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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관한 시모음 101)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10|조회수90 목록 댓글 0

여름에 관한 시모음 101)

 

여름         /나금숙

 

버스에서 내려 너의 집 앞으로 다가갈 때 외양간에서는 어미 소가 선 채로 송아지를 막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송아지는 비척거리며 다리에 힘을 주더니 일어서서 겅중거렸다 정오의 빛을 반사하는 갓 태어난 송아지의 털빛이란! 암소의 다리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흘러 돌아 나가고 여울에는 돌사과가 향내를 풍기며 썩어 가고 있었다 허리까지 우거진 잡초들, 풀벌레들이 소리 높여 울다가 갑자기 그치는 적막 속에서 너와 입 맞추기 위해 멈춰 섰다 미술관 소음 회화 앞에서 음향을 듣기 위해 단추를 누르듯이 모자를 한껏 젖히고 강이 하늘에 걸리고 낮달이, 물고기들이 그 강을 건너고 있었다

 

 

여름 한때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속에서 달려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가—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난, 여름       /최 휘

 

비단뱀이 울창한 여름 나무 아래를

리리리 리리리리 기어간다

 

피자두가 주렁주렁 열린 자두나무 아래를 기어가며

열흘은 지나야 먹을 수 있대

라고 한다

 

자둣빛 구름 사이로 멀어진 마음이

두 줄의 비행운으로 지나간다

참 속상했겠다

지나간 날들을 쓱쓱 핥아 주는 바람 같은 말

 

청포도 참외 토마토 오이 감자 옥수수

함께했던 여름들이 지천이다

 

여름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뙤약볕 아래를 누비며

아 더워,라고 말하면

들은 듯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차라리 나를 사랑해 버렸어

난,여름

이렇게 말할 거다

 

 

여름아!        /박명숙

 

여름 장마에

하늘도 울고 삼복더위에

매미도 사랑 찾아 우는데

 

청명한 아침 하늘에

새가 노래하고

땡볕에도 찡그리지 않은 얼굴로

활짝 웃는 해바라기처럼

웃어보자

 

여름아, 울지마라

철썩이는 파도가

출렁이며 물거품 사랑이

태양도 삼키고

 

젊은 연인들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

바다가 부르는 모래사장에

여름을 새긴다

 

덥다 덥다고 하지 말고

뜨겁게 더 뜨겁게 사랑하자

정열의 뜨거운 계절

푸른 청춘의 노래가

여름을 부른다.

 

 

여름 바람     /정태운

 

하늘거림 하나

주웠을 분인데 시원한단 말

절로 난다

 

그늘 하나

얻었을 뿐인데

여름을 다 보낸 듯하다

 

그대와 함께

나무 그늘진 평상에 누웠으니

파란 하늘도 내 꺼

흰 구름 한 점도 내 꺼

 

그대도 내 꺼

 

(계간 실상문학 24년 가을호 제109호 중에서)

 

 

여름아 네가 왔구나     /김원철

 

거센 추위 눈보라 맞으며
깊은 산속 얼음골을 뒤로 하고

수많은 꽃길 가로질러
신록이 우거진 숲을 지나
장마를 앞세우고
네가 찾아왔구나

그 예쁜 복사꽃 지고
뻐꾹이 소리 봄을 배웅하더니
색깔도 어여쁜 천도복숭아 누구의
혀를 자극할지
낮 뜨거워
바람마저 몰고
장마를 앞세워 찾아 왔구나

아침이면 선선한 바람불고
텃밭에는 풋고추 하나둘 매달려가고
방울토마토 가지 사이마다 주렁주렁
분홍색으로 익어가는 계절

금방이라도 불판에 삼겹살 구이
기다리기라도 하듯
꽃상추 가지 부러질 듯 하면서도
위로 치솟아 올라오고
윤기도 파아란 아삭이상추
겹겹이 쌓아 선선한 저녁시간
전원의 풍경 펼쳐져 오네

나무가지 마디마다 수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매달려 있는 새파란
미니사과는 볼수록 탐스럽다

남쪽에서부터 장맛비 시작되고
낮이면 뙤약볕에 찌는듯한 불볕더위
간간이 굵직한 구름을 몰고
불어오는 장마전선의 시원한 줄기바람

여름 네가 왔구나
장마를 앞세우고 찾아왔구나

 

