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준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대하고, 관대하고, 보살피고, 다정하고, 변함없고 너그럽다.
사랑은 보호하고 협력하고 희망을 주고, 전체를 보고, 자애롭다.
또한 사랑은 따뜻함, 감사, 공감, 겸손, 완성, 진정한 시각, 순수한 동기, 상냥함이 특징이다.
사랑은 영적 수준으로 진화하는 분기점이란다.
영적 스승없이는 쉽게 넘어가기 힘든 분기점이란다.
나의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선생님덕분에 넘어설 수 있을까?
큰 나 되려함에 대한 저항을 내려놓기
2016년 7월
큰나에 대한 저항 놓기가 성공하고 있다
사랑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이다
사랑의 수준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대하고, 관대하고, 보살피고,
다정하고, 변함없고, 너그럽다.
사랑은
보호하고, 협력하고 희망을 주고,
전체를 보고, 자애롭다.
또한 사랑은
따뜻함, 감사, 공감, 겸손, 완성, 진정한 시각, 순수한 동기,
상냥함 등이 특징이다.
사랑은 존재방식이다.
사랑은
사랑을 가로막는 것을 항복했을 때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다.
사랑은
감정이나 생각을 넘어서는
존재의 상태다.
사랑은
항복의 길을 통애
우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다음과 같은 의문과 함께 세상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당신에게 어떤 위안이 될까?
당신이 무일푼일때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
당신이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때, 당신을 어떻게 위로할까?"
사랑하는 상태는
우리가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일상생활속의 사랑
사람은 누구나
모든 생명체에게 친절을 베풀어
세상의 아름다움과 조화에 이바지할 기회가 있고,
이를 통해 사람의 영혼을 돌아본다.
생명에게
너그럽게 베푸는 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유는
우리도 그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수면위 잔물결처럼
모든 선물은
준 사람에게 되돌아간다.
내가
타인의 어떤 부분을 굳건하게 해주면
실제로는 자신의 같은 부분이
굳건해진다.
사랑을 기꺼이 주게 될때
알게되는 것은
우리는 사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사랑에 접속하는 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사랑은
사실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 존재를 깨닫기만 하면 된다.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린 소년은 아빠가 가르쳐준 동요를 외운다. 80년 뒤에도 그는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동료선원이 죄다 멀미를 하자 해군 병사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체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극심한 태풍을 뚫고 배를 몬다. 환자들은 모르고 있지만 의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엄마는 아이의 설사묻은 바지를 빨며 말한다.
아내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남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커피를 끓여준다.
강아지는
문 옆에서
주인이 귀가하기를 기다렸다가
주인이 들어오면 꼬리를 흔든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
가르랑거린다.
새는 노래하듯 지저귄다.
사랑이라고 하면 보통 애인이나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로맨틱'한 감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은 일생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개인적이고 로맨틱한 사랑 외에도 사랑의 유형은 많으며 다양한 사랑이 우리의 일상에 스며있다.
애완동물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의 사랑,
자유와 목표, 나라에 대한 사랑,
소질에 대한 사랑,
창작에 대한 사랑,
착한 성품으로서의 사랑,
열광하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
받아들이는 사랑,
의욕을 일으키는 사랑,
공감하는 사랑,
친절로서의 사랑,
관계의 핵심으로서의 사랑,
집단으로서의 사랑,
감탄하는 사랑,
존경하는 사랑,
용맹으로서의 사랑,
하나로 뭉치게 하는 유대감으로서의 사랑,
충성심으로서의 사랑,
애착으로서의 사랑,
소중히 여기는 사랑,
자기희생적인 모성으로서의 사랑,
헌신하는 사랑 등이 있다.
"환자들은 모르고 있지만
의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새는 노래하듯 지저귄다"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은 장관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다. 경험상 맞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저항을
모두 항복하고
사랑을 가로막는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릴 때,
세상은 장관을 이루는 사랑으로
빛난다.
이 광채는 사랑의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랑은 치유한다.
