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5코스
고려 고종과 삼별초의 흔적을 찾아서
강화내성 서문-석수문-국화저수지-고종 홍릉-고비고개-오상리고인돌-
고려저수지-내가면고천리-외포리선착장-삼별초항몽유허비
2026년 6월 7일 (일) 흐림
[강화나들길 5코스 안내도]
<강화나들길 5코스>는 '강화도'를 동-서로 횡단하는 코스로 20.2km란다.
<강화지맥>이 지나는 <고려산>과 <혈구산> 사이의 "고비고개"의 "옛 고개"를 넘는 코스여서 제법 어려운 코스다.
오늘 나는 <강화나들길 5코스>에 있는 <고려 제23대 고종>이 <무신정권> 하에서 휘둘리며 살다 사라져 간 흔적인
<홍릉>과 <무신정권>의 마지막 아우성인 <삼별초의 난>의 흔적을 찾아 간다.
[강화내성 서문] 9:20
<신논현역 버스정류장>에서 <M6427 광역버스>를 타고 <김포 구례역>에 내려 <70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강화버스터미널>에 내려 지난 <강화나들길 1코스>와 중복되는 <남문>에서 <서문>까지는 건너 뛰고
<서문 첨화루 西門瞻華樓>에서 출발한다.
['석수문 방향]
<서문>에서 <석수문>으로 건너 가면...
[석수문]
<나들길1코스>에서 만났던 "석수문 石水門"을 다시 만나고
[석수문에서 서문 조망]
<석수문>에서 <서문>을 뒤돌아 보고
[고려산 조망]
"동락천 東洛川"을 따라 조금 올라 간다.
"고려산 高麗山"을 확실히 알아 두어야 방향 잡기가 쉽다.
<고려산> 정상엔 미군 레이더기지가 있기 때문에 <강화도> 어느 곳에서나 확인하기 쉽기 때문이다.
[강화공설운동장] 9:24
<석수문>에서 50m쯤 올라 가면 좌측에 "강화공설운동장"이 있고
그 뒤로 <덕신고등학교>가 보인다.
<동락천>을 따라 조금 더 올라 가면...
[덕신고 사거리] 9:27
<덕신고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동락천>을 따라 올라 간다
<동락천>을 따라 7분여 올라 가면....
[국화저수지] 9:34
"국화저수지 菊花貯水池" 둑에 올라 선다.
1978년에 조성된 저수지로 '강화읍'과 주변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고...
[국화저수지]
저수지의 수면적은 약70,000평으로 예전엔 강화도민의 식수로 사용되었단다.
<강화나들길5코스>는 "옛고비고개길"로 넘어 간다.
<고려산> 중턱에 <고려 제23대 고종>의 무덤인 "홍릉"이 자신이 살다 간 <강화도성>을 바라보며 있다.
좌측 <혈구산>은 <연개소문>의 전설이 담겨있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산이다.
무었보다 <강화지맥>이 남북으로 길게 가로 지르는 산줄기 이다. 2013년에 종주 한바 있다.
[강화내성 조망]
<국화저수지>에서 "강화읍내"를 바라본다.
몽고의 침입시대 때 옛 고려의 도성이었던 "강화내성"이 있던 자리다.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세자인 아들을 화친을 위해 <몽고>로 보내며 바라 보았던 <견자산 見子山>도 새롭다.
<몽고>를 다녀온 아들 세자는 후에 <제24대 원종>이 되어 <개성>으로 환도하며 "강도시대 江都時代"를 끝낸다.
"강도시대"가 끝나며 "무신정권"도 몰락하며 <몽고 지배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첫번째가 마빡에 "忠"字를 박은 <충렬왕>이며 왕비인 <정화궁주>를 밀어 내고 <몽고 제국대장공주>가 왕비로 앉으며
실질적인 '女王'이 되어 "몽고 지배"의 시대로 가는 것이었다. '몽고반점'의 시작이기도 하었다.