 

그 여름 삽화     /손숙영​

꼬박 한 해를 살던 그때 말입니다

사계절 내내 한자리 지켜준 소나무 세 그루가 반듯하게 섰지요

밭고랑 사이사이 묻어 둔 검정비닐 위로 후드득

장단 맞추던 소낙비,

촉촉한 대지에 스민 보드라운 촉감을 기억합니다

풀잎 사이, 스치는 바람에 잎사귀 뒤집어 팔락이던 평온

빗방울들이 삼경의 종소리에 굴러떨어집니다

새벽을 고르면서

내게 허락된 사랑이란 자주 비틀거리며

형질도 없이 사라지는 기억이거나 구름 같은 거

근압으로 수공에서 밀려나는 것

돌아본 그해 여름,

통점이 가슴을 지그시 누릅니다

시간의 지층이 삐끗했거나 기억의 오류이거나

잘못 연결된 코드처럼

그해 여름은 젖어 있습니다

불완전한 문장들이 고개 숙인 잎새처럼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그해 여름    /청린 남종철

 

한바탕 소나기 합중주가 끝나니
마당 한 켠으로 도랑물 춤추며 요란스레 휘돌아 나갑니다.

돌돌말이 멍석 피고 쑥불 피우고
호박잎, 머윗잎, 가지무침, 고구마 줄기, 쑥 개떡 .. .
푸릇푸릇 저녁상에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

옥수수 잎새 사이로 달빛 흐르고
밤 하늘엔 반딧불 퍼레이드
떨어질 듯 낮게 드리운 한여름 밤 별을 세며
밤새 울어대는 풀벌레의 슬픈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
그해 여름이 갔습니다.

 

 

여름 냇가       /문대준


물의 흐름도 멈춰선 듯이
유유자적
하나도 바쁠 것 없이 흘러가고
지느러미 질로 물속을 헤엄치던
잉어는 느릿느릿 여름 장날
장을 보러 가는 듯이 느리게 움직인다

수면 위에다 솜씨 좋은 화가가 그려놓은
긴 머리의 수양버들 나무와
파란 하늘에 가볍게 올라앉은 하얀 솜 구름이
잔잔한 물살 위에서 수채화로 그려진 듯
보여진다

계곡에서 큰 소리 지르며 흘러오던 물살들은
뜨듯한 물살 속을 조용하게 입 다물고
흘러가고 있고
참새만 한 매미는 뱃고동 소리를 흉내 내며
~이이이~
여름의 괴성을 질러댈 때
뚝방 위에서 익어가는 보리 때알 송이가
쑥스러워 짝사랑 님을 만난 듯이
볼 빨간 얼굴 되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여름 감기     /문장우


무더운 여름에 감기가
뜬금없이 찾아왔다

벽을 안고 누운 채
콜록콜록
두통과 콧물이 주르르

시간의 모서리마다
날카로운 마음을 다독이나
하루가 지겹다.

삶아 놓은 시래기처럼
흐물흐물 풀린 육신
지그시 눈을 감는다

끼니마다 식사 후
먹으라는 처방전 의지하고
한 움큼씩 먹는 알약

낮과 밤을 구분 못 하고
깊은 잠에 빠지니
한 잠든 영혼을 깨우는 것인지

마음 비운 시간에
가슴 속 꽃이 피면
실핏줄이 풀어지고
잇몸 살짝 보이며
나의 하루가 피식 웃는다

 

 

여름 정거장에서    /박명숙

 

여름 속으로 떠나요
우리의 청춘이 이글거리는
감성을 불태우는 시절로
나를 태우고 남쪽 내 고향
여름으로 출발합니다

기적소리 울리는 기차를 타고
가벼운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첫 번째 정거장에 도착하면

유리창에 어리는 빗소리에
칠 년의 절절한 사랑 노래를
듣고 가기로 해요

다음 정거장을 향해
출발할 때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더 가보고 싶게 하거든

불타는 여름의 마지막
정거장을 빠져나가면
기온이 다르고 모르는 들꽃이 반기는
여름과는 사뭇 다른
상큼한 향기가 밴 정거장에 머문다

여름을 배웅하며
노선을 갈아타는 시점에
진한 그리움의 노랠 부르며
여름이여 안녕
미련 없이 떠나렴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이젠 안녕

