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의도
영적 헌신
영적 진실에 도달하는 길
깨달음의 길
에고 해체의 길
진실대 거짓 17. 영적진실
서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신을 믿으며(90-92%) 따라서 지고의 진실을 구해 기성종교에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는 반면 모든 종교가 의지하는 진실의 근원은 영적실상 자체인 한층 더 높은 일차적 근원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종교는 영적 진실의 기원이나 일차적 근원이라기보다는 그것의 제도적 귀결이다.
하지만
종교는
그 창시자가 드러낸
진실을 통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대다수에게
거기서 파생된 가르침은 충분하고
만족스러우며
정보는 쉬워지고
제도적 종교의 경전으로서
접근 가능해진다.
모든 종교의 경전의 역사적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날짜, 인물, 진위여부와 같은 세부에 관한 수세기에 걸친 숱한 토론과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경전의 최종판본 일부는 배타적 평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고 학문적 권위로 말미암아 경전이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경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신학, 인식론, 형이상학, 존재론의 영역이다.
전 역사에 걸쳐
모든 위대한
영적 교사들은 신비가였으며
영적 진실에 대한
그들의 앎의 근원은
깨달음의 결과이자
인식 대상과 하나로 있음으로 말미암아
앞선 의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신성인 실상에 관한 변형을 일으키는 각성의 결과였다.
그리하여
화신은
~~에 관한 인식으로부터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실제적 현존으로부터 말하는데,
그러한
내면의 현존은
빛을 발하며
이해와 인식(고전적 푸루샤)의 근원으로
마음을 대체한 것의
본질을 구성한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는 과정은 모든 성인, 현인, 신성한 스승의 전기에 묘사되어 있고, 흔히 경전 자체속에 포함되어 있다. 순수하게 연구관점에서 의식수준 측정치는 전통적 경전을 포함하는 그 모든 영적 가르침의 실상을 검증하는데 적절히 이용될 수 있다.
각 수준은
의식이 갖는 기능성의 실체를 나타내고
선형적인 것에서 비선형적인 기쁨으로의 진보를 나타내는 바
비선형적 맥락은 무한하며
공간과 시간 혹은 장소 너머에 있다.
최상의 영적 진실의 근원은
비정신적인데
지성은 그 중대한 사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부터
이원적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이것이 저것에서 나올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찾는 자와 찾는 대상은
이원성이라는 한계를 초월하면서
하나가 되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
참나 각성, 빛비춤, 깨달음이며
다른 말로 하면 '하늘나라는 너희들 안에 있다'이다.
경전과 영적 저작
어느 것을 고르든 단 하나만으로도
한평생의 연구와 영적 노력에 대해 충분하다
교리와 성약 : 값진 진주 | 455 | 람사역 성경(구약, 계시록은 제외하되 창세기 시편 잠언포함 | 880 |
그란트 사히브 | 505 | 리그베다 | 705 |
금강경 | 700 | 몰몬경 | 405 |
기적수업 연습서 | 600 | 무지의 구름 | 705 |
기적수업 교과서 | 550 | 미드라드 | 665 |
노자 도덕경 | 600 | 미쉬네 | 665 |
누가 복음서 | 699 | 바가바드 기타 | 910 |
니케아 신경 | 895 | 반야심경 | 780 |
도마 복음서 | 660 | 법구경 | 840 |
달마 어록 | 795 | 법화경 | 780 |
라마야냐 | 810 | 베단타 | 595 |
람사역 성경(아랍어 원서) | 495 | 베다 | 970 |
비즈나나 바이라바 | 635 | 잠언(람사역 성경) | 350 |
사해문서 | 260 | 조하르 | 905 |
삼위일체 개념 | 945 | 창세기 람사역 성경 | 660 |
신약(킹 제임스판) | 640 | 카발라 | 605 |
시편 람사역 성경 | 650 | 켈스서 | 570 |
아가다 | 645 | 코란 | 700 |
아비나바굽타 | 655 | 킹 제임스판 성경(그리스 원서) | 475 |
영지주의 복음서 | 400 | 탈무드 | 595 |
오마르 하이암의 루바이야트 | 590 | 토라 | 550 |
외경 | 400 | 티베트 사자의 서 | 575 |
우파니샤드 | 970 | 파탄잘리의 요가경 | 740 |
황벽선사의 가르침 | 960 | ||
위에 열거한 것은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온전한 측정된 진실들인데, 그들 중 일부는 진화의 역사에서 수천년간 존재해 왔다.
어느 것을 고르든
단 하나만으로도
한평생의 연구와 영적 노력에 대해 충분하다.
수행자들이 알게 되다시피
진실에 관해 아는 것은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나
한층 더 중요한 것으로
진실이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영적 진보는
단순한 동시에
복잡하고 미묘한 동시에
격변을 일으키며,
영감으로 고취되는 동시에 위협적이다.
에고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의도,
목적의 온전성,
결의
(더하기 은총, 즉 앞선 스승의 도움과 긍정적 카르마)가
요구된다.
여정은
표면상으로 우연하게,
혹은 호기심의 귀결로 시작되는 일이 많다.
그 다음에 그것은 관심과 그리고 마침내 관여를 끌어당기는데, 여기에 뒤따르는 것이 몰두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보상의 발견이다.
이러한 노력을 촉진하는데
경전과 위대한 영적 고전은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다.
영적진보라는
목표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뇌 생리에 변형효과를 가지며,
정렬을 바꾸는
영적 에너지들을 끌어당기고
그리고 일치하는 끌개 에너지 장들의 힘을 끌어당긴다.
이러한 것이
주관적 실상을 재맥락화하고
각성을 최적화한다.
앞의 측정치를 살펴보면 고대 인도의 초기 아리아 문화에서 나온 위대한 현인들은 인간에게 접근 가능한 최상의 영적 앎의 대출현을 나타낸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나중에 동일한 진실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다른 문화들에서 다른 시기에 출현했는데, 하지만 지고의 진실의 본성에 대한 각성은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반영하는 표현상의 편차가 있을뿐 모든 경우에 본질적으로 동일했다. 이렇듯 진실은 그 자체로는 독점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영적 종교적 독점성에 대한 주장은 원래의 현인을 따르는 후대 추종자들의 에고의 개입과 오류를 가리킨다.
진실은
정의상으로
제한이나 자격조건이 없으며
차별적이지 않다.
모든 사람이 날때부터
이미 측정가능한 의식수준을 갖고 있는 이상,
그 사건을 둘러싼 상황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이 문화, 가족, 시대, 상황으로서
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동안의
영적 진화패턴에 따른 귀결이라는 것을
암시할 것이다.
의식 연구를 통해,
모든 개인의 탄생을 둘러싼 세부 사항은
절대적으로 카르마적으로
완벽하게 공정하며
최대로 유리하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하지만
외관이나 개인적 의견은
이것과 정반대일 수 있다.
세계의 가장 위대한 스승들의 측정치는 큰 문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에 걸친 인간 경험 및 실증과 일치하는데, 그 위대한 스승들은 그 비선형적 본질로 인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실은
마치 황금처럼
그것의 발견과는 무관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진실의 재발견은
흥분을 이끌어 내고
어떤 새로운 근원에의 끌림을 이끌어낸다.
앞선 영적 제자들은
진실의 모든 근원을
소중히 여기며
흔히 그것들을 조합해서 공부한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비가들에 대한 공부는
"베다"가 드러내준
진실을 명료히 해주고,
베다는
차례로 불교의 가르침을 명료히 해주며,
불교는
그 다음에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명료히 해준다.
전통적 종교활동의 한계는
그것이 흔히 시대, 장소, 성격,
민족적 성향이라는
지엽적 사안(즉 형상과 내용)에
휩쓸린다는 데 있다.
더욱 큰 의의를 갖는 것은
드러난 진실들에 본질적인 자료의 연구이지,
사건을 둘러싼 일화로서
흥미로울 수 있을 상황은 아니다.
그런 장식들은 사실상 외래적이며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주의를 분산시키며 사람들이 수염을 길러야 하는지 여부나 혹은 무슨 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의 문제로 서로를 죽이는 것 같은 부조리함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배 드리는 요일을 지정하는 일은 위대한 화신들이 출현한 당시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실상에는 일시적 기간이 없고, 요일이 없다.
모자, 수염, 음식, 지정된 헌신일과 같은 사소한 것 때문에 불신자를 살해하는 종교적 광신자들은 문화적 특이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낳는 부정적 결과를 보여준다.
원전을 읽은 이라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날이 헌신일이고
모든 날이 안식일이다.
야만인들의 손에서 사소한 차이는 확대되고 그 다음에 그것은 심각한 신성모독과 심지어 가장 단순한 영적 원리조차 위반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전쟁도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영적 진실을 전달하는
최고의 방법은
영적 진실의 가치, 적절한 이용,
의도를 알아볼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그것을 보급하는 것보다는
본보기와 끌어당김일 것이다.
