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reason
2. 중국을 정복하는 불교(위진남북조의 불교)
38) 인도적인 도안과 중국적인 구마라집
경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는데 '경전번역'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음. 실제로 대표적인 번역자 '구마라집'은 '인도글을 한문으로 바꾸는 것은 음식을 씹어서 먹여주는 것과 같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함.
참고) 쿠마라지바(산스크리트어: कुमारजीव Kumārajīva) 구마라습, 구마라십, 구마라집, 중국어 간체자: 鸠摩罗什, 정체자: 鳩摩羅什, 병음: Jiūmóluóshí 주모뤄스[*]: 344~413[1])는 구자국(龜玆國: 현재의 신장 쿠차에 속함) 출신의 불교 사상가다.[2] 한자 표기는 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 구마라기바(拘摩羅耆婆), 줄여서 나습(羅什), 습(什),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한다.
중국 후진(後秦) 시대 장안(長安)에 와서 약 300권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게 유명하며, 그 불경 번역은 불교 보급에 공헌했을 뿐 아니라 삼론종(三論宗)・성실종(成実宗)의 기초가 되었다. 최초 삼장법사(三蔵法師)로 불리며, 훗날 현장(玄奘) 등 많은 삼장이 등장하였다. 쿠마라지바는 현장과 함께 2대 대역성(大訳聖)으로 불리며, 또한 진제(真諦), 불공금강(不空金剛)과 함께 4대 역경가(訳経家)로 꼽는다.
쿠마라지바의 불경 번역은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불교사에서 길이 남을 공적이며, 중국에서는 그를 중국 "삼장의 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3권
- 『불설아미타경』(阿彌陀經) 1권
-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7권(30권)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
- 『유마경』(維摩經) 3권
- 『대지도론』(大智度論) 100권
- 『중론』(中論) 4권
많은 경전이 어렵지만 번역되었고... 중국불교가 점차 발전하면서 번역한 용어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고 번역한 용어에 대한 통일성의 문제가 대두됨.
격의불교를 반대한 도안
도안(312~385)은 북방불교의 교단을 정비하고 불교의 안정을 꾀하는데 주력했던 인물. 불도징의 제자. 경전을 정리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374년까지 경전이 번역된 시기와 장소, 번역자 등을 밝혀 경전 전래의 체계를 마련함.
또한 도안은 격의 불교에 반대함. 격의불교란 '열반'을 '무위'로 또 '진여'를 '본무'로 번역하는 것으로 중국인들이 알고 있던 도가의 용어를 차용하여 불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임. 고승전 권4에 의하면 이러한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은 4세기의 축법아였음. 이후로 격의의 전통이 중국불교에 자리잡게 되면서 점차 개념이 왜곡되는 문제가 나타남.
참고) 도안은 허베이 성(河北省)의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서역으로부터 온 불도징(佛圖澄: 233-348)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1] 스승인 불도징의 사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많은 문하생을 지도하였으나 마침 전란시대여서 이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허베이 성(河北省) · 산시 성(山西省) · 허난 성(河南省)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유랑하였다.[1] 뒤에 혜원(慧遠) 등 400명의 문하생과 더불어 후베이 성(湖北省)에 단계사(檀溪寺)를 짓고 엄숙한 구도와 연수를 위주로 하는 교단을 조직하여 국왕과 귀족으로부터 두터운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1] 379년에는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초빙을 받아 장안에 가서 국가의 고문에 추대되었다.[1] 이리하여 명실공히 불교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게 되고, 특히 카슈미르 출신의 승가발징(僧伽跋澄) · 승가제바(僧伽提婆), 토카라국의 담마난제 등 외국승을 도와 소승경전의 번역을 완성하였다.[1]
업적[편집]
- 승단생활의 의식과 규범을 새로이 제정하였다. 경전의 강의와 설법의 순서, 부처(佛)에게 공양 하는 방법, 수업의 방법, 참회의 의식 등이 그것이다.
