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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시모음 1

날개에 관한 시모음 4)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16|조회수71 목록 댓글 0

날개에 관한 시모음 4)  

 

검정날개를 가진 나비      /정세일

 

여름 물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둑을 따라 내려가면

꼬리를 끄덕거리며 물을 만져보며

검정날개를 가진 나비가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돌로 쌓은 축대를 지나서

그늘을 찾아 둥구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날아옵니다.

 

여름 물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나비는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내가 연극발표를 할 때

무대의 앞에 있는 까만 무대 장식처럼

온통 검정색이어서 물이 흘러가는 둑을 따라서

걸어갈 때 잘 살펴보아야만 검정나비는

날개를 퍼덕이며 그늘아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검정나비는 날개가 몸에 비해

커서 바람이 불면은 멀리 날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늘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가 있는 그곳에는

검정나비는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던

여름날의 자기 자신의 날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에 여름에 나른함을 쫓으려고

꼬리를 시원하게 여러 번 담그고 있습니다.

 

밤의 장막 같은 검정색으로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검정나비는 그러나 마음만큼은 언제나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내가 가까이 가면

나의 가슴만큼이나 큰 날개를 흔들어 보이며

온몸이 움직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바람 날개가 속삭이고 앉는다 /이영지

 

꼭대기 층에서만 파아란 별바다가

앉느라 층층이만 올라가 가슴 풀어

당신의 바람날개로 속삭이고 앉는다

 

 

기억의 날개를 접으면서       /(宵火)고은영

 

인생아

인제 그만 아프자

너무 힘들어

지치면 어찌하느냐

 

더러는 기억의 눈금으로

망각의 봇짐을 싸고

지금쯤 황혼 서녘에

떼지어 무리로 나는 기러기 따라

이사를 떠날 지어다

 

사랑아

미워하지 않으마

달아나지 마라

달이 차 기운다 하면

너를 그리워한들 소용없는 짓

 

갈잎에 혼돈하던

서러운 이별쯤은

덤덤하게 보내기도 하며

눈물의 흔적마다 맑아

우울한 거문고 애끓는 노래하면

 

눈물아

그만 날 놓아다오

이제 되었다

거식증에 걸려

자주 너에 배가 부르면

고칠 수 없는 중병이 든단다

 

 

날개에 관한 명상       /임보

 

물속에 사는 어족들은 헤엄을 잘 치는 놈이 장땡이다

지느러미를 뒤채며 대해를 누비는 상어나 참치 떼들

그들이 바다의 귀족, 수국의 주인이다

몸이 무거운 소라나 고둥 같은 어패류들은

깜깜한 해저에 몸을 숨기며 어정거릴 뿐

겨우 뻘밭이나 뒤지며 어렵게 살아간다

 

대기 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잘 나는 놈이 장땡이다

날개를 퍼득이며 허공을 가르는 수리나 매의 무리들

그들이 지상의 신선, 창공의 황제다

몸으로 땅을 기는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 발로 들판을 달리는 짐승들도 하등 동물

날것[飛行機]을 만들어 타는 인간들도 후지기는 마찬가지다

 

공기도 없는 대기권 밖의 저 허공

저 무제의 천공을 보이지 않은 날개로 날아가는 것들도 있다

해와 달과 별들… 저 무궁 무한의 성군들!

신이 지은 투명의 날개옷을 입었는가?

소리도 없이, 철새들의 비상처럼 질서정연하게

어디를 향해서 그렇게 날아가는가?

