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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깨달음의 심리학. John Welwood

작성자문형철|작성시간09.10.01|조회수942 목록 댓글 0

인간 의식에 관한 이해

변화와 치료의 메커니즘과 본질

자기성장과 깨달음의 비교

강한 자아와 무아의 비교

내적 경험의 차원과 깊이

 

내 의식의 혁명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을 위하여

 

panic bird.

 

저자 서문

- 동양과 서양의 대화는 정신, 가슴, 몸, 영혼, 영(sprit) 사이의 연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모두를 살아 숨쉬는 유기체의 분리될 수 없는 여러면으로 인식할수 있도록 해준다.

 

-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심리학 영역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제공한다.

"심리치료와 영적수행의 결합이 어떻게 사람의 깨달음을 도울 수 있는가?"

"동양의 영적 전통은 심리적 균형의 원천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명상을 통해 개발되는 의식의 성장은 심리적 건강과 관계를 증진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심리학적 작업은 영적 수행의 과정에서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개인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서양문화와 불교와 그 밖의 영적 전통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개인화(영혼의 발달,해탈, 자기라는 제한된 한계에서의 완전한 해방)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 본성의 개인적, 심리학적, 우주적 측면을 통합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 나는 깨달음을 위한 서구적 방법을 찾으면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심리치료자가 되기로 결심

- 대학원 과정동안 나의 관심사는 줄곧 선이 말하는 깨달음의 경험과 심리치료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변화의 관계였다.

 

-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영성에 대한 글을 읽고 토론하는데 익숙한 나는 "명상 수행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나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놀라운 도구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것은 하늘과 지옥,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과 파장을 맞출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 하지 않았다.

- 그런데 명상이 바로 그 마음의 본성과 활동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나는 수년간 명상을 하고 나자 내 삶에서 건드리지 못하는 특정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나는 책에서 읽은 선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깨달음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한순간에 모든 낡은 패턴이 무너져 새로운 사람이 되는-속에 빠져 있었다.

 

- 깨달음의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 깨달음의 심리학은 초개인, 개인, 개인간의 관계를 탐색한다. 내가 깨달음의 심리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 세영역에 있어서 수행-초개인적인 영역을 위한 명상, 개인영역을 위한 심리학적 작업, 관계의 영역을 위한 의식적 훈련-을 강조하며, 이 세영역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를 어떻게 강화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질문

"사람들이 내면의 더 큰 본성을 인식하거나, 그것을 향해 나아갈때 심리적으로 그들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어떤 심리적 문제와 도전이 제기되며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깨달음의 길이 현대 서구인들에게 어떤 도전을 제시하는가?

 

불교도의 청원

오! 당신의 존재 자체가 완벽한 스승입니다.

당신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를 깨닫지 못한 모든 사람이 이 순수하고 신성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비심으로 도우십시오

 

1부. 심리학과 영성의 통합

질문

"심리학과 영적인 작업, 개인적 성장과 영적개발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개인적 특질을 넘어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때 성숙하고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 영적수행은 자기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참된 본성이 무엇인지를 탐색

- 동양의 명상전통은 직접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진정한 본성을 깨닫는 것을 추구

-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일이나 대상을 붙잡으려 하고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 본질을 바로 보게함

- 의식의 참된 본성은 열려있고, 깨어있으며 밝게 빛나고 자비로운 존재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삶이 풍요로워지고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알게 함

 

- 동앙은 무조건적인 의식을 조명하는 반면 서양 심리학은 조건화된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구석구석 탐구

- 명상수행에 바탕을 둔 동양의 명상심리학은 관습적이고 개념적인 마음의 영역을 넘어 실재하는 본성에 대해 직접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가르침

- 임상과 개념적인 분석에 바탕을 둔 서양의 치료적 심리학은 행동, 사고방식, 자기구조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원인과 조건을 밝혀내고자 함

 

- 형상이나 개인적 성향, 역사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리는 것을 강조하는 동양의 관점은 날숨과 같고

- 형상, 개별적 존재, 개인의 창의력을 강조하는 서양의 관점은 들숨과 같다.

- 들숨은 날숨일때 최고조에 이르듯 날숨은 들숨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다른 한쪽이 없다면 한쪽은 절반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1. 하늘과 땅 사이

영적우회(spiritual bypass)

- 자신을 옭아매는 세속의 틀(카르마, 조건화, 몸, 형상, 물질, 인격의 틀)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은 수천년 동안 영적인 탐구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이었다.

-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감정, 발달과제를 회피하거나 조급하게 초월하려는 시도들을 "영적우회"라고 부르고자 한다.

 

천지인

- 영적인 길에 가로놓인 세가지 중요한 함정(영적우회, 자기중심적 자기도취, 무감각한 산만함)에 빠지는 것을 막기위해 동양전통철학에서 말하는 세가지 차원 "천, 지, 인"에 담긴 본질적인 자원을 활용해볼 수 있다.

 

- 땅의 원리, 하늘의 원리, 인간의 요소 세가지 차원중 어느 하나만 존중하지 않아도 삶은 왜곡되고 균형을 잃게 된다.