- 당시까지 승려는 출신지나 스승의 이름을 성(姓)으로 하였으나 도안(道安)은 이것을 폐하고 불교는 석존(釋尊)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승은 모두 석(釋)을 성(姓)으로 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이름도 축도안(竺道安)에서 석도안(釋道安)이라고 고쳤다.
- 당시까지 내려오던 격의불교(格義佛敎)의 오류를 반성하고, 불교는 불교 자체의 입장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반야경(般若經)》의 여러 다른 번역본을 비교 대조함으로써 참다운 뜻에 이르도록 노력하였다.
- 당시까지의 한역경전(漢譯經典)을 정리하여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이라는 최초의 한역불경(漢譯佛經)의 총목록을 편찬하였다.
- 경전의 내용은 서분(序分) · 정종분(正宗分) · 유통분(流通分)의 3단계, 즉 3분과로 성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확립하였다. 이 3분과(三分科)의 방법은 후세의 규범이 되었다.
구마라집을 얻기 위해 두나라가 멸망
구마라집(344~413)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대표하는 외국승려로 기구한 인생을 산 인물임. 고승전 권2에 따르면 구마라집은 구자국 공주인 어머니와 인도인 바라문 출신의 승려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천재. 처음에는 소승 '설일체유부'를 수학하다가 나중에 대승불교를 배워 대승으로 전향함. 구마라집의 명성은 379년 구자국을 방문한 승려 승순에 의해 중국으로 알려짐. 당시 중원의 패자를 꿈꾸던 전진의 왕 '부견'은 도안의 의견을 받아들여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모셔오고자 함.
그러나 구자국이 구마라집을 내주기를 거부하자 부견은 구자국을 비롯한 서역을 정벌함. 결국 구자국은 멸망하고 구마라집은 여광에게 붙잡힘. 그러나 부견은 비수의 전투에서 패하고 여광이 후량을 건국함. 여광은 비 불교도였으며 구마라집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고 구마라집은 많은 굴욕적인 일을 당하면서 중국어, 한문을 배우며 중국을 이해하게 됨.
전진의 뒤를 이은 왕조인 후진(384-417)의 '요흥'은 왕조의 안정을 위해 구마라집을 모셔오고자 함. 그러나 여광이 거절하고 후진은 군대를 일으켜 후량(여광)을 무너뜨리고 401년 장안으로 구마라집을 모셔옴. 구마라집때문에 두나라가 멸망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짐.
번역의 체계를 확립한 구마라집
장안에 도착한 구마라집은 402-413년에 걸쳐 대략 35부 348권이라는 많은 경전을 번역함. 구마라집은 도안이 정비한 격의 불교에 대한 비판적 터전위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번역을 함. 구마라집은 일생동안 총 73부 384권의 경전을 번역했는데 그의 경전번역과 정비는 체계를 통일시켜 진행한 최초의 경전번역이라는 점에서 중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큼. 그는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공개 강의도 했는데 이때 3천명정도가 운집했다고 함. 구마라집의 특출난 4 제자 '승조, 도생, 도융, 승예'가 있는데 이를 라집사철이라고 함. 승조는 중국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반야공 사상을 이해한 사람, 도생은 돈오설의 최초 주창자.
구마라집은 구역을 대표하는 경전번역자로 꼽힘. 약 1천년간 이어진 중국의 경전 번역사는 이루 새로운 번역방식을 제시한 당나라때 현장을 기준으로 각각 구역과 신역으로 나눔. 구역은 의역의 성격이 강했고 신역은 직역을 중시하는 등 두 방식은 큰 차이가 존재함.
39) 여산혜원과 개인적인 강남불교
장강(양쯔강)을 중심으로 황하문명은 화북문명과 화남문명으로 나뉨.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중국 강남과 강북은 기후, 환경, 인종이 완전히 다름. 강북의 노래책으로 시경이 있다면 강남에는 초사가 있고, 강북에 공자의 유교가 있다면 강남에는 노자의 도교가 존재함. 양문화의 특징을 간단히 말하면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강북과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강남이라고 할 수 있음.
