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관한 시모음 10)
와운 마을에서 /김 완
구름 위에 있다는 와운 마을을 간다
나무는400년 이상 살기 어렵다는데
천년된 소나무 두 그루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구름도 누워 지나가는 곳에
15가구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로 오르는 시멘트 길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작은 발자국
나무가 울고 별이 떨어지는 밤
무슨 급한 사연 있어
서둘러 산을 내려갔을까
태풍과 바람의 통로인 계곡
그 밤의 아픈 물이 오늘은 푸르구나
지리산 달궁 계곡 근처에 오르면
머리맡에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조국이며 전쟁 같은 말들 떠오른다
바위를 가르는 나무의 무서운 집념처럼
빨치산이란 이름의 숨 가쁜 역사를 생각한다
짧은 삶의 격렬함과 슬픔에 대하여
아픈 사람들의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오는
와운 마을 사진첩 속에는 다랭이 논이 서 있다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유희선
그 집 아뜩한 난간에는 네 개의 발을 간신히 올려놓은
상어빛 욕조가 있다. 정신 줄을 놓고 떠밀려 왔던 영도 바닷가
끝은 끝이 아니라는 듯, 이상하고 아름다운 욕조
욕조는 욕조를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몸통에서 미끈하게 빠져나온 네 개의 다리와 인어비늘이 조각된
미로 속에서 욕조는 창문이다. 바람개비이다. 페인트다. 기다림이다.
지겨움이다. 뜨거움이다. 깜깜함이다. 깨끗한 네 개의 발이다.
가난과 갈망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우리는 아직 액자소설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진부한 겹겹의 액자가 공간 이동을 어렵게 한다.
바닥 난 마음이 넘치도록 출렁이면 얼굴을 처박고
고무마개를 낚아챘을 것이다. 마을 전체가 욕조에 잠겨
소용돌이치며 흰여울 지는 곳
바다의 것은 바다의 것으로 순식간에 흘러가고
덩그러니 떠오르는
한 마을의 지난한 윤곽
육지와 바다 사이에 깔때기 속 세상처럼 고요한 액자가
새로운 문명처럼 걸린다.
마을의 기억 /이여원
우리는 마을의 중흥기(中興基)
새로 태어나는 얼굴보다 사라지는 얼굴들이 많았다.
노인들의 기억력에는 얼굴이 없었다.
형은 첫 기차를 타고 달아났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적요했다. 누구나 기회를 잡고 일어서려 했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월이 갔다. 극단과 이기주의가 횡횡했다. 보릿단 나누는 아우는 있었지만 아우의
장례식장에 나타나는 형은 없었다. 주변은 늘 불안의 바람이 불었고 안온의 수치는 최저였다. 책들은 쌓
여갔으나 저작권은 없었고 어린양은 있으나 지켜줄 홑이불조차 없었다. 숨 쉬는 것 빼고 대부분 실패였
다. 절제와 절연은 누구를 위한 신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벼랑에서 밀어 낸 알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목록이 달아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마을의 장자들은 거만한 숨을 쉬며 밤마다 나타났다. 수염을 어루만지며 짐짓 하는 말, 어차피 약하게
태어났어. 변명과 구차가 해를 가렸다. 우리는 누구나 마을 출신이 듯 마을을 떠나는 성공사례이기도 했
다. 마을은 점점 멀뚱거렸다. 사람이 빠져나가도 집들이 허물어지거나 병이 들어도 더 이상 마을 출신들
은 어깨를 나누지 않았다.
햇살마을2 /민경대
모두들
아니 혼자서
지키려는 마을
다시 돌아본다
햇살마을에는
누구를 기다린다
분꽃 마을 /곽성숙
화순 이서 가는 길 폐교 앞마을은
대문간마다
저녁밥 재촉하는 분꽃이 피어 있다
골목마다
졸고 있는 개와
나른한 고양이가 있다
화순 이서 가는 길
폐교 앞마을엔
엄마 목소리 들리는 분꽃이 있다
일평생 대문 앞에 피어 있던 분꽃이었다
종종종 저녁밥 지어내던 분꽃이었다
흰 머릿수건 쓰고 사신 분꽃이었다
엄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
나 하나만 바라보던 분꽃이었다
꿈의 마을 /해송 이여진
아직 그대로 일까
풀잎 시원스레 바람에 밀리고
벌레소리 관현악 그 속에
살며시 묻히운 그녀의 미소까지
하늘은 아직 파아랄까
호수에 달빛 그림자를 띄우고
목동의 피리소리에 함께 춤추는
즐거움의 나라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린
황혼의 갈대밭에 홀로 앉아서
그래도 가고 싶은 곳 그곳
옛날 그녀 미소 의미를
이젠 알았는데
아직 그대로 일까
그녀의 미소
꿈속의 고향.
