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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시모음 1

마루에 관한 시모음 1)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20|조회수32 목록 댓글 0

마루에 관한 시모음 1)

 

마루        /이준관

 

나는 자그만 마루를 노래하겠네.

내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하늘을 처음 쳐다보던 곳.

감나무 잎이 따준 태양을 처음 만지던 곳.

식구들이 둘러앉아 팥국수 먹고

별빛으로 이빨을 하얗게 닦던……

그 마루에 앉아

첫이레가 지난 까치새끼들의 나들이를 바라보겠네.

까치 소리 유난히 맑은 걸 보니

누구네 집에 경사나겠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싸리울처럼

귀를 기대이겠네.

봄이면 맨 먼저 그리운 산빛이 녹아 낙숫물 지던 곳.

차곡차곡 빨래를 개는 누이의 뺨이

호호 부는 숯불 마냥 불그럽던 곳.

그 마루에 앉으면,

갈치배가 들어와 한껏 부풀어오른 머언 바다의

파도 소리가 내 장딴지를 철썩철썩 치겠네.

예민한 사랑의 후각을 가진 개가

다정하고 따뜻한 콧등을 내 발등에 마구 쏟아 붓겠네.

 

- 이준관,『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문학과지성사, 1993)

 

 

시골집 마루       /마경덕​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 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밀던

그 마음도 알고 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를 내 널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서

하룻밤 묵던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 말이여

궁시렁궁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 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막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을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누구의 것인지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 마경덕,『신발論』(문학의전당, 2005)

 

 

마루를 닦으며       /이성선

 

아침마다

마루를 닦는다.

 

마룻바닥에 투명히 물살짓는

나무의 무늬.

 

너의 아픔 나의 아픔

아니 세계의 아픔이

어쩔 수 없이 여기 누워

신음만 내비치는 곳.

 

​마루를 닦는다.

피묻은 물살을 닦는다.

 

하늘 우러러

침묵하던 자

 

​저 어둠 이 바람 속에

홀로 지키던 자

 

​어느 모진 손에 잘리고 써리어

내 마루에 못박혀 누워

불꽃 신음만 내비치는 나무야

 

​마루를 닦는다.

마루를 닦으며

나를 닦는다.

 

​허나 닦으면 닦을수록

더욱 선명히 내비치는

네 신음의 무늬.

 

​- 이성선,『이성선 시전집』(시와시학사, 2005)

 

 

마루           /노향림

 

​마른 걸레로 거실을 닦으며

얇게 묻은 권태와 시간을

박박 문질러 닦으며

미국산 수입 자작나무를 깐

세 평의 근심 걱정을 닦으며

지구 저쪽의 한밤중 누워 잠든

조카딸의 잠도 소리 없이 닦아준다.

다 해진 내 영혼의 뒤켠을

소리 없이 닦아주는 이는

누구일까.

그런 걸레 하나쯤

갖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 노향림,『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창비, 2005)

 

 

마루           /문태준

 

먼 곳 수평선 푸른 마루에 눕고 싶다 했다

타관 타는 몸이 마루를 찾아, 단 하나의 이유로 속초 물치항에 갔다

그러나 달포 전 다솔사 요사채, 고요한 安心寮의 마루는 잊어버려요

대팻날을 들이지 않는, 여물고 오달진 그런 몸의 마루는 없어요

近境에서 저 푸른 마루도 많은 날 뒤척이는 流民일 뿐

당신도 나도 한 척의 격랑이오니 흔들리는 마루이오니

 

- 문태준,『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마루          /이재훈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시골집 마루       /마경덕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 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닦던

그 마음도 알고 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를 내 널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 서

하룻밤 묵던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말이여

궁시렁궁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 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막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을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누구의 것인지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차주일

 

딛는 순간 앙다문 울음소리 들린다

숨겨둔 현(絃)이라도 긁힌 양 온몸으로 파장 받아내며

최소 울음으로 최대 울음을 가두었다

증조모의 관을 떠멘 걸음 삭풍처럼 휘어 받고

네발 아기 걸음을 씨방처럼 터뜨렸다

발자국 없이도 걸어가는 시어미 심사가 붙은

종가의 대소사를 활대질로 다 받아주면서

얼마나 울어 지운 것인가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어머니는 아직도 마루에서 주무신다