[국화리 마을 조망] 9:45
<국화저수지>를 좌측으로 돌아 '강화읍 국화리'로 들어 가고
[동락천 상류] 9:47
<고려산>과 <혈구산>에서 내려오는 "동락천"이 <국화저수지>에 유입되는 곳을 지나면...
[고비고갯길 입구] 9:48
<고비고개길>의 입구가 반긴다.
5분여 <동락천>을 따라 직진하면....
[국화리 농촌체험마을] 9:53
"국화리농촌체험마을" 입구를 지나고...
5분여 마을길을 진행하면...
[적석사 방향] 9:58
갈림길을 만나는데 "적석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10:00
이어서 다시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표가 길안내를 한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12분여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고...
[갈림길] (길조심) 10:12
마을길에서 샛길로 꺽어지는 곳을 만나는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쉼터] 10:21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10여분 진행하면...
[강화학생야영장] 10:22
<인천시 강화국화리 학생 야영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삼거리] 10:23
이어서 <국화리학생야영장 정문>과 <홍릉>으로 가는 도로를 만난다. 길조심을 해야한다.
<강화나들길>은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 우측으로 간다.
다만, <고려 홍릉>을 다녀 가려면 우측으로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 와야한다.
나는 오늘 답사의 하일라이트가 <고려 제23대 왕 고종>의 무덤인 <홍릉>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녀 오기로 한다.
[홍릉 방향]
<홍릉>까지는 왕북 1,1km 정도 되는데 약간 가파르다.
조금 올라 가면...
[홍릉 입구] 10:25
<학생야영장 정문>과 <홍릉입구>를 만난다.
우측을 바라보면...
[학생야영장 정문]
"인천시 강화국화리 학생야영장 정문"이 있는데 야영장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야영장 후문]
<홍릉>으로 올라 가다 만난 야영장 후문에서 바라본 야영장 내부.
5분여 더 올라 가면....
[홍릉 재실] 10:30
"고려 제23대 왕 고종"의 재실을 만난다.
<고려왕>들의 왕릉은 거의 대부분 북한 <개성> 근처에 있어 가 볼수 없다.
하지만 <강화도>엔 2기의 고려 왕릉이 있는데 바로 <23대 고종-홍릉>과 <21대 희종-석릉>이 있다.
<23대 고종-홍릉>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 살다 <개성>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고
<21데 희종-석릉>은 <무신정권>을 깨 부실려고 하다가 자기가 되레 부셔져 유배 왔다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홍릉 재실 조망]
<재실> 안으로는 들어 가볼수 없게 잠겨있어 <홍릉>으로 올라 가며 들여다 본 <재실>이다.
재실엔 "만녕재 萬寧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을 뿐 왕릉 재실로는 초라하다.
[홍릉 가는 길]
<재실>에서 <홍릉>으로 올라 가는 길은 공사중이라고 막아놨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다시 올리도 없기에 무시하고 올라 간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8분여 올라 가면...
[홍릉 입구] 10:38
도로는 사라지고 돌계단이 왕릉의 입구임을 알려 주고...
[홍릉 하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과는 달리 너무 초라한 <고려 왕릉>을 만난다.
[안내문]
"홍릉 洪陵"에 대해선 안내문을 꼭 읽어 보시라
[홍릉]
"홍릉 洪陵" "고려 제23대 고종의 릉"
봉분을 수리하느라 공사 중이다. 관리자가 공사 중인데 왔다고 지랄한다.
공사하는데 아무른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공사 우선인가? 관람 우선인가. 공사하는게 뭔 끝빨인가.
묘비에는 "高麗高宗洪陵"이라고 쓰여 있다.
[고려 왕조 계보]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 시대>를 종결시키고 서기918년에 통일 왕국을 탄생시켜
<이성계>에 의해 왕국이 무너 질 때까지 474년간 유지 되었던 전제군주정 국가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고려"는 <태조 왕건>대부터 <제17대 인종>대까지 였고
그 이후 <무신정권>과 <몽고침탈시대>가 이어져 "고려왕씨왕조"는 실제 <17대 인종>까지 220여년 뿐이였다.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 다시 "왕씨왕조" 재건을 도모한 <제31대 공민왕>이 있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이성계>에 의해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 朝鮮"으로 갔다.
