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실선이 오늘 산행한 코스이다.
9시에 문수산 산림욕장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전망대-> 삼거리-> 홍예문-> 중봉쉼터->
문수산정상-> 문수사-> 품당대사부도비-> 해병훈련장-> 성동저수지-> 북문-> 주차장
12시경 도착해서 3시간정도 소요되었으며 4km 정도 산행하였다.(클릭하면 크게 봄)
문수산은 한남정맥의 최 북서쪽에 위치한 해발 고도 376m로 아기자기한 등산의 맛을 주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오르면 강화대교와 바다가 눈아래로보인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이렇게 문수산성 벽위로 잠시 지나간다.
뒤로 돌아보면 산성성벽과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는 보수가 되지 않은 성벽이지만 그래도 상태가 좋은 편이다.
저기서 한성근 장군과 군사들이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울때 허물어졌을까요?
세월이 허물었겠지만 제 눈에는 전장(戰場)의 상흔으로 보입니다. 그때 목숨을 바친
선조들이 있었기에 오늘 제가 이렇게 성벽을 탐방을 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전망대... 그야말로 전망대이다. 산과 강을 바라보는 그런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화도와 염화강
가운데 산 등선이는 좌백호 우청룡의 산맥을 좌우로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혹시 명당이 아닌지?ㅎㅎㅎ
오른쪽에 저수지가 보이는데 저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군기가 꽂혀있으니 제법 산성같아 보인다.
잘 보수된 성벽
홍예문(아문)
문수산성의 동쪽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성 안팎을 왕래할 수 있는 작은 문이다.
김포대학, 고막리 방향으로 이어진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고 등산로에서 홍예문으로 나서면
문수산성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석문이라 견고하고 장엄하고 튼튼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도 6.25동란의 총탄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아니면 병인양요때에 프랑스군의 총탄????
문수산이 이름 있는 산 걸맞게 산행이 많다. 더우기 5월이지만 진달래가 만개되어 더 찾는 것 아닌가 싶다.
중봉쉼터(헬기장) 주변을 단장하고 휴식처에 벤치까지 설치 해 놓았다. 끝에 보이는 것은 문수제단이다.
문수산정상 해발 376m
오른쪽에는 유적발굴 중이라 접근 금지...
발 아래에 염하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이면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수사.. 근년에 세웠다는 법당과 요사채만 있는 소박한 사찰이다.
오층석탑
문수사는 신라혜공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876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광해군6년 (1613)에 도욱화주(道旭化主)가 중창하였고 다시 순조9년(1809)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수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으며 풍담대사는 조선중기의 선승으로
어렸을 적에 뜻한 바 있어 전국을 돌며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문수곡에 머물러 여생을 불교전파에
힘써 절을 더욱 번창하게 하여 당시에 많은 신도들이 찾았다고 한다.
현재는 문수산 산림욕장 초입에서 신도를 맞고 있고 그 위치의 도량에는 전각만이 남아 있다.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 및 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산 36-1 위치한다.
풍담대사는 조선 선조 25년(1592)에 태어나 현종 6년(1665)에 세상을 떠난 조선시대의 승려이다.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기단부를 놓았다.
하대석은 상하 2단으로 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안상(眼象)이, 상단에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우주:隅柱)이 새겨져 있으며 탑 몸돌은 원구형이며 지붕돌은
평평하게 처리된 정상으로부터 낙수면과 두툼한 합각선이 흐르고 있으며 처마는 적각에 이르러
반전하였다. 지붕돌 위에는 3단의 원통형 보륜(寶輪)과 연봉오리형 보주(寶珠)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비(碑)는 직사각형의 비좌에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비몸과 이수로 이루어져 있다.
비몸 상단에는 전서(篆書)로 "풍담대사비(楓潭大師碑)"라 새겨져 있으며 이수에는 구룡무늬가
조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부도와 비석은 조선 현종9년(1668)에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성동저수지... 물빛이 비취색인가? 벚꽃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하산하여 바라본 문수산
북문
문수산성
강화도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 산성이다.
성이 있는 산은 서쪽으로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조선 숙종 20년(1694)에 쌓은
것으로 당시 둘레가 2.4km이고 여장(女墻)이 2,173개 있었으며 성문이 3개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장방형 혹은 정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여장을 둘렀다. 성문은 취예루(取豫樓)오 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과
세 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성은 고종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수 제독이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 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출토 유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며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 일부 남아있다.
오늘 고향친구들과 번개산행을 하였다.
역사유적(사적) 탐방 겸 진달래의 화사한 꽃길속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강화섬과 바다갯벌을 조망속에 봄의 움트림과 연록색 물감속에 나도 몸속깊히 물들어
저도 나도 모르게 힘이 쏟는 것 같은 그런 산책같은 산행 쉽게 접할 수 없는 산행...
그제 양산 출장갔다가 금정산성 산행을 계획했는데 경기도 김포에 직원 상사에 조문 해야기에
부랴부랴 상경해서 아쉬움이 컸는데 그 아쉬움을 금정산성 대신 문수산성이 풀어줬구려..
마치 같은 산성이라 더 대체가 되었네~ 다 친구들 덕분일세..
단, 운전 때문에 쏘가리매운탕에 쐬주 한잔 기울이지 못한게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