 

세상에 뿌리내리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기(땅의 원리)

- 영적 수행의 본질적 목적은 편협하고 이미 조건이 지어진 자기구조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어 자신이 그보다 커다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 수행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수행을 제대로 할 수있는 자기만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

 

내려놓기(하늘의 원리)

- 영혼을 다루는 작업이 현실의 삶에 뿌리내려 현실의 구조와 함께 살아가고 자기만의 모습을 만드는 일이라면 영적인 작업의 본질은 형상을 지키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번뇌는 독이 있는 식물(제거하는 세가지 방법)

첫째, 독을 바람직한 미덕으로 전환(독이 있는 식물을 뽑아버림)

둘째, 독성에 대한 해독제를 개발

셋째, 독에 대한 면역을 만들어내는 방법

 

가슴 일깨우기(인간의 원리)

- 하늘의 원리와 땅의 원리가 자기 가슴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육체, 인격의 갑옷을 벗어버리는 것

 

2. 인격

-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 이미 형성된 인격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조건화된 인격은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약점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병리로 보아야 하는가?

- 인격이 영적인 성장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보아야 하는가?

 

정체성 형성

- 인간은 존재 본연의 자질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인격의 구조에 앞서 존재하며, 인격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정체성의 위기와 실존적 선택

- 정체성의 위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오래된 인격구조가 자기 안의 커다란 생명력을 억제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존재의 안정감을 주는 것을 쉽게 놓아버릴 수 있겠는가? 익숙한 정체성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것없이 어떻게 삶에 대처하고 안전함을 느끼고 생존할 수 있겠는가?

 

- 오래된 익숙한 방식을 포기한다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함께하기

- 인격에 대한 불안과 고착을 깨달음의 길로 가는 초석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

 

- 강한 자아와 무아라는 두 개념은 과연 상반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동서양 심리학의 피상적인 차이를 없애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동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 자아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가?

- 서구인은 자아의 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속에서 기능할 수 있는가?

 

자아의 성격과 기능

- 정신분석가들은 두영역의 자아를 설명

- 기능적 자아(functional ego). 기능적 자아는 정신의 내적인 기능뿐 아니라 세계를 향한 외적인 기능 모두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자기 표상적자아(self represnetationla ego). 이것은 다양한 자기 이미지로부터 자기라는 일관된 개념을 통합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능자아, 관리자아

자기 표상적 자아

집착 그자체로서의 자아

 

자아 발달에 대한 불교의 관점

- 5온

 

자아와 무아

- 자아가 위축된 상태의 의식이고 무아가 이완된 상태의 의식이라면 그 기반이 되는 무아없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4. 마음의 놀이

- 훈련되지 않은 마음의 눈으로 공을 단순히 빈 공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보석처럼 순수한 의식의 광채는 흐려질 것이다.

 

5. 명상과 무의식

- 융은 명상을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말한다.

- '명상은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않는다. 집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의식의 해체를 통해 무의식적인 상태로 직접 다가가는 것이다. .. 명상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와 같은 것이다.

 

무의식에 대한 전통적인 모델

- 융은 명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체험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하였고, 무의식의 모델 또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융의 관점은 대부분의 명상 수행자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들이 보기에 융의 관점은 의식과 무의식의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이원적인 모델이며, 명상의 경험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명상을 의식의 해체로 보는 융의 관점"은 대부분의 명상 수행자들의 경험과 상반되는 것이다. 실제 명상의 경험은 의식을 고양시키고 깨어있게 한다.

- 융은 명상을 "내면으로 향하는 편견'이라고 보았다.  명상은 일종의 무의식에 대한 항복(세상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위험한 탐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융은 명상을 의식의 해체, 내면으로의 편견, 분리된 무의식의 마음이라는 불분명한 영역으로 하강하는 것으로 보았다.

- 이렇게 무의식을 의식에서 분리된 다른 어떤 것으로 이해할때 그것은 자아를 위협하는 "유혹적이며 공격적인 것"으로 이에 맞서 자아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아를 잃어버리는 유혹에 빠짐으로써 무의식으로부터 위험한 사고가 분출하는 상황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융은 명상수행을 하지 말도록 충고하였다.

 

무의식의 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향하여

- 의식과 무의식은 두개의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몸-마음 유기체가 연관을 맺고 있는 두개의 다른 방식이다. 무의식의 과정은 일상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영역밖에서 작용하며 경험을 구성하고 현실에 반응하는 전일적인 양식이다. 무의식이란 몸-마음 유기체가 반영적인 사고에 앞서 현실과 상호연결을 경험하는 전일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적인 배경 네가지

1) 감지된 의미의 상황적 배경

-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직접적 상황에 대해 은연중에 느껴지는 감각

- 감지된 느낌이란 특정상황과 연관되어 잇는 것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것

- 즉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났을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기 전에 몸에서 이미 그를 만난 것에 대해 기쁨, 걱정, 두려움을 갖는 것과 같은 감지된 반응..

 

2) 개인적인 배경

- 과거의 경험과 축적된 의미가 보이지 않게 현재의 의식, 행동, 세계관을 형성하는 패턴

- 개인적인 배경은 상황적 배경보다 접근이 어렵다. 이는 개인사가 현재의식과 지각을 형성하는 동안 개인적 의미, 연상작용, 대인 관계의 패턴이 형성되는 배경의 방식때문이다.

