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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시모음 1

마을에 관한 시모음 9)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20|조회수43 목록 댓글 0

마을에 관한 시모음 9)

 

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달디단 곶감이 겁이나서

어흥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서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

 

 

향수다방이 있는 마을        /함명춘

 

한때는 아주 큰 산판일로 집집이 흥청거린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먼지와 거미줄만이 손님인 향수다방을 머리에 이고 차곡차곡 하루를 살아가는 향수슈퍼가 서 있는 마을

코흘리개 아이처럼 굴뚝들은 저녁이면 훌쩍훌쩍 연기를 흘리고

제일 오래된 우물도 첫돌 지난 아가의 푸른 눈처럼 시린 그곳은 하나같이 어리다

하루 네 번 지나는 정기열차 외엔 소유주가 불분명한 몇 량의 적막만이 운행하고

밭마다 병아리같이 모인 동네 아주매들이 흙보다는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 더 많은 씨앗을 뿌리는 곳

굳게 마음먹은 바람도 마을 언덕에 닿으면 풀어져 살구나무 가지를 두어 번밖에 흔들지 못하고

아픈 기억도 세상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된 산수유나무처럼 담장마다 소리 없는 미소를 톡톡 터뜨려놓는다

세월이 흘러도 철들지 않는 햇볕들이 하루 종일 뛰어놀다 가는 마을

아무리 큰 상처도 어린 바둑이와 같아서 어룽어룽 만져주면 이내 내 가슴에 와 안긴다

 

 

겨울 동화처럼 마을에도      /최 준

 

깜빡 잊고 해를 그려 넣지 않아서

아침이 오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달을 놔두고

거미가 죽어버려서

창문 열지 못했던 밤이 있었다

한 아이가 어제의 일기를 오늘 쓰고

한 아이가 레고로 강아지를 만들던 겨울 내내

협궤열차를 타고 산으로

사냥 간 어른들이 돌아오지 않는 마을

아이들은 아침을 기다리며

눈 속에서 튀밥처럼 자랐다

돌아온 어른들이 없는데

겨울이 가고

조팝꽃이 지붕보다 더 크게 희었다

 

 

홍옥마을        /최문자

 

사과를 깜빡깜빡 잊어버리며 홍옥마을에 살고 있다

긴 멀미처럼 지구는 수억 년 된 홍옥 나무들이 무더기 무더기 자라는 사과로 가득 찬 마을

바람은 오늘도 모든 잡풀들을 용서하러 가고 멘델스존의 핑갈 동굴 앞에 서곡처럼 사과들이 매달려 있다

이 나무의 슬픔은 태초의 사과로부터 온 것 그 나무로부터 먹은 슬픔도 사과 모양 자기가 자기 죄에 바르면 더 붉어지는 사과는 오래된 허구의 치료 약

홍옥마을 뒷마당, 붉은 책이 되어 이브는 벌써 지구에 돌아와 있다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여전히 사과의 페이지를 열고 어둠을 흉내 내고 있다

한 개의 사과에도 사과를 달지 않으려고 사지를 버둥거리던 무한의 허공이 있다 사과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던 북서풍도 있다

사과의 붉은 벽돌은 자주 무저진다 부서지는 나의 얼굴 나의 어깨 나의 떨림

가냘프고 무거운 저것들 동그라미 지구, 오늘도 그 많은 사과의 부화를 위해 깜깜한 알을 품고 저 혼자 돈다

 

 

능양마을        /조영순

 

한 떼기 밭을 일구려면

수확될 알곡보다 더 많은 잔돌

캐내고 내던져야 한다

한 생애 내내

제 몸

쪽파 밭 한 떼기에 코를 박고

앉은걸음으로 캐낸 돌밭 농사

봄볕아래 누운

잔돌 한 고랑 실파 한 고랑

허리 접힌 키보다 높아진 밭둑이

바람을 막고 키워낸 농사다

밭담 울담 쌓은 잔돌보다

구석구석 박힌 담석 더 많은

늙은 밭

순한 사슴 호미질이 바쁘다

 

 

변두리 마을         /박인걸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는

다세대 주택이 즐비한 골목길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간다.

 

거센 파도에 부유물 밀리듯

떠돌다 눌러앉은 나그네들이

울타리에 갇힌 양떼처럼

탈출구를 찾아 허우적거린다.

 

미끄러운 강을 건너올 때

꿈마저 단단히 얼어붙었지만

그날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넘어진 수숫대처럼 일어선다.

