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관한 시모음 5)
벚나무 집 마당 /정병근
바람이 집을 비운 사이,
꽃은 방문을 열어
서둘러 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비 끝에 돌아온 바람이
꽃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댄다
꽃의 소문이 마당에 나동그라진다
등을 말아 추궁을 견디는 꽃
외면하며 헛구역질하는 꽃
꽃이 뭘 했는지 모르겠는 바람은
그게 분한 것이다 활짝 피어서
밉고도 두려워라 꽃의 묵묵默默
다그칠수록 내밀한 언약의
괄약근을 더욱 다무는 꽃
제풀에 지친 바람이
가래침을 길게 뱉으며 대문을 나가자
결심을 끝낸 꽃잎들이
ㅍㄹㄹ ㅍㄹ ㄹ 떨어진다
- 정병근,『눈과 도끼』(천년의시작, 2020)
마당을 쓸며 /이산하
옛날 할아버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부터 쓸었다.
매일 쓸지만 어느새 또 어지럽다.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한다.
잠시 두 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한다.
빗자루로 쓰레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과
진공청소기로 쓰레기를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먼저 밖으로 배척하는 것은
오랜 시간 빗자루만 자꾸 닳고 부러질 뿐
예전의 낡은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먼지 한 점 남김없이
모두 내 품속으로 흡수해
다시 뱉어내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첫 번째 방법과는 달리 아주 시끄러웠지만
방도 마당도 깨끗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깨끗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듯
방바닥은 내 신경이 비칠 만큼 아찔했고
마당은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만큼 파였다.
싹쓸이는 너무 황량해 고립을 자초했다.
게다가 먼지깔때기를 자주 갈지 않으면
자기 내부가 쓰레기로 넘쳐
스스로 악취를 풍기며 썩거나 질식했다.
다시 청소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쓰레기들이 쌓인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들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들
또 수시로 안팎을 넘나들어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
눈만 뜨면 방과 마당을 쓰는 자들이여
눈을 감아도 세상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자들이여
먼저 자기 안의 깔때기부터 조심하라.
먼저 자신의 빗자루부터 썩지 않았는지 조심하라.
- 이산하,『악의 평범성』(창비, 2021)
마당의 서사 /윤계순
마당에서 튄 콩은
튀어봐야 마당 안이다
오후가 되면 웃자랐던 처마
한쪽 귀퉁이에 모란이 호사스럽던
그 넓은 마당으로 가을 들판이
경운기 바퀴 자국을 남기며 실려 들어오곤 했다
아버지가 먼 산 다녀온 뒤엔
새파란 도토리가 도란도란 나뒹굴고
등이 우둘투둘한 여름
느릿느릿 가로지르던 두꺼비 해질녘엔
웃통 벗은 웃음들이 찬물에 자지러졌다
셀 수 없는 엄마가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했고
외양간과 닭장 속의 긴 목청들이
담장 없는 대문을 흔들면
마실 나간 헛기침이 들어오던 마당
고개를 들면 가늠할 수 없는 밤하늘이
좁히고 좁혀 모여들었다
대소사의 행간들이 새벽 마당 차일 밑으로
두루마리를 읽어내리는,
한 번의 혼례와 두 번의 장례 사이에 우리는 자라고
또 그곳을 떠나왔지만
온갖 가을걷이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마당은
잡초들의 자구책이 된 지 오래다
성글었던 발자국을 기억하는 흙이
제 몸집을 스스로 줄인 탓일 게다
- 윤계순,『고양이가 하품을 걸어놓은 그 집』(도서출판 애지, 2023)
마당 /홍다미
마당이다 마당이 아니다
얇고 좁다 찢어지기 쉬운, 두껍고 넓다 깨지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은데