여산의 극락왕생 결사와 호계삼소
강남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도안의 제자인 혜원(334-416)임. 혜원은 스물한살에 도안의 문하로 들어감. 고승전 권 6에 따르면 혜원은 그 지역 지방관의 후원으로 386년 여산에 동림사를 창건함. 혜원은 중국 정토신앙의 창시자. 혜원은 402년 동림사에서 123명의 문하생과 함께 염불을 하며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결사 '백련결사'를 단행함. 이들은 남조라는 혼탁한 전란시대 상황속에서 '극락이라는 이상세계를 꿈꾸었음'
계율을 중시한 혜원과 불타발라타의 만남
승려는 군주에게 예를 표할 필요가 없다
혜원의 엄격주의와 의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 '사문불경완자론'임. 이 책은 출가한 승려는 왕에게 예를 표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일종의 논술서임.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은 중국 동진(東晋)의 승려 여산혜원(廬山慧遠)이 당시의 권력자였던 환현(桓玄)에 맞서 지은 불교 의론서이다.
경위[편집]
어린 나이로 동진의 3대 황제가 되었던 성제(成帝)의 섭정(攝政)을 맡은 유빙(庾冰)은 "사문(沙門)은 왕자(王者)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하충(何充)・저욱(褚昱)・제갈담(諸葛惔) 등의 유력자들의 반대 의견이 잇따랐다. 분규가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고숙(姑孰, 안후이 성)에서 실권을 장악한 환현은 유빙의 주장을 내세워 동림사(東林寺)의 혜원에게 계속해 편지를 보냈고 여기에 혜원도 답장을 통해 반박하였다. 얼마 안 가서 환현이 장강(長江) 중류 지역을 근거지로 초(楚)를 자칭하고 동진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 제위를 찬탈하기에 이르렀고, 다시 혜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권세를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이때 환현에 맞선 혜원의 반론이 바로 「사문불경왕자론」이었고, 결국 환현은 혜원을 굴복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이로서 당시의 사문들은 세속과는 구별되는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혜원의 이론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안에서 유효했으며, 당(唐) 초기에 이러한 논의가 재현되면서 강대화해지던 황제권(왕법) 앞에 불법은 절차 열세에 몰리게 되어 북송(北宋) 초에 이르러 불법이 왕법에 완전히 종속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내용[편집]
논의 전체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재가(在家) - 명교(名教)에 기반한 재가자의 세속적 윤리에 대한 서술.
- 출가(出家) - 불법에 기반한 출가자(사문)의 중생 제도의 입장에 대한 서술.
- 구종불순화(求宗不順化) -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구하는 사문은 강권을 손에 쥔 왕자, 군주와는 대등하다는 주장.
- 체극불겸응(體極不兼應) - 부처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귀결되는 지점은 동일하다는 주장.
- 형진신불멸(形盡神不滅)5 - 신불멸론(神不滅論)을 전개.
혜원의 여산교단은 군벌끼리 충돌하는 전란과정에서도 군벌들간에 서로 범하지 않는 성역으로 규정해 놓았을 정도로 당시 큰 존경을 받음. 구마라집은 편지에서 혜원을 '동방의 호법보살'이라고 칭함.
40) 황제와 붓다가 동일시되는 강북불교
북위의 등장과 강북불교의 새로운 조짐
중국의 5호 16국 시대를 마감하면서 강북의 패자가 된 것은 '북위(386-534)'였음. 북위는 강북을 통일하면서 불교와 마찰을 빚음. 북위의 태조인 도무제는 396년 승려 '법과'를 도인통이라는 직책에 임명. 이후에 사문통이라는 명치으로 변경. 그는
'태조는 불교를 좋아하는 군주이니 황제는 곧 현재의 붓다이다. 그러므로 사문은 마땅히 예를 다해야 한다'
'황제는 사람들에게 도를 넓히는 군주다. 나는 황제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붓다에게 절을 올리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에서 혜원이 '사문불경완자론' 주장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인 일임.
