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평생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문제가 없고, 좋기만을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괜찮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주 강력합니다. 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지혜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져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들은 아주 강력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가끔 이런 『자연의 성질들』은 아주 강력합니다.
‘나’라는 생각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나’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힘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아주 깊고 자연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自我에 대한 생각이 멈추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도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내가 없다는 것'이 아주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자아에 대한 생각이 다시 마음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는 ‘나’라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로바(lobha 탐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로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모릅니다. 내가 당신에게 지금 마음에 어떤 로바가 있는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있습니까?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들이 아무 문제도 없길 바랍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마음이 일어납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 여기 들어와서, 인터뷰를 중지 시킨다면 어떻겠습니까? 조금 전까지는 인터뷰 하는 것에도 로바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생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문제가 없고, 좋기만을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괜찮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주 강력합니다. 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지혜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져야만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나를 방해한다고 하면, 그 즉시 화가 일어납니다. 마음 상태가 완전 뒤집어집니다.
왜 화가 납니까? 그전부터 로바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지혜의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그 지혜의 수준만큼 미세한 번뇌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모하, 사견도 아주 강력합니다. 이 마음들이 아주 활발할 때는, 말만 하면 ‘나’, ‘내가’, ‘내 것’이라고 하게 됩니다.
평상시 마음에서는 ‘나’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자 있을 때는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가까이에 왔을 때, ‘나’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일어납니다.
마음에서 ‘저 사람이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지?(what do you want from me?)’라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혼자 있을 때는 볼 수 없습니다. 이미 있지만, 알지 못합니다.
대상이 나타났을 때 ‘나’라는 생각이 더 분명해집니다. 누가 다가오게 되면, 마음은 이미 ‘나’, ‘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아주 강력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Sayadaw U Tejaniya's Dharma Tal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