<무신정권> 치하에서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제23대 왕 고종"의 무덤이
고향으로 돌아 가지도 못하고 쓸쓸히 외로이 남아 있다.
[갈림길] 11:02
<홍릉>에서 다시 내려가면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차단기] 11:14
"옛고비고개"로 넘어가는 오르막 고갯길을 올라 간다.
점점 가파라지는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면....
[고개] 11:19
"옛고비고개"
옛날 보부상과 짐꾼들이 넘나들던 고개였으며
강화도를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강화지맥"이 지나는 고개이다.
우측 계단으로는 <고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新고비고개>와 <혈구산>으로 가는 길이다.
2013년에 종주한바 있다.
<강화나들길5코스>는 직진해 내려 간다.
[내림길]
완만한 내림길을 15분여 내려 가면....
[흑석사 입구] 11:34
<흑석사 입구>라는 임도를 만나는데 좌회전하고
[갈림길] 11:35
이어서 길 안내 리본이 펄럭이는 갈림길을 만나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 간다.
10여분 숲길을 진행하면...
[고천4리 마을] 11:45
<내가면 고천4리 마을>을 만나고..
[고천리고인돌 입구] 11:48
이어서 <고천리 고인돌 입구>를 지난다.
<강화나들길 14코스>에 있는고인돌로 너무 멀어 생략하고 뒤돌아 보면...
[고려산 조망]
<고려산>이 가까이 조망되는데 <강화지맥 마루금>을 넘어 왔다는 것을 실감 할수 있다.
[혈구산 조망]
남동쪽으로는 <新고비고개>와 <혈구산>이 가까이 보이고...
[고천리 조망]
진행해야할 서쪽으로는 <고천리 마을>이 평화롭게 펼쳐지며
그 뒤로 <석모도>의 <해명산>이 조망된다.
<고천리>를 15분여 통과하면...
[고개] 12:14
이름 모를 고개를 넘게 되는데...
[삼거리] 12:15
이어서 삼거리를 만난다.
<강화나들길5코스>는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 가고, 우측으로는 <강화나들길17코스>가 이어진다.
16분 정도 조용한 길을 따라 내려 가면...
[길조심] 12:31
느닺없이 좌측으로 길이 꺽어지는데 이정표가 위에 있어 지나치기 쉽다. 길조심 해야 하는 곳이다.
계단을 올라 가면...
"오상리 고인돌군 鰲上里支石墓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낙조봉 조망]
<오상리 지석묘>에서 <강화나들길17코스>가 지나는 <적석사><낙조봉>을 조망한다.
"적석사"는 "강화8경" 중에 하나로 "낙조봉"과 함께 명승지로 꼽힌단다.
강화홈피에서 인용하면...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합니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입니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습니다.
10여분 숲길을 진행하면...
[오상리 마을] 12:44
<내가면 오상리 마을>을 만나고...
[저수지 관리소 앞] 12:45
이어서 <고려저수지 관리소> 앞을 지나면...
[고려저수지]
"고려저수지 (내가저수지)"에 도착한다.
강화도에서 두번째로 큰 저수지인데,
이곳에 저수지가 1950년대초에 신축되기 전까지 "고천"이라는 "강화에서 두번째로 큰 마을"이었단다.
<강화읍>에서 <고천리>로 넘는 고개 이름인 "고비고개"의 어원이 되는 마을이란다.
[저수지댐]
"금계국"이 만발하기 시작하는 <고려저수지 제방>을 지나며....
[고려저수지 조망]
동쪽을 바라보면
<고려산>과 <혈구산>이 조망되며 저수지 변으로 주택들이 평온하고 아름답다.
