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건 "깨달음의 추구가 아니라 깨달음의 실천'이다.
panic bird...
평화의 기도(prayer of peace)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기독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요
불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요
이슬람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요
유태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류의 신에게 드립니다.
우리가 기원하는 평화는
기독교인만의 평화나
불교인만의 평화나
이슬람교인만의 평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인류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우리들 모두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삶이 모든 인류를 위한 사랑의 표현임을 이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드립니다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지 않으며
어떤 진리도 다른 진리보다
더 진실되지 않으며
어떤 국가도 이 지구보다 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작은 한계를 벗어나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뿌리가 지구임을
우리가 인도인도,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지구인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신은 지구를 만드셨지만
지구를 번영토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나라의 국민이거나
어떤 인종이거나
종교인이기 이전에
지구인임을 깨달아야 하며
인류의 영적인 유산속에서
진정으로 하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진
모든 상처들에 대해 인류 앞에 사죄함으로써
그 상처를 치유합니다.
이제 모든 이기주의와 경쟁에서 벗어날 것을
그래서 그 신안에서 하나로 만날 것을
서로에게 약속합시다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전능하신 신께 드립니다ㅏ.
우리가 우리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언제낙 당신앞에
하나의 인류로서 자랑스럽게 설수 있게 하소서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모든 지구인들과 함께
지구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드립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게
서문
- "천지기운 내기운, 천지마음 내마음"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천지기운이다"
- 내몸은 내가 아니라 내것이다. 내마음은 내가 아니라 내것이다
- 그 순간에 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빛과 소리, 파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광음파와 하나되어 물결치는 나를 보았다. 우주만물의 배우에서 생명의 흐름을 관장하는 경이로운 질서가 내안으로 출렁이며 흘러들어왔다. 나는 비로소 오랜 세월 방황을 거듭하며 찾아 헤매었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장엄한 깨달음의 순간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삶에는 분명 목적이 있다는 것을!"
-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궁극적인 자기탐구나 심오한 철학적 질문으로 받아들이며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본질을 알면 인생의 목적이 그렇게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떤 관점으로 인간과 세상을 보는가에 따라서 그 답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해질 수 있다.
-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 자신의 영적인 본성을 깨닫기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삶은 그 목적을 스스로 드러내 보인다. 인생의 참된 목적은 나와 이웃, 나아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나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그 앎을 바탕으로 자신이 영혼을 성장시켜가는 것이다.
- 진정한 "나"는 우리 내면에 있는 순수한 영혼의 불꽃, 바로 "신성"이다. 모든 인간의 참 의미와 참 삶의 목적은 이 신성을 깨닫는데 있다. 우리는 깨닫기 위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빌어 이 지구에 태어났다.
- 뇌호흡을 개발한 것도 깨달음에 덧입혀진 신비주의적인 환상을 벗겨내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깨달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신성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궁극적인 소망이다. 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권리가 있다.
- 누구나 깨달을 수 있으며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몇몇의 깨달음만으로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더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깨달음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깨달음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그것만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한단계 더 높은 영적인 차원으로 진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깨달음이란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고치를 뚫고 아름다운 나비가 탄생하듯,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아름답고 신성한 본성이 있다.
- 깨달음은 '참사랑"이다. 인간을 참다운 인간이게 하고,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어떤 생명체보다 더 뛰어난 존재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안에 참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참자아를 모르고 한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다.
- 깨달음은 우리의 뇌를 이용해 도달할 수 있는 "생리적인 현상'이다. 일상생활에 충실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단계를 밟아간다면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두가지 과정
첫째, 깨닫고자 하는 "자신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얻은 진정한 깨달음은 이세상에는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나는 이미 언제나 깨달음 속에 있었다. 나에게 모든 것이 주어져 있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최상의 깨달음이었다. 결국 깨달음이란 아주 상식적인 것이었다. 깨달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하는 아주 단순한 선택이다.
둘째, 당신이 깨달음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와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지와 훈련으로 우리는 갖가지 반대와 여러 냉소주의자들이 보내는 비아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고 변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작은 욕망을 정복하고 진정으로 가치있게 살아가려는 스스로의 선택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있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영적 건강을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더욱 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선택이며 의지이며 훈련이다.
-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없다.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것인가?
- 예수님, 부처님, 그리고 다른 현인들의 가르침을 배우기면 하면서 언제까지 내일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길 것인가?
- 지금은 모두가 마음을 열고 새벽빛을 맞이할때다. 병든 지구, 병든 인류 사회를 치유할 깨달음의 혁명을 일으켜야 할때다. 깨달음의 문화운동이야말로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최고의 영적 유산이다.