참된 선교사들은 유효한 정보를 퍼뜨리고 본보기를 통해 가르친다. 동기부여가 바르지 않은 이들은 억압의 근원이 되는데, 이는 반란으로 이어진다.
선교열은 낮은 힘과 처벌적 정부규정을 이용하는 신정및 국교제정으로서 그것의 궁극적 표현에 도달한다. 유럽역사는 군주국가의 이름으로 종교를 이용한 것과 교회권위의 온전치 못한 악용을 포함하는 권력투쟁을 반영한다. 종교갈등은 종교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종교전쟁은 마침 요즘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반영되는 것처럼 전통적으로 여러세기에 걸친 그리고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을 휩쓴, 모든 전쟁가운데 최악의 전쟁이었다.
영성은 통합하지만
반면에 불행히도
종교의 그늘은 분열시킨다.
종교적 진실의 심한 왜곡은 실천적으로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되도록 이끈다.
의문스러운 낱권 성경과 성경에 대한 주석
구약 | 190 | 계시록 | 70 |
성경의 결집은 여러세기에 걸쳐 진행된 오랜 과정의 결과였다. 기원후 처음 몇세기 동안 수많은 저자들이 집필한 백여종이 훨씬 넘는 필사본이 있었는데, 그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유효한 서술과 해석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것은 딜레마를 낳았고, 학자들은 그에 대해 토론하는 한편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일련의 저술 모음집이 태어났고 그것은 주기적으로 개정되었다. "에녹서"와 같은 수많은 필사본이 제외되었다. 나중에 일부 집단은 유독 외경과 같은 일부저술을 포함시켰다.
명백한 실용적 가치를 갖는 것은 의식수준의 측정의 적용인데, 특히 화신, 성인 혹은 현인들의 의식수준과 그들의 것으로 주장되는 경전이나 정경화된 성전의 의식수준간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만일 스승과 그의 접근 가능한 가르침 사이에 폭넓은 불일치가 있다면 그것은 오류가 있음을 가리키며 많은 것이 번역과 전달과정에서 혹은 그릇된 해석속에서 실종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한 말이 킹 제임스판과 람사역 성경에서 각각 판이하게 인용되어 있는데서 가장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다시말해 예수가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킹 제임스판)"라고 했는지, 혹은 "나의 아버지 당신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예비되었습니다(람사역)"라고 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빚어지는 것이다. 성찰해보면 첫번째 인용문은 앞뒤가 안맞는데, 그것은 신성의 하나임과 일체가 된 화현한 완전히 깨달은 주인이 바로 내면에 있는 각성의 근원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리가 없다는 사실때문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데이터와 중요한 정보가 "람사역 성경" 서문의 처음 몇 페이지에 눈부시게 명료한 설명으로 제공되어 있는데, 람사역 성경은 콘스탄티노플로 전해져 동방정교회 경전의 기초를 이룬 아람어 성경 필사본 원서를 번역한 것이다. 람사역 성경 서문에는 그리스어를 번역한 킹 제임스 판본과의 비교가 이루어져있다. 킹 제임스판이나 람사역 성경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수준인 200이하로 측정되는 필사본을 모두 뺄 경우 전체적 측정수준은 현저히 상승한다. 만일 창세기 시편 잠언만 남기고 구약을 뺀다면 또한 신약에서 계시록을 뺀다면 그 효과는 한층 더 두드러진다. 그릇된 문서가 부주의하게 정경화된 경전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테지만 분명한 이유는 성경시대 문화의 전체적 의식수준이 90에서 100이었고, 위대한 스승들은 죽은지 오래되어 안내해 줄 수 없었다는데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진실의 수준을 정확히 평가하거나 전문가들의 자격을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아람어(ארמית / ܐܪܡܝܐ 아라마야 / 아라미트)는 한때 시리아 지방,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600년 무렵까지 고대 오리엔트 지방의 국제어로 사용되었으며, 아프로아시아어족의 셈어파의 북서셈어군에 속하는 언언어이다. 현재는 시리아 일부 부족과 이라크 일부 부족이 사용한다.기원전 1000년 전후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아람인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전역에 침투하여, 아람어는 그에 따라 화자 인구와 그 활동 범위를 한꺼번에 확대했다. 그 후 계속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등의 대제국에서도 아람어가 국제적인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고대 아람어 연구는 아시리아학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갈릴리 지방에서 생활하였던 예수가 사용한 언어라고 한다.
요약해보면 구약은 전체적으로 190으로 측정되는데, 그중 예외는 창세기(660), 시편(650), 잠언(350)이다. 람사역 성경은 킹제임스 판본보다 20점 더 높게 측정된다. 구약의 오류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히브리의 문화와 역사에대한 상세한 지식이 요구되는데, 구약에는 우상숭배로의 회귀, 부족 왕국들의 분열, 제사장들 간의 갈등, 지역적이고 문화적인 신화와 전설의 포섭, 특히 신을 질투, 분노, 편애, 복수심, 자부심 등 인간의 이기적 감정을 갖는 존재로 보는 신인동형적 묘사의 포섭이 포함되었다. 복수심과 분노, 기타 부정적 인간 감정의 특성은 신성의 비선형적 동질성과 일치하지 않는 선형적 한계다. 인간의 그런 특성은 다른 비천상계들을 더욱 잘 묘사해준다. 비록 구약성서(시펀, 잠언, 창세기를 제외하고)는 200이하로 측정되지만, 개별적으로 많은 구절이 상당히 높게 측정된다.
구약의 구절들에 대한 측정
60%가 200이상으로 측정 | 50%가 300이상으로 측정 |
50%가 또한 400이상으로 측정 | 30%가 500이나 그 이상으로 측정 |
20%가 600이나 그 이상으로 측정 | 10%가 700이나 그 이상으로 측정 |
2%는 800이상으로 측정 | 10구절은 1,000으로 측정 |
좀더 자세한 분석은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지만 그것은 이 장의 범위와 한정된 지면을 넘어서는 일이다. 신약에서 요한(70)은 적나라하게 부조화스럽다.
요한 계시록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몽상가들의
유혹당한 하위 아스트럴 영역에 기원을 둔다.
거기 묘사된 것들은 특정한 하위 아스트럴 수준에 속하며 따라서 실제의, 진실이어서 적어도 200이상으로 측정될 수준에는 속하지 않는다.
요한 계시록의 추종자들은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물든
전도활동에 빠져드는 일이 많고,
은신처와 비축식량 등을 완비하고
은거하는 생존집단을 형성한다.
불행히도 그런 지도자들은 예전의 명성이나 설득력으로 인해 취약한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인 사례들에서 두려움은 집단자살이나 피해망상적인 망상체계로 인도했다. 하위 아스트럴계에서 기원하는 환영은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진, 홍수, 캘리포니아의 바닷속 침몰, 약탈자 무리에 대해 비슷하게 묘사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환영은 높은 수준으로 측정되는 천상계가 아닌 특정한 하위 아스트럴 주소에서만 기원한다. 의식의 아스트럴 상태에서 그러한 영역을 찾아간 모든 방문자들은 그곳의 생생한 유사현실을 경험했음을 보고한다.
가장 높은 이해수준에서는
진실과 비진실간의 대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것은
거짓이란
진실의 부재이지
진실의 대립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위인 것이 인상적 설득으로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두려움으로 더욱 약해졌을때 마음은 쉽게 프로그램되기 때문이다.
연구를 통해
최고의 성경은
람사역에서
신약의 계시록을 삭제하고
그에 더해 창세기, 시편, 잠언만 남기고
구약을 삭제한 판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전체적 효과는 성경의 진실수준의 측정치를 475에서 880으로 상승시키는데, 이렇게 되면 성경은 역사상 위대한 신비가들이 나타내는 수준에 있게 된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의 추종자들이 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추종자들은 여러세대에 걸쳐 그리스도가 말했거나 의도했다고 생각한 것을 구전으로 되풀이했다. 영적 스승이라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실제 말한 것과 상대방이 알아들은 것 사이에는 폭넓은 격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성경이 최종적으로 결집되기까지 여러세기에 걸친 역사적 과정을 감안할때, 성서가 이만큼 측정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는 성서의 최종판에 관여했던 학자들이 신성한 영감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추정에 신빙성을 불어넣는다.
의문스러운 경전들 : 코란에 대한 주석
코란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슬람에 관한 앞장에서 기술했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코란 또한 인류에게 심각한 귀결을 가져다준 오류를 안고 있다. 앞에서 논했던 바와같이 검에 대한 언급을 제쳐놓더라도 코란에는 자비로우신 알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절이 숱하게 있다. 그런 구절에선 불신자 참수를 되풀이하고, 비신자를 살육하는 것을 선고한다. 코란은 전체적으로 700으로 측정된다.
코란의구절에 대한 측정
30%는 200이하로 측정
25%는 160이하로 측정
14%는 100이하로 측정
200이하의 구절을 삭제할 경우 코란은 940으로 측정된다. 종교살인은 30으로 측정되는 까닭에 허위로 오염되는 것은 진정한 순수한 영성에 대한 최악의 적일 듯하다.
