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는 진짜 지혜가 나서 법으로 생활할 때 진짜 연꽃처럼 보이는 거고,,,
그럼 우리가 또 다시 정진력을 모아야 되겠죠? 정진(위리아)해서 부처님의 담마에 대해서 이해를 많이 하게 되면 분명하게 안다는 것인데 그 베이직이 뭐죠?
사띠가 있어야 되죠? 그래서 두는 사띠, 묻는 사띠, 있는 사띠, 되는 사띠,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띠로서 앎을 놓치지 않는 사띠가 되어야만 여기 손에 들고 있는 이 연꽃이 제대로 연꽃으로 보여요. 보여지기 때문에 보는 거예요.
‘오, 연꽃이군!!’ 스스로 그 자연적인 성품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보는 거여요. 결코 내가 보는 게 아닙니다. 내가 본다고 할 때는 (연꽃이지만) 절대로 연꽃으로는 안 보여요.
왜, 왜, 왜, 여러분들한테 쭉 내가 물어봤죠? 진흙 속의 연꽃 할 때, 이 ‘진흙’에 대해서 쭉 물어보았더니 여러분들이 다 대답했잖아요?
앞에 앉아있는 김해 거사님은 오탁악세(五濁惡世)다, 진석이는 세속이라고, 보살님들도 번뇌(낄레사)다, 뭐다 등등 그렇게 얘기했단 말이죠?
보는 쪽에서, 보는 마음에 염오(染汚)가 되면, 오염(汚染)이 되면 있어도 안 보여요. 이렇게 손에 쥐고 있어도, 보여도,,,,
저쪽 바깥 쪽 말고, 이쪽 안쪽, 보는 쪽에서 오염이 되면, 염오가 되면 오탁악세, 낄레사 번뇌, 불선의 마음, 바르지 못한, 잘못 보는 견해 등등 ‘진흙’으로 보면 안 보인단 말예요.
진흙, 안 보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보일까요? 보는 마음, 보는 쪽에서 무엇보다도 깨끗, 청정, 투명하게 닦아내야 된단 말예요.
갈고 닦는 게 수행입니다. 그 오탁악세 되어서, 안 보이는, 깜깜한 어둠으로 된, 진흙으로 된 마음을 갈고 닦고, 깨끗하게 투명하게 닦아내니까 그제서야 보이기(순수) 시작하는 거여.
있어도 안 보이던 것이, (손에 쥐고 있으면서) 이렇게 드러나 있어도 안 보이는 겁니다.
안보일 때는 함부로 연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진짜 연꽃으로 보여지기까지 닦아내야 돼요.
우선은 연꽃으로 보이기까지는 상당한 기간도 필요하고, 보는 힘(power)도 기꺼이 길러내야 되고, 그 품질도 아주 좋아야 되고, 마음 상태가 엄청 깨끗, 청정, 투명, 순수해야 되겠죠?
마음도 깨끗해야 되고, 견해도 발라야 되고, 이게 말하자면 진짜 연꽃들을 볼 수 있는 지혜의 조건으로 바꾸어 놓는 게 ‘회향’이라고 합니다. 다 바뀌었죠?
앎(지혜)으로 다 바뀌었단 말이죠. 깨끗하고, 청정하고, 투명, 순수한 그 완전체가 지혜거든요. 어둠에서 밝음, 깨어남으로..
그래야만이 연꽃도 제대로 볼 수 있단 말예요.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그냥은 아니고요.
그렇게 깨끗하고 청정하게 닦아낸 마음(앎)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거예요. 바르게 보기 때문에 바르게 보이는 거여요.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성품인 거죠.
깨끗하고 청정하고 투명, 순수, 밝음, 바름 그야말로 지혜덩어리, 금덩어리, 금강석과도 같죠.
아까 오탁악세로 볼 때, 그 보이는 덩어리를 뭐라고 그랬죠? 무슨 덩어리라고 하는지 아세요? 방금 말한 깨끗, 청정, 투명, 순수함, 밝음과 상반되는 것, 그게 오취온 덩어리.
지금 자기 자신의 몸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한번 살펴봐 보십시오. 직접 한번 봐 보십시오.
사띠 없이, 지혜 없이 그냥 놔먹인 마음, 과거 업에 의해
받아온 마음, 업식이 되겠죠?
그 덩어리가 오취온 덩어리, 지금 자기 자신의 몸이라고 알고 있는 몸이 그 덩어리라는 겁니다.
오탁악세, 세간8풍 덩어리예요. 그럼 이 몸(덩어리/온)을 어떡할 겁니까?