이후 북방불교가 주된 흐름이 되면서 중국불교는 철저히 정권에 예속됨.
태무제의 불교말살과 중국불교의 교훈
정치권력에 의한 잔혹함 참화는 중국불교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정치권력과 반복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깊숙히 각인시킴.
담요의 운강석굴 개착과 강북불교의 자세
위서 권 114 '석노지'에 따르며 담요는 '석가불, 미륵불,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5대불을 조성하자고 주장.
41) 경전목록과 계통의 정리
다양한 경전의 전래로 인한 혼란
중국으로 전해지는 불교경전이 다양해지면서 중국불교는 목록집을 만들어 경전을 정리할 필요를 느낌. 이렇게 만들어진 목록이 '종리중경목록'임. .. 중국불교에서 다양한 경전을 정리, 분류해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이를 '교상판석'이라고 함.
참고) 교상판석(敎相判釋)은 중국 불교에서 유래한 불교 용어로, 수천 권에 달하는 불교 경전은 고타마 붓다가 일생 동안 행한 설법의 집대성이라고 보고 불교 경전을 설법의 형식 · 방법 · 순서 · 내용 · 교리에 따라 분류 및 체계화하고 가치판단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
중국에 있어서는 전해진 경전의 다양함으로 불교의 가르침이 다양화되었고, 어떤 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진실된 가르침인가에 대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경전의 내용이 종종 다른 경우는 석가모니가 가르침을 설한 시기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가르침을 설한 시기를 분류하여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최고의 가르침인가라는 하나의 판정 방법으로써 각 종파에 의해서 제각기 교상판석이 행해졌다.
가장 오래된 교상판석은 축도생(竺道生)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4종으로 나뉜다.
- 선정법륜(善浄法輪) - 재가 신자를 위해 설하다
- 방편법륜(方便法輪) - 성문(声聞) ・ 연각(縁覚) ・ 보살(菩薩)들을 위해 설하다
- 진실법륜(真実法輪) - 『법화경』(法華経)을 설하다
- 무여법륜(無余法輪) - 『대반열반경』(大般泥洹経, 법현이 번역한 『열반경』 전반부뿐)을 설하다
다음으로 혜관(慧観)의 오시(五時)의 교상판석을 제창하였다.
-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제전법륜(四諦転法輪)을 설하다
- 각소에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経)을 설하다
- 각소에서 『유마경』(維摩経) ・ 『범천사익경』(梵天思益経)을 설하다
- 영축산(霊鷲山)에서 『법화경』(法華経)을 설하다
- 사라쌍수(娑羅双樹) 아래서 『대반열반경』을 설하다
위진남북조의 10종 교판
교상판석은 다양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을 형식이나 설한 순서, 내용의 우열 등에 따라 범주별로 분류, 종합해서 하나의 유기체적인 사상체계를 세워 풀이하는 경전연구 방법임. 수나라의 통일 이전의 교상판석 중 유력한 것으로 총 10종이 있는데 이를 남삼북칠(강남의 3종, 강북의 7종)이라고 함.
천태 지의의 오시팔교와 묘법연화경
교상판석은 경전의 계통을 확립해서 핵심과 방편을 구분하기 위한 것 즉 핵심경전을 찾기 위한 것임. 불교경전의 다양함과 방대함 때문에 어떤 범주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어떤 경전이 핵심이 되느냐를 판단해 그 경전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수행하는 방식이 필요했던 것임.
참고)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수나라(581~618) 시대의 승려로, 천태종의 개조(開祖)이다.[1] 존칭으로 천태대사(天台大師) · 지자대사(智者大師) 또는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로 불린다.[1] 문하에는 장안(章安) · 지월(智越) 등의 뛰어난 인재가 나왔다.[1] 저작도 많으며, 주요 저서인 《법화현의(法華玄義)》·《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의 천태3대부(天台三大部)를 비롯하여 34부가 현존한다.
