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에 관한 시모음 11)
여름날의 추억 /이명주
녹음이 짙은 여름
산으로 떠나보자
개울가 발 담그고
노래도 불러보자
시원한
매미의 합창
바람 타고 달린다
시원한 수박화채
무더위 씻어내고
송사리 물길 따라
춤추며 올라온다
아이들
고무신 들고
송사리 떼 쫓는다
한 가득 물고기가
고무신에 담길 때면
아이들 웃음소리
추억의 노랫소리
팔월의
초록숲 그늘
석양 담고 웃는다
여름날에 /박옥화
풋과일
붉게 익어가는 계절
요란한 빗소리에
산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해님도 새들도
숨어버린 조용한 시간
빗소리
벗 삼으며
달달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 달래보는
여름날에 ㆍㆍ
여름날 /안귀숙
구름 걷히고
속을 드러낸 파란 하늘
작심한 듯 쏟아내리는 따가운 햇살에
낙동강변 가로수길엔 빠알간 백일홍이
쏟아지게 피어납니다
진초록으로 감싸 안은
안동호 번 길엔 여름을 노래하는
자지러지는 매미 울음소리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이
따가운 열기를 달래줍니다
길고 길었던
아니지 죽어라 길었던
칠월도 마감하고
8월의 여름
아직도 멀 리 한참이나
멀 리 생각하니 지겹네요
청포도 익어가는
7.8월에
이육사 시인의
고향이 안동인데ᆢ
십시여 년 넘게 안동 살았어도
청포도는 보질 못했으니
하긴 뭐 바다도 없는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유명세를타니..
무덥고 나른한 오훗길
예쁜 여름추억 하나 담으세요.
여름날의 끝자락 /정종명
길게 드러누운 산 능선엔
쪽빛 잎새 두툼하게 살아 올랐다
길가 가로수 벚나무 이파리
어느새 한 잎 두 잎 색 바래 이별을 고한다
매미 목 터져라 사랑 찾는 울음
귀가 따갑도록 처량하여 가슴 시리다
한결 누그러진 햇살
오곡백과를 익혀 내느라 손길이 부드럽다
간간이 풀벌레 노랫소리
가을의 이야기 풀어 내며 깊은 밤의
청량함을 더한다
계곡을 거슬러 오른 바람결이
이마에 닿는 느낌이 여인의 손길 같다
모질게 후려치던 된 더위도
가는 세월에 기진맥진 후들거린다
영원불변할 것 같았던 계절
무상한 인생사처럼 서글픈 여름
여름날의 일상 /정영숙
밤이면 별들이 어둠을 뚫고
아침이면 매미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는 여름날
병풍의 산자락엔
계곡의 맑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오는 소리
비에젖은 공기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는 꽃
수국화
오늘도 비에젖은 길목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수국 바이올렛
매미 울음소리 들려온 나뭇가지
가지엔 허물만이
날개를 말려 매미가 날아가기전
그 첫 울음을 그렇게 우렁차게
내 뱉었나 보다
좋다 여름이라서
숲과 꽃과 매미의 소리가
여름날 /주응규
어느 종갓집 고택(古宅) 지붕
용마루 기왓골이 넘치도록
불볕을 쏟아내리는 날
안채 대청마루 앞뜰 배롱나무는
꽃망울을 붉디붉게 피워
여름을 소담스레 받쳐 들고 있다
마을 어귀 길 가장자리에 우뚝 솟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드러누워
한낮 단꿈을 꾸던 뭉게구름은
참매미와 쓰르라미의
애끓는 울음에 선잠 깨나
소나기 눈물을 내리붓는다
토담 너머로 펼쳐진 들녘은
된더위를 온몸으로 품어 안은 채
토실토실 영글어가고
바깥채 뜨락에 자리한 해바라기는
여름날의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알알이 담아내기에 바쁘다.