사랑은
치유를 쉽게 일어나게 하고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사랑에서 나온 행동을 목격하고 한순간에 마음이 바뀐 오리 사냥꾼의 실화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는 취미삼아 종종 오리사냥을 했는데, 어느날 사냥을 하는 중 으레 하던대로 오리가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방아쇠를 당겼고, 총에 맞아 크게 다친 오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친 오리의 짝인 암컷이 곧장 날아 내려오더니 자기 짝을 날개로 덮어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랑을 보고 사냥꾼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상태에 있게 되면
결코 다시는 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있다.
또한 사랑의 에너지 장속에서만 할 수 있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다른 이에게는 해주지 않을 일을
내게는 해준다.
굳이
기적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사랑으로 인해
기적같은 일이 가능해진다.
사랑에는
변모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겁을 집어먹고는 자기들에게 속셈이 있거나 바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겁내고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태는
에너지를 내뿜어
주변의 모든 것을 변형시키는
존재방식이다.
사랑하는 상태는 저절로 일어난다.
아무것도 행할 필요가 없고,
무엇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사랑은 소리없이
모든 상황을 변형시키는 에너지다.
이 말은 곧, 지극히 못된 사람도 우리와 같이 있으면 갑자기 타인을 용서할 마음이 든다는 의미다. 바로 눈앞에서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분노를 놓아버리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애한테 열받을 이유가 없네요. ... 너무 어려서 뭘 모르니까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두둔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낼 것이다.
사랑은
나와 주변사람들에게 힘을 주어
사랑의 힘이 없이는
할 수없는 일을 하게 해준다.
한편,
사랑의 다른 면인 용서를 통해
삶속의 일을 은총의 관점에서 볼 수있다.
미성숙했을 때,
저지른 실수에 대해
자신을 용서한다.
자신의 에고나 왜소한 측면을
작고 귀여운 아기곰처럼 보면
도움이 된다.
아기곰은
나쁜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
이 작은 곰을
미워하거나 야단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에고는
뭘 모르는
작고 귀여운 아기 곰이다.
우리가
자신의 왜소한 측면을 초월하는 길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에고를
부족한 것으로 볼뿐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랑의 에너지 장속에 있으면
사랑에 둘러싸이고,
감사가 일어난다.
삶에 감사하고
삶의 모든 기적에
감사한다.
개와 고양이에게 감사한다.
애완동물들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친절과 보살핌, 배려,
사려에서 나오는 타인의 행동 모두에
감사한다.
결국
우리는
그냥 사랑이 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움직임이
우리 내면에 보유한
사랑하는 형태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많은 청중 앞에서 이야기하든 강아지를 쓰다듬든 모든 행동에서 사랑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옴을 느낀다. 경험적으로 앎으로서 가슴에 품고 있는 바를 나누고 싶어한다.
만인과 만물을 위해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기에
그들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주위의 모든 사람과
동물들이 내면에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한다.
나의 삶이 주위의 모든 것에 축복이 된다.
타인과 동물이 나에게 선물이라는 점에 감사한다. 사랑은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그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물,
친구에게서 받는 사랑은
나를 위해 신성이 베푸는
사랑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온종일 사랑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매순간은
오직 사랑덕분에
가능하다.
이 책을 쓰는 일 역시 오직 사랑덕분에 가능했다. 사랑상태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삶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함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을 위해 삶을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 사랑이 있으니 만사가 나아진다. 계란 프라이가 잘된다. 오리가 목숨을 건진다. 고양이가 밥을 먹는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개를 입양해 집에 데려온다.
주위의 모든 것,
모든 형태의 생명에게
사랑을 나눠준다.
고양이, 개, 다른 사람,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준다. 그렇다. 악당에게도 준다. 체포한 악당을 감시하는 일이 직업이라면 악당이 자기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당신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서 유감이지만, 이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라고 얘기해준다.
예외를 두지 않고
최대한 자애롭고
너그럽고자 노력한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한이 없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은 수명을 연장한다. 연구기록에 의하면 개 한마리를 돌보면 10년의 수명을 보탤 수 있는데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수명에 보태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기이한 운동법, 식이요법 등을 생각해보라. 사랑은 영양물질로부터 복잡한 분자가 합성되어 생명체를 이루는 동화작용을 일으키는데 강력한 효과가 있다. 사랑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엔돌핀의 분비를 늘린다.