종교신화
경전들이 갖는 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초기문화에 공통된 종교신화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킹,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한 다른 모든 원시적 문화집단과 원시적 민족집단의 종교신화는 물론이고 유명한 그리스, 로마, 게르만 신화들이 있다. 그 모든 신화에서 인간을 빼닮은 신들은 인간적 특성과 오류 가능성을 갖는다. 신들은 또한 화재, 화산폭발, 홍수, 역병과 같은 자연재해의 원인으로 비난받았는데, 자연재해는 화난 신이 지역민을 벌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화가 난 인간같은 신들을 달래려는 희생의 행위가 널리 성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즈텍, 잉카, 가나안, 메소포타미아, 셈족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다.
훨씬 높은 영적 실상의 연속적 드러남이 정말로 위대한 화신들의 가르침을 통해 드러났을때 옛 신화는 흔히 신념체계로 지속되었고 그리고 새 가르침속에 통합되거나 그 위에 덧붙여지는 일이 많았다. 신화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반면 지금 인류가 접근할 수 있는 높은 진실을 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대의 신화와 전설은 민족적 정서적 이유로 인해 여전히 신봉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러나 그러한 것은 또한 그 낮은 측정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허위이며 사람들을 오도한다. 그러한 것은 또한 영적 진실의 탐구자들을 오도하는 오락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화와 전설의 민족적 문화적 신분증은 박해와 대량 학살을 포함하는 분리주의와 문화적 충돌에 기여한다.
요약하면
종교 신화를
검증가능한 영적 실상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명료히 하는 것은
명백한 중요성을 갖는다.
역사적인 종교 설화와 우화를
문화재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것을
모든 문화로부터
독립된 검증 가능한
높은 진실과 홍동해서는 안된다.
종교적 오류와 거짓 가르침
종교적 오류의 그늘은 여러세기에 걸친 종교적으로 정당화된 대량학살, 문화전쟁, 고문, 처형, 마녀재판, 화형, 종교재판, 요즘의 이슬람 테러리즘, 지하드의 역사를 통해 입증된다. 그것은 이케아 공회 당시 일어난 기독교 진실수준의 큰 하락에서 하와브파로 인한 이슬람의 추락에서 그리고 구약속의 신성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는데, 구약의 묘사는 인간에고를 묘사된 신성의 특징으로 신인동형론적으로 투사한 것일 뿐이다.
영적 진실에서의
이러한 심각한 이탈은
그 귀결이 엄중한데,
그것은 영적 오류의 두가지 큰
고전적 근원이 침투했음을 나타낸다.
영적 오류의 두가지 근원은
즉 루시퍼적 오류(자부심, 힘, 통제, 진실왜곡)와
사탄적 오류이다.
역사적으로 루시퍼적 진실의 침해는 사탄적 진실의 침해에 문을 열어준다. 루시퍼적 오류는 수사에 의한 그리고 진실의 교묘한 왜곡에 의한 거짓 정당화인데, 그것은 일단 문안으로 들어오면 흉포한 유혈에의 욕망을 풀어놓는 트로이의 목마다.
그런 왜곡은 낮은 의식수준을 특징으로하는 무지와 순진성을 먹이로 삼는다. 그러한 부정적 에너지는 저 역사에 걸쳐 악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악이라는 용어는 의도(즉 악의, 증오 그리고 악의적 목적과 자기 확대를 위한 합벅적 권력의 강탈)을 가리킨다. 괄호속에 든 묘사는 200이하로 측정되는 모든 의식수준의 특징을 이루며, 그래서 그들 자체가 그속에서 인류의 모든 괴로움이 일어나는 모체임을 드러낸다. 측정수준들은 또한 영적 운명과 책임성(카르마)의 원리 및 육체의 죽음뒤 영혼의 운명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일반적인
영적오류는
신을
인간고의 저자로 여기기 때문에 빚어지는데,
인간고는
사실상
에고 자체의
집단적인 부정적 영향이다.
신을
인간고의 저자로 여기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오류는
흔히 무신론으로 귀착되고,
무신론은
악의 근원인 어떤 신을
믿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괴로움이
에고의 무지(거짓)의 귀결이자,
신성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오해의 귀결임을
아는 것만으로 쉽게 초월할 수 있는
착오이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괴로움은
선형성의 귀결이다.
신성은
비선형적이며
그것은 우주에너지,
의식자체의 주관적 본질,
존재의 원초적 근원으로서 탐지 가능하다.
이상의 이해로부터
모든 역사속의 신비가들이
종교자체보다 일관되게
더 높게 측정되는 까닭이
분명해지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신비가들은
종교적 오류의 근원이 놓여있는
선형적 영역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영적 스승들
다음은 다양한 유파에서 나온 존경받는 저명한 스승 100인 이상의 명단이다. 모두가 460이상으로 측정되고, 그들의 저작은 세월의 시험을 견뎌냈다. 물론 이 명단이 완전한 것은 아니고 지면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스승을 포함할 것이다.
C, W. 리드비터 | 485 | 람첸 갈포 린포체 | 460 |
G 맨리 홀 | 485 | 로렌스 수사 | 575 |
가덴 샤르체 | 470 | 로버트 먼로 | 485 |
간테 풀쿠 린포체 | 499 | 로버트 파웰 | 525 |
강가지 | 475 | 루돌프 슈타이너 | 475 |
공자 | 590 | 로돌프 오토 | 485 |
고피 크리슈나 | 545 | 루드비히 폰 버타란피 | 485 |
그라나다의 모세스, 랍비 | 720 | 루미 | 550 |
나낙 | 495 | 리 사넬라 | 505 |
노자 | 610 | 리처드 M, 버크 | 505 |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 720 | 마더 테레사 | 710 |
달라이라마(텐진 갸초) | 570 | 마르틴 루터 | 580 |
도겐 선사 | 740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705 |
드룩첸 린포체 | 495 | 마하가섭 | 695 |
딜고 키엔체 린포체 | 575 | 마하트마 간디 | 760 |
떼야르 드 샤르뎅 | 500 | 라헨드라나스 굽타 | 505 |
랃하마칼 무케르지 | 475 | 막데부르크의 메히틸트 | 640 |
라마나 마하르시 | 720 | 머틀 필모어 | 505 |
라마크리슈나 | 620 | 묵타난다 | 655 |
라메쉬 발세카 | 760 | 바가반 니티아난다 | 500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475 | 백색 형제단 | 560 |
람 찬드라 | 540 | 보리달마 | 795 |
비베키난다 | 610 | 앨렌 워츠 | 485 |
산카라 | 710 | 어네스트 홈스 | 485 |
성 어거스틴 | 550 | 에라스무스 | 500 |
성 패트릭 | 590 | 에릭 버터워스 | 495 |
소크라테스 | 540 | 에마 커티스 홉킨스 | 485 |
소태산 박중빈 | 510 | 에메트 팍스 | 470 |
쉬르디 사이바바 | 485 | 에벌린 언더힐 | 460 |
스리 라마누자 차리아 | 530 |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 480 |
스리 오로빈도 | 605 | 오리게네스 | 515 |
스리 유크테스와르 | 535 | 올더스 헉슬리 | 485 |
스와미 람다스 | 570 | 요한 바오로 2세(교황 | 570 |
스와미 붓다난다 | 485 | 요한 칼빈 580 | 580 |
스와미 사치다난다 | 605 | 요한타울러 | 640 |
스와미 프리바난다 | 550 | 윌러스 블랙엘크 | 499 |
스와미 프레즈네파드 | 505 | 잠양 칸챠 | 495 |
스즈키 로쉬선사 | 565 | 장자 | 595 |
십자가의 성 요한 | 605 | 제아콥 봄 | 500 |
아레오파고의의 디오니시우스 | 490 | 제임스 앨런 | 505 |
아비나 굽타 | 655 | 조셉 스미스 | 510 |
아빌라의 성 테레사 | 715 | 조엘 골드스미스 | 480 |
아차리야 | 480 | 족첸 린포체 | 510 |
애니 베전트 530 | 530 | 진클라인 | 510 |
충량 알 황 | 485 | 파탄잘리 | 715 |
카르마파 | 630 | 찰스 필모어 | 515 |
켐포푼촉 | 510 | 폴 틸리히 | 480 |
쿠숨 린파 | 475 | 푼자지 | 520 |
크로디오나란조 | 465 | 플로티누스 | 730 |
텐진 팔모 | 510 | 피오 신부 | 585 |
토머스 머튼 | 515 | 아쿠유 타이잔 마에즈미 | 505 |
파드마 삼바바 | 595 | 화이트 플럼 아상가 | 505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 540 | 황벽선사 | 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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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원성이라는 직진하는 영적 순수성을 입증한 고대 베다경의 주석자들에 관해 흥미로운 비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 8세기 비이원성의 현인 아디 샨카라 차이는 710으로 측정되고, 10세기 한정된 비이원성의 현인 스리 라마누자 차리아는 530, 12세기 이원적 헌신의 스미 마드바 차리아는 520으로 측정된다. 앞선 무심, 비이원성의 스승 황벽선사는 960으로 측정된다. 신성의 실상인 독점성을 암시하는 묘사, 동일시 혹은 명명들을 대체한다.