그런데도 신줏단지 끌어안듯 모시고 산다는 건 너무나도 억하심정(抑何心情), 언감생심(焉敢生心) 아닌가요?
너무하지 않나요?
그렇게 신줏단지 모시고 다니면서 온갖 또 무슨 짓은 다 해요?
오탁악세, 세간8풍을 위하여 악업(不善)은 다 저지르잖아요? 얼음장 밑에 꽁꽁 숨겨둔, 준 것 없이 미운 마음 꺼내 들고 앞장 세워서 막 휘두른단 말예요.
그런데 그게 누구한데 되돌아 간다고요? 본인한테.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와 즉시 맞는다는 것, 부메랑 법칙 아시죠?
상대방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자신이 맞는다는 법입니다.
그럼 인과응보가 어디에 있는 거죠?
순전히 자기 자신의 마음, 정신세계의 문제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안 이상 너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여지껏 자신의 마음한테 아무 것도 배우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법이란 법 자체를 모르고 쓸모없이 살았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겁니다.
이번 생 그냥은 눈 감고 못 죽어. 그냥은 못 죽는단 말입니다.
이생에 태어나서 그냥은 못 죽는단 말예요. 그냥 죽는다는 거는 저승사자한테 끌려가는 거여요.
실은 저도 오늘 아침, 이게 고찰되면서 패닉(Panic/공황상태)이 됐어요.
지금 울고 불고 하는 여러분들이 계시지만 다 같은 마음상태에요.
저도 패닉이 됐다니까요? 그래도 이 법문을 設해야 되겠다는 까닭은 왜 그랬겠어요?
오늘 회향했다고, 끝났다고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도, 집에 가서도 꾸준히 사띠(알아차림)를 이어지게 해서 있는 사띠가 되도록 꾸준히 부단없이 해줘야 된다는 겁니다.
부디 끝났다고 하지 말고 이때부터 시작이다, 또다시 시작이다, 다시또 시작이다, 정진의 정진의 정진을 거듭거듭 자꾸자꾸 해줌으로서 가속도 유지가 되어서 ‘있는 사띠’로 대상과 아는 마음이 함께 할 때 팔정도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이 몸과 마음을 늘 사띠 있시 보고 또 보고 하는 게 불방일이요, “잊지 말거라 사띠를..” 입니다.
지금 알아차림, 있는 사띠로서 몸을 본다는 게 뭔지 아십니까?
앗수바 바와나(Asubhā bhāvanā/좋다라고 보지 않는 것)가 있거든요? 그 수행으로 봐야 됩니다.
오탁악세가 얼마나 오염되고 염오되게 하는 줄 아십니까? 이렇게 보는 것이 곧 부정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보는 쪽의 質(quality)이나 이해, 정도로 보면 그래요.
오탁악세, 오취온 덩어리, 진흙탕 속에 있는 몸뚱아리 그리고 그 마음, 이걸 대상으로 보는 게 不淨觀(Asubhā bhāvanā)입니다.
부정관을 어디서 찾습니까?
이런 자신의 몸과 마음, 오염되고 염오된 마음, 다시 말하면 깨끗하지 못하고 청정하지 않는 마음, 밝음이 없는 것, 사띠+지혜가 없어서 알지 못하는 마음, Moha(anaud/치심). 알아차림이 털끝만큼도 없는 마음.
수행하는데 있어서 사띠라는 소리라도 제발 들어둬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귀를 가졌으면..
아, 사띠라는 말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 사사나 스님이 하는 말이 아니잖습니까? 오죽하면 부처님께서 ‘잊지 말거라 사띠를’ 유언으로 남기셨을까요?
너무 소중하고 고귀하고, 오취온 덩어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귀를 달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사띠라는 소리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지구상에는 허다합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얘기죠? 2600년 전 얘기예요.
이 법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지금 바로 그 깨우침, 사띠의 가치를 일깨워 주려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사사나 스님의 회향법문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그 깨우침을 배우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수행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능숙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의 지혜가 그렇다는 겁니다.
대상으로 아는 수행의 가치가 이와 같습니다. 더는 없습니다.
_(2023’ 5박 6일 여름 휴가철 집중수행 회향법문 중 일부)_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김민경 작성시간 23.08.2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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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hammacitt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8.22 혹, 강원도 사시는 분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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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민경 작성시간 23.08.22 Dhammacitta 아님니다..
울산입니다~이번 집중모임에 처음들려서 귀한 법문 들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Dhammacitt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8.22 김민경 아이구, 제가 헷갈렸네요.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리...
네, 이곳 선원에서 뵌 분이시죠? 다음 법회 때에도 뵈어요.~^^* -
작성자떡심 작성시간 23.09.01 사두 사두 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