천태지의가 10종교판을 언급한 것은 이를 넘어서는 자신의 교상판석을 제시하기 위한 것임. 이렇게 나타난 것이 바로 '천태지의의 '오시팔교'임. 오시는 붓다의 가르침을 시간순서에 따라 분별한 것이고 팔교는 가르침의 방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의 4가지와 가르침의 내용에 따라 분별한 화법사교의 4가지로 나뉨.
오시
1) 화엄시 : 붓다가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21일 이때 '화엄경'이 설해짐
2) 녹원시 : 녹야원에서의 최초 가르침 이후 아함경을 설한 12년
3) 반등시 : 아함경 이후 대승불교의 초기 경전인 '유마경, 승마경' 등을 설한 8년
4) 반야시 : 대승불교의 본격적인 경전인 '반야경'을 설한 22년
5) 법화열반시 : 대승불교의 최초 경전인 '묘법연화경'을 설한 8년과 '열반경'을 설한 최후의 1일
참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산스크리트어: महावैपुल्यबुद्धावतंसकसूत्र, 산스크리트어: Mahāvaipulya Buddhāvataṃsaka Sūtra[1])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산스크리트어: Avataṃsaka Sūtra) 또는 《잡화경(雜華經)》(산스크리트어: Gaṇḍavyūha Sūtra)은 초기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로,[2] 중국과 한국의 화엄종을 비롯한 많은 종파의 핵심 경전으로 사용된다. 29세에 출가한 고타마 붓다가 35세인 기원전 589년 음력 12월 8일,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서, 첫 제자들에게 최초에 설법한 것이 《화엄경》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학자들은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라서, 고타마 붓다가 최초에 설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팔교
가) 화의사교
1) 돈교 : 붓다의 깨달음을 있는 그대로 단번에 설하는 방식 : 오시중 화엄시에 해당함
2) 점교 : 낮은 단계에서 점진적으로 깊은 단계로 전개해 가는 방식 : 녹원시, 방등시, 반야시에 해당
3) 비밀교 : 함께 들어도 모두에게 완전히 다른 별개의 가르침이 전달되도록 하는 방식
4) 부정교 :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설하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르게 들어서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
나) 화법사교
1) 장교 : 소승을 위한 가르침
2) 통교 : 성문, 연각, 보살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통의 가르침
3) 별교 : 대승의 보살만을 위한 특별한 가르침
4) 원교 : 모든 것을 포함하는 두루 원만한 최고의 가르침 : 묘법연화경이 여기에 해당함
오시[편집]
지의는 고타마 붓다의 모든 설법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5시(五時)로 나누었다.[1]
- 화엄시(華嚴時):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당시에 그 깨달은 내용을 바로 설한 때
- 녹원시(鹿苑時): 정도를 낮추어 《아함경(阿含經)》, 즉 소승을 설한 때
- 방등시(方等時): 소승을 버리고 대승에 들어가게 하는 설법을 한 때
- 반야시(般若時): 대승과 소승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편집(偏執)을 제거한 때
-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올바른 진실의 가르침을 설한 때
팔교[편집]
화의사교[편집]
한편, 지의는 가르치고 인도하는 형식 및 방법상으로는 다음과 같이 4교(四敎)로 나누어서 이것을 화의사교(化儀四敎: 교화를 시키는 네 가지 방법)라고 하였다.[1]
- 돈교(頓敎): 곧장 부처의 깨달음을 설하는 가르침 방법
- 점교(漸敎):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향하는 가르침 방법
- 비밀교(秘密敎): 모두에게 알리지 않고 특정한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적절한 가르침을 베푸는 가르침 방법
- 부정교(不定敎): 모두에게 알리는 형식으로 듣는 자의 능력에 따라 체득되게 하는 가르침 방법
화법사교[편집]
또한, 지의는 가르침의 내용상으로 4교(四敎)로 나누어서 이것을 화법사교(化法四敎: 네 가지 가르침)라고 하였다.[1]
- 삼장교(三藏敎): 소승교(小乘敎: 소승의 가르침), 줄여서 장교(藏敎)라고도 한다.