봄볕은 모로 누운 어머니를 마루로 여기는 듯

축 늘어진 젖통을 눈여겨보지 못한다

걸레질로 지운 나이테가 파문처럼 옮겨 앉은 몸은

걸레를 쥐어짜듯 뒤틀려 있다

모로 뒤척이는 몸에서 훔친 자국 같은 그림자가 밴다

닦을수록 어두워지는

어두워질수록 빛나는 마루의 속을 이제야 알겠다

걸레의 잠이 끝나면 마루 또한 잠들 것이다

제 그림자 숨겨둔 현 지울 때까지 울어재낄 것이다

 

 

마루         /박성현

 

편백을 쪼개 만든 마루가

막힌 숨을 트면서 등골을 찔렀다.

 

마루에 내려앉은 햇빛들이 울음을 멈췄다.

 

그 적요 속에서

나는

 

죽을 채비로

희디 흰 꽃을 질리도록 쏟아냈던

작년 이맘때를 생각했다.

 

민들레가 꽃씨를 뿌려도

해가 기울지 않은 날이었다.

 

청동의 문에 이끼가 번지는 시간마다

죽은 기운은 산 기운을 파고들었다.

 

저물고

마루에 남은 햇빛을 쓸어 모았다.

 

모시조개를 삶아 국을 끓을 힘은 남았다.

 

비린 맛이 바람을 홀리고 갔다.

 

 

마루            /노향림

 

마른 걸레로 거실을 닦으며

얇게 묻은 권태와 시간을

박박 문질러 닦으며

미국산 수입 자작나무를 깐

세 평의 근심을 닦으며

지구 저쪽의 한밤중 누워 잠든

조카딸의 잠도 소리없이 닦아준다

다 해진 내 영혼의 뒤켠을

소리없이 닦아주는 이는

누구일까

그런 걸레 하나쯤

갖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불국사 대웅전 마루에서      /손택수​

 

불국사 대웅전 마루는 한여름에 때를 많이 탄다

샌들을 벗고 들어온 사람들

맨발바닥에 묻혀온 티끌들이 나무 바닥에 묻어나선

까뭇한 윤을 내곤 한다

세상의 먼지들이 모여 빛을 내는 우물마루

이놈의 먼지들, 이놈의 먼지들

보살님은 틈나는 대로 걸레질을 하지만

걸레가 지나간 뒤의 물기를 타고

먼지는 나무 속으로 더 잘 스며든다

때가 타 반질거리는 바닥을 향해 이마를 수그릴 때

양옆으로 열어젖힌 문 너머 하늘빛도 따라 들어와

일렁이는 나뭇결 따라 파문 지는,

불국사 대웅전 마루는 한여름

세상을 떠돌던 먼지들을 품고

가장 높은 바닥이 된다

 

- 손택수,『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2014)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박남준

 

뭉게구름이 세상의 기억들을 그렸다 뭉갠다

아직껏 짝을 찾지 못한 것이냐

애매미의 구애는 한낮을 넘기고도 그칠 줄 모르네

긴꼬리제비나비 노랑 상사화 꽃술을 더듬는다

휘청~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

잠자리들 전깃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 않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떼가 꽃 덤불 속에 몰려오고

봉숭아 꽃잎 후루루 울긋불긋 져 내린다

하루해가 뉘였거린다

깜박깜박 별빛만이 아니다

어딘가 아주 멀리 두고 온 정신머리가 있을 것인데

그래 바람이 왔구나 처마 끝 풍경소리

이쯤 되면 나는 관음으로 고요해져야 하는데

귀 뚫어라 귀뚜라미 뜰 앞에 개울물 소리

가만있자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

 

- 박남준,『중독자』(펄북스, 2015)

 

 

마루 밑 세상       /최 준

 