 

 

여름아 너 참 예쁘다     /박진표

 

여름이 업고 온 가을이
10월의 창가에 고개 내밀고
여름아, 너와 함께 지냈던
지나온 치열한 날들
때로는 힘들고 아팠어도
너의 그늘에서 행복했다

아기단풍 뛰노는
가을의 드넓은 마당에서
상처 위에 상처
그 상처에
아픈 꽃들이 피고 지고
참 예쁘게도 물들어 간다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기에
그 빛을 찾아 노래하고
삶은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사계절을 품어 언제나 그렇게
홀로 꺼지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가을을 허락한 여름아 너 참 예쁘다

 

 

여름을 마시다     /최은숙

 

쏟아지는 여름 폭포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

풋풋한 스물셋

 

하얀 발목을 드러낸 채

쏟아지는 물빛을 입에 담고

여름을 마신다

 

여름을 입에 물고

폭포를 향해 두 팔 들고

물빛 사이를 걷는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물빛 사이 걷는 스물셋

푸름도 함께 걷는다

 

 

아픈 여름     /서금순

 

장맛비가 계곡을 훑고 지나간다

억새가 물길에 휩쓸려 바싹 눕는다
폭우가 쏟아지면 잔잔하던 계곡물은
흙탕물 되어 성난 들소 떼처럼
윙윙 큰소리로 내달린다.

계곡에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함께 떠내려간다

꽃 같은 청춘의 부고를
들어야만 하는 이 여름
몹시 아프다.

갓 결혼한 새댁과
성격 좋은 큰아들을
보내야 하는 어미, 아비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아들의 영전에서

멍하니 정신 놓고
마음껏 흘릴 수도 없는 눈물이
가슴에 핏물로 흐른다.

 

 

무더운 여름      /이재환

 

열대야에

사람은 힘들어하지만

 

들에는

곡식이 익어 가는데

 

인간은

나이만 먹고 여물 줄 모르고

 

얼굴에

깊은 주름만 늘어가네!

 

 

우리의 여름(밭에서)     /장계숙

 

뜨거운 한 철 늘어진 너도

등줄기 소금꽃 가득한 나도

땅 붙잡고 맘 내려놓으니

두렵지 않은 참선의 여름

눈물자국에 여무는 속내를

내 어찌 모른 척할까

종일 마주 보며 발갛게 익어

아린 속 뜨거움에 눌어붙어도

육탈의 보시 빛깔로 고백하니

우리의 여름 그립게 깊어진다

 

 

여름          /박남희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었더니 빼꼼히 구름이 비집고 들어온다

구름은 들어오다가 열린 문 사이에 걸쳐있다

(자세히 보니 그 모습은 머리를 민 낯선 아내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 광경을 보며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광경은 오래 전부터 액자 속에 갇혀있다

 

누군가 칸트와 데리다에게

액자 속 그림을 보고 질문을 던졌더니

칸트는 액자 속 그림인 에르곤을 예술이라고 하고

데리다는 액자인 파레르곤까지가 예술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아내는 에르곤일까 파레르곤일까

젊은 시절의 아내는 아름다운 에르곤으로 보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파레르곤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 역시 아내에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의 모습은 지금까지 수시로 미끄러지면서 다가와서

나에겐 여전히 차연(差延)*이다

 

아내의 모습에는 확정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아내는 어제 항암 후유증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밀고 왔지만

갑작스러운 낯선 모습에는

손에 목탁을 들려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오늘 내가 본 아내는 문틈 사이의 구름이다

반쯤 열린 문 사이에 끼어있는 저 아름다운 구름은

들어오려는 걸까 나가려는 걸까

 

나는 오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되어

갑작스레 머리 반들거리는 낯선 아내가

한층 모호해진 문틈 사이의 구름으로 보여

아내를‘여름’이라고 조심스레 불러본다

 

갑자기 여름의 습한 공기가 몰려온다

매지구름이 문 안으로 밀려들어와 비를 왈칵 쏟아낼 것 같다

 

*차연(差延):데리다가 독자적으로 사용한 신조어로‘차이’와‘연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차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의미가 미끄러져 언어의 의미가 지연되고 연기된다는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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