- 통교(通敎): 3승(三乘)에 통하는 대승교(大乘敎: 대승의 가르침)
- 별교(別敎): 성문연각(聲聞緣覺)과는 별도의 보살만을 대상으로 가르침으로, 가르침만으로 모든 것을 차별면에서 바라보는 가르침
- 원교(圓敎): 부처의 깨달음 그대로 모든 것을 원융하는 가르침
현수법장의 오교십종과 화엄경
수나라때 천태 지의의 오시팔교가 있다면 당나라 초기에는 화엄종의 개조인 '두순'의 오교교판과 이를 계승해서 발전시킨 '현수 법장'의 오교십종의 교판이 있음.
오교
1) 소승교 : 소승불교의 수행자를 위해 아함경을 설함
2) 대승시교 : 초기 대승불교의 가르침으로 반야경과 해밀심경 등을 설함
3) 대승종교 : 원숙한 대승불교의 가르침으로 '능가경'과 '대승기신론' 등을 설함
4) 돈교 : 단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마경'을 설함
5) 원교 : 모든 것을 포함하는 두루원만한 최고의 일승인 '화엄경'을 설함
십종
1) 아법구유종 : 인식주체와 인식대상 모두에 실체가 있다는 관점의 종파 : 부파불교이 독자부 등이 이에 해당함
2) 법유아무종 : 인식대상에는 불변한 실체가 있지만 인식주체에는 없다는 관점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
3) 법무거래종 : 현재에만 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고 과거와 미래에는 없다는 관점 : 부파불교의 대중부
4) 현통가실종 : 과거와 미래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으며 현재에도 실체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는 관점 : 부파불교의 설가부와 성실론
5) 속망진실종 : 세속의 현상은 허망하지만 깨달음의 진리는 참되다는 관점 - 부파불교의 설출세부가 해당
6) 제법단명종 : 모든 인식대상은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 - 부파불교의 일성부가 해당
7) 일체개공종 :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일뿐이라는 관점 : 반야경의 공사상
8) 진덕불공종 : 근원적인 본질은 공일수 없다는 관점 : 대승기신론, 여래장 및 불성사상이 해당
9) 상상구절종 : 모든 것이 끊어진 경계가 궁극적인 진리라는 관점 : 유마경애 해당
10) 원명구덕정 : 모든 개별적인 것은 그 자체로 일체를 갖춘 더할 수 없는 완전체라는 관점 : 화엄경에 해당
오교[편집]
- 소승교(小乘敎): 소승자(小乘者)를 위한 가르침인 《아함경(阿含經)》의 가르침
- 시교(始敎):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설한 《반야경(般若經)》이나 연기(緣起)에 의해 본체와 현상의 구별을 역설한 《해심밀경(解深密經)》 등의 가르침
- 종교(終敎): 모든 것은 본래 변하지 않는 진여(眞如)이지만 이것이 염(染)이 되거나 정(淨)이 된다고 설하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능가경(楞伽經)》·《승만경(勝鬘經)》 등의 가르침
- 돈교(頓敎): 문자나 언어를 여의고 수행의 차례를 말하지 않고, 말이 끊어진 진여(眞如)를 가리키는 《유마경(維摩經)》 등의 가르침
- 원교(圓敎): 곧장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설하는 《법화경》·《화엄경》 등의 가르침
십종[편집]
십종(十宗)은 다음과 같다.[1][2][5][6][7]
-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 주관과 객관(主客)을 모두 실체로 여기는 종파
- 법유아공종(法有我空宗): 객관만을 실체시(實體視)하는 종파
-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만법은 현재에만 존재하고, 과거와 미래에는 공무(空無)하다고 여기는종파
-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만법은 과거와 미래에는 공무(空無)하지만, 현재에도 실유(實有)와 가유(假有)의 2종이 있다고 여기는 종파
-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세속적 진리인 속제(俗諦)는 허망하며 불교의 진리인 진제(眞諦)는 진실하다고 여기는 종파
-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미계(迷界) · 오계(悟界)의 만법이 다만 이름 뿐이고 실체가 없다고 여기는 종파
-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일체를 공으로 여기는 종파
-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 모든 성품을 진여(眞如)로 여기는 종파
- 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 진리를 불가설(不可說)이라 여기는 종파
-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 일체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며 공덕을 원만(圓滿)하고 있다고 여기는 종파
42) 인도에 대한 동경과 구법여행
인도로 떠나는 동아시아의 승려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승려들 역시 계속 중국으로 들어옴. 중국승려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인도행을 감행함. 확인되는 자료에 의하면 2세기 중반에서 8세기까지 인도로 향한 구법승은 총 131명, 한반도의 승려는 혜초를 포함한 11명.