샹카라는 8세기 인도의 철학자이다. 그는 남부 인도에서 출생하여 베다를 학습하고 유행자(遊行者)로서 여러 지방을 편력하면서 다양한 기적을 행하였다. 또한 승원을 건설하였으며 많은 저서를 저술하였고, 최후에 북부 인도에서 영면하였다고 한다.
그는 <브라흐마 수트라 주해(註解)>를 비롯한 책을 저술하였으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을 주장하였다. 절대자 브라만은 여하한 한정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무차별의 실재이며, 최고아(最高我)라고 주장한다. 개아(個我)는 그 본체에 있어서는 최고아와 동일한 것이다. 누구든지 아트만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데 그 아트만은 브라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브라만이 현실의 경험 세계에서 개별적인 다수의 개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명(無明) 때문이다. 그것은 각 개아(個我)를 자기중심적인 행동주체로 성립시키고 있는 선천적 원리(先天的 原理)이다. 그것은 순수지(純粹知)를 현혹하여 혼미시키는 작용이 있으며 윤회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상계의 다양상(多樣相)·차별상(差別相)도 무명(無明)에 의하여 성립하고 있는 것이요, 승의(勝義)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환상(마야)과 같은 것으로 거짓으로 나타나고 있는 허망한 것에 불과하다. 세계창조는 주재신에 의하여 성취된 것이지만, 주재신은 브라만이 무명(無明)의 제약을 받고 성립한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무명(無明)은 유(有)나 무(無)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브라만에 따라서 존립하고 있는 일종의 원리이다. 이 무명은 아트만의 본성을 직관하는 것으로서 소멸한다. 개아(個我)가 사실은 최고아(最高我)와 동일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해탈 즉 일체의 고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된다.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있어서 개아는 브라만과 합일하여 그 개별적인 존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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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름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를 예배하든
나에게 헌신하거나
나를 찾는 이들 모두 꼭같이
나의 것이여 내게 소중하다"
시편 91장에는 똑같은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주님을 예배하는 모든 이들이 그분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라는 것이다.
모든 참된 종교는
구원이란
신에게 내맡긴 귀결이자
믿음, 예배, 선행, 기도, 선언을 통해
신을 일정한 귀결임을 재차 확인해준다.
무한한 신성인 실상은
나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비선형적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실제적 경험과 실현은
모두 지식너머에 있다.
에고가
전부임으로서의 현존속으로 녹아드는 동안,
마음은 멎어있음과 침묵속에서
말을 잃으며
그리하여
어떠한 명명도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또한
붓다의 가르침이자
기록된 시간 전체에 걸친
모든 깨달은 현인들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신에 이르는
만개의 길이
운용상으로 단 하나의 길인 까닭은
그 길 모두가
이원적 에고와
에고의 환상을
어떤 이름으로 지시되는 것이든 간에
궁극의 비선형적 실상에
양도하려는 동일한 의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승들의 저작은 거의 항상 저자와 동일한 의식수준으로 측정되지만 이따금씩 예외가 있다. 플로티누스는 730으로 그의 저작은 503으로 측정된다. 황벽선사는 960으로 그의 저작은 850으로 측정된다. 마에스터 에크하르트는 705로 측정되는 반면 그의 저작은 600이다. 의식의 매우 앞선 상태는 선형적 문장으로 전달되기 어렵고 독자들에게는 난해하다. 전술한 예외들은 우연한 것이었지 고의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제자들이 의식척도상에서 그의 저작이 검증된 온전한 스승들의 명단을 청해오는 일이 종종 있다. 위의 검증가능하게 온전한 스승들의 명단은 영적 노력과 진화를 북돋워주는 길을 대단히 폭넓게 제공한다.
영성 서점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책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저자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영적 허구다. 일부 영성 도서관과 책방에 있는 자료의 50% 가량은 측정수준 200이하다. 200이하인 것 대다수는 숫적으로 공상이고 그 중 7%는 사실상 망상적이다. 한편으로 상위 40명의 진지한 현대 영성작가들은 모두 400대로 측정되며, 따라서 그들은 영적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뉴에이지 문헌이 인기를 끌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만 그것은 극한의 오류와 허위의 영역이기도 하다. 뉴에이지 문헌에는 온전치 못한 출처에서 나온 채널린, 지구예언, UFO, 외계 방문자, 미래에서 온 안내자,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영역에 대한 주장, 다른 은하계의 지구 침략에 대한 야릇한 예언 등이 가득하다. 영적 허구는 그것일 뿐 그이상의 것은 아니다. 순진한 열광자들은 UFO가 태우러 올테니 사막에 나가있으라는 등의 얘기를 하는 안내자들을 추종한다. 200이하로 측정되는 책은 그 표현 양식이 유사영적으로 달콤하며, 독자들을 구워 삶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고 또 빠진다.
주관적 각성을 통해
그리고 측정가능한 검증을 이용하는
진실의 과학의 적용을 통해
환원 불가능한 결론과
결말이 확실히 진술될 수 있다.
의식진화상으로,
이 시대에는
시간, 장소, 화자,
혹은 이원적 정신작용의 한계를 초월하는
진실자체의 확인가능하고
입증가능한 속성과
분명한 특징이
경험적 진단적으로 확증가능하다.
진실의 속성과 특징은 다음과 같이진술될 수 있다.
영적 진실, 온전한 스승과 가르침의 확인 및 그 특징
1. 보편성 : 진실은 문화 성격, 혹은 환경과는 관계없이 모든 때와 장소에서 진실이다.
2. 독점적이지 않다 : 진실은 전부를 포함하고 비밀이 없으며 무 종파적이다.
3. 접근 가능성 : 진실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고 독점적이지 않다.
드러내거나 감추거나 혹은 판매할 비밀은 없으며 마법의 처방이나 비전은 없다.
4. 목적의 온전성 : 얻거나 잃을 것이 없다.
5. 분파적이지 않다 : 진실은 제한의 박람회가 아니다.
6. 의견에서 독립해 있다 : 진실은 비선형적이며 지성이나 형상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7. 의치성의 결여 : 진실은 어떤 것에도 반하지 않는다.
거짓과 무지는 진실의 적이 아니라 진실의 부재를 나타낼 뿐이다
8. 필요조건이나 요구가 없다 : 회원가입, 회비, 규정, 맹세, 규칙 혹은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다.
9. 통제하지 않는다 : 영적 순수성은 수행자의 사생활이나 의상, 복장, 스타일, 성생활,
경제상태, 가족형태, 생활방식, 혹은 식습관에는 관심이 없다.
10. 낮은 힘이나 협박과는 무관하다 : 세뇌, 지도자들에 대한 아첨, 훈련의식, 교화 혹은 사생활 침해가 없다.
11. 구속하지 않는다 : 규정, 법, 명령, 계약 혹은 서약이 없다
12. 자유 : 참가자들은 설득, 강요, 협박을 당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위계질서는 없으며 대신 실제적 필요와 의무의 자발적 이행이 있다.
13. 평범함 : 인정은 부여된 칭호, 형용어 혹은 장식의 결과라기 보다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의 귀결이다.
14.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 진실은 미화, 유혹, 연출을 삼가고 피한다.
15. 물질주의적이지 않다 : 진실은 세속적 부, 명성, 겉치레 혹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6. 자기 충족적이다 : 진실은 이미 전체적이고 완전무결하며 개종시키거나
지지지와 추종자들을 모으거나 혹은 회원모집을 할 필요가 없다.
17. 초연하다 :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18. 온건하다 : 진실은 점진적 기울기를 따라 확인할 수 있다.
진실에는 반대가 없으며 따라서 혹평하거나 반대해야 할 적들이 없다
19. 고의성이 없다 : 진실은 개입하지 않으며 제안, 부과 혹은 공표해야 할 의제가 없다.
20. 비이원적이다 : 전부가 장내에서 내재적(카르마적) 경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며,
잠재성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장에 의해 현실로 나타난다.
21. 평정과 평화 : 쟁점이나 편파성이 없다. 남을 변화시키거나 사회에 강요하려는 욕구가 없다.
높은 에너지들의 효과는 본유적이며, 선전이나 노력에 의지 하지 않는다.
중력이 사과를 나무에서 떨어뜨릴때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신은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2. 동등성 : 이것은 그 모든 표현을 갖는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로 표현되며
해로운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기 보다는 단순히 피한다.
23. 일시적이지 않다 : 생명은 영원하고 육체성은 일시적인 것으로 각성된다. 생명은 죽지 않는다.
24. 증명불가 : 증명 가능한 것은 선형적이고 한계가 있으며, 주지화 및 정신작용의 산물이다.
실상은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상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며 이원적 에고의 위치성들이 내맡겨졌을때의
순수히 자연발생적이고 주관적인 각성이다.