 

주머니는 비록 텅텅 비어

발걸음은 날마다 허전하지만

얼어붙은 별빛을 맨발로 밟으며

캄캄한 밤을 맑은 정신으로 깨운다.

 

 

남쪽마을을 지나며        /심재휘

 

서러움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참나무숲을 지나자 가을 저녁은
목화밭 너머의 봉분들과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마을은 낡은 그림자들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전생 하나를 밟고
신발이 더워워지기도 했습니다만
무덤 같은 신발로 오래 걷다 보면
낯선 곳에서도 겨울은 맞을 만합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탐욕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과처럼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조금 서러웠습니다

 

 

悲歌-속초 아바이 마을의 애환       /전경배

 

빠르면 보름, 길어봤자 석 달
이내 고향에 갈 줄 알았는데
눈물과 悔恨으로 살아온 60
아바이 마을의 悲歌을 치지 못한다.

맨몸 무일푼으로 떠밀려 와
억척, 또순이 이름으로 사는 게
못내 서러워
고향에 두고 온
신포마을ㅡ엥꼬치마을ㅡ짜꼬치마을
단천마을ㅡ 이름으로 모여
끼리끼리 기대며 살아왔네.

오징어를 할복하여, 덕장에 말리고
어망을 손질하던 옛 풍경은 간데 없고
2, 3세도 모두 외지로 떠난 후
아바이 마을은 모든 걸 잃었다.

쇠줄 홀치기로 끌어당겨 속초를 잇는
지구촌 유일한 갯배,
배삯 200원을 주고받는
인정스런 손길에 목이 멘다.

올해도 고향 가는 소식 없고
<겨울동화> <13>
문명의 빛으로 다가오는 세월 앞에
억장이 무너진다.

민족의 비극 6.25가 남긴
아바이 마을은
오늘도 말없이 떠내려가고 있다.

 

 

시인의 마을        /박두규

 

숲에 왔으나 숲은 없고

어린 편백들이 옹알옹알 자라고 있었다

그 숲에서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 길을 잃는다

잃어버린 길 위에도 바람은 불고

부는 바람에는 꽃들의 향내가 가득하다

어디에서 왔나, 이 향기

궁륭의 하늘 그 끝에서 오신 것인가

비로소 어머니가 입혀주신 배냇저고리를 벗고 싶었다

그대는 이렇게 늘 일상으로 건너오건만

나도 그렇게 그대의 일상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놓치지는 않는지

내가 놓친 물고기 한 마리는

푸른 하늘을 헤엄쳐 그대에게 이를 수 있는지

 

 

안개내린 마을        /김상협

 

안개 낀 날

산새는 울지않는다

계곡에 눈을 감고

바람불기를 기다린다

 

안개내린 길에는

이정표도 돌아앉아

나그네 가슴에다

갈 길을 묻는다

 

바람을 기다리는

안개내린 마을에는

살아가는 의미가

살아가야 하는 세월을 기다린다

 

 

가난한 마을         /이은경

 

새벼에 깨어 이것저것 볼일을 보고 다시 누워 봄 잠을더 자다.

맛있는 빵을 먹은듯 사르르 봄잠에 떨어지다가 참새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다.

앞마을에 목백일홍, 옆마을에 목련화, 건너 마을에 게나리, 수성못에 벚꽃,

이 마을에는 사람밖에 없다.

가난이 체질화된 마을, 맘 놓고 오늘은 유치하게 놀자.

내 경멸하는 시인을 위하여.

 

 

은점마을        /황명자

 

은점마을에

은을 팔던 점빵은 이제 없다

파도만 요란스러울 뿐

은점에서 하룻밤은 기다리던 소식만큼 더디게 간다

이른 아침,

은빛으로 빛나는 파도를 보면서

생의 반환점을 돌 듯

지나온 시간들을 주절주절 풀어 놓는 사람들

다시, 공허함으로 바다 곁을 떠난다

그 세월, 꾸역꾸역 삼키느라

저토록 힘겹게 게워내듯 파도치는가!