 

3) 초개인적이 배경

- 몸-마음 유기체가 존재의 더 큰 보편적인 특성과 조율하는 방식

- 개인적인 배경보다 더 넓은 단계는 유기체와 세계사이의 더 깊은 상호 연결성을 나타내며 순수하게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 너머로 확장된다.  초개인적인 배경은 자아와 세계사이의 일체감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나 몸-마음 유기체와의 미묘한 동일시를 포함하고 있다.

 

4) 열린 배경

- 몸-마음 유기체와 동일시하기 이전의 현실에 대한 순수하고 직접적인 현존

- 초개인적인 배경의 단일성 너머에는 열린 장이라는 空이 있다. 이는 훨씬 더 깊이 실재에 스며드는 것이다.

- 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상태에는 .. 근원적인 열림, 근원적인 자유, 드넓은 공간이 있다.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다"

 

트룽파의 설명

"대상을 보는 순간에는 대상에 대한 논리나 개념화가 전혀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지각이 일어난다. 열린배경에서 상황을 지각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것에 무언가를 덧붙이려고 노력한다. 이름을 붙이거나 위치를 정하고 범주화할 수 있는 분류체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전개된다.

 

- 열린의식수준에서는 명상수행자는 현상적인 세계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깊이의 통찰을 얻는다. 개념화된 마음은 지각과 연결되지 않으므로 눈에서 막이 걷힌 듯 매우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열린 배경은 항상 존재한다. 언제라도 명상을 통하여 주의력을 계발한다면 특정한 마음-상태에 내재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구체화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열린 의식을 만날 수 있다.

 

-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을 함께 창조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자신이 곧 세상이기 때문에 명상은 자기발견이 동시에 세상의 발견이다. 우리 자신과 현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부로 향하는 문이 곧 바깥으로 열린 길이다.

 

6. 심리적인 공간

- 특정한 조건에서 형성된 인격과 개념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강박적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애써도 별 소용이 없고 내면의 긴장과 동요만 만들어낸다 왜그럴까?

 

세가지 공간

1) 신체 지향적 공간

 

2) 감각 공간

- 감각공간은 순간순간 머물렀다 움직이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풍경과도 같다.

- 감각공간은 확장과 수축뿐아니라 표면과 심연 사이를 오간다.

 

3) 존재의 열린 공간

- 근원의 존재에 다가갈때 감각공간은 확장되고 깊어지며 움직임을 가지게 된다. 존재에서 멀어질때 위축되고 매마르며 편평해진다.

- 방해받지 않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제한되거나 가두어지지 않는다

- 어느곳에나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직접 접할 수 있으며 모든 방향으로 확장된다

- 공평한, 모든 것을 그대로 허용한다

- 광활한, 모든 마음의 제약을 넘어서 무한히 확장된다.

- 형태없는, 개념의 상자안에 가둘 수 없는 것이다

- 순수한,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는 것

- 안정적인, 일어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러나 지나가는 모든 경험과 항상 함께하는 근거

- 존재 너머의, 특정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

- 비존재 너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명료하고 밝은 현존하는 것

- 잡히지 않는, 고정되거나 붙잡을 수 없는

 

- 개념적인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도 이해할수도 없기 때문에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징과 은유"이다.

- 만다라, 차크라, 기, 오오라

 

공간 안에서의 삶

-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때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 의식의 만다라 안에서 펼쳐지는 현상의 현란한 움직임을 지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상황의 중심에 있고자 하기 때문이다.

 

- 존재의 열린 공간(세상에 대한 감수성으로 감지하는, 부드러움과 민감성으로 느끼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의 접촉으로 공유하는, 인간 현존의 투명함과 충만함으로 알 수 있는)은 실재와 친밀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며, 규정된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발견하게 해준다.

 

7. 경험의 펼침

- 삶이라는 여정은 자기 존재를 펼치는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숨어있던 것이 드러나고 모호했던 것이 명확해짐으로써 새로운 발견의 흐름이 일어난다.

 

경험이 펼쳐지는 과정

- 심리탐구에서 경험이 펼쳐지는 과정은 함축적으로 감지된 의미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말함

 

영적 도약

- 감지된 느낌이 드러날때, 얼어붙어 있던 감정이 녹을때, 얽혀있던 삶의 문제가 풀릴때 실제로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 오래된 집착이 갑자기 풀려나는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커다란 공간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독을 메우려 들지 않고 어떻게 삶의 근거를 근원적인 열림을 향해 열 수 있을까?

 

- 명상수행은 모든 생각과 감정밑에 자리한 존재의 더 큰 신성한 배경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알려준다. 명상은 표면의 마음을 설명하는 과학이나 심리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존재의 개어있는 넓은 현존으로 이끌어 인간 존재의 중심에 자리잡은 본질적인 고결함을 드러낸다.

 

8. 반영과 현존(깨달음의 변증법)

satori(선의 핵심인 갑작스러운 깨달음)

- 사토리는 거대하고 우주적인 감지된 변화 즉 한사람의 삶 전체가 갑자기 바뀌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변화

- 감지된 변화와 사토리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 같은 대상을 이야기하는 두가지 다른 방식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일까?

