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학의 표준은 양의학입니다. 한의학도 현재를 살아내려면 이 표준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노력이 도리어 한의학 고유의 장점을 손상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이 췌장암 치료의 적극적 수단으로 쓰이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한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의학에서 볼 때는, 양의학이 주력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하다 인정하는 부분, 즉 미세환경 개선에는 한의학의 효과가 인정됩니다. 그래서 췌장암에 있어서 한의학이 주로 쓰이는 분야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생기는 몸에 대한 막대한 부담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즉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의학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는 한의학은 매우 한의학답지 못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 후의 피로감에 십전대보탕이 좋다는 통계가 있으므로 이 처방이 일반적으로 추천된다는 방식입니다. 십전대보탕을 복용하고 효과가 없는 환자는 치료법의 잘못이 아니라 환자가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일 뿐이게 됩니다. 이것은 한약을 양약처럼 쓰는 방법이고, 이러다보면 한의학 효과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한의학이라면 특정 환자의 특정 상황에 꼭 맞는 세상에 하나뿐인 처방을 창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전통 한의학이 놓쳤던 것, 즉 췌장암의 각종 증상들을 하나의 병으로 파악하여 초기부터 성질이 강한 약재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해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서야 한의학이 보조수단이 아닌 단독 치료수단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