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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꽃마당

작성자hotlip|작성시간26.06.11|조회수49 목록 댓글 0

꽃마당

 

 

  하루에도 몇 번을 지나가는 산동네 꽃마당은 가히 천국의 풍경이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온갖 꽃으로 내게 위로를 해주고 있기에 그러하다.

  지난해 여름 꽃마당은 황폐했다. 예년 같으면 코스모스와 가을꽃들을 준비하느라 바쁠 터인데, 오히려 상징물과 구조물을 철거하고 출입을 막아버렸다. 들리기에는 그 땅에 주택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봄이 왔다. 황량했던 무채색 겨울을 이기고 꽃마당에는 띄엄띄엄 보라색 수레국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뻤다. 봄볕이 따스하게 대지를 녹이자 빨간 꽃양귀비 무리가 나타났다. 보이는 것 모두 남겨진 잡초뿐이라고 허탈했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신비하도록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웃 수변공원에는 봄꽃들이 연이어, 다투어 피었다. 그에 비하면 꽃마당은 한적했다. 그러자 어디에서 숨어 있었는지 모를 하얀 망초와 개망초꽃이 무리 지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즈음 바로 옆, 학교 담장에 봄의 여왕인 장미가 붉은빛을 뿌려내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노란 금계국군락이 위용을 떨치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텅 비어 있던 꽃마당을 꽃양귀비 바다로 출렁이게 하는 풍경이다. 그러다 하얀 망초꽃이 패권을 잡는다. 그다음은 노란 금계국 차례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씨를 뿌리지도 않았을 터인데, 환희의 물결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겠다. 아마 자연에 맡겨 버리니 꽃들도 스스로 질서 있게 반응하는 게 아닐까.

 

  산동네로 거처를 옮겨 자연과 가까워지자, 다음 생이 있다면 정원사로 살아보고 싶었다. 사계절을 따라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정원을 가꾸는 일이 부러웠다.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월든 호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호수 지역의 워즈워스, 이니스프리의 예이츠, 뉴잉글랜드 농장의 로버트 프로스트, 모두 자연과 함께한 정원사이며, 마음이 부요한 시인들이었다.

  자연주의 정원을 가꾸려면 식물이 피고 지는 전 생애와 생태적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잎과 꽃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화로운 색깔의 배열도 신경 써야 한다. 또한 풀과 관목, 나무의 높이도 위치에 따라 어울리는 배합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수종과 꽃들을 선별하여 식재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자연의 미학이 요구된다.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최고의 정원사는 누구일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최고의 정원사는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방식을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애당초 자연에 가르침을 구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했다.

 

  정원이란 멀리 있는 ‘자연’을 가까이 불러와 ‘또 다른 자연’을 만드는 인간의 예술이므로, ‘만들어진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은 인간 정신에 가장 좋은 청량제이며 원예는 최상의 예술이다.”라고 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에 수긍이 간다.

 

  봄꽃들이 꽃마당을 떠나버리면 여름과 가을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까. 혹 땅속에 숨은 꽃들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코스모스는 가을바람에 하늘거릴 수 있을까.

  갑자기 이 땅이 싫어졌다. 서울에는 주택이 모자란다고 한다. 지금 청계산 부근 전원풍경의 ‘S 마을’은 현수막으로 야단이다.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라 한다. 남아있는 숲과 마을을 마구 개발해야 한다는 철학 부재의 행정편의 착상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내년 봄에도 산동네 꽃마당이 자연 그대로 살아 있기를 바란다. 최소한 대문 앞의 미학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꽃마당은 공공정원이다. 도시화 된 메마른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녹색환경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관계기관에 있다. 자연을 훼손한 만큼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의 재앙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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