제 1장. 깨달음의 혁멍
- 십우도 농부가 몰고 가는 소
- 이 단계에서는 에고의 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하고, 채워지지 않으면 불행하다. 참자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
- 아주 깊은 어둠과 절망에 둘러싸인 사람은 불빛처럼 보이나 진짜 불빛이 아닌 것에도 혹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신안에 더 큰 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가짜 불빛을 쫒아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탕진한다. 붙잡으면 금방 부서져버릴 허망한 것을 좇으며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순간적인 감정과 욕망의 해소를 위해 소중한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 인간은 누구나 피해의식과 이기심, 자만심보다 더 깊은 곳, 감각적 쾌락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 깊은 곳에 홍익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 눈을 감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라. 참자아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자신을 응시하다보면 당신은 내면의 목소리보다 외부의 조건이나 상황을 바라보고 의식하는데 훨씬 더 민감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세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부터 떼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당신은 남은 평생을 계속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에 맞추어 살게 된다. 진정한 변화를 꿈꾼다면 자기 영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 동양의 수행전통에서는 깨달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3년동안 나무하고, 3년동안은 청소하고 3년동안은 밥을 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자만심과 아집을 닦아내고 자신을 낮추는 법을 철저히 배우게 된다. 그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죽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지 않으면 안된다.
- 사람들은 몸이 곧 자신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 능력, 사회적 지위, 혹은 생각이나 감정, 감각들을 자기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당신의 본질은 그런 유한하고 제한된 것들이 아니다.
- 당신에게는 몸과 마음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신성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참된 자아이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의식을 지닌채 이순간 여기에 있는 까닭은 그 참자아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당신의 참자아는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향해서 움직인다.
- 참자아의 존재에 눈을 뜬 사람은 제일 먼저 자신을 둘러싼 모든것에 감사하게 된다. 매일 아침 눈을뜨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팔과 다리가 성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마저도 감사하다. 당신이 감사할 줄 알게 될때 기쁨은 더욱 커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것에 대한 감사는 당신을 더욱더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만들 것이다.
- 그런 다음 당신은 이제 조화로운 사람이 된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고,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일지라도 기꺼이 먼저 나서고, 너그러이 타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 깨달음은 참자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깨달음은 가짜다.
- 당신은 왜 깨달으려 하는가? 일단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는가? 당신은 깨달은 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깨달은 후에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 많은 성인들이 깨달음이 이르고서 스스로 작별을 고하거나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깨달음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경험하지는 못했다.
- 단 한사람에게라도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줄 수는 없었을까? 수만 평의 황무지 한 가운데서 한송이 꽃이라도 피울수는 없었을까?
- 그들은 진정한 깨달음이란 오직 현실속에서만 증명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저 너머의 이상향 속에서나 있을법한 그 무엇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 부처는 왜 인간의 몸을 갖는 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80년을 살았던 것일까? 부처라고 자신의 깨달음에 안주하고 존재의 더 높은 차원으로 홀연히 올라가고 싶은 유혹이 없었을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허상이고 삶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왜 부처는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왔을까? 그에게는 인류를 향향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예수또한 부처와 똑같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최고의 희생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간 것이 아니다. 그가 보여준 인류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선택했다.
-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모르면서 타인을 비난하고 세상을 탓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야 옳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 기반이 되는 사회이다. 그것이 곧 홍익인간 이화세계이다. 이화세계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고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려야 하는 사회이다.
- 그래서 나는 우리 각자가 다수의 깨달음을 발아시킬 수 있는 한알의 씨앗이 되어 새로운 깨달음의 문화운동을 펼쳐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음의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이다.
아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 모든 생명의 흐름을 관장하는 영원한 우주의 질서, 이것이 율려이다. 율려는 만질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눈으로 볼수도 없다. 시작도 끝도 없으면서 태초부터 우주 만물을 다스려온 생명질서의 본질이다.
- 질문을 하나 하려한다. 왜 굶주림과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더 커져만 가는 것일까?
- 깨달은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시 부처님이 오고, 예수님이 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한두명의 선각자 심지어 천여명의 깨달은 사람이 있다해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이 시대의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 전체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잇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깨달음이다.
- 어떻게 가능한가? 우주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고 우주의 에너지가 우리의 에너지이며, 우리가 저 장엄한 우주 질서의 한 부분임을 사람들에게 빠르고 쉽게 깨우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이미 우리속에 들어 있는 신성함을 일깨우려면 어떻게 해아하는가?
- 어떻게 해야 우리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진 신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 그 답은 에너지(기)에 있다. 기는 몸, 마음, 영혼 어느 하나에 한정되지 않고 이 세가지를 모두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다리와 같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태어난 기원인 율려를 체험하고 자신이 천지기운(우주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우리가 우주적인 존재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완벽한 다리이다.
- 선택받은 엘리트를 위한 깨달음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류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힘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면 당연히 깨달아야 한다
- 깨달음의 혁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깨달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깨달음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일상 생활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이다. 깨달음이 대중화된 사회, 깨달음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은 사회, 이것이 병든 사회, 병든 문화를 치유할 유일한 방법이다.
- 깨달음이 대중화되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는 것도 그 시작은 한 개인의 깨달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충분히 많은 개인들이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대중적인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다.
- 깨달음의 혁명 두번째 목표는 우리몸에 흐르는 기에너지를 통해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율려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 2장. 나는 누구인가?
왜 깨달아야 하는가?
- 배고픈 두사람이 밥 한공기를 앞에 두고 있다. 어떻게 먹을까?
- 한사람은 어차피 몇분이면 먹을 밥 어떻게 먹는게 뭐가 중요한가?