25. 신비적 : 진실의 기원은 자연발생적인 빛, 광휘, 빛비춤이고
이러한 것은 어떤 분리된 개별적 자기의 환상, 에고, 에고의 정신작용을 대체하는 드러남이다.
26. 형언할 수 없다 : 정의할 수 없다. 근본적 주관성은 경험적이다. 그것은 전자를 대체하는 조건이다.
이 사건과 더불어 맥락이 내용을 대체하는데, 맥락에는 일시성이 없으며 그것은 시간너머에 있다.
실상은 시간속에 존재하지 않고 시간에 속해 있지 않으며 시간을 넘어서 있고, 시간밖에 있지도 않고,
정신작용의 책략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실상은 모든 명사, 형용사, 혹은 동사, 타동사와 자동사를 넘어서 있다.
27. 단순하다 : 사람은 외관과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전부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본다.
28. 단언적이다 : 진실은 의견이나 증명가능성 너머에 있다.
확증은 순수하게 그 주관적 앎을 통한 것이지만, 의식측정기법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9. 비활동적이다 : 진실은 어떤 것을 행하지도, 어떤 것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진실은 전부이다.
30. 초대한다 : 선전하거나 설득하는 것과 대비된다.
31. 예언하지 않는다 : 실상은 비선형적이므로 예컨대 비밀 메시지, 암호, 숫자, 비문과 같은 형상의 제약속에
국소화되거나 암호화될 수 없고, 또한 룬 문자, 돌, 피라미드의 치수, DNA나 낙타코털속에 감춰질 수 없다.
진실에는 비밀이 없다. 신의 실상은 동시에 모든 곳에 현존하며, 성문화나 독점성 너머에 있다.
암호는 신성의 변덕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가리킨다.
32. 감상적이지 않다 : 감정성은 지각을 바탕으로 한다. 연민은 진실의 식별에서 비롯된다.
33. 권위적이지 않다 : 따라야 할 규칙이나 명령은 없다
34. 이기적이지 않다 : 스승들은 존경받지만 개인적 아첨이나 특별함을 거부한다
35. 교육적이다 : 다양한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고 접근 가능성을 보장한다
36. 자립적 : 돈을 목적으로 하지도 물질주의적이지도 않다
37. 홀로 서 있다 : 외적 권위나 역사적인 권위에 대한 의존없이 완전하다
38. 자연적이다 : 인위적 수단에 의한, 유도되고 변형된 의식상태나 에너지 조작이 없다.
39. 숨김없는 정직성 : 도덕적으로 타락한 스승들은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신성과 화신들(Avatar). 신성 : 초월적 신
신 | 무한 |
하느님 아버지 | 무한 |
창조주 | 무한 |
전능하신 분 | 무한 |
하늘과 땅의 조물주 | 무한 |
우주의 주재자 | 무한 |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조물주 | 무한 |
전능하고 진지하며 편재하는 | 무한 |
지극히 높으신 분 | 무한 |
모든 생명과 존재의 근원 | 무한 |
성령 | 무한 |
알라 | 무한 |
안 | 무한 |
시바 | 무한 |
크리슈나 | 무한 |
브라흐마 | 무한 |
비쉬누 | 무한 |
라마 | 무한 |
모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 무한 |
신성 : 내재적 신
그리스도 | 무한 |
그리스도 의식 | 무한 |
화현한 신으로서의 그리스도 | 무한 |
푸루샤 | 무한 |
참나 | 무한 |
아트만 | 무한 |
영적 실상을 가리키는 다른 지시들(하늘나라 위계)
천사 | 500+ | 신위 | 720 |
대천사 | 500,000+ | 야훼 | 460 |
불성 | 1,000+ | 여호와 | 205 |
불성(공) | 980 | 지적 개념으로서 신이라는 단어 | 460 |
아메리카 원주민의 큰 영 | 850+ |
가장 위대한 영적 천재와 성인들 전부를 포함하여 인류가 전역사에 걸쳐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신성인 실상에 대한 측정결과를 상식과 타고난 지성, 직관의 결과로 간단하게 예측할 것이다. 측정치들은 동시에 진실의 수준들을 평가하는데서 의식측정체계가 갖는 실용적 가치를 확증한다. 개념으로서의 신은 예상대로 겨우 460으로 측정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작용이기 때문이다. 신이 궁극적 실상인 것은 의식연구에 의해 확증된 바와 같은데, 의식연구는 또한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인 것으로의 신의 편재를 실증한다. 예수는 신의 편재를 이렇게 말했다.
"하늘 나라는
너희들 안에 있다"
내재적과 초월적이라는 용어는 이원적 사고의 정신작용에 불과할뿐 두개의 다른 실상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서구세계에서 신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득히 먼 저위의 어떤 영역에 있는 창조의 주사위를 던진 존재로 여겨진다. 심판의 날의 무시무시한 대면이 있기 전까지, 신은 은퇴한 존재로 치부된다. 그동안 신은 저 위에 앉아서, 욕설은 물론이고 부탁, 조언, 탄원의 융단폭격을 당한다. 천사와 대천사의 수준들에 대한 측정치는 실상의 에너지들이 신과 인간 사이의 강압기형 성층에 비할만 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천상계나
하늘나라의 영역들은
확인가능하며
인류에게 잘 알려져 있다.
천상계의 스승들과
의식적으로 교신할 수 있는
카르마적으로 부여된 재능을 가진
개인들이 이룬
성공적 교신이 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불행히도 일부 개인은 낮은 영역과 교신할 수 있는 재능을 이용해왔고, 정신병적 상태에서 그러하듯 신을 흉내내는 자의 소리를 듣는다. 여호와와 야훼라는 용어가 낮게 츶정되는 것은 종교적 설화와 신화에 관한 대목에서 설명한 것처럼 신화적 내포와 기원때문이다.
화신과 위대한 영적 스승들
예수 그리스도 | 1,000 | 세례 요한 | 930 |
붓다 | 1,000 | 모세 | 910 |
크리슈나 | 1,000 | 아브라함 | 850 |
조로아스터 | 1,000 | 성바오로(타르소의 사울) | 745 |
기독교 12사도 | 980 | 모하메드(코란 저술당시) | 700 |
옴으로서의 신의 이름 | 975 | 모하메드(38세 이후) | 130 |
위의 명단은 철저하진 않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 화신(아바타)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은 신성의 하강에 의한 선을 넘어옴으로 말미암아 화현을 의미한다. 인간 종족에서 그 결과는 완전히 빛 비춰진 존재이다. 드러난 지식으로 인해 그러한 존재는 진실의 그 수준의 힘 및 그와 일치하는 의식 장의 힘을 구현하고 그 힘을 인류에게 내뿜음으로써 의식의 진화를 지지하고 의식진화에 촉매역할을 한다. 숭상과 존경은 적절한 반응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러한 고양시키는 에너지라는 인류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선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대한 스승들이 드러낸 진실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원 가르침의 진실수준을 반영할뿐 아니라 그것의 문화적 표현과 이해의 의식수준 또한 반영하는 어떤 스펙트럼 내에 들어간다.
신성에 대한 다른 언급들
그리스 신화의 신들 | 90 | 전쟁의 신들 | 90 |
독일 신화의 신들 | 90 | 로마 신화의 다신교 신들 | 100 |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신들 | 90 |
역사적 분석을 통해 장구한 세월에 걸친 인간의식의 진화가 입증되었는데, 그것은 집단적 경험과 지혜를 실증한다. 따라서 종교적 영적 오류는 자연스러운 귀결임이 예상될 터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발전의 점진적 수준들이 낳은 부산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실상은
전능하고 전지하다.
그것의 실상에는 대립물이 없다.
진실에는 대립물이 없으며
진실의 부재가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실상에서
실상과 실상을 갖지 않는 것 사이에
전쟁은 없다.
지각된 그대로
천국과 지옥은
완전히 다른 차원, 다른 패러다임,
다른 영역들이다.
예를들면 고래와 새들간에 전쟁이 있을수 없는 것처럼, 신성과 신성의 부재간에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전혀다른 개념화의 수준을 나타낸다. 모하메드의 영적 재앙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는데, 그것이 문명에 낳은 귀결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한 다신교의 의식수준이 다양한 문화의 역사적 신들의 창안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예상 그대로이다.
신을 가리키는 그분의 의미는 총칭이지 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무한한 것은 명백히 성 너머에 있으며 따라서 그분이라는 지시는 인류를 가리키는 사람이라는 용어와 언어적으로 유사하다. 인간이라는 용어는 동일한 총칭적 지시를 포함하는데, 그것은 여자라는 용어가 이미 남자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그녀는 인류의 여성적 표현이며 그녀의 자궁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명사에 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른 언어와는 달리 영어에선 흔치 않다. 예컨대 독일에서 모든 대명사나 명사는 여성, 남성 혹은 중성으로 분류된다. 음과 양이라는 지시조차 위치성과 임의적 관찰점을 가리킨다. 이렇듯 위치성은 실상을 덮는데, 실상은 음양을 넘어서 있다.
신에 대한 경의는
당신의, 당신은, 당신을 이라는
대명사에서 반영된다.