마당이 깨지면 접시는 누가 받아주나
어떻게 주워 담나
던져진 마당에
이가 빠진 접시들, 송곳니 두 개, 깨진 조각들이 나뒹군다
마당은 보이지 않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빗줄기
바닥이 젖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엎어진 말들, 빗물 고인 웅덩이, 튀어 오르는 흙탕물,
지렁이 한 마리 꿈틀거린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이 오고 간다
기왕 그렇게 된 마음이 가고 온다
도착한 마당과 오고 있는 마당, 바라보는 눈길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마당은 어떻게 마당을 여기까지 몰고 왔나
뒤집힌 손등에 빗물이 흐르고
말아쥔 손아귀,
붉어진 눈자위,
귀퉁이 뜯긴 말들이 귀를 가른다
이제 마당은 마당이 맞고
나는 마당 한가운데 몸을 일으키며
마당, 이라고 불렀을 때
마당이 꾹 밟는다
꿈틀한다
나는
마당 깊숙이 두 손을 집어넣으며
마당을 쓸며 /정철훈
나는 사람 같은 거 모르지
저게 소다, 말이다, 닭이다 하면 그뿐
내 귀가 듣는 세상 이야기도 그뿐
어데 사람 같은 거 생각해 봤나
사는 것이 소인 것을
그래도 마당 쓸어놓으니 거지 지나가고
마당 또 쓸어 놓으니 중 지나가고
그래, 하룻길 가다 보면
거지도 만나고 중도 만나는 것을
세상 사는 일이 때로
마당 쓰는 일처럼 우습다
- 정철훈,『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민음사, 2002)
마당을 밟으며 /김인숙
상처와 허물
실패와 좌절
부끄러운 모습
이런저런 이유로
주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머뭇머뭇 마당만 밟다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밝은 빛 명랑한 찬송 소리가
눈에 귀에 선합니다
내 생각 내 지식 내 고집으로
온통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데
아직 호흡할 틈을 남겨 주셨나 봅니다
저 찬송 소리가 그리워
뜨거운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이 가슴 아직도 주님의 사랑으로
작은 불씨 하나 안고 있나 봅니다
오늘 내 두 발은
비록 어두운 땅을 헤매어도
내일은 환한 빛 하늘 향해
온전히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마당을 쓸며 /박미현
촛불이 타고 있는 새벽 산사
빈 마당에 빗질을 한다
젊은 스님이 다가와
무얼 쓸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무엇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쓸고 있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멋쩍게 대답을 한다
빗질을 할 때마다
잔돌이거나 박힌 잎이거나 흙먼지거나가
벌떡, 벌떡 일어선다
백팔번뇌가 십팔로 떠오르던 법당!
빗질이 지나간 자리마다
죽비를 맞은 것 같다
- 박미현,『일상에 대한 모독』(문학의전당, 2011)
마당을 쓸며 /김용택
밤새워 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쓸어모은다.
여보!
얼른 일어나봐!
내 귓속이 환해졌어.
- 김용택,『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 2016)
너른 마당 /김미송
내일이면 둥지를 떠난다니
설마 설마 하던 인사
종일 서성거리며
눈길이 날짜로 자주 간다
설렘과 떨림을 품고 간
남의 땅 새 보금자리
안으로만 떨고 있을 보랏빛 하늘
아들아. 햇살 밝은 마당을 건너갔구나
네 소중한 꽃씨들에게
땅별의 너른 빛이
골고로 비추어지기를
가족이 깊이 뿌리 내려
그 땅에 스며들기를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
연두빛 아침을 맞는다
부엌문을 열고 어머니가 내다보던 마당을 /이준관
부엌문을 열고 어머니가 내다보던 마당을
나는 기억합니다.
제 꼬리를 쫓아 빙빙 돌던 새끼고양이의
방울 소리를.
향긋한 소똥 냄새가 풍기던 저녁,
바지가 저녁 불빛에 젖어 돌아오던 날들을,
돌아오며 혼자 중얼거리던 그 많은 외로움의 말들을
기억합니다.
사람을 닮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던 마당가,
콩꼬투리가 터지기를 재촉하던
후끈한 땅 열기를.