 

- 깨달음은 변용, 자기해방, 자연스러운 현존이라는 다양한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심리적 반영

- 명상은 본래 집착하고 일을 꾸미는 주체/객체로 분리된 자아로부터 자유롭게 열리는 현존이며 의식의 본성이 더 직접적이고 더 근본적이며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 심리치료는 반성적 대화과정은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문제와 걱정거리, 관심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더 효과적이다.

 

- 명상수행자들은 종종 이러한 삶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있다. 인간소외와 고통의 뿌리에 있는 주체/개체 사이의 분리와 갈등을 해결하거나 극복하려 하지 않는 접근방식에 대해 궁극적으로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 감정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찾기는 유용한 방법이다. 너무 커다랗게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감정으로부터 반성적 거리를 설정함으로써 감정과 더 쉽게 연결될 수 있다.

 

분리된 의식과 분리되지 않은 의식

- 자기를 반영한다는 것은 반영하는 대상과 관찰하는 주체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식의 작용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설명

"당신은 거대한 나무를 보고 있다. 당신은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보는자도 없다. 모든 것은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생명만이 있다. 관찰자는 나뭇잎처럼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반응의 순간도 기록할 것도, 경험도 없이 단지 완전한 고요만이 ... 보고 들을 뿐이다. ... 외부가 내부이며, 내부가 외부이다.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 뉴스가 중립적으로 세상에 대해 전달해주는 것 같지만 숨겨진 편견을 감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습적인 분리된 의식은 우리앞에 놓여있는 것에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는 풍부하고 직접적인 경험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지 않는다. 습과적으로 왜곡된 지각(무의식적으로 의식의 도식을 현실로 착각하는)으로 세상을 본다.

 

근원적인 문제(전반영적 동일시, 무의식적 동일시)

- 심리적 전통과 영적 전통 모두 일상적 의식상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무의식적인 동일시 때문이라고 본다. 동일시는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해서 의식이 의식의 내용(사고, 감정, 이미지, 신념, 기억등)에 달라붙게 한다. 정체성은 반영적 자기인식을 위한 능력이 개발될 무렵 완전히 형성된다. 기억, 자기, 이미지, 기억과 이미지로부터 형성된 자신에 대한 신념같은 매개체에 의해 간접적으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 자기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알게 되기 때문에 자신이 보는 대상이며, 존재의 커다란 장과 생각-형상이 일어나는 현존의 관점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자기마음에 갇힌 채 갇힌 마음 그대로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반영(동일시에서 물러나기, 의식적인 것으로 만듬) - 알아차림?

- 무의식적 동일시라고 하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첫번째 단계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 즉 반영하는 것이다. 전반영적 동일시에서 바로 비이원적 의식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 모든 반영은 경험에서 물러나 경험의 패턴, 감지된 구조, 의미, logos, 기본적인 가정, 신념, 경험을 형성하는 현실을 상상하는 방식을 탐색하는 것이다.

 

3가지 반영적 방법

- 개념적 반영

- 현상학적 반영

- 깨어있는 주시

 

개념적 반영(인지적, 행동적 분석)

- 자신의 개념에 대해 반성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론과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거나 분석하면서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붓다의 사성제는 무의식적 고통에서 한걸음 물러나 고통의 본질과 원인, 해결책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현상학적 반영(경험과 직접 만나기)

- 현상학적 반영은 개념적으로 가정하는 습관을 멀리하고 좀더 새롭고 자유롭게 경험을 탐색하는 것이다. 습관적인 반응과 가정에서 물러나 실제 경험과 좀더 생생한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현상학적 환원주의 핵심이다.

 

반영적 주시(깨어있는 주시)

- 마음챙김명상은 동일시에서 벗어나 주시할 것을 필요로 한다.

 

순수한 현존(경험안에 깨어있기)

- 자신을 비추어 보기전에 마음은 의식속에 떠오르는 생각, 신념, 느낌, 기억과 동일시하며 동일시에 의해 조건 지워진 마음에 갇히게 된다. 자신을 비추어 그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관찰함으로써 무의식적인 동일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뒤로 물러나 있기만 한다면 분리된 의식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반영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게 되면 전반영적 동일시로 물러나지 않으면서 경험과 하나가 된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때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깊고 고요한 원천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머무르게 된다.

 

독일 철학자 괴스텐바움

"삶에 참여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으로 훈련된 상태를 넘어서는 것이다. 명상의 목적은 온전히 삶에 참여하는 것, 반영을 거치지 않은 동일시에 의한 무의식적인 참여가 아니라 온전한 의식의 참여다. 마지막으로 분리된 의식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순수한 현존이다"

 

로드로 다예

"그것은 대상으로 붙잡을 수 없는 공간이다.

그것은 흠없이 맑은 깨끗한 수정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빛을 발하는 램프와 같다.