개와 함께 살면
10년을 더 살수 있는 이유는,
애완견이 사랑에너지 방출을 촉진시키고
이 사랑 에너지가
생명을 치유하고
연장하기 때문이다.
사랑 에너지는
여건만 적절하면
육체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정신적으로 긍정적 상태가 우세하므로 육체적으로도 병이 저절로 낳는 경우가 많다. 어떤 병들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치유되고, 나머지 병들은 의식기법을 쓰면 대개 차도를 보인다.
"치료에 차도를 보이지 않고 지속되는 병은
카르마에서 비롯하거나,
상징성이 있거나
영적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랑상태에서는
대체로 몸을 덜 의식하게 된다.
몸은 제 할일을 하면서
알아서 스스로를 돌보는 듯하다.
더이상 자신을 몸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순전히 육체적으로 건강문제를 다루는 것에는 흥미를 잃게 된다. 특별한 이유로 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몸에 대한 자각이 완전히 사라질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상태"가
점차 직관적 이해로 대체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하는 상태'와
그 정신적 과정은
자연발생적이고
직관적인 '아는 상태"로 대체된다.
논리는 건너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높은 진동수준에서 우주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는 이해는
서로 연결된 장으로부터 "계시"처럼 펼쳐진다.
아는 작용은
한정된 부분에서가 아니라
전체를 망라해 이루어진다.
더불어
내면의 고요덕분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비언적 차원에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다른사람과
비언어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놀라울 것도 없어진다.
부정적 감정을
더이상 느끼지 않는 것은
작은 자아를 초월해
이 작은 자아가
큰나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정현상이 완전히 바뀐다.
예를들어
누가 죽는 일은
비탄에 빠지기 보다는
일시적으로 낙심하거나
애석해 할일들로
경험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
끊임없이 항복하면
540룩스로 측정되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에 이른다.
인구의 0.4%만 이 상태에 도달할 정도로
매우 드문 상태이다.
이 상태의
에너지는 기적적이고 폭넓고 차별없고,
변형을 일으키고 한이 없고,
힘들지 않고, 환히 빛나고 헌신적이고 성자와 같고,
널리 퍼지고, 자비롭고
이타적이다.
또한
내면의 환희, 믿음, 황홀감, 참을성,
연민, 끈기, 본질, 아름다움, 동시성,
완벽, 항복, 고양감, 진정한 시각,
개방성 등이 특징이다.
개인의 자아를
인과관계를 일으키는
행위자로 보기를 포기한다.
만사가 동시성에 의해 쉽게 일어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서
환희가 뿜어져 나온다.
환희의 힘은 주관적이며,
외부의 근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동수행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다.
마치 생명자체의 근원이
춤을 추게 하는 듯이
촛불을 밝힌 예배당에서
밤새도록 황홀경 속에서 춤출 수도 있다.
이런 상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완벽함과
지극한 아름다움이
어둠속에서 빛나는 광채처럼 비치고,
영적 에너지가 투입되어
사물에 대한 지각에서 진정한 시각으로,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제한에서 무제한으로
변형이 일어나기 쉬워진다.
500대 후반인
높은 진동수의 사랑상태에서는
세상속에서 제구실을 계속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사고파는 일이 벌어지는
평범한 무대를 떠나 이전의
사회적 환경과 직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적적인 일이 일상이다.
초자연적이라 일컬으며
이성이나 논리,
인과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어떤 개인도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다만 여건이 적절할때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개인적 자아 너머에서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달아
영적에고가 커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이 전해지는 경로이지
사랑의 근원이 아니다.
영적 진전은
은총의 결과며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안다.
성취의 자부심은
현 상태에 대한 감사로
대체된다.
모든 의심과 신념체계, 지각, 입장, 의견,
애착을 놓아버리면서
항복의 과정을 한결 더깊이 있게
진행한다.
