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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무 시모음

석류, 석류꽃에 관한 시모음 3)

작성자와룡산|작성시간26.06.23|조회수43 목록 댓글 0

석류, 석류꽃에 관한 시모음 3)  

 

석   류       /유응교

누가
이토록
그리운 마음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었을까.

누가
이토록
첫사랑의 시린 아픔을
오롯이 간직해 두었을까.

누가
이토록
영롱한 꿈들을
어둠 속에 피게 했을까.

누가
이토록
다정한 이웃끼리
더운 피 흐르게 했을까.

 

 

석류           /김옥자

골목길 아늑한 집
노을진 담장 안에

그리운 임의 얼굴처럼
수줍게 옷고름 스르르
가슴을 풀어 헤친다

눈 마주치면 터질 것 같은
별빛 같은 사연을 안고
파르르 빨갛게 떨고 있다

누군가 기다리다
붉다 못해 녹아 내릴 듯한

알알이 익은 사랑
새콤 달콤 깊은 맛
언젠가 때가 오면
너도 흙이 되겠지

 

 

석류 여행            /오문경
-사랑의 餘白을 찾아서-

白夜를 위한 白夜는 버린다
내 흐린 날의 新綠庭園,
문 안으로
한발 한발 다가서 보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기대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운 햇살이 떨려요

사랑은 예정에도 없는
創造의 旅行
태양을 품고 빨아들인
석류의 깊은 呼吸

沈黙의 바위도
금 갈 때가 있다네
아파본 이름이면 어떠냐
굳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묶지 않아도
우린,
사랑할 수밖에 없는
眞實 하나로 울고 웃지요

내 가난한
사랑의 餘白을 다독여
한 구비, 한 구비
건너다보면
익어서 저절로 쩌-억 벌어지는
저 석류의,
붉은 마음 되어가지요
그래서 더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을에 깨물은 석류       /박영숙(영)

흐르는 붉은 즙에
미끄럼 타듯이
세월은 흘렀는데

알알이 피 멍든
그리움 쌓아놓고
반쯤 벌린 눈망울은
왜 바람 뒤를 쫒고 있나

낙엽이 출렁이는 가슴에
외로움 스며들고

가을바람에
떨어진 석류 한 알 깨물면
새콤 달콤
첫키스 혀 끝에 살아난다

 

 

석류를 보며          /유봉희

우리 어머니 날 가지실 적
앞치마 가득 석류 따는 꿈 꾸셨다는데
그 많은 과일 중, 왜 석류일까
자세히 보니 나와 닮은 것도 같아
딱딱한 껍질, 씨만 많은 속내
누구 한 사람 목 축여 줄 과즙도 없고
누구 한 사람 허기 메울 과육도 없네
속엣말 깊숙이 담아놓지 못하고
제 몸 제가 터트리고 마는
참을성 없는 것까지

하지만 어머니는 믿고 계셨네
석류를 서서히 그늘에서 말리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약재가 된다고
꼭 필요한 약재라고 믿고 계셨네.

 

 

석류          /김용호

 

안타까이

기다리다 못해

 

그리움이 북닫쳐 터진

너 가슴속에

 

누구를 줄 양으로

그처럼 그처럼

 

사무친 알알을

감추어 두었더냐

 

 

보름달 아래 석류        /김종제

 

인적 끊어진 밤에
몸 눕힐 곳을 찾아가다가
괴괴한 보름달 만나거든
정물靜物처럼 그 아래 멈추어서시라
붉으스름 달빛을 손에 들고
한 입에 먹어치우는
저 나무의 저녁식사 소리 들으시라
입밖으로 뱉어낸 씨가
공중에 탁 박혀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쑥쑥 머리 내미는 석류 보시라
그러니까 깊은 어둠속에서
보름달인 척, 석류인 척
나무 아래 가부좌하고
번뇌에 벗어난 열매인 척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적멸에 든 별인 척
불佛처럼 잠자코 있으라는 설법
늦은 팔월의 오늘밤만큼은
손톱만한 月도 월월 차오르고
눈알만한 實도 실실 부풀어오르고
저 둘이 하나로 잘 들어맞아
허공에 석류 하나 딱 걸려있고
나뭇가지에 보름달 하나 딱 걸려있고
손 길게 뻗은 나는
그 사이에 빈몸으로 올라서시라
부리나케 아침 펼쳐들었더니
누군가 저지른 방화에
석류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으리라

 

 

탄탄한 석류 열매의 노래        /이은경

가게에 가서 커피믹스를 사 오는데
아 글씨 비슬산 참꽃 대신에
오료코롬 탄탄한 석류 열매만 주네이.

씨가 한 소쿠리.
벌써 알고 있었다.

오늘은 쓴 시를 다섯 편이나 지웠고
팔십 년대에 산 역사책을
먼지 털어내어 다시 읽고 있다.

석류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孤獨(고독)

기어이 터지는 秋晴(추청)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석류를 보며        /문인귀
   
그 집 뒷뜰에서 따 온 석류는
할 말 만큼이나 많이
비집어 앉은 씨알로
유리쟁반에 담겼다

한 여름으로 족할 수명이지만
껍질의 고색함은 마치
팔십 노인의 피부처럼 인내하며
여름 내내 찍어 바른 타는 날들로
방안을 밝혀 온다

나의 방은 이제
석류가 되려나보다
자꾸만 날 더러
말을 하라는데
씨알이 촘촘이 박히듯
내 할 말들은
어떤 루비의 크기로
밫을 발 할는지.