낮은 울타리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보던
마지막 태양.
하늘을 날아가던 아이들의 돌멩이
그 돌멩이에
짐짓 놀란 날갯짓을 하며 서쪽으로 흩어지던 새떼들.
무엇이 즐거운지
항상 허리가 휘어지게 까르르 잘 웃던 처녀들
그 웃음소리에
감나무 가지가 휘어져 마당에 닿던 날들을
나는 기억합니다.
- 이준관,『천국의 계단』(서정시학, 2014)
내 살던 옛집 마당에 /안도현
내 살던 옛집 마당에 햇볕이여, 너는 어쩌자고 그리 서럽게 부서져내리는가?
담장 위에서, 고추 널은 멍석 위에서,
툇마루 끝에서 끼리끼리 도란거리다가 나에게 그만 들키고 마는가?
햇볕이여, 어쩌자고 가을이면 내 살던 옛집 마당에 과꽃을 무더기로 피워놓는가?
어쩌자고 그 꽃송이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달아주는가?
아무일도 없는데 괜스레 꽃잎들 눈물 핑 돌게 하는가?
살 속의 뼈까지 다 들여다보일 것 같은 날, 너는 알겠구나,
시냇물 따라 떠났던 내 유년의 송사리떼가 이맘때면
왜 살이 통통 오른 새끼들 데리고 상류로 거슬러오르고 싶어하는지를,
물 속 내려다보듯 너, 알겠구나 내 살던 옛집 마당에 햇볕이여,
자두 같은 가슴을 가지고 있던 계집애들은 돌아왔는지,
그 동안 누가 세상한테 이기고 누가 졌는지,
나는 어쩌자고 궁금한 게 많구나
- 안도현,『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1999)
마당 /홍다미
마당이다 마당이 아니다
얇고 좁다 찢어지기 쉬운, 두껍고 넓다 깨지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은데
마당이 깨지면 접시는 누가 받아주나
어떻게 주워 담나
던져진 마당에
이가 빠진 접시들 송곳니 두 개 깨진 조각들이 나뒹군다
마당은 보이지 않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빗줄기
바닥이 젖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엎어진 말들, 빗물 고인 웅덩이, 튀어 오르는 흙탕물,
지렁이 한 마리 꿈틀거린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이 오고 간다
기왕 그렇게 된 마음이 가고 온다
도착한 마당과 오고 있는 마당, 바라보는 눈길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마당은 어떻게 마당을 여기까지 몰고 왔나
뒤집힌 손등에 빗물이 흐르고
말아 쥔 손아귀
붉어진 눈 자위
귀퉁이 뜯긴 말들이 귀를 가른다
이제 마당은 마당이 맞고
나는 마당 한가운데 몸을 일으키며
마당, 이라고 불렀을 때
마당이 꾹 밟는다
꿈틀한다
나는
마당 깊숙이 두 손을 집어넣으며
빈 마당 /박상영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못하고
저녁을 붙들고 있다
산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말없이 옷빛을 갈아입고
강물은
낮은 곳으로 몸을 옮긴다
세월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의 안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빛이라는 걸
빈 마당을 쓸다가 알게 되었다
젊은 날은
강물의 윤슬처럼 번뜩였으나
지금은 무뎌진 자리마다
둥근 숨결이 남아 있다
개울은 돌을 밀어내지 않고
휘어가며 길을 만들고
매화는 철이 되면 피고
눈은 때가 되면 녹아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탁한 물도 오래 고이면
스스로 맑아지듯
사람의 마음에도
오래 가라앉은 물빛이 남는다
밤이 깊어
창호지에 달빛 한 장 스치면
나는 비로소
흐르는 세월 붙잡지 않고
떠남도
제 자리에서 한 생을 다함을 안다
바람은 문틈으로 다녀가고
등잔불은 흔들림 속에 고요하다
세월이란
어쩌면 그렇게
흔들림 끝에
맑아지는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