모든 애착,
나아가 서술 불가능한 강렬한 황홀경 상태에 대한
애착마저 기꺼이 항복하게 된다.
또한
겸손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의견 전체를
항복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있는 그대로가 아니게끔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사랑은
타인에게서 그의 결점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키운다.
사랑은
생명이 구현된 모든 것에서
생명의 좋은 점에
관심을 집중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상태에 있으면
타인에게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으며
사랑받기 위해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타인이 어떻게든 간에 사랑한다.
설사 아주 불쾌한 사람이라도 사랑한다.
범죄자에 대해서도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인생을 최선의 선택으로 여기는 것을 안쓰러워할 뿐이다.
사랑이 무조건적이면,
애착과 기대와
숨은 의도가 없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적어놓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
내가 어떻든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무조건적이다.
조건없이 준다.
아무런 단서도 붙지 않는다.
아무것도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대를
모두 항복했다.
사랑은
타인의 본질을 비추며,
따라서 타인의 사랑스러움에
빛을 비춘다.
사랑으로 인해
가슴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각은
사물을 인지할 뿐이지만,
가슴은 안다.
마음은
생각하고 말다툼하지만
가슴을 알고 넘어간다.
그래서 누가 잘못을 저질렀을때도
그를 사랑한다.
생각은
한가지만 알려주지만
가슴은 다른것도 알려준다.
마음은
비판적일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가슴은 어찌되었건 계속 사랑한다.
가슴은
무엇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조건을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마음은 조건을 건다.
하지만 사랑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사랑에서
조건을 없애는 열쇠는
'용서하려는 자발성'이다.
용서하면
사건과 사람을 새로운 맥락에서 고려해
못됐다거나 마음에 안든다라고 보지 않고
단지 부족하다라고 본다.
겸손하면
지난일에 대한 인식을
기꺼이 포기한다.
상황이나 인물의
진실을 보는 기적을 얻도록 기도하고,
문제에 대한 의견은
모두 항복한다.
벌어진 일을 보는
자신의 인식을 고집할 때
얻는 이득을 잘 살펴보고,
작은 이득을 하나씩 놓아버린다.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내가 옿다라고 주장하거나
부당하다라고 외칠때의
은근한 즐거움이
그런 이득이다.
결국에는
용서한다는
생각자체를 항복한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여전히 그 인물이나 상황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어
용서해야 함을 암시한다.
진정한 항복은
일을 그렇게 보는 것을
완전히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자신의 인식을
완전히 항복해
판단을 전부 놓아버릴 때,
상황 전체가 모습을 달리하면서
상대가 사랑스럽게 보인다.
사실
판단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가 내리기 때문에
판단을 놓아버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무조건적 사랑의 수준에서
우리는 만물과 만인을
사랑한다.
아돌프 히틀러마저도 사랑한다. 히틀러를 부정적 에너지에 장악된 사람으로 보고,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어쩔수 없었던 그를 기꺼이 용서한다. 히틀러는 악에 압도되었다. 우리는 악을 증오하는 대신, 사람들이 그같은 부정성에 압도되는 것에 슬픔과 연민을 느낄 수 있다. 히틀러는 자기딴에는 명예로운 의무라고 생각한 일을 했다. 이것이 히틀러가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일을 놓고 생각한 맥락이다. 히틀러는 시대를 풍미하던 어떤 이상과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렇게
히틀러를 놓고도,
그는 나름 헌신적이었으며
자기가 한 일을
봉사로 여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2차대전때
일본의 가미가제 조종사들도
나라를 위한 의무라고 생각한 일을 했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포기한 자발성을
존경할 수 있다.
또한
사랑의 법칙을 위배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모두 사회의 어떤 신념체계나
시대의 압력에
희생된 이들임을 알 수 있다.
일체성
의식의 상태가 진보하면
모든 존재가
새로운 의미를 띈다.
만물의 겉모습보다는
만물의 내적존재 상태와 본질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지각이 이렇게 바뀜에 따라
모든 것은 완벽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험은
시간을 넘어서 존재한다.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높은 진동상태에서
사랑은
개인과 그 나머지 우주를
절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만물과
완전히 일체인 상태를
경험한다.