산 꽃 마을 /鞍山백원기
온산이 꽃 세상 되었구나
여기서 빵끗 저기서 빵끗
울긋불긋 미소에 끌려다닌다
한 발짝도 빠져나갈 수 없이
꽃 울타리 쳐놓고
하얀 산 벚꽃 나무에
붉디붉은 진달래 꽃
애기 똥 풀에 산딸기 꽃 난쟁이 쑥
가는 이의 발목을 간지럽게 잡는다
활짝 열린 웃음 아랫산 마을
아직 덜 깬 윗산 마을
산 꽃 마을은 일찍부터
꽃단장에 부산스럽기만 하다
석이버섯 마을 /이영지
이끼의 전설처럼 초롱한 눈동자의
젤 순한 사람들이 길 열면 국시재다
한사코 석이버섯을 초롱초롱 달았다
국시로 먹을거리 잇느라 국시마을
대문은 없지만도 툇마루 거기에서
저 멀리 폭포소리를 불러오며 달았다
동피랑 마을 /목필균
등 굽은 가난이 어깨동무 하며
동포루를 끌어안고 사는 마을
요즘도 거북선을 갈망하고 있는지
흔한 자동차 한 대 허용하지 못하고
비켜설 수 없어 찾아든 사연들이
강구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포루 복원
공원 조성이란 명분으로
철거 위기가 왔을 때
달동네 속사정들이 흩어져야 했을 때
이순신 장군도
어린왕자도 백설공주도
보아뱀 속 코끼리도
나타나 마을을 지켰다
집집마다 그림 속 이야기를 담고
동쪽 벼랑 동피랑 마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관광객들 발자국 소리를 담보로
지우고 싶은 왜란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산벚꽃 피는 마을 /鞍山백원기
추억 어린 내 고향 말 바위 동네
무성한 벚꽃 한 가지 꺾으러 갔다가
되레 내가 꺾이고 왔네
밥 짓는 산간 마을 오순도순 굴뚝 연기
이집 저집 피어오르던 벚꽃 연기
비를 몰아오던 뭉게구름 되어
마구 몰려와 벚꽃 구름 만든다
나는 어리둥절 환희에 차다가
“와”소리로 화답하고 주저앉았네
빈 땅 여유 없이 하얗게 피던 산 벚꽃 군락
보고 또 봐도 가슴에 그릴 수 없어
그 모습 그대로 볼 수밖에
그리기도 미안스런 찬란한 벚꽃 잔치
즐거워 너도나도 만발하는 웃음소리
흥겨운 하루하루 아깝게도 지나간다
북촌마을 /류병구
맑은 개천 웃동네
ㅁ자 한옥마을
궁한 샌님들 남촌보다
꽤 대궐인 줄 알았더니
옹색한 여염집 안방에
콩댐 비릿한 장판내가 물큰하고
막사발 엎어
초배바닥 수도 없이 문지르던
어머니를 거기서 뵈었더라
亞자 문살 미닫이
당신 입물 뿜어 팽팽한
창호지 속 단풍 서너 이파리에
문뜩 가슴이 저리더라
조막만한 아랫뜰에
채송화, 백일홍이 한창인데
맞배지붕 날렵한 곡선 휘감아
백악 산줄기 저 쪽
서촌으로 번지는 노을도
그 꽃빛이더라
무나무 마을 /최영희
경북 안동 와룡면 무나무 마을
93살 아버지 70여 살의 세 딸
홀로 된 아버지를 봉양하려
도시의 가족을 떠나
굽이굽이 무나무 마을 세 딸이 모였다
낮에는 벌을 치고 쟁기 끌고
밤이면,
아버지 앞에 모여 앉아 노래하고 춤추며
재롱을 부린다, 철부지 딸이 된다
“무나무 마을엔 꽃이 피고
아버지 사랑이 있다.” 딸들이
아버지 앞에서 부르는 작사한 노래다
다리 굽고 허리 굽은 딸들의 재롱
아버지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오늘도 아버지가 웃었다
무나무 마을 아카시아 꽃길을 걷는
노래하는 일흔여 살의 행복한 소녀들,,,
연꽃 피는 마을. /장수남
그리운 밤하늘
나. 그곳에 깊이 잠들 땐
자장가 꽃피는 마을.
