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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에 관한 시모음 10)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20|조회수77 목록 댓글 0

여름날에 관한 시모음 10)

 

그 여름 날의 단상        /은파 오애숙

 

정렬적인 꽃 중의 꽃 사르비야

아직도 내 마음 불타오르는데

인생 해 질 녘 산마루에 있네요

 

그 옛날 일주간 머물다 왔던 곳

그 땐 비포장 도로였던 흑산도

힘겹게 아리랑고개 오르던 기억

 

가슴에 휘날리는 열 두 고갯길

오늘따라 아슴아슴 그리운 꽃

초록빛 여울 초록망울 핍니다

 

신안 끝자락 푸르다못해 검은 섬

실제론 초록물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다시 그 옛날로 가고파

 

아스라이 맘속에 피어나는 그곳

살아생전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그곳까지 가서 가보지 못한 홍도

 

아 그 붉은 섬 꼭 한 번 가고픈 심연

아스한 하늘도로에서 한 수 읊고파

한여름 이맘 때 되면 물결쳐 옵니다

 

 

어느 여름날        /덕송 홍성기

 

싱그러움 가득 담은 어느 여름날
동네 마실길엔 호두가 익어가고
가지와 호박들이 대롱대롱

여기도 꽃
저기도 꽃 꽃
꽃잔치 벌어진 우리 마을 골목길

채송화, 봉선화, 참나리, 원추리
능소화, 접시꽃, 무궁화, 온갖 채소들
서로 먼저 달려와 반갑다고 인사하는 데
한산한 골목길엔 인적이 없다

삼백 년 된 느티나무 그늘 만들고
쉬어가라 붙잡지만 찾는 이 없어
스산하고 쓸쓸하고 답답한 가슴

아파트 화단 샛노랗게 익은 살구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 개 주워드니
"농약 살포" 못먹게 한다

어느 여름날
내가 사는 동네 마실길
꽃들은 천국인데 정 많던 사람들
어디로 가고 쓸쓸함만 더한다.

 

 

여름날의 친구       /이세복

 

콩밭 매는 아낙이 안쓰러워

눈치 빠른 샛바람 찾아와

가슴골 달래준다

 

뙤약볕이 절정을 이루면

끈적임 씻어낸 냉수에 뒤질세라

영혼 없는 바람개비가

오수(午睡) 를 초대한다

 

깨꽃이 떨어질 때쯤

참깨 털어내는 어머니를 위해

알맹이와 부스러기까지

깔끔이 분리하는 바람개비

 

어찌나 농부들 맘 알아주는지

둘도 없는 여름날의 친구다

 

벌써

고소한 향이 진동하듯

소금꽃 피는데도 흥겹다.

 

 

여름날       /윤민순

 

아침 일어나면 몸이 온도계로 움직이면

송송 땀방울이 맺혀요

 

언제나처럼 춤춘 선풍기

키 큰 고개는 들릴듯 합창소리

 

시간이 흘러

초복 중복 말복에 여름행사네

 

덥다 해도 시원한 지금

몸이 편리한 우리네 삶 속에

익숙함이 자리잡은 여름이다

 

좋은 세상

뜨거움 참 좋아라 외쳐요

차가움 잊고있지요

 

지금 좋아요

여름날에.

 

 

어느 여름날의 개떡 같은 시    /최진연

 

그 해 여름에도 우리 집은 정수리에 숯불을 피운 듯 태양이 떡 켜보다 두껍지 않을 지붕 위로 열기를 쏟아 붓고 있었네. 내 인내력이 지붕 두께보다 두꺼운지를 시험하는 태양과 맞서 있었지.

 

방학이 막 시작될 무렵 내가 술꾼이었다면 술병을 들고 왔을 어느 아이 어머니가 표지의 흑백사진 같은 시들을 모은 아무개 시집 한 권을 놓고 갔네. 아이를 위해서인지, 나를 위해서인지, 둘 다를 위해서인지, 아무튼 내가 술꾼이 술 마시듯 시를 마시고 사는 줄 알았음이겠지.