- 다른 한 사람은 밥을 먹을 때조차도 지켜야할 양식이 있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의 언쟁은 그렇게 시작된다.
상황 1. 밥공기가 엎어지고 싸움
상황 2. 자신의 방식대로 맘대로 먹음
상황 3. 서로의 사고방식 배움
- 우리는 아직도 쌀밥 한공기를 나눠먹는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겨온 경쟁이라는 패러다임 속에 틀어박혀있다. 우리는 자기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경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루어서라도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제도는 오직 승자의 손만을 들어준다. 경쟁에서 진 사람은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절망과 우울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오심으로 파괴를 만들어낸다.
세가지 본능
첫째,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욕구
둘째,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셋째,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조절하려는 욕구
- 누구나 세가지 욕구가 만족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날마다 슬퍼지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당신은 어떤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는가? 자신의 의식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 당신이 느꼈던 감정과 행동은 이 세가지 욕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게 될것이다.
- 하지만 사람에게는 이 세가지 욕구 너머에 한가지 욕구가 더 있다. "우리를 인간답게 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욕구"
- 우리가 이 세상에 생명을 받고 태어난 이유는 바로 이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 격앙되고 소모적인 생활 한가운데서 단 몇초만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본적 있는가?
- 온갖 걱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떤 존재로부터 항상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근사할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는가?
-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이 우리에게 소중한 뭔가를 일깨우기 위해 보내는 신호이다.
- 당신이 한번만이라도 율려를 만나는 순간을 경험한다면 예전의 작고 사소한 욕망들과 덧없는 감정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마치 햇빛이 비치면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이 거대하고 장엄한 존재의 일부라는 것을 아는 순간 더 이상 큰 집과 돈,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같은 것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 당신은 먼저 선택해야 한다. 세가지 욕구를 자유자재롤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 다음 이 욕구를 놓아버려야 한다.
-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는 경쟁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사회가 아니라, 조화와 화합을 통해서 가치를 창조하고 실현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영적인 혁명이다.
- 개인의 깨달음, 집단의 깨달음, 인류 전체의 깨달음...
정보의 질과 양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 당신은 셀수 없을정도로 많은 정보의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정보의 조합물이다. "유전적인 정보, 지식정보, 그리고 경험에 의한 정보"이다.
- 당신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는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도 당신이 지닌 정보에 대한 해석의 총결산이다.
- 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지닌 정보의 질과 양이 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는 한사람의 가치를 평가할때 허가증이나 증명서 같은 역할을 한다.
- 당신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 당신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 그 정보는 어느 정도고 귀하고 깊이 있으며 근원적인 것인가?
-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당신 인생의 가치를 결정한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그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전체 사회에 도움이 도지 않는다면 그 정보가 우리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이제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사회의 조화와 화합을 위해 얼마나 긍정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긍정적인 정보를 생산해냈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생산해내는 정보가 전체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그를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실제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창조해낼 막중한 의무가 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다.
- 우리는 정보의 집합체이면서 동시에 정보의 주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변화시킬 권리와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을 별다른 의문이나 불평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인 다양한 정보가 실제적인 자기라고 생각한다.
- 정보로부터의 자유는 자신이 정보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택과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천할때만 얻을 수 있다. 그 힘은 뇌로부터 나온다. 사람이면 누구나 뇌를 지니고 있지만 이 뇌를 활용하는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뇌는 인류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 당신의 뇌를 어지럽히는 주범인 부정적이고 잘못된 정보를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일이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정보의 흐름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고 지배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뇌가 가진 힘을 믿고 그 힘을 올바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뇌는 쓰면 쓸수록 유연해지고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아주 흥미로운 고성능 컴퓨터다.
- 당신이 지금 이시대에 지구에 태어난 것은 지구를 구하고, 인류 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21세기를 평화로운 세기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동의합니까?
- 의식을 확장시키는 정보를 선택하면 뇌는 무한히 확장되고, 의식을 수축시키는 정보를 선택하면 뇌는 그대로 위축된다. 당신의 삶의 질은 뇌에 어떤 정보를 주고 어떤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이 지구에 태어난 목적을 그저 남들처럼 대충 살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파괴적인 정보를 한시라도 빨리 지워버려라. 그리고 그 자리에 당신의 가치를 최상으로 만들 정보를 입력하라.
- 당신에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살리고 이 세상을 더 조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소명이 있다는 정보를 뇌에 입력한다면 그 즉시 더 높은 영적 각성단계로 뛰어오르고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뇌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다.
- 신피질과 구피질의 조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뇌간이다. 뇌간은 소화, 호흡, 순환 등 인체의 생명유지를 위한 기본기능을 관장하는 자율신경을 책임진다. 뇌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뇌간은 주인의 몸을 제대로 유지하고 작동하는 일을 할뿐이다. 뇌간이 창조주의 영역에 속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뇌간에 잠재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초인적인 힘이나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뇌간의 신적인 능력과 만나는 법을 잊은채 살아가고 있다. 뇌간과 만날 수 있다면 인류의식에 비약적 진보를 가져올 수있다
정보의 선택이 운명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