 

나에게도

날개를

하나

달아주고

싶다

 

 

날개병원           /이명수

 

날개병원 쇠침대에서 깨어납니다

수액을 달고 손전등을 들고 5층 옥상에 오릅니다

별들은 날개 상한 새들의 꿈자리입니다

별 속으로 날아갑니다

쌍봉낙타를 타고 명사산 막고굴까지 날아갑니다

잠 속의 길은 늘 일방통행입니다

한쪽으로 기운 날개는 원을 그리며 기우뚱합니다

밤마다 위태롭게 깨어나는 벼랑 끝

날아도 날아도 제자리입니다

 

어둠 속에 허공이 숨어 있습니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수액이 허공의 눈금에서 찰랑거립니다

잠 속의 길들이 지워집니다

진통제 한 알과 안정제 반 알을 털어 넣습니다

누군가 주기도문을 외우고 또 누군가는 염주알을 굴립니다

 

밤마다 어둠을 쪼며 날개를 파득이는

날개병원 5층 203호 비상구 표시등 아래에서

어깨가 날개라고 날갯짓이 시라고 썼습니다

 

 

날개의 죽음         /지시연

 

늦가을

고추잠자리

마른 꽃가지에 덜컥 앉았다가

밤새 내린

컬컬한 이슬에 채여

목숨 접는 날개

차곰차곰

넉넉히 젖은 날개는 움직이지 않고

다 그대로인데

여기

너는 가고…

 

 

날개를 떼어놓고 잠든 할머니       /박연준​ 

 

세상에는 병원이 참 많다

하얀 상자 위에 십자가를 꽂은 모습이

꼭 준비된 무덤들 같다

 

누군가 창문 위에다 손가락으로

자기 이름을 쓰고 있다

 

병상 위엔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꽃다발

때 아닌 소나기처럼 막막해지고

링거 병에 갇힌 투명한 액체는

낮은 음정으로, 중얼거리듯

똑- 똑- 하강한다

 

지나간 바람들이 멀리서 아우성대는 저녁

화단에 앉아 놀던 나비들은

날개를 떼고 잠이 든다

잠 든 나비는

누가 고이 접어놓은 편지처럼 비밀스럽고,

 

할머니의 오래된 자궁이 슬며시, 주저앉는다

 

 

나의 꿈 나의 날개       /김남주

 

하늘을 나는 새가 나를 비웃네

날개도 없는 주제에 내 꿈의 높이가 하늘에 있는 줄

알고

그 꿈 키우다가 땅에 떨어져 이런 신세 철창 신세 면

치 못한 줄 알고

그러나 웃지 마라 새야

십년을 하루같이 벽과 벽 사이에

갇혀

오가도 못하는 이 사람을 보고

팔다리 육신이야 이렇게 기막히게 철창과 철창 새에

끼여

옴짝달짝 못한다만

나에게도 날개가 있단다 꿈의 날개가

바람의 속도로 별과 달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무기의 꿈이 있고

햇님의 은총을 받아 기름진 대지에

달무리의 원을 그리며 씨를 뿌리고

만인의 입술에 가을의 결실을 가져다주는

노동의 날개가 있단다

그러나 새야

하늘 높이에서 나를 비웃고

철창에 그림자를 떨어뜨리며 비켜가는 매정한 새야

나의 꿈은 너처럼 먼데 있지 않단다

나의 날개는 너처럼 높은 데 있지 않단다

나의 꿈 나의 날개는

지금 이곳에 있단다 지상에 있단다

노동의 팔이 닿을 수 있는 인간의 대지에 있고

발을 굴러 산맥과 함께 강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 벌

판의 싸움터에 있단다

가장 높아야 내 꿈의 날개는

하늘 아래 첫동네 백두산에 있단다

그 산기슭에서 강가에서 숲속에서

재롱을 피우며 자작나무 가지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다

람쥐의 꼬리에 있단다

팔팔하게 뛰노는 붕어의 지느러미에 있단다

무지개 끝을 달리는 청노루의 뒷다리쯤에 있단다

다람쥐와 함께 붕어와 함께 청노루와 함께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는 온갖 잡새와 함께

인간세계를 이루고 사는 작은 농장에 있단다

무르익은 노동의 과실 맑은 물과 맑은 공기

하늘의 별과 산에 들에 만발한 꽃과

인간에게 공기와도 같은 것

밀이며 옥수수며 남새며 이슬이며 집이며

인간에게 기본적인 이런 것들이 너나없이 만인의 입

으로 가슴으로

골고루 들어차는 그런 세상 바다에 있단다

가장 높아야 내 날개의 꿈은

기차로 한나절쯤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청천강 푸른 물

결 위에 있단다

그 물결 위에 아롱진 이름이여 아침의 나라여

"조국은 하나다"에 있단다

"조국은 하나다"에 있단다

 