태반이 하얗게 광선으로 처리된 표지의 얼굴이 반라로 뒹굴고 있는 내 전신에 그 여름 한낮의 햇살을 더 뜨겁게 쏟아 부었네. 풀꽃 한 송이 찾을 수 없는 내가 사는 시의 광야, 떨기나무 한 그루로 박혀 있는 내게 지나가는 빗방울 몇이 가시가 되는 내 감성의 이파리들을 조금은 녹색으로 물들이며 피어나게도 하지만, 매미 떼는 그 짧은 생애를 노래로 보내노라 이 아파트를 소음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만들고, 나는 한 척 배가 되어 그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그 시집 발문 필자는 고속버스 강남터미널 근처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

어느 시골을 떠올렸다나.

 

그 객쩍은 소리가 정수리 위 햇살처럼 내 감정세포들을 의식의 번철 위에 올려놓고 한바탕 들끓였어. 여름마다 종종 신경의 실타래를 엉망으로 헝클어뜨리는 매미소리에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듣는 듯한 표정이라니! 매연으로 골머리 지끈거리는 터미널 앞에서 그 매미소리를 듣고 홀연히 무릉도원에라도 들어선 듯 신기한 눈으로 일대를 두리번거리는 그 뚱한 모습이나니!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 찌꺼기들을 진수성찬이라는 게 낫지 원. 그 사람은 노상 방뇨하듯 제멋대로 갈겨놓은 그 언어의 잡동사니 같은 글을 서울에서 듣는 매미소리처럼 놀랍고 신선하다며 박수를 쳐대는데, 매미소리에 시달리는 내 번철이 어찌 뜨거워지지 않겠어.

 

요즘 글줄이나 읽고 평을 한다는 젊은이들 가운데는 이런 언어의 쓰레기통인지 고물상점인지 잡동사니를 희대의 절창인 양 패거리를 지어 손뼉을 쳐댄다니! 그래 나도 한번 내 자랄 때 먹던 보리개떡 같은 잡설을 제멋대로 떠벌려놓고 이게 詩입네 해 보는 거여.

 

대낮 같은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귀청이 찢어지라 밤중에도 울어대는, 그 시골 사람이 들은 적이 없을 서울 말매미소리를 고상한 음악처럼 먼저 들어보고, 귀 귀로 이 언어 잡동사니도 한번 들어보라고 나도 노상 방뇨하듯 제멋대로 한번 갈겨놓아 보는 거여. 박수는 안쳐주어도 좋으니까 말이여.

 

 

여름날에 그 찻집       /한규원

 

온 힘을 다해

처마 끝에 머물다가

밀려오는 고성소리에

허공으로 몸을 던지고

 

불빛을 쫓아서

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어둠 속으로

멀리멀리 사라지고

 

조명등에 비춰진

나뭇잎사이로

한이 서린 물방울은

떠나지 못하고 매달리고 애원하네

 

어스름한 불빛이

조금씩 조금씩

희미하게 멀어져 가네

 

 

여름날의 어린 추억      /장희주

 

마당 끝 개울물 따라

맨발로 뛰어다니던 여름날

 

돌 위에 앉아

찰방찰방 물장구치며 웃던 얼굴

 

파란 하늘에 물든 웃음소리

시간도 흐르는 줄 모르고

해가 저문 줄도 몰랐던 시절

 

개울물은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어느새 저만치 흘러가고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손을 담그고 있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들린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소리

 

작은 물소리

그 속에 숨은

어린 나의 해맑던 웃음소리

 

 

여름날의 환상      /박명숙

 

우물에 수박 한 덩이

여름을 꽁꽁

동여매고 둥둥 떠 있고

구슬땀을 식힐 등목으로

서늘한 순간이 있던 시절

 

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멍석 깔고 누워

별똥별 떨어질 때

누워있는 풀숲에 개똥벌레가

수놓던 여름밤

아름다운 추억들이 반짝인다

 