예를들어 당신은 저의 구원이십니다. 저는 당신을 믿사오니 나라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영적 경험
불성 | 1,000+ | 하누카 | 515 |
그리스도 의식 | 1,000+ | 라마단 | 495 |
지고 | 1,000+ | 한증막 의식 | 560 |
임사체험 | 520 | 연기 쏘이기 | 520 |
사토리 | 585 | 크리스마스 : 지상에 평화, 인간에 대한 선의 | 675 |
깨달음 | 600+ | 티베트 불교의 나팔소리 | 320 |
기독교 영성체 | 700 | 무종삼매 | 800 |
유월절 | 495 | 어메이징 그레이스(찬송가) | 575 |
두르가 푸자 축제 | 480 |
다음의 영적 개념들은 진실로 측정된다
1. 기에너지(샥티)는 경락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2. 쿤달리니(영적) 에너지는 차크라를 활성화시키고, 순수 에너지 에테르 뇌를 만들어 내며 뇌 생리를 변화시킨다
3. 신체 질환에 앞서 경락 에너지 흐름에 대한 부정적 간섭이 일어난다.
4. 에테르체
5. 윤회
6. 카르마
7. 예수의 서른 세가지 기적
8. 예수는 기적적으로 수천명을 먹였다.
9. 기독교 사도들이 일으킨 기적
10. 방언
11. 오순절의 불꽃
12. 세례 요한은 진실을 드러냈기 때문에 죽었다.
13. 에수는 진실을 드러냈기 때문에 죽었다
14. 육체의 죽음뒤에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 전에 사흘을 기다려라
15. 의식수준은 태어날때 이미 정해져 있다
16. 육체의 죽음의 정확한 때는 태어날때 카르마적으로 정해진다.
구나(생명의 기본적인 지배적 에너지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와의 상호관련
타마스 = 저항, 무기력의 하위 에너지들이며 측정수준 200이하
라자스 = 건설적 행위 에너지, 측정수준 200-400
높은 라자스 = 측정수준 400-499
사트바(평화, 평온)는 500-599로 측정된다.
깨달음으로서의 목샤는 600과 그 이상이다.
위의 목록은 그동안 보고된 대단히 다양한 주관적 경험과 실천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의 가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따라서 그러한 것은 일부 문화에서는 진실로 받아들여지지만, 또 다른 문화들에서는 표면적으로 이질적이다.
카르마
카르마라는 용어는
일반적일 뿐 아니라 특수하다.
그것은
한 영혼의 진화적이고
경험적인 연속성을 가리키는데,
이에 대해서는
모든 종교와 영적 진실이
합의하고 있다.
영혼의 운명은
모든 종교의
중심초점이다.
영혼의 연속성에 대한 앎은 고대 이집트와 유사 이전의 문화에서 현저히 두드러졌으며, 사망학은 그러한 문화에서 부각되는 요소였다.
영혼의 연속성은
윤회와는 구별되는데,
윤회는
영적 존재의 다른 평면들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수많은 진화 경로 중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운명은
의식수준과
그것에 의해 가능해진 선택에 의해
그리고 그에 더해
미지의 요인들(예를들면 은총, 구원, 신성한 자비, 그리고 믿음과 예배를 통한 중재자와 같은)에 의해
결정된다.
신에 대한 증오로서의 무신론이라는 카르마나 혹은 신성 자체에 대한 공공연한 비난은 모두 40-70의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측정되며, 그리하여 지옥이라는 하위 아스트럴 수준으로 측정되는 대단히 무시무시한 영적 운명을 가리킨다. (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적/철학적 위치로서의 무신론은 165에서 190사이로 측정되는데, 그것은 지적 자부심의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카르마는
사람이 태어날 때 상속받은 것
총체를 나타내는데,
태어날때 사람은
누구나 이미 측정가능한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난 환경은
그 영혼의 진보에 있어
최적이며,
그리고
사전에 존재하는
카르마적 경향의
선형적 역학의 표현인 다수의 세부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 세부사항에는
부모, 지리적 환경, 체격, 아이큐, 성별, 건강,
유전, 형질, 종교 등이 포함된다.
집합적 요소들이
최적이라는 것은
좋은 카르마와 관련될 뿐 아니라
나쁜 카르마를 해소할 기회와도 같다
(이것은 진실로 측정된다).
기타 현상과 신념체계
귀신은 실제로 있다 | 거짓 |
귀신 나옴 | 거짓 |
예언된 종말 | 거짓 |
성 마테오의 종말 예언 | 거짓 |
사람은 자신의 육체의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 | 거짓 |
지구 예언, DNA, 스핑크스, 마야력, 피라미드 등 | 거짓 |
진화상 열등한 종으로의 환생 | 거짓 |
유행하는 영성소설 | 175 |
마리아와 예수는 결혼했다 | 거짓 |
예수의 후손이 프랑스를 통치했다 | 거짓 |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암호가 숨어있다 | 거짓 |
템플 기사단은 예수와 마리아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 거짓 |
감춰진 성경암호 | 거짓 |
상대적 경험
남들에게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것 | 15 | 오컬트 | 135-185 |
사교 | 120 | 외계인에 의한 납치 | 70 |
부두교 | 45 | 욕설 | 45 |
안사타 십자가 | 160 | 점술 게임판 | 175 |
악마 숭배 devil worship | 25 | 타로점 | 190 |
악마숭배 Satansim | 45 | 트랜스 영매 | 190 |
역사상 종교재판 | 35 | 흑마술 | 20 |
흑마법 | 5 |
이들 대부분은 영적 직관과 의식적 앎이 빈약한 이들조차 피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의 회피가 권장할만하다는 것은 십계자체에서도 강조된다. 예를들어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혹은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마라. 등. 이들은 또한 부정적인 카르마적 귀결을 낳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예를들어 기독교에서 육체의 죽음뒤에 그 영혼의 운명. 널리 퍼져있는 부정적인 영적 관행은 대부분 그 느낌이 좋은 매력과 독특함으로 영적으로 순진한 이들을 끌어당기는데, 예를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 심령 읽기를 받거나 타로 카들 교령회에 참석하는 것, 점보기, 채널링을 통해 저쪽에 있는 마스터에게서 조언을 받는 것, 혹은 다양한 형태의 마술, 교령회 혹은 의례를 동반하는 오컬트에 발을 담그는 것 등등
초상현상
초상현상은 초자연적인 것과 혼동을 일으키며 호기심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크게 진화한 현인과 스승들은 물론 전통적 경전에서는 "거기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아스트럴 영역은 영적이지 않으며 인간 정신이 보호적 식별력으로 대비하고 있지 못한 영역과 차원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들과 저 세상의 실체들을 불러내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다양한 탄트라 연습, 백마술, 주문, 타로카드, 채널링으로 통하는 저쪽의 마스터, 심령읽기 등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오컬트에는 보이지 않는 상당한 그늘이 있다.
변성 의식상태와 초상현상은 상대적으로 복잡한데, 이들은 독특한 연구분야이다. 이들은 특별함의 매혹으로 더욱 가려지는데, 인상받기 쉬운 호기심에 대해서 그러한 것은 매력적인 신기함이다. 진실수준 측정의 과학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의 연구자들은 자신들로부터가 생소한 현상의 외관에 속아넘어가고 우롱당했다. 그런 현상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탁자두드리기와 뿔피리 불기, 점술사의 외부 원형질, 유령으로 가득한 강신술, 트랜스 영매와 함께하는 고령회, 망자 및 저쪽에 있는 마스터들과의 교신, 카드읽기, 돌던지기, 찻잎읽기, 점술 등이다. 이상의 모든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고도로 발달한 관행이었다. 고대인은 신관, 예언자, 무당을 비롯하여 각종 마술과 저세상의 비밀과 신비스러운 의식, 의례를 행하는 이들과 상의했고, 그에 더해 대단히 다양한 심령술사, 채널러, 트랜스 영매를 그리고 다양한 영들과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남녀 주술사들을 찾았다.
또한 다양한 의식들이 반복적 영창과 신체 동작 혹은 의례적 춤을 매개로 하는 최면으로 유도된 상태와 뒤얽혔고, 그에 더해 반복적인 호흡수련에 의해 유도된 변성된 생리적 상태, 신체 비틀기, 자세취하기, 각종 성적수련들과 뒤얽혔다. 각종 느낌이 좋은 수련외에도 이상 야릇한 식사, 비전의 약초, 환각제, 환각을 유발하는 버섯이 있었다. 나중에는 정신 약물은 물론이고 합성 마약, 엑스터시, LSD, 실로시빈, 향정신성 알칼로이드, 심지어는 동물 진정제에 더해 다양한 암페타민과 각성제가 나왔다. 이상의 인위적으로 유도된 의식상태외에 생물 피드백을 매개로 하고 변성된 뇌파패턴을 유도하기 위해 고안된 알파파 훈련장치를 매개로 하는 과학적으로 설계된 동일한 방향의 시도들이 있었다.