[오상리 조망]
서쪽으로는 <오상리>가 펼쳐지며
그 뒤로 <석모도 상주산>과 다시 그 뒤로 <교동도 화개산>이 조망된다.
[수문]
수문이 있는 곳에선 더 이상 수변길을 진행할수 없고
[고천리] 1:03
제방 아래로 내려가면...
[잘못된 이정목]
이정목이 길안내를 하는데 잘못된 이정목이다.
<강화나들길>이 생긴게 언제인데 아직도 이렇게 서 있나
여기선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고려저수지 입구] 1:08
<고려저수지 입구 삼거리>로 나가서 좌회전 하면...
[내가초등학교 앞] 1:09~1:24
"내가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내가면사무소 앞] 1:27~1:35
이제 체력이 달리고 발바닦도 아프다.
때마침 <외포리>로 가는 버스가 오고 있어 남은 구간은 볼거리도 없고 해서 버스로 이동한다.
<49번시내버스>를 9분 정도 타고 가면...
[외포리 버스정류장] 1:44
<외포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외포리 선착장"으로 나가면....
[외포리 수산물직판장]
[외포리선착장] 1:46
"외포리 선착장"은 <석모도>를 오갈때 이용하던 선착장이었지만 현재는 <석모대교>가 건설되 배는 끊겼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여기서 북쪽을 바라보면...
[삼별초비 조망] 1:46
오늘 답사의 두번째 하일라이트인 <삼별초 기념비>가 있는 곳을 조망한다.
<외포리 선착장>을 가도 <삼별초비>가 어디 있는지 잘모르기에 알려 드린다.
[삼별초비 앞] 1:51
<외포리 선착장 상가> 끝 지점인 <망양돈대> 아래에 <삼별초>의 흔적이 있다.
[삼별초비와 조형물]
<삼별초>가 <몽고>와의 화친을 거부하고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 받는다는 명목으로
<무신정권>의 <삼별초> 우두머리인 <배중손>등이
<고려의 왕손>인 "왕온"을 추대하여 왕으로 모시고 항거하자, <고려왕실>과 <몽고군>이 합세해 진압하려하자
이곳 <외포리>에서 천여척의 배를 타고
<삼별초>가 <전라남도 진도>로 도망치고, 그곳도 함락되자 다시 <제주도>로 도망쳤다.
이러한 사건을 우리 역사에선 "삼별초의 난"이라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 또는 "반정"이라하고, 실패한 쿠데타를 "난 亂"이라 한다.
그러므로 <삼별초의 난>은 "실패한 쿠데타"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외세와 맞서 싸운 호국정신은 다른 각도가 아닐까
"진돗개"와 "돌하루방" 조형물이 지역간 관련이 있다고 세워졌단다. 좀 웃긴다. ㅎ
[삼별초비]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三別抄軍護國抗夢遺墟碑"
"삼별초의 난"은 정말 몽고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행위 였을까....
<무신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권력욕에서 나온 쿠데타였을까....
[제주도를 향해]
<진도>로 이동해 성을 쌓고 저항하던 <삼별초>는 <고려>와 <몽고>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패배 당하자
살아 남은 일부는 다시 <제주도>로 도망간다.
<제주도>에서 마저 처참한 꼴을 당하자 이번엔 <일본 오까나와>로 도망쳤다고 한다.
[진도를 향해] 1:55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제24대 원종>은 <몽고>와 화친하고 <개경>으로 환도를 결정한다.
이에 반발한 <무신정권>의 잔당인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군>은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향한다.
<진도>에 도착한 <배중손>의 <삼별초>는 <진도>에 "용장성 龍藏城"을 쌓고 <왕온>을 왕으로 모시며
고려의 재건을 도모했지만 1년도 못가 패배하고 <배중손>과 <왕온>은 죽었다.
그곳을 다녀 온바 있어 <용장성> 사진을 첨부한다.
[진도 고려항몽충혼비] (참고자료)
[진도 용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