그것은 벙어리처럼 표현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맑고 투명한 지혜

빛나는 법신, 불성

근원적인 순수함과 자발성

그것은 비유를 통해 보여줄 수 없고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

그것은 다르마의 공간

다지는 마음을 영원히 압도한다"

 

- 순수한 현존의 본질은 어떠한 계획적 전략이나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없이 마음흐름안에서 즉각적인 정화를 일으킨다. 정화가 일어나는 두가지 방식으로는 "노력이 요구되는 변용과 노력이 필요없는 즉각적인 자기해방"이 있다

 

변용(노력이 필요없는)

- 감지된 느낌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경험이 변화되는 구체적인 단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경험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험의 장막을 통과하려고 애써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내려놓기는 회피가 되어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즉각적인 자기해방

- 어떠한 대책도 필요없다. 어떤 개념적 이해도, 반성도, 물러섬도, 초연함도, 바라봄도 필요없다. 생각, 감정, 혼란속에서 완전히 현존할때 스스로 평화를 되찾고 투명해져서 더 큰 의식으로 돌아간다. 물결은 가라앉아 대양으로 돌아간다. 구름은 하늘로 녹아든다. 똬리를 틀었던 뱀은 스스로 똬리를 푼다. 이는 모두 자기해방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 자기해방이란 대화의 과정이 아니라 존재-공의 정연한 가슴으로 얻어지는 깨달음이다.

 

요약

-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 감정, 태도, 관점이 실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전반영적 동일시에 사로잡힌채 살아간다. 이러한 동일시에 의해 의식이 가려질때 경험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경험이 우리를 누르고 무의식적으로 빠져있는 생각과 감정의 급류에 휩쓸려 버린다. 자기 이미지, 혼란스러운 감정들, 초자아의 명령, 대상관계, 자동사고패턴같은 무의식적 동일시에 휩쓸려 버릴때 경험이 지닌 깊은 의미를 보지 못한다.

 

- 화가 났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화를 내고, 왜 불안한지 이해하지 못한채 불안해하고, 진정으로 무엇에 굶주렸는지 모른채 굶주려 한다.

 

- 반영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알아차림)은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이다. 개념적인 반영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일어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현상학적 반영은 결정적으로 그것을 넘어서 더 섬세하고 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누리는 것이다.

 

- 깨어있는 주시를 통해 반응이나 동일시에 사로잡히지 않고 경험에서 한걸음 물러나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 경험을 관통하면서 함께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은 깨달음의 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무조건적인 현존이라 부르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생각없이 경험에 빠져 있는 것(동일시)에서 벗어나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개념적인 반영)으로, 경험을 직접 누리는 것(현상학적 반영)으로, 비동일시적인 주시(깨어있음)로, 경험과 현존하는 것(변화로 이끄는 무조건적 현존)으로, 어떠한 경험이 일어나든 그와 함께하며 열린 현존안에서 반영을 넘어서 거기 머무는 것, 즉 순수한 현존/空(자기해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의식을 거울에 비유하면 "전반영적 동일시"는 거울안에 나타나는 형상에 사로잡혀 넋이 빠진 상태라고 할 수있다

- 반영은 거울에 나타난 모습에서 한걸음 물러나 이를 잘 살펴 하나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 반영을 넘어선 상태는 거울 자체가 되는 것, 실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개방성과 명료함을 갖는 것이다.

- 순수한 현존에서 의식은 스스로를 비추며, 대상을 객관화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인식한다.

- 거울은 비추는 대상을 분리하거나 자신과 대상을 혼돈하지 않고 그저 대상의 본성을 드러낸다. 부정적인 반영이 거울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반영이 거울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모두 거울이 자기자신을 비추는 것을 보여줄뿐이다.

 

- 비이원적인 의식을 위한 기반으로 현대인에게 가장 적절하고 유용한 예비적인  수행이나 영적인 작업은 무엇일까?

- 수행처 밖에서 비이원적인 현존을 계속 지켜나가고 지속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 어떻게 서구 사회와 같이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을 요구하는 빠르고 복잡한 첨단 기술사회에서 자비롭고 평안한 현존의 자질을 일상의 삶에 통합시킬 수 있을까?

 

제 2부. 영적인 맥락안에서의 심리치료

- 명상수행은 마음의 부침가운데 머무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치료자나 귀 기울여 듣는 사람, 반응을 잘하는 사람,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친구, 민감하게 배려할 줄 아는 연인, 친절한 교사가 되기 위한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9.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현존의 치유적 힘

- 심리적 치유의 본질은 무엇인가?

- 낡은 자기 파괴적 패턴을 뒤로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 경험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 감정과 마음의 상태에 대해 느끼는 이러한 불편함은 무엇일까?

 

- 가장 뛰어난 치유자나 스승은 진정한 현존을 보여주고 그것으로 치유하는 사람들이다. 내담자로 하여금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격려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일 것이다.

 

10. 나약함, 힘, 치유적 관계

- 경험적인 방법으로 훈련받은 심리치료자이자 수년간 명상수행을 해온 경험에 비추어 볼때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과 근원적인 나약함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심리치료나 명상이 인간본성의 깊은 면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실존적 영웅주의

- 실존주의에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을 실존적 불안이라고 말한다.

- 의미없는 세상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창조하려고 노력한 실존주의자들에게 인간의 삶은 영웅적인 의미를 갖는다.

- 불안, 무의미, 절망은 부인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편이었다.

 

공과 꾸며낸 자기

- 왜 신념, 이미지, 소유물, 행동, 사회적 지위와 같은 진정한 자기가 아닌 것과 자신을 그렇게 동일시 하는가? 바로 이것이 붓다가 실존주의보다 더 깊이 탐색한 대목이다.

