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 안내도
안내도 뒤에있는 팔각정과 2층누각은 보지 못했다.
포정루 (지정번호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
이 문루는 강원감영의 정문으로 1395년 강원감영을 설치할 때에 건립 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 되었고 1634년 강원감영을 복원할 때 복원되었다.
포정루(布政樓)라는 편액(扁額)의 의미는 지방관의 어진정사가 잘 시행되는지 살펴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포정루의 구조는 방형의 긴 초석 위에 민홀림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익공양식에
겹처마로 팔작지붕 건물이다.
2층 누각은 우물마루를 깔고 계자 난간을 둘렀다. 천장은 궁창판에 장식이 없는 연등천장이다.
1895년 강원감영이 폐지된 이후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가 본부로 사용하였을 때는
포정루라는 편액을 내리고 선위루(宣威樓)라는 편액을 달았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강원감영문루(江原監營門樓)라는 편액을 달기도 하였다.
1995년 이후에는 조선시대 강원감영 정문의 명칭인 포정루라는 편액을 달았다.
그런 귀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옛 사적앞에 포정루 앞에 전신주가 치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감영 입구
입구를 들어서면 좌측에 중삼문이 있다. 감영에는 동문,서문,남문,북문 등의 4개의 외곽문과
선화당으로 출입하는 포정문,중삼문,내삼문 3개의 문이 있었다.
정청(政廳)인 선화당(宣化堂)으로 들어가려면 포정문(布政門)을 거쳐 중삼문을 지나고
내삼문을 통과해야 하였으므로 이문은 포정문에서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중간에 위치한 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중삼문은 5칸이었으나 강원감영지를 발굴할 때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지가 발굴되어
정면 3칸, 측면2칸, 6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내삼문(內三門)
조선시대 각 도의 관아의 구조는 관찰사가 근무하는 감영의 정청(政廳)으로 들어가려면
일반적으로 3개의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각 도의 감영마다 제일 첫 번째 문의 명칭이 약간씩 달랐으나 두 번째 문, 세 번째 문은
보통 중삼문, 내삼문이라고 하였다.
강원감영의 첫 번째 문은 포정문(布政門)이라고 하였고, 두 번째 문을 중삼문, 세 번째 문을 내삼문이라
하였다. 이문은 선화당과 연결된 문이다.
기록에는 내삼문이 5칸으로 되어 있으나 발굴조사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문지가 확인되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공방고지(工房庫址)
조선시대 지방관아에는 이방(吏房),호방(戶房),예방(禮房),병방(兵房),형방(形房),공방(工房)의
6방이 있어 각기 담당업무를 수행하였다.
공방고는 공방에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보관하였던 창고로 강원감영은 원주목(原州牧)과 같은
관아를 사용하였으므로 본 공방고지는 원주목과 함께 사용하던 창고터로 추정할 수 있다.
공방에서는 지방의 산림,천책,토목,영선,공장,광산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강원감영지 발굴 조사결과, 정면 2칸, 측면 2칸의 건물과 온돌 고래시설 일부가 확인되어
공방고에 난방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행각(사료관)
사료관 앞에는 역대 관찰사 이름과 관찰사 순력, 사은과 사조 등이 사진과 같이 진열되어 있다.
선화당(宣化堂) 지정번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
이 건물은 조선시대 강원감영의 본관 건물로 강원도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선화당이라는 편액의 의미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이며,
관찰사는 이곳에서 행정,농정,조세,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선화당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4년에 재건하였으며,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재건하여
강원감영의 정청(政廳)으로 강원도 역사창조에 중심 역활을 하였으나, 1895년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하여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선화당은 1단의 화강석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구조는 정면과 양 측면 각 1칸 씩은 툇칸으로 하였고, 중앙 촤측의 정면 3칸, 측면 2칸은 벽체가 없이
3면이 개방된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연등천정으로 되어있다.
그 우측으로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띠살창과 띠살문으로 구획된 방이 접하여 배치되었다.
선화당에는 각도의 감영의 사진과 연회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내아
보호수 느티나무이다. 고유번호 : 강원 원주 1 수령 600년 수고 25m 둘레 6m
선화당에서 바라본 내삼문, 중삼문, 포정루
선정비(善政碑)
선정비는 관직에 있으면서 은혜와 교화를 끼친 관원의 공덕을 길이 칭송하기 위해 해당 관청이나
백성들에 의해 세워진 비석이다.
원주에는 강원도 관찰사와 원주목사로 재임했던 많은 관리들의 선정비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없어져 여러 곳에 남아잇던 일부의 선정비를 모아 놓았다.
책방지(冊房址)
조선시대 지방관아에는 도서를 수집 보관하였던 책방이 있었다.
강원감영에는 9칸 규모의 책방이 있어 관리들이 업무에 필요한 도서나 교양도서를 수집하여 보관하였다.
오늘날 도청이나 시,군청에 있는 도서실이나 자료실 같은 역할을 하였다.
강원감영지 발굴조사에서 선화당 북쪽 4.2m 위치에서 동서 방향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책방터와
온돌 고래시설이 확인되어 책방은 도서를 보관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관리들이 공부하는 도서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관도암연회도(新官到任宴會圖)
어는 고을의 관아에서 열린 연회를 그린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장막을 중심으로묘사된 장면들이
평양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와 유사하여 평양감사향연도의 일부일 가능성이 제시되는 그림이다.
마당에서는 검무가 공연되고 하급관리로 보이는 이들이 공연을 구성하고 있으며
하단부의 조찬소(造讚所)에서 음식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에 소록되어 있는 것을
촬영하여 놓은 것이다.
전주의 1909년 풍경이며 풍남문과 왼쪽에 선정비가 보인다.
전주관아 음순당(飮醇堂)
조선시대 전주관아의 건물 중 하나인 음순당
전주부성 풍남문(全州邑城 豊南門)
전주부설의 남문인 풍남분으로 1920년대의 말 모습이다.
전주부성 풍남문으로 1930년대의 모습으로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며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편액이 뚜렷하게 보인다.
천안 관아(天安 官衙) 조선시대 천안 관아를 1910년대 일본헌병대가 주둔하며 사용하던 곳이다.
충청남도포정사(忠淸]南道 布政司)
감사가 집무하던 관청이 ㄴ감영 또는 관찰부의 누문(樓門)으로, 충청남도 포정사라고 되어 있으며
공주에 있었다.
원주에 직원상가에 갔다가 자투리시간에 들러 보았다.
여기가 조선시대 강원도청 역할을 한 셈, 대부분 복원을 한 건물이라 조상의 얼을 느끼지 않는다.
더우기 주변에 빌딩 숲이고 편의를 제공하는 전주, 전선들이 흉하게만 느껴진다.
강원감영(江原監營)
사적 제439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觀察使)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왕조는 1395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강원도의 수부(首府)를
원주로 정하여 강원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634년 원주목사 이배원(李培元)이
재건하기 시작한 후,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 건설하였다.
강원감영은 선화당(宣化堂)을 비롯하여 포정루(布政樓), 보선고(補膳庫).내아(內衙),
비장청(裨將廳),호적고(戶籍庫) 등 40여 동에 달하는 웅장한 모습으로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간 강원도 역사창조의 중심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鎭衛隊) 본부로 사용하였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에는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40여동의 화려한 건물로 이루어졌던 강원감영은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은
없어지고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강원도와 원주시는 500년 강원도의 수부로서 강원도를 관할하였던
귀중한 문화유산인 강원감영을 복원하기로 하고, 2000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선화당,포정루,중삼문, 내아,행각 등 강원감영의 일부만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