마루 밑에서 산다

누구 한번 들여다봐 주는 일도 없이

개는 마루 밑에 혼자서 산다

빛이 없어서 미안하다

마루밑 세상

흙먼지와 고독

밤새 혼자서 이를 갈다가

잠이라도 청해 들면

개는 무슨 꿈을 거기서 꾸는가

어떻게 고쳐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개꿈이라도 꾸며 사는가

원천적 고독과

능동이 거세된 삶의 고통으로

개는 마루 밑에서 밤을 지샌다

마루밑 세상

빛이 없으므로

개의 눈빛과 살의만 번뜩거린다

어둠이 계속되고 있을때

마룻장 사이에서 차갑게 새어나오는

개의 신음소리를 우리는 듣고

오싹해진다

개는 마루밑 저의 세계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밤새 살아 있는 개와 다시 만날 때

개는 이미 마루 밖의 세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빛이 없어서 미안하다

고요한 마루밑 세상

저 혼자 다스려가는

오래 누적된 흙먼지와

천성적인 고독의

 

 

검은 마루 붉은빛      /박신규

 

첫 기억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손을 잡으며 그녀가 물었을 때

눈부셔서 눈을 감았네

사형제 늦동이로 나와 네 살 넘도록 젖을 먹었다네

청명한 단오 한낮

젖을 더듬어 입에 물 때

워메, 시상에나 이렇게 큰 얼뚱얘기가 다 있다야,

대문집에 모인 아주머니들

한목소리로 놀릴 때

태어나 첫 부끄러움을 알아

품속에 얼굴 파묻을 때

 

붉게 닳아 검어진 그 빛,

검은 마루에 윤은 백년햇살을 물고

뜰방 너머 석류꽃은 다홍에서

선홍으로 건너가고 있었네

 

 

마루 밑      /백상웅

 

​ 어느 대에서 잃어버렸을 신발 한 짝과 신발을 찾던 쪼개진 장대와 수년 전부터 이어받았을 거미줄과 자루 부러진 삽과 두어 삽 퍼내고 싶은 어둠과 어디서부터인지 시작되는지 모를 바람과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잎사귀가 있다. 옹이 빠진 구멍으로 쏟아지던 빛과 계절마다 색이 다른 먼지의 퇴적층과 그 위에 찍힌 개발자국과 마루 위에서 주저앉아 쏟아졌을 한숨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를 가족이 초저녁에 막차를 기다리던 마을로 이주했을 때다. 마루 밑에서 들려오는 먹먹한 소리와 처마에 달린 알전구에서 들려오는 소리 사이에 눈이 날렸고 발목까지 쌓이고 나는 뜨거웠다. 그렇게 스물에 마루에 앉아 서른을 기다렸다.

 

 

마루          /박우담

 

마루바닥에는 괴물이 산다

나이테, 한 올 한 올 뜯고 있는 괴물이 산다

이따금 찰진 공을 튕겨보면

자기 머릴 툭, 툭 친다고 줄 끊어지는 소릴낸다

무허가 양철지붕의 빗소리처럼

아주 리듬감각이 뛰어난 녀석이다

발길질에 따라서 아슬아슬하게 진폭을 조절할 줄도 안다

차가운 마루바닥에 가서 귀 기울여 봐라

그 녀석이 낮에 연주한 하루치의 삶을

제 음계로 조율하고 있다

밀린 방세를 걱정하는 음색처럼

모든 밑바닥에는 각자의 울림이 있다

 

내 밑둥치의 나이테에도 지워지지 않는

후줄근한 유전자가 있어 하루에도 수없이 나를 지휘하고 있다

 

 

세심당 마루에 듣는 햇살        /김경윤

-미황사 시편5

 

찬 하늘을 건너온 노곤한 눈발들이

세심당 마루 위에 시린 발을 내리고

축축이 젖은 몸을 눕혔다

 

마루에 든 햇살이 따뜻한 손바닥으로

눈발의 지친 등을 어루만져 주자

눈발은 금세 마른 몸으로

가뭇없이 허공 속의 길을 떠났다

 

지금쯤 천산남로의 어느 하늘을 건너고 있을

그 눈발의 행자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날, 세심당 마루에 들었던 햇살의 따뜻한 손바닥을

오늘 내가 전생의 어느 날인 것처럼

해바라기 하고 있는 이 마룻바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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