여름날의 왈츠 /채화련
새벽 새소리
의로운 밤을 날아
부드럽게 착지한 지구
더듬어 비로소 찾아가는 그 길
파란 대문에 추억
두드리고 싶은데
가끔 까치가 살구 나뭇가지에 앉았더니
힘든 하루의 끝에서
오랜 친구가 찾아 주었다
언덕길 새벽길 뚝딱이 더니
어느새 예쁜 가게가 생겼다
멀리서 보이는 산의 풍경은
잘 빠진 이차 곡선보다 매끄럽고
강의 흐름은 유유히 윤슬을 빗어 내리고
다닥다닥 들어선 집들의 배경은
칠판 속 빼곡한 매트릭스*보다 정겹다
숨죽인 굉음 달리는 차들의 잔물결
잎새 창으로 커피 한 잔의 담결한 호흡
다람쥐 같은 하루를 연다
담쟁이 여백을 휘감아 도는
푸르른 날의 왈츠
어느 여름 날 /최수경
옥수수잎 빗방울 툭툭 떨어지고
바람은 이파리를 휘적거리며 간다
누구는 옥수수 밭 옆에 사랑을 묻었고
누구는 그 길에 노래를 했었다
개꼬리 끝 아슬아슬 잠자리
바람을 타고 놀아난다
멀쑥한 해바라기 해를 따라 돌고
어린시절 여름 삶은 옥수수 들고
밤 강변 모래밭에 별을 보며
노래하던 때의 아스라한 추억들
먼 남쪽 하늘 유난 빛나는 별하나
저별이 나의 별이냐 너의 별이냐
실갱이 하던 동무야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는지
나는 이 만큼 늙었는데
너의 청춘은 아직이더냐
그리운 동무야 잘 지내고 있더냐
여름날의 산책 /김선화
천변 산책로에
수줍게 핀 해당화
독특한 향기와
고혹한 자태로
시선을 강탈하네
부비부비 춤추며
낯 뜨거운 사랑
열렬한 사랑에
행인들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네
여름날 /김광훈
장맛비는 신록의 계절을 만들고
무더운 여름 이겨낼 수 있는
연둣빛 아래 안식처가 돼주어
그늘에 앉아
무더위에 지친 몸 쉬어서 가리라
여름날의 환상 /박명숙
우물에 수박 한 덩이
여름을 꽁꽁
동여매고 둥둥 떠 있고
구슬땀을 식힐 등목으로
서늘한 순간이 있던 시절
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멍석 깔고 누워
별똥별 떨어질 때
누워있는 풀숲에 개똥벌레가
수놓던 여름밤
아름다운 추억들이 반짝인다
어떤 시절은 추억이
환상의 꿈처럼 찾아오고
어떤 시절은 추억이
꿈도 꿀 수 없는 전설로 남겨진다.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가
전설 중의 전설
그 전설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 사라지는 것들의 풍경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여름날의 과일 밭 /이진섭
뙤약볕 타들어가는 목청은
한낱 실핏줄 줄기 따라 흐르는
푸른빛 청포도 터트리던
잉태한 생명의 씨앗이었소.
아련히 젖어든 빗줄기에
떼구루루 구르다 멈춘 구름이
희미한 목숨을 연명하며
익어가는 노을 속으로 사라지면,
달달한 망고의 맛을 넣고
상큼한 풋사과의 향을 더해
졸졸 흐르는 냇가에 수박을 담갔소
그대만의 색깔, 나만의 맛깔난 여름날에.
여름날 산에 올라 /송석 강고진
푸르름이 한층 더 초록 물든
산세 따라 오르다 보니
풀잎에 앉아 있는 청개구리 개굴개굴 엄마 찾아 울고 있네
째재 울어대는 노랑배진박새
한 쌍 둥지 틀고는 연신
벌레 물고 새끼 먹이기 바쁜
짓이 보기 좋아 빠져들어 좋다
갈참나무에 앉아 까까가 우는 까치 한 쌍 사랑놀이에 좋아라 신이나 나무마다 옮겨가며 오르내리는 짓이 정겹다
산골짜기 끼고 하니 바람 불어오는 산길을 두 팔 벌려
맞으며 오르자 땀방울이
등짝을 타고 흐르고 얼굴에
맺혀 흠쳐 가며 산을 향했다.
여름날의 꿈 /박명숙
주룩주룩
비만 내렸던 것 같다
마음에 흐르는 눈물도 많았다
해바라기의 눈물도 보았다
눅눅하고 불쾌지수가 높았던
여름밤의 악몽
모퉁이마다 괴물 같은 장마가
훑고 간 삶의 터를 짓밟아 놓고
상처투성인 우리는 또
잡초처럼 일어선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미의 사랑은 쟁쟁거리며
도심 속에서 아우성치고
여름의 끝자락에
살아있는 것들의 희망이
꿈꾸기 시작하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랑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고
또, 그렇게 남은 계절을 건너며
상처 위에 딱딱해진 딱지는
떨어져 새살이 돋아 아물고
삶의 의미를 한 자락 배울 때쯤
여름날의 꿈은 저물고
시나브로 가을바람의 기척에
향기가 번지고 부푼 희망의
씨앗을 맺겠지.
비오는 여름날 /이경선
비 오는 여름날이 좋다
여름날 내리는 빗소리
그 날의 정취가 좋다
그런 날이면
사랑스런 너를 만나
그저 가만히 고요히 누워
내리는 빗소리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주 오래 너의 품에 안겨
언제까지고
그저 그렇게
닝기미, 어느 여름날 /최재경
쏘내기가 퍼 블라나
다 저녁에 청개구리가 꽥꽥거리고 지랄 났어
아직도 식지 않은 햇덩이는 서산에 한창인디
닭 잡으러 간 종철이는 감감소식이고
온몸이 끈적거려, 찬물 한 바가지 껸치면 십상이겄는디
닝기미, 할 일은 지천이고 그냥 내팽기자니 그렇고
하여간에, 대충 끝내고 읍내 션한 생맥주 생각이 간절했어
비가 바람보다 먼저 달려와 쏟아지는디
장대비가 퍼붓는디
한낮에, 대가리 벗어지게 뜨건 걸 생각하면
집 나갔다 돌아온 여편네보담 더 반가웠어
아 그란디, 이 비가 금세 그치질 안 하고 솔찬히 내릴 모양새라
막쐐주가 넘어가는디, 뜨끈한 것이 넘어가는디
목구멍에 내려가다 불이 확 붙어버리고 말았어
그리하여, 비가 오든 말든 마루에서 그냥 잠이 들었나봐
온몸땡이가 하두 근질거리고 따끔거려 일어났더니
오늘도 혼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여, 닝기미
근디, 누가 다녀갔나벼
접시 위에 말여
다 탄 모기향이 점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어
나도 그렇게 동그라미 타들어 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