참고) 혜초(慧超 또는 惠超, 704년~787년)는 신라 성덕왕(또는 경덕왕) 때의 고승으로, 787년에 중국의 오대산(五臺山)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입적하였다.[1] 그의 인도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1908년 발견되어 동서교섭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1]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신라 성덕대왕 때, 신라의 승려 혜초가 인도 5국(五國) 부근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그 행적을 적은 여행기이다.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였다. 왕오천축국전은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여행기이다.
중국최초의 구법승 '주사행'
중국불교의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구법승은 260년에 서역행을 감행한 '주사행(203~282)'임. 인도에 도착한 주사행은 이미 고령이 되어 282년 제자인 '불여단'에게 '대품반야경'을 중국 낙양으로 가져가게 한뒤 자신은 호탄에 남아 80세로 입적함. 291년 축숙란에 의해 대품반야경은 '방광반야경'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됨.
법현과 혜생의 간절한 구법
율장이 부족하여 승단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우려한 '법현(337~422)'은 인도를 방문하여 율장을 가져오기로 결심함. 법현은 15년에 걸쳐 30여 국을 거쳐 414년 중국으로 돌아와 불타발타라와 함께 '마하승기율' 을 번역함
혜생은 518년 실크로드를 타고 서북인도 간다라 지방으로 가서 대승경전 170부를 구해 522년에 귀국. '사서역기'를 찬술함.
육지와 바다를 오간 '현장과 의정'
중국불교에서 가장 위대한 구법승은 '현장(602-664)'이라 할 수 있음. 현장은 16년간 110개국을 돌아 귀국하면서 657종 520상자의 경정을 가지고 돌아옴. 귀국 후 현장은 '대당서역기 12권'을 저술함. 이 책은 자은전 10권과 더불어 7세기 실크로드의 문화와 인도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의정(635-713)은 율장을 가지러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돌아 400부의 경전을 가지고 낙양으로 돌아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와 '근본설일체유뷰비나야약사' 등 총 56부 230권의 경전을 번역함. 주로 율장에 관련된 경전임. 현재 북방불교에 전하는 5종의 한역 율장 중 유부율이 이 의정에 의해서 갖춰짐.
북방불교 5부율 정리
율장명 | 번역자 | 성립연대 | 사용부파 |
사분율 60권 | 불타야사, 축불염(410-412년) | BC 100 ~1 | 담무덕부, 법장부 |
오분율 30권 | 불타집, 축도생(424년) | BC 100 ~1 | 마사색부, 화지부 |
십송율 61권 | 불야다라, 구마라집(404년) | 1~100 | 살바다부, 설일체유부 |
마하승기율 40권 | 불타발타라, 법현(410년) | 100 ~200 | 마하승기부, 대중부 |
유부율 157권 | 의정(635~713) | 300~400 | 설일체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