 

- 명상을 배우기 시작할때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을 통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과 동일시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생각과 싸우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생각을 소유하거나 내던져 버린다. 그러나 명상을 계속해 나가면 집착과 거부를 매순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정신의 고착된 순간 사이에 어떤 빈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마음의 집착이 일어나지 않는 다른 미지의 공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리에 앉아 그사이의 공간안에 머물 수 있을때 집착이 일너나는 더 커다란 의식과 평화의 장을 발견하게 된다.

 

- 명상은 적절하게 놓아버리고 끝냄으로써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것을 배우는 방버이다.

 

명상과 두려움을 넘어선 길

- 정체성이 임의적인 구성물이라면 어떻게 불안과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 자아정체성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관습적이고 제한된 자기라는 개념의 반대쪽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허무주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것이다.

 

- 낡은 자신을 괴롭혀온 정체성이 무너지고 내담자가 붙잡을 수 잇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 그것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치료자까지 두렵게 한다. 치료자로서 이러한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이전의 정체성 구조를 유지하려고 애쓰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 아니면 내담자를 심연의 경계에 놓인 공간에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가?

 

-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자신의 깨달음에 의존하는 것이다.

 

힘과 나약함

- 자신의 나약함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내면의 힘과 에너지의 원천이다.

 

11.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심리치료

- 진정으로 치유적인 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인 내담자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는 것이다. 메다르 보스

 

- 프로이드는 융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신분석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통한 치유"라고 말했다.

 

명상 심리치료, 무조건적인 자비

- 자비심은 무조건적인 자애 즉 인간 존재와 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명상은 아무것도 취하려 하지 않고, 좋은 생각을 하거나 나쁜 생각을 없애거나,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획득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무조건적인 자애의 마음을 기르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다.

 

12. 우울함, 가슴의 상실

실존의 세표식

첫째, 무상함.. 어떤 것도 똑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

둘째, 무아.. 이는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무상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삶에는 항상 불만족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

 

13. 정서와 함께한다는 것

- 정서와 친구가 되는 것은 가능할까?

- 어떻게 온전히 정서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 두려움없이 직접 대면함으로써 정서의 에너지가 삶을 일깨우는 힘이 될 수 있을까?

 

감지된 경험의 스펙트럼

1) 순수한 생명력(감정의 장)

- 모든 감정과 정서는 우리를 거쳐가는 근원적 생명 에너지의 표현으로 일어난다. 순수한 생명력은 맑은 정신뿐 아니라 감수성의 원천이다. 부드러운 피부, 감각기관의 복잡한 작용, 뇌, 신경체계는 모두 세상을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감정과 정서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반응이다.

 

2) 감지된 느낌

- 순수한 생명력과 감정 사이에 감수성이라는 미묘한 영역이 있다. 이를 감지된 느낌(felt sense)라고 한다.

 

3) 감정

- 감지된 느낌을 넘어서 슬픔, 분노, 기쁨과 같은 감정이 있다.

 

4) 정서

- 정서는 감정의 보다 강한 형태다. 슬픔의 감정은 비탄으로 이어지고, 짜증의 감정은 분노로 폭발하며, 두려움의 감정은 공포로 변하낟.

 

정서적 갈등의 시작

- 정서는 어떻게 고조되어 통제력을 잃고 폭발하게 되는가?

- 정서에 빠지는 것과 좀더 건강하게 다루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명상수행자는

- 분노가 폭발하는 가운데에도 내가 정말로 화가 난 것일까?

- 이것이 정말 그렇게 큰일일까?

-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일까?

- 이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한 것일까?

 

- 쵸감 트룽파는 "불편한 정서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그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낄때, 불편한 정서는 더이상 불편하게 할 사람을 갖지 않게 된다. 이것은 유도연습과 같다"라고 말했다 

 

14. 일상과 함께하는 깨달음

- 명상수행을 해본 많은 사람은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일깨우고 새로운 통찰과 명료함을 가져오는 깨달음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깨달음의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 우리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번잡하고 복잡한 삶과 영적 깨달음을 통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깨달음과 변용

- 높은 수준의 통찰, 힘, 지혜를 얻은 뛰어난 명상 수행자라 할지라도 깨달음의 순수한 흐름안에 충분히 살피지 못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화라는 콤플렉스나 맹점, 자기기만의 영역 같은 섬이 남아 있을 수 있다.

 

- 명상에서 계발된 의식을 삶의 모든 부분에 이끄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 수행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적 깨달음을 인간이라는 전체구조에 통합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족첸의 가르침에서는 아주 드물게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완전한 해방에 이른다고 한다. 그외의 사람에게는 해방의 경험이 깨달음 뒤에 바로 오지 않는다.