듀크대학교에서는 초심리학, 심령 요법자, 원격투시, 물표면 장력바꾸기, 염력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수련을 하는, 다양한 명상가들의 뇌 여러부위에서 나오는 EEG 주파수를 연구하고 있다.
먼로 연구소에서는 몸을 벗어나는 아스트럴 투사기법과 음파조작으로 유도되는 변성의식상태에 관해 연구하고 가르쳤다. 이러한 조사들에 뇌 거울 장치가 더해졌는데, 그것은 변성상태에서 뇌의 가장 활발한 부위를 따라 불이켜지는 장치다.
변성상태에 대한 관심은 그러한 상태가 전 역사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한 귀결이기도 했다. 정신의학에서는 망각, 환각, 입면 상태는 물론이고 해리 및 주둔상태, 다중성격 장애의 구획화와 더불어 최면 현상에대해서도 연구하고 설명해왔는데, 최면 현상에는 암시와 마인드 콘트롤, 세뇌기법의 효과가 포함된다. 게다가 심리학과 정신분석에서는 융의 원형들의 영향력을 포함하여 꿈에 대해 그리고 무의식의 다양한 영역들에 관해 조사해 왔다. 과학은 이상의 쟁점과 현상 가운데 많은 것을 다루었지만, 측정가능한 의식의 구별되는 수준들에 대한 앎뿐 아니라 다른 영적 영역이나 다양한 아스트럴 영역과 같은 존재의 다른 차원들이 있을 가능성에 대한 앎은 여전히 부족하다. 몽환, 꿈, 혹은 둔주 상태와 같은 변성 의식상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데, 일부 가족은 유전적 패턴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예, 모녀 영매) 인간의 마음은 일차적으로 경험적이고 경험은 그 다음에 실재한다고 추정되는데, 이는 꿈꾸는 상태에서는 익숙한 현상이다.
트랜스/둔주상태는 정상인한테서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은 기억 상실증 상태에서처럼 몇분, 몇시간, 심지어 며칠씩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짧게 지속된 자동적 트랜스상태에서 주관적으로는 훨씬 더 긴 기간을 경험할 수 있는데, 몇분간 본 다른 차원의 환영이 몇시간이나 심지어 며칠간의 표면적 사건들을 포함할 수도 있다. 또한 환시 상태는 일부 성격에 흔하고, 측두엽 발작장애와 종종 관련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뇌 생리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다시피 전술한 모든 조건과 상태의 실상은 아직껏 해명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가장 경험이 풍부한 임상의/연구원에게조차도 하나의 도전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다년간 영성에 기초한 회복모임과 단체는 물론이고 성직자 모임과 명상 모임, 성공회와 카톨릭 교구, 선원, 다양한 수도회 공동체에 대해 동시적으로 상담자 역할을 해왔다. 때로는 감별진단이 어려웠다. (삼매냐 긴장증이냐 등)
외계인에 의한 납치는 또하나의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그런 경험의 측정수준은 한결같이 70인데, 그것은 경험적인 묵시록적 환영(요한, 계시록의 저자)과 동일한 수준이다. 의식의 아스트럴 장들에 대한 그런 경험은 전시대를 통틀어 유사했으며, 동일한 부정적 시나리오와 함께 반보적으로 재발한다. 그런 경혐은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현실감이 있으며, 그래서 드러나는 환영들에 관한 그들의 반복되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사교가 출현하고 그들이 오지의 생존 야영지를 향해 떠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환영은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인데, 트랜스 상태에 빠진 추종자들은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신화가 두려움, 암시, 밈 바이러스를 통해 전파됨에 따라 그것은 오랜 기간 상당히 짙은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조합과 상태들이 갖는 진정한 본성과 문제점은 모호했는데, 그로 인해 과학적 설명의 시도들이 생겨나는 것은 물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설명과 가정들이 빚어진다.
현시대에,
의식측정연구라는 임상적 접근법은
그런 현상의 참된 본성을
해명하는 새로운 수단을 열어준다.
측정치는 적어도
관련된 진실과
의식의 수준들을 명료히 해준다.
연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망상, 환상, 꿈, 환영, 기억상실, 트랜스 상태와 둔주상태는 주관적이고 아스트럴적으로 경험되지만 객관적으로 실재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실제의 실상을 확증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언들이 의식자체를 갖는 잠재성의 부수현상으로서 오고가는데, 의식은 거기서 더욱 명료한 설명이 출현할 어떤 절대상수를 제공하는 공통의 기층이다. 만일 우리가 의식연구를 저쪽에 있는 스승들과의 채널링현상에 적용한다면, 제일의 조사영역은 채널러들 자신이 진짜인지 여부다.
지표에 따르면 투시자의 15%가 적법하고 채널러의 20%, 트랜스 영매의 25%가 적법하고 진짜다. 채널링 상대인 저쪽의 마스터나 실체들 중에서는 50%가 200이하로 측정되고 단 5%가 450수준 이상으로 측정된다. 그래서 구매자 위험부담의 규칙이 적용된다. 그 그늘은 보통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제를 동기로하는 스승을 따르는 위험성이다. 추종자들이 내적인 영적수행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속에서 답을 찾도록 인도받는 대신 사생활에 관해 지시받을때 그러한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다.
저쪽의 어떤 스승들은 메시아적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과대망상은 그들의 측정된 의식수준으로 반박된다. 임상정신과에서 그런 과대망상은 고양된 상태로 관찰되는데, 그런 상태에 있는 환자는자신의 말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라는 갑작스러운 계시를 받는다. 향정신병 약이 보급되기 전인 지난 1950년대에는 예수그리스도 환자들이 같은 시기에 두세명씩 병원에 있곤했다. 환자들에게 그런 경험은 경험적 실재였다. (우리병원에는 여왕과 나폴레옹도 여럿 있었다).
변형을 불러일으키는
진짜 영적 경험은
그것이 사람의 삶에 미치는 매우 긍정적이고
매우 흔한 심원한 영향력을 통해 확증되는데,
이를
확인해주는 것이
임사체험을 통해
영적 진실을 경험한 이들이다.
측정가능한
그런 이로움은
종종 바닥을 치는 맥락에서
진정한 전환 경험을 한 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의식수준이 때로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통해 확증되듯이 정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재탄생한다. 이는 영성 강연의 참석자들한테서 목격되었는데, 무려 150점에 이르는 의식수준의 도약이 일어났다(참석자들은 평균 10점 가량 상승한다).
진짜 영적 상태외 비정상적 정신상태의 구별에 관해서는 전에 이미 기술한 바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진정한 영적상태, 병리적 상태
진정한 영적 상태 | 병리적 상태 |
삼매 | 긴장증 |
종교적 황홀경 | 조증(양극성이 과대한 종교열) |
빛비춤 | 과대성 |
깨달음 | 종교망상 |
독실함 | 병적 양심(강박장애의) |
영감 | 상상 |
영시 | 환각 |
진정한 영적스승 | 가짜 구루, 협잡꾼, 영적 사기꾼 |
헌신 | 광신, 과도한 종교열 |
몰두한 |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교에 세뇌된, 피해자가 된 |
영혼의 어두운 밤 | 병리적 우울 |
초연함 | 위축, 무관심 |
무집착, 수용 | 수동성 |
초월적 상태 | 함구증 |
신뢰하는 | 순진한 |
앞선 상태 | 정신병, 자기우월증 |
지복 | 다행감 |
겸손함 | 낮은 자존감 |
영적 나눔 | 개종시키기 |
몰두 | 종교열 |
영감을 얻은 | 메시아적 |
신충격 | 정신분열증적 와해 |
영적 황홀경 | 조증상태, 마약에 취한 |
진짜 영적지도자 | 영적 정치인, 사교 교주 |
자유로운 | 사이코패스적 |
사교 숭배
사교는 특별함과 거짓약속으로 부주의한 이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구성원들에게는 내부자의 지위와 특수한 전문용어가 있다. 사교집단의 지도자는 카리스마적이고 유혹적이며 신입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데, 신입자는 그러한 관심으로 인해 우쭐해진다. 사교 지도자는 매우 특별하고 아첨으로 대접받는데, 이는 생활양식, 식사, 복장등은 물론이고 특히 돈과 성생활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는 구성원에 대한 통제로 급속히 바뀐다. 구성원들은 충성을 맹세해야 하고 가족이나 심지어 배우자와의 관계 그리고 흔지 단체나 모임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 사교집단은 흔히 제약이 심한 지리적 섬을 형성하며, 마치 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특징적인 사교도의 게슴츠레한 눈(측정수준 120)을 갖는 것은 물론, 집단적 피해망상증을 일으킨다. 일단 그런 게슴츠레한 눈빛을 간파하면 그 다음에 그것을 알아보기 쉽다. 합리화는 단조롭고 기계적인 방식을 취하는데, 그것의 내용은 일종의 노선과도 같아서 구성원들은 프로그램 노선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사교는 특히 명사들을 겨냥하고 그것을 전시물로 악용한다.
