니다
이제 사랑의 힘만으로
재기의 꿈을
확고하게 가슴에 안고
독수리처럼
하늘로 높이 날아갑니다.
당신의 날개로
천사의 날개로 만든 기타를 들고 /리 산
굿바이 코케인 굿바이
다섯 번째의 노래가 시작되자
우리는 어깨를 두 번 흔들었다
언젠가 몸에 돋아 있었을
천사의 날개로 만든 기타를 들고
가만히 가만히 발기하는 등 뒤의 기억들을
천사의 날개로 만든 기타로 추억하며
허공을 향해 트럼펫을 부는 남자와
붉은 배경 속 혁명가 레닌과 황혼의 집시 킹스
행복한 빌리와 영국의 촌뜨기 네 명과
절대로 지지 않는 나뭇잎과
차가운 밀러 몇 잔과 그리운 이름과
또 그렇게 우리는 살았지
허공의 어디쯤을 바라보는지 궁금했던 그 남자는
똑같은 포즈로 트럼펫을 불고 있고
그 여자의 행복한 미소는 여전하지만
신열에 들떠 나쁜 무지개를 찾아 헤매던 청춘은 지나가고
호텔 노르망디 창가 녹슨 총은 삭아내리네
나뭇잎 무성히도 우거질 탁자는 아직 남았지만
사진 속 웃고 있는 영원한 촌뜨기처럼
마지막 이파리를 그려 넣으며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할 시간
굿바이 코케인 굿바이
내 고독도 내 자유도 내 혁명도
여기 우두커니 세워둔 채로
굿바이 코케인 굿바이
시인의 날개 /이생진
조물주가 시인을 만들었다면
시인의 언어에만 날개를 달지 말고
시인의 양쪽 죽지에도
날개를 달아줄 일이지
그땐 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겠는데
섬에 오면 정말 날개를 달고 싶다
날개-옷걸이 /고형렬
신간은 출간되지 않는다
새로운 언어와 음울함과 서사와 메타포
시행 자체가 사랑의 핏줄이던 시절은
다시 제본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장에도 유혹되지 않는다
서로 붙지 않으려는 접착제처럼
아무도 죽지 않는 시단에서
난조(亂調)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황사바람의 어둠 속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언제나 못난 자들이 주인이 된다
피도 꿈도 절규도 없는 죽음의 암실에서
파괴된 아뜰리에, 시인은 사라졌다
옷걸이에서 시가 죽는다
날개 /반칠환
저 아름다운 깃털은
오솔오솔 돋던 소름이었다지
창공을 열어 준 것은
가족이 아니라 무서운 야수였다지
천적이 없는 새는 다시
날개가 사라진다지
닭이 되고, 키위가 된다지
-詩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2013년 여름호
굴러가는 웃음의 날개 /박종영
자동차는 네 개의 바퀴로 체형을 지탱한다
날렵한 걸음걸이는
화합의 이동수단으로 굴러가는 꽃무늬,
원의 가장자리 축은 바람의 속도와
둥근 웃음의 지혜를 계측한다
생명력은 단단한 땅과의 융합이 이루어지면
비로소 탄력의 힘을 얻는다
휘어져 굴러가므로 윤택해지는 얼굴을 살펴보자
그렌져, 소나타, 체어멘,
어느 체형이건 닮은꼴은 없다
갖가지 원형의 웃음으로 달리고 있을 때
질주는 절정에 이르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더 멀리 달리기 위한 바퀴의 의무고 약속이다
비가 오는 날의 마찰계수,
수막(水膜)의 이탈로 사라진 귀한 생명을 외면한
슬픔과 회한을 땅에 뿌리며,
끼익,
오늘도 다급한 찰나의 순간에서
튕겨나가는 물보라 속, 굴러가는 웃음의 날개
잘게 부서지는 검은 탄력의 핏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