 

스리 오로빈도

"깨달음 자체는 존재를 전부 변화시키지 않는다. .. 의식의 영적인 정상에서 깨달음의 빛을 볼 수 있지만 그 아래 예전의 자신 모습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런 경우를 여러차례 보아왔다. 깨달음과 삶을 통합시키는 문제는 매우 광점위한 것이어서 영적인 발달에서의 두가지 움직임 즉 깨달음, 변용, 해방의 경험과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해방의 경험을 통합하는 일의 관계에 대해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깨달음은 규정된 자기라는 감옥에서 해방으로, 인격에서 존재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변용은 깨달음이 몸과 마음의 규정된 두터운 패턴을 꿰뚫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성이 개인의 삶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안에서 완전히 통합되고 개인의 삶은 궁극적인 진리와 신성한 계시를 담는 투명한 그릇이 된다.

 

- 성급하게 모든 것을 초월하려는 시도, 즉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 감정, 욕구를 회피하기 위한 비개인적인 절대라는 안식처를 찾는 것은 내부적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년간 미국의 많은 영성공동체에서 본것처럼 파괴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적인 경험의 구조와 인간관계 안에서 완전히 통합되지 못하는 영적성장을 추구하는 일은 우리문화에서 제기되어 왔다.

 

심리-영성적 통합을 위한 시도

 

- 커다란 영적 깨달음이 좀더 개인적이고 통합적인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데 심리학의 지식과 방법론이 그 몫을 다할 수 있을까?

 

- 심리적 탐구는 상대적인 진실, 개인적 의미, 인간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같은 인간적 영역을 다룬다. 심리적인 작업은 기껏해야 의식을 함정에 빠뜨리는 조건화된 구조, 형상, 동일시를 드러내어 재구성한다.

- 영적수행은 조건화된 구도, 동일시, 인간적 관심을 넘어 궁극을 직접 깨닫는 초월적 영역을 추구한다. 영적수행은 모든 형상 너머 인간 실존의 뿌리와 핵심에서 무한하게 열린 공간, 공을 드러내는, 시간을 초월해도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진실한 것을 찾으려 한다.

 

- 이 두가지 접근은 인간의 고통을 다른 방향에서 다루여야 하는가?

- 그렇지 않다면 양립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서로를 강력하게 지원해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문화적 요인으로서 동양과 서양

- 서구인들에게 심리작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왜 전통적인 동양인들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하는것은 그렇게 어려운가?

- 내가 아는 대부분의 동양의 영적 스승들은 왜 심리작업과 그것이 영적수행에서 갖는 잠재적 가치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가?

- 이러한 불균형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 심리치료가 서구인들에게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도취적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에만 매달려있을 수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 동양의 문화는 서양과 달리 몸과 마음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둘지 않았다.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우선으로 하였기 때문에 자기와 타인, 개인과 사회도 명확히 구분짓지 않았다.

 

영적 우회

- 영적우회는 우리시대와 같이 전에는 가능했던 존경받을만한 의미있는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가고, 친밀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커다란 사회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된 시기에 빠지기 쉬운 강한 유혹이다

- 영적우회는 상대적인 진리를 부정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절대적인 진리를 내세운다. 절대적 진리는 특정한 관념을 넘어선 영원한 것이다. 영적 우회에 빠진 사람은 반대의 카테로리에 들어있는 실수, 절대주의자의 실수를 범하고 있다. 바로 절대적 진리를 끌어와 상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 예를들어 "모든 것은 더 큰 우주적 관점안에서 궁극적으로 영원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영적으로 나약하다는 표시다"라는 결론같은 것이다.

 

-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가진 상대적인 유기체만도 아니며 동시에 육체와 개인적인 역사보다 훨씬 더 커다란 절대적인 존재, 의식, 현존만도 아니다. 커다란 절대적 존재일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육체안에 사는 인간이기도 하다. 자신을 형상 즉 몸, 마음, 인격과 동일시한다면 삶은 이미 알려진 익숙한 구조에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공, 절대적인 진리 존재로만 산다면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절대적인진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개인적 자아는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상대적 차원에서는 개인적 자아가 존중되어야 한다.

 

- 수년간 명상수행을 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전통적인 임상의 증상이 아니라 명상수행이 해결하지 못한 삶의 문제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일하지 못하며, 자비심으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엇때문에 파괴적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명상수행과 개인적 발달 수준에 차이가 큰 것을 보고 놀랄때가 많았다. 이들 중 일부는 아주 높은 경지라고 부르는 명상수행을 수년동안 해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자존감이나 인간관계에서의 민감성조차 발달시키지 못했다. 3년동안 철저하게 티베트 명상수행을 했던 한 여성은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을 거의 갖지 못했다. 철저한 수행은 내면의 불만족을 강화하여 높은 영적 이상을 축하도록 그녀를 몰아붙였을 뿐이다. 그녀는 자기자신이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 전혀 자비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영적 초자아

- 영적우회외에도 서구의 영성 추구자들이 가진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영적초자아에 대해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가혹한 내면의 목소리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늘 수행이 부족하고 가르침을 삶에 실천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비판한다.

 

- 높은 영적인 이상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진정한 감정을 부인하고 자신의 육체적 생명력, 경험의 진실, 나아갈 방향을 찾는 능력과 단절된다.

 

- 인류의 가능성이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우주적 신비와 현존에 속함으로써 완전히 열려있고, 스스로를 알고 있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이며, 그것의 본성안에 더 깊은 자원을 발현하는 능력을 통해 이 세상속에서 하늘과 땅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는 인간존재로서의 가능성이다.

