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만큼이나 아름다운 목단꽃 이희세 선생님댁
*1신
제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였는데 “나는 55세 까지만 일 하겠다.”
그때가 55세 되기 5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 사업을 구상하여 실천하길 원하였는데 이러저러한 사정과 옆 사람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서 생각을 접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매우 허탈한 감정과 함께 더는 내게 기회란 없겠구나 하는 감이 엄습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수입도 괜찮았고 아울러 별로 어려움은 없겠구나 하는 자위를 통해서 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겠지 해 보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별로 많은 시간이 안 걸렸는데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미국 발 경제난 입니다.
저는 재작년부터 부동산에 눈을 돌려 그에 매진을 하여볼까 하는 구상을 하고 주위 분들과 상의하고 그분들로부터 동의도 얻어 가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있는데 이명박씨가 유력한 주자이더군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하는데 불안감이 엄습을 하더군요. 단순한 감이라기보다는 믿는 사람으로써 그 사람의 도덕성을 보았을 때 도저히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용납을 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 후 상황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모든 분들께서 아시는 상황입니다. 미국 발 경제난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은 사서 고생하는 면이 없잖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볼 때에도 고 환율 정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수를 늘려 국고를 튼튼히 해야 할 시기에 부자들을 위한 감세, 현 경제 위기의 근원이 부동산 투기에 의한 거품인데 부동산에 군불 지 피우기, 토목공사에 목을 메는 자세, 더해서 갈팡질팡 경제정책은 무엇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는 경제에는 더 없는 독약일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발전해가는 남북관계를 파탄 냄으로써 안보 불안에 더하여 개성공단과 북한을 통과하여 유럽으로 연결되는 철도 사업, 시베리아로부터 북한을 통과하여 내려올 가스관 사업 등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 10년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후손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멍에를 남겨두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저의 감이 결코 근거 없는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네요.
“더는 내게 기회가 없겠구나” 막연한 예측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올 봄부터였습니다.
경제난과 함께 찾아온 고 환율은 하는 사업에 큰 주름살을 안겨주었고 별별 생각을 다하게 하였습니다만 인간의 생각은 망조밖에는 더 있겠는가 하나님께 맡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지요.
뜻밖에도 그림을 그리라시더군요.
어떻게?
저는 얼마 전부터 이희세 선생님이 외롭게 사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매우 아파서 이러 저러한 구상을 하여 보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머뭇거리던 참이었는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이렇게라도 시작을 하는 데에는 앞 짧은 저의 경솔함이 자리하고 있어서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허물을 꾸짖으실 때 저의 허물로 인하여 부끄럽게 하셨던 저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혹 제가하는 작업이 저의 짧은 이론과 함께 미술사에 기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가 한 켠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일을 추진하면서 정말 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옆 사람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그때가 55세 되기 5년 전 구상 때에도 결정적인 방해를 했던 사람이 이번 일에도 저를 몹시도 불편케 하는군요.
이번 저의 결정이 어쩔 수 없는 막다른 지경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된 달갑지 않은 일인데 무슨 일인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저의 심기를 가지고 놀려 하는지 도저히 참기 힘든 분노를 유도하는군요.
태산과 같은 어려움에 더할 수 없는 악한 생각을 수 없이하는 사람에게 남의 딱한 사정이랍시고 그걸 해결해주자는 둥 왜 할 수 없느냐는 둥 ……
저의 몸도 이제 50줄을 넘었다는 사이렌인지 이곳 저곳에서 신음이 만발하는데 누구의 건강이 어떻다 는 데 하며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한숨밖에는 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는 무슨 생각인지 나의 구상을 무너뜨려 보려는 시도를 하며 결국은 분노를 폭발하게 하더군요.
반성을 할 줄 모르고 감사하여야 할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의 소행입니다.
분노 만으로 끝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터질 듯 하는 저의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모욕은 싫습니다.
고생은 더 할 수 있고 먹는 것은 덜먹고 허리띠를 졸라 멜 자신이 있지만 모욕은 도저히 참지를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는지?
얼마나 한 손해는 감수할 자신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훌훌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모욕은 참을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이 잘되기를 기도 합니다.
제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부탁하여서 허락 받아 제 인생의 마지막을 잘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오늘 꿈은 정말 잘 꾸어야 하겠습니다.
