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가 있는 풍경

헛다리(2)

작성자hotlip|작성시간26.06.07|조회수138 목록 댓글 0

헛다리(2)

 

  5월 끝자락 비 갠 흐린 날, 육십여 명의 우산을 든 시니어들이 상춘객이 되었다. 올해는 예순과 여든이 가끔 오버랩이 되는 해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연수가 산수(傘壽)의 나이에 접어들자, 고교 개교 80주년과 졸업 60주년이 되었다. 60여 명이 참가한 남이섬 봄 소풍이 그 기념행사의 하나다.

  섬의 중앙 잣나무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메타세쿼이아길로 접어들었다. 그곳 메타 나루에서 모터보트로 호수의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강변 오솔길을 따라 섬 가장자리를 한가히 거닐기도 하였다. 낙엽 지는 가을이면 은행나무길도 한번 걸어 보고 싶은 운치가 있는 곳이다. 숲 여기저기에서 야생 토끼들이 옹기종기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늑한 달나라 그림이다. 포식자가 없어서인지 몸짓도 부요해 보인다.

 

  섬 아래쪽의 순례를 끝내자, 강변에 놓인 나무다리가 시선을 잡는다. 그런데 나무 팻말에 적힌 이름이 섬찟하다. ‘헛다리’라는 문구가 출입을 막는다. 순간 둔탁한 물체에 머리를 부딪힌 듯 멍하다. 돌아보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얼마나 숱한 헛수고로 세월을 지나쳤을까.

  헛다리란 대상을 잘못짚어 아무 성과 없이 헛걸음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착각과 헛수고를 뜻한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갔으니. 그 팻말은 더 이상 어리석지 말라는 경고문이자, 이제는 현자가 되라는 아포리즘으로 보인다.

  시각을 달리해 보자. 다리 이름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린 자의 허무와 허탈감의 진솔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로 지혜서인 전도서를 시작한다.

  그는 이 땅에서 아무도 누려보지 못했던 영광인 지혜, 부, 권력, 여인을 가졌다. 이러한 축복이 오히려 영적 타락과 덧없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늦은 깨달음이었다. 영원한 진리 곧 창조주를 떠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고백이었으리라. 부질없는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군상들에게, 혹 ‘헛다리’란 상징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다리는 서로 다른 공간이나 시간, 마음을 잇는 연결과 소통의 매개체이다. 또한 장애물을 건너 목적지로 나아가는 통로인 극복과 이동의 도구 역할도 한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팝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무척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험한 세상의 거센 물살을 건너지 못해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가.

  다리란 헛수고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도구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저승에 이르는 강이 다섯 곳이나 흐른다고 전한다. 그중 ‘비통’의 강은 배를 타고, 나머지는 혼자서 건너야 하는 강이다. 다리도 없는 강 건너기가 얼마나 외로운 발걸음이었을까.

  더러는 숙명적인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전 피렌체 여행에서 단테가 그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여 신성한 빛과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원의 인도자 역할을 담당한다.

 

  놓친 곳도 있었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를 보았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미리 알지 못했다. 섬 중앙 ‘도깨비 동산(Goblin Forest)’에 위치한 독특한 나무다. 뿌리가 하늘을 향하고 줄기가 땅을 향하도록 거꾸로 매달아 놓은 이색적인 조형물이다. 유쾌한 예술적 상상력과 역발상을 보여주는 작품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생각해 보니, ‘헛다리’의 상징들 모두가 양면성과 역발상을 산출해 낼 수 있는 도구로 보였다. 남은 시간이나마 즐거운 역발상을 하며 자유인으로 느리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할 수 있으면 작은 외나무다리라도 되고 싶다.

 

  이제 이 땅의 언덕을 내려올 연수이다.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선지(行先地)가 보이지 않는 낯선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서도 헛수고를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