 

날개를 위한 시       /유 하

 

바람아 기억하는가

한때 나는 날개를 갖고 있었네

허공을 날며 사랑을 나누다

절정의 순간 몸이 터져 죽어버리는

수개미의 날개를

그러나 어느 날,

내 날갯짓의 에너지였던 사랑은

태양의 지평선을 따라 사라지고

난 지금 암흑의 대지에 갇혀

떠나간 사랑에 대해 쓰네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 날개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생의 나머지를 견디네

 

 

날개           /허만하

 

함박눈이 나리는 층계가 있다.

 

그 어디서 본 듯하면서 영영 모양 지울 수 없는 시선이 저리어

 

조용히 층계를 오르내리며

가슴 속에 쌓이는 의미를 밟는다.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어느 집 시계가 석 점을 치고

당신은 분명 울고 있었다.

 

커다란 한 날개가 되느라고

 

남긴 추억의 발자국들이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소리였다

 

 

가벼운 것들은 날개가 있다       /남상진

 

가벼운 것들은 추락하지 않는다

이른 새벽

리어카를 끌고 나서는 골목

벽돌담 갈라진 틈에 민들레 꽃 피었다

조심해라

귓바퀴를 돌아나가는 염려는

막다른 골목의 바람에 똑똑 부러졌다

흙 한 줌 없는 허공에 뿌리를 내린 저것

가벼운 것들은 생의 접착력이 탁월하다지만

밤늦도록 파지를 모아 버티는 삶이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에는

전봇대도 허리를 숙이고 리어카를 민다

기댈 곳 없어 자생력만 노랗게 자라는 민들레

가까이,

아주 가까이

죽음 근처를 서성거리는 동안

양식에 대하여

가벼움에 대하여 궁리하는 밤이 지나고

행복 장래식장을 돌아나가는 운구차 뒤

밤새

노랑을 벗고

향기를 벗고

무거운 생을 벗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홀씨

홀, 홀, 홀

날개를 달았다

 

 

날개           /유미애

 

번데기, 라는 말은 덫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어둠 속에 갇힌다

 

파기한 종이에 누워 말과 말의 간극에 대해 생각한다 아침이면 한

줌의 재를 물고와

 

터널 앞에 바치는 새들

 

우화라는 소리에 점박이 문장 하나가 굴 밖으로 날아간다 삼촌의

사진 위에 꽃을 얹으며 할머니는 되씹곤 했다 내가 죄가 많아서…

 

죄 하나에 무늬 하나, 어느새 손등에 돋아난 벌레들 내가 뱉은 글자

들은 지금 어느 골짜기를 건너고 있을까 꽃가지가 휘어지던 오후 그

녀가 모든 말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알 수 없었다 간신히 터진 입 속, 내 혀가 품은 것이 번데기인지 나비인지

 

 

날개의 안쪽      /권선애

 

아파트 그늘 밑 새순 돋는 곳에

새 한 마리 날개 꺾여 떨어져 있다

뒤엉킨 바람에 깃털은

날아오르는 신호를 놓쳤을까

하늘을 움켜쥐려다 미끄러진 발톱에

둥지가 묻어 있다

목덜미에는 새기다 만

홍매화 무늬가 흐릿하게 번져

숲을 앞에둔 채로 고스란히 접혀 있다

어미는,

깃털 펼치는 방법을

부리가 닳도록 일러 주었을 것이다

아무 의심 없이

그렇게 날아올랐을 것이다

처음부터 허공 언쪽은

직선이 없으니 무사하지 않았다

건조한 다짐들만 자꾸 날개를 편다

 

-詩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2014년 겨울호

 

 

날개깃 여는 비상飛上의 근원    /은파 오애숙

 

손가락 펴 헤아려 봐도

수많은 날 셀 수 없나니

이생에서 먹고 지고 잔 지문일세

 