 

 

석류꽃        /정용진
         
내 짝궁이
난(蘭)같이 귀엽던
소꼽친구
내 짝궁이

대학 입학하던 첫날

석류꽃 같은
연지를 입술에 바르고
교문을 들어서다
들키자
화들짝 놀라!

그는 마침내
한 송이 붉은
석류꽃으로 피었다.

 

 

석류꽃         /향초 허정인

 

붉은 주홍색

꽃등이

나뭇가지마다 켜있다

 

태양도

천둥 번개도

삼켜 핀 꽃으로

 

핏빛

심장

만드네

 

초록 잎

사이사이

꽃등 켜 불 밝히니

 

초여름 대낮

석류꽃!

너로 뜨겁고 황홀하다.

 

 

 

석류꽃          /나태주

 

이 꽃은

예로부터 고요하고 아름다운 동방의 나라

아침 이슬 냄새가 묻어나는 꽃.

 

이 꽃은

이 땅에 대대로 생겨나서

발뒤꿈치가 달걀처럼 이쁜 새댁들의

웃음 소리가 들어 있는 꽃.

 

허물어진 돌덤불 가에 장독대 옆에

하늘 나라의 촛불인 양 피어 선연히

그 며느리들을 대대로 내려가며

투기하는 이 땅의 시어머니들의

한숨 소리도 들어 있는 꽃.

 

앞으로도 이 땅에서

끊이지 않고 생겨나서

발뒤꿈치가 달걀처럼 이쁠 새댁들의

웃음 소리가 연이어 들어 있을 꽃.

연이어 들어 있을 꽃.

 

 

석류 알 빠알간 속 사정을 누가 알랴      /이복란

 

이도령 댁 석류 나무 한 그루
젖 몽울 맺힌 가시내의
수줍은 웃음이 걸렸다.

속 살 찢기 듯
아리게 아리게 열리는 순정,
열 여섯 아랫 마을
정임이의 초경하던 날

삐져 나올 듯
삐져 나올 듯
탱글 탱글 한
석류 알 빠알간 속 사정을 누가 알랴

암 수 노닐던 새들도
갈 섶을 파고드는 밤
윗 마을 이도령
책장 넘기는 소리만 무심하여라

 

 

석류꽃         /이해인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화인(火印)
가슴에 찍혀

오늘도
달아오른
붉은 석류꽃

황홀하여라
끌 수 없는
사랑

초록의 잎새마다
불을 붙이며 
꽃으로 타고 있네  

 

 

석류꽃 대낮      /김춘수

 

어제와 오늘 사이

비는 개이고

구름이 머리칼을 푼다.

아직도 젖어 있다.

미루나무 어깨너머

바다

석류꽃 대낮.

 

 

바위 그늘 나와서 석류꽃 기다리듯     /장석남

 

​바위 곁에 석류나무 심었더니

바위 그늘 나와서는 우두커니

석류꽃 기다리네

 

장마 지나 마당 골지고

목젖 붉은 석류꽃 피어나니

바위는 웃어

천년이나 만년이나 감춰둔 웃음 웃어

내외하며 서로를 웃어

수수만년이나 아낀

웃음을 웃어

 

그러니까

세상에 웃음이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울음도 생겨나기 이미 전부터

 

둘의 만남이 있었던 듯이

우리 만남도 있었던 듯이

 

 

석류의 화살 짓      /백오 이승기

 

꽃의 흐름에

뭇 바람마저 재우고

뱀의 혓바닥 속 이중의 가재

잉태의 꿈속 갈망 몸짓

기의에 집착 미끄럼만 탄다.

 

꽃만 많이 피면 무엇하오.

갇힌 공간 속 사유 깊어도

어쩌다 파리만 앉아다 가니

여보게 동굴 속 꿀도 많다오.

 

검은 구멍 속 의식과 욕망들

흰 벽면에 기표 적어 낙서질.

누군가 꿀을 먹어야 뽕 따네.

구멍 속 응시의 눈길만 분주.

 

석류 윗가지 끝 배 불뚝 자궁.

아웃사이더 보살핌이더냐.

작년 한 해 헛짓 반성이더냐.

천 개의 고원 곁 또 하나 고원.

 

햇살 보다 붉은 화살 짓이다.

 

 

석류         /이정우

 

한여름을 붉은 꽃으로 뜨겁게 달구더니

뻐꾸기 우는 밤에 열매로 맺었는가

둥글 투박한

네 얼굴

꼭 꼭 여미었던 가슴을 젖혀

어느님에 마음을 훔치려고

황홀한 내 가슴속 수정알 같은 씨알들

임의 마음 설레게 하네

긴긴 여름내내 고이도 간직했다가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에

마음을 열었는가

늦가을 찬서리에

마음을 보였는가

임의 마음 달래 주려는가

봄부터 이 가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네

 

 

석류        /虚天 주응규

 

애절한 사랑의 덧짐

이고지고

눈멀고

귀먹은 지

여러 날

 

잉태한 그리움이

가슴에 알알이 박혀

울렁증 이는 아린 가슴

주체할 길 없어라

 

가슴에 아로새긴 사랑

애간장을 저미는 냉가슴

옥죄어 터트린

농염한 자태

 

청명한 하늘에 선홍빛

햇무리로 곱다시

그대 품에 어리고 싶어라.

 

 

석류        /백성섭

 

새순가지 봄바람에 입맞춤

여름날 빨간 꽃향기 여물어

알알이 가슴속 사랑 열리니

끝물가시 겨울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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