어떤 시절은 추억이

환상의 꿈처럼 찾아오고

어떤 시절은 추억이

꿈도 꿀 수 없는 전설로 남겨진다.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가

전설 중의 전설

그 전설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 사라지는 것들의 풍경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여름 날       /손택수

-마천에서-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여름날의 환상      /박명숙

 

우물에 수박 한 덩이

여름을 꽁꽁

동여매고 둥둥 떠 있고

구슬땀을 식힐 등목으로

서늘한 순간이 있던 시절

 

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멍석 깔고 누워

별똥별 떨어질 때

누워있는 풀숲에 개똥벌레가

수놓던 여름밤

아름다운 추억들이 반짝인다

 

어떤 시절은 추억이

환상의 꿈처럼 찾아오고

어떤 시절은 추억이

꿈도 꿀 수 없는 전설로 남겨진다.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가

전설 중의 전설

그 전설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 사라지는 것들의 풍경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여름날의 갈증      /김정섭

 

붉게 익은 태양의 숨결은

마른 입술 갈증으로

지친 침묵의 시간으로 흐른다

 

낮잠은 더위에 흩어지고

끈적이는 그림자는

무게 없는 바람 되어 허공을 가른다

 

식지 않은 대지의 열기

아련한 꿈처럼 희미해지는 기억

여름의 한 조각 지나가는 소나기

 

끝없는 갈망의 지친 마음

어둠 속에 숨죽인 별빛도 희미하고

밤은 깊어가도 잠은 이루지 못한다.

 

 

어느 여름날      /마석 서정희

 

한 풀듯

울부짖던

오란비 거둬가니

이글댄 태양빛에

온누리 뽀송하네

초록숲 마주 한 하늘

회포 푸는 한나절

 

병아리

삐약대는

한낮은 다 지나고

어둑한 앞마당에

솔바람 스며드네

한 계절 가고 오는 데

남은 추억 한자락

 

손가락

사이사이

모래알 빠져나듯

올망졸망 품안의 것

날개 달고 날아가네

이 여름 순간 영원히

화폭 위에 남기려

 

 

여름날의 추억      /유화 서순임

 

무더운 여름 밤

집 앞 정자나무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 소리

 

모깃소리 또한 윙윙 거리며

잠 못 이루어었지

 

밤 하늘에 총총 거리는 별들과 은하수

별똥별 떨어지고

 

마루 끝 토방 아래 모깃불 피어놓고

한 여름밤의 모기들 쫒으며

연기을 날린다

 

오손도손 가족들의 대화 속에

정이 흐르던 밤

 

곱게 머리를 땋은 댕기머리 울 언니

빨간 봉숭아꽃 한줌 따다가

 

나의 열 손가락 손톱에 올려

피마자 잎 싸매주고

스르르 잠이 들었던 어린 시절

 

 

여름날의 휴식    /백승운

 

여름이 쏟아내는 열기 사이

나뭇잎 틈새로 파고든 가을

어느새 풀벌레 소리에

말랑말랑 익어가고 있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옷에 스며들어 풀 먹인 모시처럼

딱딱하게 말라 뻑뻑해져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지친 육체 위에는

하얀 포말의 소금 알갱이가

염전이 되어 짭조름하게

절여져 갈 때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공휴일처럼 찾아온 징검다리 연휴

거센 계곡물에 벌거벗겨진

여름 일상을 풍덩 담그면

 

높고 파란 하늘이 보이고

산 위에 걸터앉은 하얀 구름이

꽃밭처럼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피고 지고

 

시린 물보라 사이

다슬기가 반딧불이를 소환하여

깨끗하게 씻긴 여름 일상을

데리고 하늘로 간다.

 

 

여름날의 꿈처럼    /오민아

 

햇빛이 눈부신 날

멍 때린 상념 속에

스며든 그리움에

피어난 아지랑이

여우비

지나간 자리

무지개 꽃 피었네

 

비 그친 오솔길에

아련한 흙냄새는

한여름 소낙비로

젖어든 꿈이여라

입가에

번지는 미소

꿈의 나래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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