은점(銀店)도 은을 팔던 사람도 없지만

바다 빛 은은하고 유정하다

 

 

즐거운 하례마을      /이희숙

 

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십이월 첫날

어쩌자는 작정도 없이

마음 찢고 나온 생각 따라

별안간 제주에서 살아보기를 하러 온

 

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대문 없는 단독주택을 빌려

큰 그림을 그리러 온

날마다 제주를 통째로 훔치는 상상을 하지만

한 번도 훔친 적 없는

 

아무려면 어때요

살 오른 애기동백이 밤마다 무도회를 열고

상큼하고 달콤한 말투를 가진 감귤이 온 동네를 기웃거려도

이상할 것 없는 즐거운 하례마을인걸요

 

날 것 같은 말투를 바당*같이 알아듣는 돌과

우리말을 몬딱* 외국어로 알아듣는 나무 앞에서는

쉿 목소리를 낮춰요

단박에 나무인 걸 들킬지도 모르니까요

 

아무려면 어때요

아침이면 한걸음에 달려온 한라산이

공천포를 밀어 올린 해와 입맞춤 하고

잠들지 못한 저녁이면

더듬더듬 전하는 바람의 안부로 잠이 드는

여기는 서귀포 하례마을인걸요

 

*바당 :바다의 제주도 사투리

*몬딱 :모두의 제주도 사투리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정채원

 

어머니, 저는 오늘도 돌아요
압력밥솥의 추처럼
얼음판 위를 헐떡이는 팽이처럼
터질 듯한 마음의 골목골목
팽글팽글 돌아요, 돌아야 쓰러지지 않아요
당신의 경전을 맴돌면서
저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어머니
신대륙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얕은 곳 너머 갑자기 희망이 깊어지는 곳
그러나 희망봉 근처엔 죽음의 이빨
백상어가 헤엄쳐 다닌다지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위험한 곳
상식의 말뚝에 한쪽 발을 묶고
나머지 한 발로 절뚝절뚝
기상부터 취침까지
일상의 풀밭을 뱅글뱅글 돌아요
소등 뒤에도 전갈자리 사수자리 돌고 돌다
아주 돌아버려요
아니, 저는 더 이상 돌지 않아요
그래도,
그래도 지구는 돌지요

 

 

숲속 마을 음악회      /노정혜

 

숲속 마을에 음악회 열렸네
매미가 노래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숲 속 마을

개울 물소리 요란하다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합창의 하모니가 울려 퍼지는 숲 속 마을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는 숲 속 마을 음악회
매미도 새들도 나비도 길가에 꽃들도 행복한 모습

숲 속 마을에 큰 잔치 열렸다
들짐승 날짐승도 분주하다

 

 

목마른 마을        /박주하

 

마당에 함부로 핀 들깨밭에 앉아

낮술을 마시고 있다네

태양이 내게 술을 권하는 척하지만

실은 그의 술잔이 항시 나보다 빠르지

들깨들은 내 맘도 모른 채 키만 올리고

밀린 집세는 아랑곳없이

나의 술잔은 아무리 마셔도 지루함이 없다네

풍경일까 조급함일까

그가 유독 술을 권하는 날은

이윽고 비를 머금은 허공꽃이 분분하거나

회색 하늘이 치맛단을 길게 끌기 마련이지

귀를 자르고

언덕 아래를 망연히 내려다보던

고집쟁이 그대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빈 술잔 속을 떠도는

슬픔은 여직 변함이 없다네

태양이 썩지 않는 열매라도 지펴두고 간 걸까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나무들과

노란 곱사등이가 되어버린 나를

쉬익-쉭, 바람은 심심한 듯 후려치고 있다네

권주가는 필요 없으니

친구여, 부디 내 가문 귀를 울려주오

행복했으니 나도 이제 죽을 것이네

술이 떨어졌다네

자네도 한잔 하시게, 저 비를!

 

 

뻐꾸기 우는 마을      /미산 윤의섭

 

뻐꾸기 우는소리 숲 속에서 들려오고

아카시아 향기가 마을에 가득하다

 

송홧가루 날아들어 길가에 뿌려지고

느티나무 그늘에 빈자리가 한적하다

 

모내기 한창이니 들녘이 넓어지고

향 익은 마늘 수확 농부 마음 분주하다

 

숲을 지난 바람이 마을로 나와

철 만난 논 밭에 슬렁슬렁 흐른다.

 

 

프로방스 마을       /정호정


장미꽃이 향기롭고 햇볕이 따스한
프랑스 동남부의 작은 마을이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프로방스 디자인> <프로방스 베이커리>
<레몬 빛 리빙샵> <오렌지 빛 레스토랑>

<그린 색으로 커튼 만들어 달기>
<잔잔한 꽃무늬로 침대 꾸미기>
<테이블 위에 그릇들 살포시 올려놓기>
같은 체험 교실도 만들어 놓고

라벤더 로즈마리 페퍼민트
향기로운 꽃나무들을 가꾸며

밀밭 사이로 사이프러스 나무들 우뚝우뚝 선
별이 빛나는 밤이 카페의 창에서도 비쳐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고 있습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파주 땅 탄현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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