사교 지도자들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해서 큰 무리의 사람들이 기꺼이 타살할 뿐 아니라 자살을 감행한다. (예, 천국의 문, 진 존스, 이슬람 테러리스트, 자살 폭탄범, 옴진리교 지하철 가스 살포자, 볼세비키, 나치 당, 알카에다, 탈레반, 백인 우월주의자, 쿠 클럭스 클랜, 해방주의자 등). 사교의 또 다른 특징은 사이비 종교의 집단적 신념체계인 노선을 전도하고고집스레 추종하는 것인데, 그러한 집단적 신념체계로 인해 개성은 경멸당하거나 위협받기까지 한다. 지도자들은 대단히 권력지향적이고 그들의 주요테마는 통제에 피해망상적 이기주의를 더한 것이다.
때로 영적지도자는 초반에는 온전하게 측정되지만 그 다음에 명망, 돈, 섹스의 유혹이나추종자들의 아첨에 희생되곤 한다. 그런뒤에 원래의 영적집단은 사교로 타락하거나 아니면 어떤 영적 기법이 사실상 상표가 되고 그 다음에 상업화되어 고용된 홍보 담당자들에 의해 매매된다. 그런 경우에 그 기법은 200이상으로 측정되지만, 조직자체는 200이하로 떨어져서 주로 초기의 개념이나 독점적 기법을 판매하는 마케팅 조직이 된다. 그리하여 그 기법은 오직 돈을 받고 가르치는 것이 되고, 수련생들은 비밀 가르침을 누설당하는 것을 금지당한다. (그 비밀 가르침은 대개 건강을 증진하고 풍요를 끌어오고, 밤 생활을 강하게 만들고, 인기를 누리고 자신의 성공 잠재력을 실현하고, 짝을 끌어당기는 등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몇가지 단순한 구절이나 분장에 불과하다). 판촉되는 기법의 일부는 아무 행운의 쿠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들면
한번의 미소가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측정수준 350).
혹은
성공은
친절한 이를 찾아갑니다
(360)
그런 수련회의 참된 가치는
어떤 중심개념이나
기법의 마술적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난 벌써 알고 있었는데라며
재빨리 치워버리고 마는 대신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규칙적으로
실제로 적용하는 엄정한 수련에 있다.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수련회의 가치는 일관된 적용의 가치를 배우는 것과 귀중한 도구를 실제로 실천에 옮기고 그것에 꾸준히 초점을 맞추는 것, 예를들면 '기적수업' 연습서의 충실함에 놓여있다. 사교숭배의 또 다른 표현은 전통종교에서 나온 분파의 사교화이다. 예를들어 이슬람과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적 종교들의 민족적 변종에서 가장 현저하고 두드러지는 극우 원리주의가 그것이다.
영적 관행
견진성사 | 500 | 세례 | 500 |
갠지스강에서 목욕하기 | 540 | 세상을 신에게 내맡기는 것 | 535 |
그레고리오 성가 | 595 | 시각화(치유) | 485 |
기도 바퀴돌리기 | 540 |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기도 | 580 |
기도하기 위해 무릎 꿇는 것 | 540 | 아움(진언) | 210 |
기도하듯이 두손을 모으는 것 | 540 | 야베스의 기도 | 310 |
마음속에 품은 것은 현실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 505 | 예배중에 무릎을 구부리거나 땅에 대는 것 | 540 |
묵주기도 올리기 | 515 | 예수 기도문 | 525 |
미로 걷기(샤르트르 성당) | 503 | 옴(옴으로 발음) | 740 |
샨티 샨티 샨티 | 650 | 옴 마니 반메홈 | 700 |
옴 나마야 시바야 | 630 | 주기도문 | 650 |
익명의 알콜중독자회의 12단계 | 540 | 초월명상 | 295 |
임의적 선행 | 350 | 키르탄(요가의 노래) | 250 |
자신의 의지를 신에게 온전히 내맡기는 것 | 850 | 통곡의 벽 | 540 |
자파 | 515 | 하즈(메카 순례) | 390 |
종부성사 | 500 | 헌신적 행위 | 540 |
이 모든 것은 헌신을 가리키며, 따라서 모든 진짜 종교에 공통적이다. 인간은 의도로써 예배장소는 물론 자신과 타인을 상징적으로 축성하고 영적성장에 바친다. 의도로 인해 모든 양식의 축복과 기도는 500이상으로 측정되며 그러한 것의 집합적 효과는 집단적 인간의식의 전 수준에 헤아릴 수없는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를 시사해주는 것은 인간의식의 전수준에서 마지막 두번의 큰 도약이 1980년대 후반의 조화로운 수렴뒤에 연달아 일어난데 대한 관찰이다. 그 다음 2003년 11월 조화로운 일치의 때에 그것은 다시 205에서 현재의 207로 도약했다. 두번 다 전세계에서 영성에 몰두하는 이들이 동시에 기도를 올렸다. 205에서 207로의 이행은 마침 샌프란시스크에서 강연(이것은 비디오로 녹화되었다)을 하던 중, 강연이 끝날 무렵에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때 영성에 몰두하던 400인의 집단은 동시에 기도하며 옴을 소리냈고, 그 다음에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염불을 들으며 명상했다. 그것은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후 5시 15분부터 5시 25분사이에 있었던 일이었다. 오후 5시 15분 청중이 보는 앞에서 인류의 의식수준은 205로 측정되었다. 기도한 뒤에 5시 30분에 재측정했을때, 그 수준은 현재의 207로 동시적으로 상승했다.
기타 가르침, 유파, 영적 전통
EST(Erhard seminars training) | 400 | 레이키 | 340 |
100마리째 원숭이 현실 | 205 | 롤핑 요법 | 205 |
기공 | 240 | 미신 | 200 |
대천사 채널러 | 190 | 바디워크 | 205 |
동반의존(개념) | 190 | 바이오피드백 | 202 |
드루이드교 사제 | 450 | 반 창조론 | 150 |
반진화론 | 150 | 장미 십자회 | 405 |
백마술 | 203 | 재탄생 기법 | 250 |
백색 형제단 | 560 | 점성학 | 215-405 |
불가지론 | 200 | 주역 | 430 |
수비학 | 210 | 창조론 | 200 |
수정 | 210 | 쿵푸 | 410 |
숯불 걷기 | 200 | 키를리언 사진 | 160 |
신지학 | 365 | 텔레파시 | 250 |
에녹의 열쇠들 | 265 | 템플 기사단 | 400 |
에니어그램 | 390 | 파룬공 | 195 |
에소테릭 | 390 | 풍수 | 185-210 |
엑칸카 | 230 | 프리메이슨 | 510 |
영혼 산파술 | 240 | 하타 요가 | 260 |
원리주의 | 200 | 형이상학 | 460 |
유니버설리스트 | 320 | 홀리트로픽 호흡 | 202 |
윤리협회 운동 | 350 | 후나 | 260 |
자유사상가 | 350 |
측정수준은 어떤 수준이 다른 수준보다 낫다가 아니라 그저 다르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다르다는 것은 골프를 칠때의 클럽선정에 비할만 하다. 퍼트를 할 것인지 칩샷을 날릴 것인지, 혹은 장타를 칠 것인지에 따라 클럽선정이 달라진다. 따라서 효과는 기법 자체만이 아닌 의도의 결과다. 수많은 영적 제자들이 이상의 다양한 접근법을 탐구해왔고, 그것들에 실용적이고 경험적인 이로움이 있음을 보고한다. 영적 원리를 수많은 인간 딜레마에 적용하는 것은 효율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데, 심지어 본래 의식적인 동기부여가 없을때조차 그러하다. 예컨대 판사로부터 익명의 알콜중독자 모임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은 가망없는 알콜중독자가 그 뒤에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남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라"는 영적 원리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다시 말해 그는 전도보다는 나눔을 통해서 타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영적 온전성은
희망, 믿음, 자애로 나타나며
모범을 통해
타인에게 영감을 고취시킨다.
문호를 개방한 온전성 영적조직은 선전보다는 힘에 대한 의존은, 사람들이 주지화를 통하는 대신, 삼투작용을 통해 젖어드는 집단적 경험으로 드러난다.
결론
의식측정기법에 의한
영적 실상의 확증은
인간지식의 발전에서
큰 가치를 갖는데,
왜냐하면
의식측정법은
지성의 한계로 인해
전에는 검증은 커녕
접근조차 가능하지 않았던 영역들을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비가에게는 앞선 영적 앎과 앞선 영적 실상이 고향인 반면, 영성보다는 정신작용과 뉴턴 논리라는 보다 전통 종교적인 혹은 세속적인 영역들이 더욱 친숙한 대다수 인구와 하위 집단에게 그런 것은 여전히 생소한 듯 하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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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6.28 귀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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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7.24 대천사 채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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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5.09 올더스 헉슬리 - 영원의 철학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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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시아 작성시간 20.01.12 진실을 찾아 헤메이다 사이다 같은 발견!♡끌어당김, 목이 메이도록~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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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문형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1.12 로시아님의 수행을 응원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