이 상태에서
만물의 완전한 일체성은
세상속에서 자아가 갖는 평범한 인식보다
현실감이 큰 것으로 심오하다고만 묘사할 수 있다.
이런
내적변화가 일어나면서
외부사람이 보기에
그 사람의 생활방식이 바뀔수도 있고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과 행동이 전과 동일하게 보일지라도
더이상 충동적이거나
강박적이지 않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그만두거나
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
직업상의 큰 변화를 포함해
생활방식이
갑작스럽게
달라질 수도 있다.
내적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관심사와 시야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더 큰 차원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묵상이나 관상, 예술, 음악, 신체활동,
독서, 저술, 가르치는 일,
목표가 유사한 영적집단에 참여하는 일 등을 통해
그러한 차원에 몰입하기도 한다.
이제 놓아버림은
더욱 자연스럽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내적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더 자주오고
더 오래 지속된다.
이 현상은
아주 심오한 수준에서 일어나기도 하며,
이상하게도 크나큰 내적 혼란과
투쟁이 뒤를 잇기도 한다.
이렇듯
강렬한 내면 수행의 시기가 오는 것은
더이상 부정성을 용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의식의 힘이 커졌기 때문에
의식의 가장 깊은 수준으로 들어가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 내지
자아 개념이 생기는 근원과
관련된 문제들일 수도 있다.
끊임없이
항복하는 시기가 오래 이어진 뒤에
깊은 평정과 평화라는
큰 발견을 할수도 있다는 사실은
다음의 예로 알 수 있다.
"나는 멈추지 않는 환희의 상태에 있다가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깊은 통로에서 생겨난 갈등을 알아차렸다.
갈등을 직시해 완전히 겸험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의 지배적 상태는
갈등쪽으로 부여되는 고도의 에너지가 아주 많은 것이었기 때문에
내면의 갈등이 올라오게 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해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었다.
갈등은
꼬박 열흘간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갈등을 끊임없이 항복하면서
다른 식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놓아버리는 접근법을 썼다.
한동안은
내면의 갈등이
끝이 없을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이전의 항복과정 경험으로 보아
계속 놓아버림만 하면
조만간 느낌이 모두 바닥날 것이
확실했다.
임시로
숲 한가운데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거처를 옮겼더니
집중을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항복과정을 심화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갈등의 근원이 깊어지면서
훨씬 더 고통스러운 감정이
최대한의 강도로 발생했다.
내면에
엄청난 혼란이 왔고,
때로는 극도의 고통과 절망에
가까운 상태가 닥쳤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과정의 흐름에 장애가 없게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자,
마침내
구덩이의 밑바닥에 이르렀고
암담한 절망이
압도적인 강도로 발생했다.
그런데도
다 괜찮을 것이라는
앎이 있었다.
절망과 동일시하기보다는
항복하기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절망에 대한
모든 저항을
전적으로 완전하게 놓아버렸다.
절망이 즉시 사라졌다.
압도적이었고 견딜 수 없었던 절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절망이 있던 자리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평화가 있었다.
이 평화는
정도가 무한하고
기이하게 강력하며
전적으로 낭공불락인 것이었다.
심오한 정적이
내면에 감돌았고,
시간에 대한 지각이
완전히 멈추었다.
"시간"대신에
현상들이 일으키는
움직임만 존재했다.
다음날에도
경험은 계속되었고
사실 훨씬 강했다.
그러고는
이런 의식상태에서 경험하는
평범한 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세상에 재진입했다.
뉴욕시에서 번화한 5번가를 걷는 동안에도 깊은 정적과 조화, 평화가 똑같이 나를 지배했다. 평화와 정적이 도시 구석구석 배어들어 표면상의 혼돈과 소음, 혼란의 이면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는 듯 했다. 마치 그런 고요의 수준에 있는 힘이 이 모든 것을 발생하게 하고 연속된 통일체로 잡아 두는 듯했다.