하여 인생 서녘 펼쳐지는 대지 위에

한 그루 상록수 심겠다고 다짐하나

그 또한 녹록지 않음이 과욕일까만

 

은빛 날개에 숨죽여 하늘 우러르니

소망이 신앙 곧추세운 두 손 모음에

비상하는 날개 위로 무지개길 여네

 

 

날개 달아주다      /김행숙 

 

‘역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야’

그의 미간이 확 펴지는 걸

눈빛이 반짝 빛나는 걸 보았다

내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역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야’

오늘부터 그의 봄이 돌아오기를

꽃이 피어 만발하기를

앞에 깔린 어둠 녹일 등대 하나 만나기를

 

‘역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그동안 얼마나 자주 그의 상한 죽지를

부려뜨려 왔던가

 

상한 그 죽지로 힘들게 헤쳐 왔을 허망한 빈 칸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절망도 함께 불러

북돋는 일, 그 일이 이토록 쉬운 일일 줄이야

나는 오늘 그에게 날개 하나 달아 주었다

‘역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야’

 

 

태풍 매미, 9월의 슬픈 날개    /김윤자

 

그날 밤, 날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날개에 희망을 매달면

밝은 세상을 만날 것 같아서

날개를 키우고 또 키우고

빈곤의 지하 동굴을 벗어나

세상에 나갈 때쯤

수십 폭 휘날리는 비단 날개로

높이 뜨겠지, 라고 꿈도 꾸면서

눈물 없는 하늘을 볼 거라 믿으며

다리는 가늘어도, 울음은 서러워도

날개, 날개 하나 만큼은

강하게 지키고자 하였더니

움켜진 바람, 철없이 새어나가

한반도의 남동쪽, 죄없는 땅을 훑고 다니니

2003년 9월 11일 밤 9시에 눈 뜬 목숨

2003년 9월 12일 새벽 3시, 하룻밤 광풍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선한 백성의 가슴에 마의 자국을 남긴

9월의 슬픈 날개는

뜨거운 사죄로 하얗게 접히고.

 

 

바람의 날개       /장수남

 

고향 떠난 먼 숲

낙동강 굽이굽이 천년을 흘렀는가.

앞 산 햇살 젖은 홍엽으로 꽃 피우면 너는 어디로 가겠느냐.

잎 진 세월 긴 석양 영혼 불태워 훔쳐보지만

아직도 무거운 세월은 이방인이었네.

 

강변 나룻배 몸을 싣고

돌아온 길 다시 찾아와도 이곳도 불청객

밤은 슬프고 빈가지들 몸부림만

그대의 울음소리 이제는 그쳤을까

메마른 땅 모진 운명 속에 쌓아올린 돌탑도

비바람에 허물허물 세월에 부딪치는 소리 귀가 시끄럽구나.

 

이제는 가슴을 묻고 빈껍데기만

어둠이 가물가물 돋보기안경 너머 스치고 지나가는 세상

흔적들은 하나하나 기억들만 상실하고

가쁜 숨 몰아쉬면 창가에 서성이는 초겨울 바람이

네 이놈 귓속말로 너 미쳤느냐고 정신 좀 차려 뺨을 때리며

힘내라 다그치네.

 

에라, 모르겠다. 한 오백년 더 살아볼까

포장마차 가스등은 실눈 부릅뜨고 내 모습이 어찌한 지

삐거덕 거리는 의자에 걸터앉아

소주잔에 밤이슬 섞어가며 자네도 한잔 나도 한잔

눈물인지 콧물인지 범벅이 되어 적막한 땅 밤바람도 취하고

온 세상 취하고보니 바람의 새벽 날개 힘차게 치는구나.

 

세상 부딪치며 다시 돌고 돌아온 길

세월 깊숙이 파고들어 엄마 젖가슴 매만지며

지나온 길 발자국소리 다시 기다릴까

천년은 멀고 오백년만 더 살아 보렴

하얀 세상 겨울철새 봇 짐 푸는데 바람의 아름다운 날개 짓

하얀 겨울 함박눈 창 두들기면

천년은 멀고 오백년만 더 살아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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