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에 관한 시모음 3)
감꽃 필 무렵 /안영준
장독대 옆에
홀연히 떨어지는
금방울 꽃은
올망졸망 모여
금싸라기 무리를 이룬다
외딴집
낡은 담벼락 아래
도란도란 속삭이는
금방울 꽃에 묻히니
추억도 새록새록 묻어난다
소나무 숲에서
노래하던 꾀꼬리는
차분히 날개 접고
삭정이 잡아 움켜쥐며
가는 봄을 잡아보려 애쓴다
감 꽃 /임미숙
담장아래 떨어진
노오란 감꽃 모아
실에 끼워
목걸이 팔찌 만들고
흙담장 아래 모여 앉은
소녀들 사금파리 모아
오손도손 소꼽놀이 하던
고향의 감꽃
맛있게 차려놓은 돌 밥상
개구쟁이 소년이
발로 툭 차고 줄행랑치면
와르르 무너지는 현모양처의 꿈
소녀의 하얀 미소같은 질레꽃이
머리위에 피어나고
노오란 감꽃같은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늘어나지만
작은 감꽃에도
영혼이 맑아 지는 것은
고향이 주는
최상의 선물이리라.
감꽃 /박성우
옹알종알 붙은 감꽃들 좀 봐라
니가 태어난 기념으로 이 감나무를 심었단다
그새, 가을이 기다려지지 않니?
저도 그래요, 아빠
웬, 약주를 하셨어요? 아버지
비켜라 이놈아,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담장 위로 톱질당한 감나무, 이파리엔 햇살이
파리떼처럼 덕지덕지 붙어 흔들렸다
몸을 베인 뒤에야 제 나이 드러낸 감나무
나이테 또박또박 세고 또 세어도
더 이상의 열매는 맺을 수 없었다
아버지 안에서
나는 그렇게 베어졌다
그해, 장마는 길었다
톱으로 자를 수 없는 것은 뿌리였을까
밑동 잘린 감나무처럼 나도
주먹비에 헛가지를 마구 키웠다
연하디연한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쉽게 몸살을 앓는 자식이 되기도 했지만
끝내 중심은 서지 않았다
이듬해 우리는 도시로 터를 옮겼다
아버지는 지난 겨울에 흙집으로 들어가셨다
사람들은 가장 큰 안식을 얻었다고 했다
왜 찾아왔을까
상추밭이 되어버린 집터
검게 그을린 구들장 몇 개만 햇볕에 데워져 있다
세상 겉돌던 나무 한 그루
잘려진 밑동으로
감꽃이 피려는지 곁가지가 간지럽다
그 여름의 내 감꽃 /오광수
여름은 감꽃 목걸이 엮어 주렁주렁
목에 걸면서 시작됐다
반쯤 벗은 소년들은 거웃이 돋기 시작한
잠지를 딸랑거리며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놀다가 지치면 쌉싸래한 감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어기적거리며 씹어 삼켰다
계집애들의 여름도 다르지 않았다
머스마 같은 몇몇 소녀는
러닝 차림으로 저수지에 뛰어들고
소년들은 봉긋 솟기 시작한 소녀들의
가슴을 툭툭 치면서 낄낄거렸다
감꽃 목걸이 걸어주던 그 애가
그해 여름 저수지 물 위로 영영 나오지
않던 그날까지는 여름은 평온했다
오늘 저 아파트 사이
그 애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쌉싸래한 감꽃들이 탐스러운 감이 되어 매달렸다
그 소녀는 그곳에서 잘 있을까
서둘러 떠난 그곳에서 소녀는 잘 살았을까
지상에서의 세월은 수십 번 감꽃이 피고 졌지만
아직도 감꽃이 얼룩진 옷을 입은 채
서둘러 떠난 소녀를 잊을 수 없다
그해 여름의 감꽃이 홍시가 되어 물러터지던 날
슬그머니 묘비도 없는 그 소녀의 집 언저리에
붉디붉은 내 마음을 가져다 놓았다
선머스마 같던, 웃을 때 덧니가 예뻤던
그 여름의 내 감꽃
오월(감꽃) /김용수
활기찬 녹음사이로
우리 누이 미소같이 핀
수줍은 감꽃,
감꽃 줍던 아이들
도외지로 다 떠나고
아무도 없는데…….
달뜨는 밤에
잎사귀 사알짝 들추면
그 옛날 그 아이들
얼마나 그리울까
감꽃 /전병일
사립문 앞 단감나무
아무 대가도 없이
주기만 했던 나무였다
올봄 미안한 마음에
맛있는 밥에 간식까지
주어 보았지만
오랜 세월 산고의 고통에
진을 다 소진했는지
감꼭지를 내려놓는다
울 어머니
행랑채 들마루에 앉아
자꾸 떨구는 감꽃에
자식들 먹을 감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갖는다.