노을 깔고 누우면
밤하늘 엄마의 숲. 연 잎
꽃피워놓고.
들 국 천년의 향
그리움이 젖은 은빛 숲
산울림 둥지 틀 땐.
햇살내린 새벽
나. 보고파서. 맺힌 이슬
넌. 곱게 씻어 내릴까.
별들이 모여 사는 마을 /김찬옥
지호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다
가방을 받아들고 집 앞 편의점에 들려 마이쭈를 사고
새콤달콤한 얼굴로 아파트 정문을 들어섰다
마당에 핀 꽃들이 오늘따라 유독 한가해 보인다
봄은 꽃들에게 먼저 왔건만 경비병보다 더 지루해진 오후,
한참 졸고 있을 꽃들에게 지호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
"저 나무는 목련이라고 해, 꽃이 뭐 같아 보여?"
"응 꽃잎이 하얀 날개 같으니까 백조 같아요"
"그래 정말 백조 같네,
큰 소리로 말하면 백조 떼가 우르르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지호는 살금살금 목련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적막한 봄은 달아올라 모이를 쪼듯 연신 물어댄다
"저 건 벚나무인데 저 꽃은 뭐 같아?"
"응 벚꽃나무 뒤에 하늘이 있으니 밤하늘 별자리 같아요
별들이 함께 모여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 나무에 걸려있네요"
"응 정말 그러네, 지호의 눈은 진짜 상상님이 주셨나 봐"
지나던 바람이 귀를 세우고 지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백조 몇 마리 땅으로 내려앉아 날개 속에 부리를 감추자
지호의 머리 위에도 발등 위에도 낮 별들이 호호호 쏟아져 내렸다
기장 대룡마을 /靑山 손병흥
전통과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알려져 있는 시골마을
옛날 옛적 큰 용이 우물 속에 살았다던 전설 깃든 용천샘에다
부산 울산 경계지점에 위치한 150여명이 사는 명소 작은 마을
마을입구 방앗간 앞에서 세 갈래로 나눠지는 토담 골목길 따라
왼편에 위치한 골목길엔 ‘작업실 오리’라는 도자기 공방이 있고
또 다른 골목길엔 독특한 대문 도자기로 만든 문패 정겨운 흙담
가운데 골목길로 가면 특이한 모양 어우러진 조각품들 원두막이
마을회관 건너편으로는 농업유물들이 전시되어진 대룡역사박물관
행안부의 ‘살기 좋은 지역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진 이후로
1천여 평 규모의 창작촌에 다양한 계층의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여
명성답게 곳곳에 스며진 평범함을 거부하는 기발함이 깃든 예술촌
천천히 자연 접하며 한옥전시관의 사진 서예 볏짚공예품 감상하며
한옥건물 복합회관의 전통한옥 생활체험도 즐길 수 있는 농촌마을
무섬 마을 /황인숙
경상북도 무섬마을
고풍스러운 고택들이 아름다운 마을
억새풀이 무성한 길옆 언덕에는
시인들의 시가 목판에 새겨져
즐비하게 세워져 있고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가물어 얕은 수심 햇살아래
고운 모래바닥을 노랗게 드러내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통나무를 반으로 짜개어 만든 외나무다리
양팔을 벌리고 건너는 사람들
어린꼬마가 뒤뚱 뒤뚱 하면서
엄마가 등 뒤에서 잡고 걷는 다
한참을 가던 꼬마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는다 뒤따르던 사람들
꼬마의 용기를 대단해 하며 지켜보며
꼬마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당진 왜목 마을 /초월 윤갑수
(갈매기)
갈매기떼 너울너울
내곁에서 멤돌고
출렁출렁 춤추며
달려오는 파도
내 가슴에 요동친다ᆞ
저녘 노을 곱게 꾸미우고
함께 거닐던 바닷가
따스한 하늬 바람
새색시 치마 날리듯
뗄지어 모여들고
지는 해를 가리운다...
아마도
변함없이...
지금도
거닐던 바닷가엔
갈매기가 노니겠지... ...
유자꽃 피는 마을 /김광협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새이로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 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더이다.
툇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듯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
보오보오 연락선이 한소절 울 때마다
떨어지는 유자꽃.
유자꽃 꽃잎이 울고만 싶더이다.
유자꽃 꽃잎이 섧기만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