정적의 본질속에는
무한한 힘이 있었고,
바로 그힘이 도시의 집단 부정성에 대응해
부정성을 상쇄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겉에서와 마찬가지로 속에서도 힘이 작용했다. 같은 화합력이 개인의 부정성을 상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쇄되지 않으면 그 부정성이 개인과 개인의 육체를 망가뜨릴 터였다.
앞장에서
낮은 감정은
차크라라는 육체의 에너지 중심점 중
낮은 점들에 에너지가 축적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의식이 상승하면
부정성을 놓아버린 덕분에
높은 중심점으로 에너지가 올라가기 쉬워져서
결국 사랑의 수준에서는
가슴 차크라까지 올라간다.
사랑이 무조건적이고
늘 환희가 되면,
개인차원의 사랑이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된다.
이런 수준의 사랑에 도달한 사람에 대해
보통 "가슴이 넓다"거나
"성심을 다한다"라고 한다.
이런 관용구는
그 사람이 삶에서 관심을 가지고
초점을 두는 일이
사랑하는 일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초점이
이렇게 상승하는 쪽으로 바뀌면
지각도 전반적으로 바뀌어서
부정적 감정에 휘말려 있는 사람이
주목하는 초점과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예를들어
낮은 마음상태에 있는 사람은
옷도 대충입고
길모퉁이에 서 있는 노신사를 '
노숙자'로 지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각하면
다른 부정적 생각들도
딸려 나온다.
위험한 사람일거야. 피하자. 저런 사람때문에 세금부담이 커져, 아마 사회보장연금으로 사는 사람일거야. 경찰은 거리에서 저런 부랑자를 없애야해. 감옥에 보내거나 정신병원에 쳐넣어야 해.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랑하는 상태인 사람은
노신사의 얼굴만봐도
그가 풍부한 인생경험과 개성,
지혜가 엿보이는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본다.
노신사는
세상에서 볼일을 거의 마치고,
행하는 상태와 소유하는 상태를 넘어
존재하는 상태로 진화한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그곳에 나타났을 수도 있다.
5번가에서 바로 그런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완전한 내적 정적상태에 빠져있는 동안에 생긴 일이었다. 인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노신사가 나의 내적 정적상태를 한눈에 알아보더니 그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을 완전히 열었다. 폭넓게 응시하는 그 시선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고, 완전히 열린 그의 영혼을 읽을 수 있었다.
노신사는
자신의 진정한 내적 큰나를 깨닫고
완전한 평화속에 존재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사실상
그는 뉴욕시를 관통하고 있는
강력하고 긍정적이고 사랑하는 에너지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였다.
서로를 흘낏 보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체성, 시간을 넘어선 일체성을 공유했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우리의 영혼은 통합되었고 서로에게 울려 퍼졌다.
하나의 큰나가
밖으로 빛을 발했다.
그 일체성이 그 순간 뉴욕시의 부정성 전체를 상쇄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우리의 열린 응식속에 우주적 일체성이 존재했다. 공유된 파워가 무한했기에 그 일체성은 뉴욕시의 부정성 전체를 상쇄하는 무한한 에너지를 반영하는 완전한 침묵속의 앎이었다. 상쇄되지 않으면 도시는 자멸할 것이었다.
그것은
말이 없고 지배적이며
무한한 의식상태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식의 법칙을
경험으로 확인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사랑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이다"
(이 진술은 750으로 측정된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9.10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당신에게 어떤 위안이 될까?
당신이 무일푼일때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
당신이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때, 당신을 어떻게 위로할까? -
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08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은 수명을 연장한다. 연구기록에 의하면 개 한마리를 돌보면 10년의 수명을 보탤 수 있는데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수명에 보태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기이한 운동법, 식이요법 등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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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08 "사랑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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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8.19 영적 진전은 은총의 결과며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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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8.19 직업상의 큰 변화를 포함해 생활방식이 갑작스럽게 달라질 수도 있다. 내적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관심사와 시야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더 큰 차원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묵상이나 관상, 예술, 음악, 신체활동, 독서, 저술, 가르치는 일, 목표가 유사한 영적집단에 참여하는 일 등을 통해 그러한 차원에 몰입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