감꽃 목걸이 /정명화
마당에는 찔레꽃이 피고
장독대에 이슬이 내려앉아
별동별이 하나 둘 떨어지는 새벽
집 뒤안에는 하얀 감꽃이 피어
튀밥을 튀겨 놓은 듯 밤새 떨어져
장닭의 울음소리로 아침을 깨워준다
아치 언니의 발자국 소리
한 소쿠리 주워 목걸이 만들어
희야 고모 생일 선물하려나 봐
툇마루에 앉아 소담스러운 감꽃을
사랑 담아 실에 꿰어 목걸이 만들면서
하나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달짝지근한 맛
산골소녀의 수줍은 모습으로
감꽃 목걸이하고 마실 나온 희야 고모
햇살에 누렇게 변해 윤기는 없어도
욕심나게 예뻐 보여 내 목에 걸어보고 싶다.
감꽃이 필 때면 /예솔 전희종
우리 동네 그 애네 집엔
정자나무처럼
큰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었지
감꽃이 피면
동네 아이들은 그 집에 몰려가
샛노란 입을 벌린 채
마당에 누렇게 널려 있는 감꽃들을
앞 다투어 챙겼지
그 애의 호랑이 아빠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혼비백산
남겨진 감꽃은 당연히 그 애 차지
그 애는 내 또래의 눈이 동그란 계집애
다음 날 등굣길
실로 꿰어 만든 감꽃 꾸러미를
내 책가방에 살짝 찔러주고
빨개진 얼굴로 힐끗 돌아보며
뛰어 가던 그 애
감꽃이 필 때면 유난히 보고 싶다.
어머니 감꽃이 피었습니다 /심홍섭
올해도 감꽃이 피었습니다
경제한파 속에
더욱 유난히도
호황인 감꽃, 연지곤지 찍고
시집간 누나의 볼처럼
상기된 모습으로 교회 앞마당에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어렷을 적
해가 늬엇늬엇 넘어가는
동네 귀퉁이에 감나무 한 그루
감꽃이 맛깔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배고프다는 여동생을 달래며
콧물을 닦아주며
나누어 먹었던 감꽃은
지금의 햄버거 보다도
돈까스 보다도 더욱 맛있었습니다
떡 팔러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우리는 땅거미가 져도
배고픈 설움도
마냥 잊고 가느다란
하얀 실로 곱디고운 감꽃을
하나하나 굴비를 엮듯 엮어 예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곤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따뜻한 마음이 이제는 퇴색되어
찾을 수 없는 가슴어린 추억만 애틋하게
남아 이제는 내 청춘에
비만 내립니다.
감꽃을 따다가 실로 엮어 목에 걸어주며
철부지 딸에게
가만히
가만히
속삭이며
하는 말
아빠에게도 가슴 저린 세월이 있었단다 하고
그러나 딸에게 감꽃의 의미는
하나의 장식품일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올해도 감꽃이 피었습니다.
*추억은 늘 우리가슴에 환각처럼 남아 애틋하게솟아오르곤합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감꽃도 되어보고 목걸이 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감꽃피는 마을 카페에서 /홍경임
감꽃피는 마을 작은 카페에서
5월 산을 품에 안고
와인 한 잔 들이키며 목을 축인다
안개가 자욱히 내 안의 지구를 정복하고
안개비는 내려서
내 가슴 촉촉히 적시는데
흘러간 시간들은 말이 없고
날 잊어버린 듯 돌아올 생각을 않는구나
앞에 자리한 친구는 연신 미소지우며
내 마음을 자극하지만
오늘만 살다 말 사람처럼 사는
내일이 없는 나의 인생은
오늘도 가슴에 감꽃이 지는구나.
감꽃 /주명희
감나무 아래로 떨어진 하얀 감꽃에서
풋냄새가 난다
한잎 두잎 꽃잎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고
화관을 만들고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던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공주였다
우리는 모두 왕자였다
떨어진 감꽃들에
유년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른다.
재생의 단 감꽃 /전병일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동장군은
내 상반신을 가져갔다
상반신을 잃은지
한 돌이 지나
아랫도리 숨은 잎 눈
희망의 빛을 품고
재생의 길 걸어와
오늘 꽃을 피웠다
사랑채 들마루에 앉은 어머니
많이 맺은 감꽃들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의 미소에
나는 벌써 입맛 다시며
가을이 기다려진다.
감꽃 속에 있다가 /반칠환
외딴집에 종일 놀다가
그 동안 어디 있었니? 누가 물으면
으음, 음 한참 생각하다가
감꽃을 주울 땐 감꽃 속에 있다가요
삘기를 뽑을 땐 삘기 속에 있다가요
풍뎅이를 잡을 땐 풍뎅이와 있다가요
검줄이와 놀면 검줄이와 있다가요
요렇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집에 있었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