2009.4.20
*2신
좋은 꿈을 꾸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은 새벽 6시까지 뒤척이다가 잠깐 눈을 붙였는데 너무 짧은 밤이 꿈꿀 여유를 주지 않아 꿈 없는 늦잠을 자는 것으로 만족 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먼저 라스코 동굴입구에서 작업을 할 수 없을까 하여 그곳에 전화를 하였더니 그곳에서는 어떠한 상업 활동도 금하는 법이 있어서 절대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실망을 하여 망연자실한 제게 이선생님께서 사할라를 가보자시더군요.
물론 먼젓번에 이선생님께 의논을 드릴 때 분명 좋겠다고 미술 활동을 사할라에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방안이라고 말씀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망연자실 넋을 놓아버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점심을 먹고 사할라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사할라로 가는 동안 임대 또는 도착하여서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 하는 동안 길거리의 화가가 될 것인가 또는 아뜰리에 겸 겔러리를 할 것인가를 의논하는 중 이미 그곳에 터잡고 작업을 하여 직접 판매를 하는 작가의 겔러리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선생님께서 불쑥 겔러리로 들어가서 작가분과 대화를 시도 하셨는데 나의 의도를 설명을 들은 그 작가 분이 자신의 겔러리 바로 아래에 겔러리로 쓸 수 있는 가게가 나와 있으니 한번 복덕방에 전화를 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 가게에는 세준다는 표식과 함께 복덕방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그 가게는 이미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로 약속이 되었다면서 다른 가게가 있으니 볼 거냐고 해서 보자고 했더니 다른 가게를 보여 주더군요.
이선생님께서 목이 괜찮다 하시고 제 생각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며 또 다른 물건은 없는가 하고 복덕방 사람에게 구하였더니 다른 두 개의 물건을 보여 주었으나 썩 내키는 물건이 아니고 처음 본 가게가 제일 맘에 들었지만 이미 나갔다는데 매달려 봤자 이겠고 두 번째 본 가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서 망설이는데 저의 처음 구상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처음 목표는 라스코 동굴 입구였지만 왠지 감이 안 좋아서 사할라는 어떨까 하고 이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이미 사할라에는 미술 조직이 되어 있어서 끼어들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 시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한 것이 약간의 공간을 확보하자고 맘을 먹었었습니다.
여러 생각이 엉켰지만 그 중에 가게를 하나 빌려서 또는 사서 그곳에서 작업도하고 작업한 것을 팔기도 하면은 좋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별로 어렵지 않게? 그보다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가게를 보게 되었고 구상을 구체화 할 수 있었습니다.
복덕방 사람에게 2~3일 여유를 두고 결정하겠다 하였지만 오면서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 할 필요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선생님께 내일 당장 가계약이라도 해 버리자고 상의 드렸더니 한편으로는 미심쩍은 듯하셨지만 항상 저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동의를 해 주셨습니다.
사할라에 대해 소개를 못하였군요.
자세한 소개는 다음에 기회 되는대로 하기로 하고 우선 사진을 몇 장 올립니다.
피곤해 하시는 선생님께 맛있는 것을 대접해 드리기로 하고 선생님께서 이미 10여 년을 단골로 다니시는 후피니악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부지런한 주인내외분이 열심히 농사짓고 기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에 완전 무공해식품 일시 분명하고 넉넉한 마음의 쥔장의 서비스가 그 집에만 가면 편안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이 선생님께서 하시는 농담을 넉넉한 미소로 받아주시는 안주인께서 딸같이 며느리같이 느껴지시는지 즐거워하시는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은 것 같은데 푸짐한 음식은 맛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다 비울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주더군요. 아쉬움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음식과 함께 남기고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번 자랑해 보았습니다.
그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보겠습니다.
오늘밤은 정말 꿈을 잘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9.4.21
*3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파리로 올라와서 3신을 쓰게 되는군요.
어차피 제가 파리로 올라가면 5월 중순까지는 파리의 일을 처리하여야 하겠기에 서둘러서 복덕방 사람에게 가계약이라도 하자고 했더니 집주인과 연락을 하여야 하는데 이틀 정도의 시간 여유가 필요하다더군요. 그러면서 전화와 이 메일을 통해서 서로의 의사를 교환 내지는 계약을 체결하자고 하길래 맘 편히 먹고 올라와서 이 서신을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께서는 불안해 하는 제게 좋은 꿈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 기독교인들은 할렐루야 합니다
꿈만큼이나 예쁜 꽃들입니다.
2009.4.23
NB: 미처 다 못올린 사진은 파리가자 사진실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