 

제 3부. 관계속에서의 깨달음

15. 변화로 이끄는 친밀한 관계

- 남녀관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고자 한다면 먼저 남녀관계가 제공하는 강력한 기회, 즉 참된 본성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로 인식하고 환영할 필요가 있다.

 

16. 칼날 위에서 추는 춤

- 남녀간의 사랑는 대립적인 요소사이의 역동적이면서 종종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운 춤이다. 춤은 때로는 매혹적이지만 때로는치열하고 전투적이다. 또한 때로는 활기를 불어넣지만 때로는 진을 빼놓기도 한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양극단(가까이 다가가기와 떨어져 있기, 붙잡기와 놓아주기, 같이 어울리기와 혼자만의 공간을 주기, 순종하기와 앞장서기, 양보하기와 버티기, 부드러움과 강인함)사이를 쉬지않고 유연하게 오갈 줄 알아야 한다.

 

17. 금을 제련하기

- 연인이란 무엇인가?

- 남녀간의 사랑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 두사람이 만난 것은 무엇을 함께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18. 무조건적인 사랑과 조건적인 사랑

- 무조건적인 사랑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커다란 존재를 일깨운다.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광대하고 심오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이 커다란 존재는 가슴이다.

- 가슴의 본성은 사랑이 자유롭게 흐르게하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는 것이다. 가슴은 다른 사람에게서 개인적인 취향에는 거슬릴 수도 있는 것 너머를 보며, 상대방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겠다거나 쿨하게 지내겠다거나 혹은 상대방과 관계때문에 커다란 고통을 받으면 그 사람과 헤어지겠다는 등 나름대로 타당한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경우가 많다.

 

19. 영적 성장의 길로서의 열정

- 열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놓아버리기다. 놓아버리기는 가슴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다.

 

20. 참된 영적 권위, 그 진위 구별하기

- 거짓된 영적 지도자와 참된 영적 지도자를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집단과 진정으로 인격을 변용시키는 영적인 집단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거짓 선지자와 진정한 지도자 모두 자아의 습관적인 패턴을 깬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추종자들을 자신에게 예속시킴으로써 그렇게 하는 반면, 진정한 지도자는 추종자들에게 더 커다란 자유를 줌으로써 그렇게 한다.

- 이 중요한 차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 참된 영적 권위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거짓 영적 지도자

1) 지도자가 추종자들의 자존감을 인정해주거나 부정하는 전권을 광범위하게 행사한다

- 병적 집단의 지도자는 대개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으로 "무한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2) 집단의 중심적인 초점이 절대적인 대의명분, 이데올로기다

- 지도자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고 추종자들은 의심없이 자신에게 제시된 신념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신이나 추종자들을 접근할 수 없는 권위의 원천에 다가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유지한다.

- 추종자들은 지도자에게 의존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말해주기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단 신념이 이들을 장악한다.

 

3) 지도자는 희망과 두려움의 감정을 조종함으로써 추종자들을 통제한다.

- 추앙받는 지도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조직안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식은 약속이다. 지도자는 추종자들에게 보상(구원 등)을 약속한다.

 

4) 집단과 집단 밖의 세상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다.

- 집단 안에 있는 것은 좋은 것으로 규정되고 밖에 있는 것은 나쁜 것이다. 이러한 집단은 악에 의한 절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집단밖은 악으로 규정한다.

 

5) 부패한 컬트지도자들은 스승밑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고 스스로 예지자가 된 사람이다

- 많은 종교 전통은 명확한 영적 계승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인 영적 권위

- 사실상 뛰어난 스승과 부도덕한 스승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거짓된 스승의 잘못된 점만 보여주고 진정한 스승이 잘하는 것은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충분히 도움이 되지 못한다.

 

- 위대한 스승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진정한 영적 스승의 존재는 깨어난 존재가 가지고 있는 자질들을 제자에게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열려있음, 관대함, 통찰력, 유머, 부드러움, 수용, 자비, 솔직함, 힘, 용기 같은 것이다.

 

절대적 권위

- 진정한 영적 스승은 수년간 명상과 같은 자신을 알기위한 수행을 통해 인간의식의 본성을 깨달은 사람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가르치며 제자에게 자신을 의존하도록 하는 거짓된 스승과는 달리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과 깨달음의 원천을 기꺼이 나눈다. 이들은 제자들에게 본성을 직접 인식하도록 가르침과 함께 자각의 수행을 돕는다.

 

놓아버림과 맹목적 순종

- 깨어 있는 놓아버림은 더 깊은 차원의 진리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며 깨어있지 않은 순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 진정한 놓아버림은 집단 내부의 편협한 관점에서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마음을 열도록 해준다.

 

진정한 스승을 찾아서

- 부처의 말이다

"너희가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반복해서 들어서 아는 것에 의존하지 마라. 전통이나 경전에 쓰인것, 추측한 것, 그럴 듯한 추론, 편견, 다른사람의 능력, 숙고에도 의존하지 마라. 그 승려는 우리의 스승이다. 깔라라마인들이여, 네가 자신을 더 잘알게 되었다면 그 가르침은 올바른 것이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이것은 너희를 진리와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

 

21.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사랑과 성스러운 공동체

-폴 쉬페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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