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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는 여자 박태이 선생님!

작성자환한 세상|작성시간17.07.10|조회수258 목록 댓글 0

춤추는 여자 박태이 선생님| ♥ 땅고에 관한글

행복한 델리 | 조회 73 |추천 0 | 2011.05.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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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다은의 이달에 만난 세상 - 춤추는 여자, 박태이


온 몸의 세포가 자연의 리듬에 젖어 춤추게 하라


다음 생에서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망설임 없이 ‘춤추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곤 한다. 어릴 적 잠깐의 일인데, 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나폴나폴 날아다니는 것이 좋아서 춤을 추던 때가 있었다. 무용 대회에서 운동장 보다 넓게 느껴졌던 무대 위를 구석구석 밟으며 춤사위를 하던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긴 머리의 무용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 것이 우선이었는지 내가 전학을 갔던 것이 먼저였는지, 어쨌거나 춤은 찰나의 깊은 인상만 남기고 내 인생에서 급히 사라졌다. 하지만 어릴 적에 각인된 것은 좀처럼 흐려지지 않았고 춤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무대 위의 그 순간처럼 가슴이 뛰었다. 인터넷 즐겨찾기에 ‘춤’이란 폴더가 따로 저장되어 있다. 춤과 관련된 삶들을 검색해 가던 중에 ‘춤추는 여자, 박태이’씨를 알게 되었다. 막연히 꿈꿔오던 다음 생의 삶을 지금 이 생에서 살고 있는 분!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수줍은 데이트 신청을 흔쾌히 받아주시고, 광주에서 서울로 기꺼이 먼 걸음을 해주셨다. 노란 은행잎들로 물든 서울의 가을을 너무도 좋아하신다며 웃는 모습이 그야말로 소녀였다.  

(간단히 그녀의 프로필을 소개해 본다. 원래 미술을 전공했고 촉망받는 화가였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구석구석 아파오기 시작해서 극심한 고통 끝에 자살시도까지 이르렀다. 그마저도 실패하고 삶과 죽음의 막다른 길에서 인도 행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24시간 내내 명상에 매달리던 어느 날 갑자기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춤이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춤과 명상의 만남은 그녀를 완전한 치유로 인도했고 ‘춤추는 여자, 박태이’를 탄생시켰다. 인도에서 돌아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춤과 명상을 통해 자기 안에서 자연을 발견하는 방법들을 소개해 왔고, 현재는 광주 소재 청소년 쉼터에서 일곱 명의 아이들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선생님의 프로그램을 정확히 뭐라고 명칭해야 하나요.

원래 춤 명상이라는 단어는 ‘Dance Meditation’이라고 인도에서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보통 그걸 한국에 들고 와서 음악만 선곡해서 틀어주고 춤만 추게 해주면서 그게 춤 명상이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걸 제 몸으로 체험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제 몸에서 나타났던 현상들이 단계적으로 가는 게 있더라구요. 일반인들에게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그냥 무조건 음악만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춤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도록 멘토로서 이끌어주는 제 나름대로 방법이 생겼죠. 제가 체험한 것을 이론적으로 내놓고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따라올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그걸 박사 논문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춤 명상·춤 요가’를 같이 쓰고 부제로 ‘춤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기’라고 꼭 명시를 해줍니다.


-‘춤 명상, 춤 요가’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줄 수 있나요.

간단히 소개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마 지면이 모자랄 걸요? (웃음) 까페에 가면 많은 자료들이 올라와 있어요. 저희 프로그램의 전 과정을 설명해 놓은 자료도 있으니까, 그걸 찾아보시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다음 까페 ‘박태이춤명상연구소’  http://cafe.daum.net/dancemeditation)


-‘춤 명상·춤 요가’의 모든 단계 중에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가장 핵심적인 단계는 ‘허락하기’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으로 끌고 가잖아요. 나를 계획하고 어디서 배워서 교육을 시켜서 생각으로 끌고 가요. 자연성을 말살시키고 살아가고 있죠. 춤 명상·춤 요가는 자연성을 되살려주는 작업이에요.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내 생각으로부터, 내 통제로부터 놔주기, 그게 첫 번 째 작업이에요. 놔주기 시작해야 원래 호흡이 일어날 것이고, 내가 호흡법으로 나아 갈 방향을 계획하는 게 아니라 원래 내재 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호흡이 일어날 수 있도록 내 생각으로부터 나를 허락해 주는 거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자연 상태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로 가는 거에요. 말은 쉬워도 그게 굉장히 어려워요. (텅 빈 상태와 어떻게 다른가요?) 공한 상태는 나 자신도 사라지죠. 그냥 멍해요. 하지만 자연 그대로 존재할 때는 나를 놔주지만 또렷한 의식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죠. 깨인 의식으로 그 상태를 바라보는 것. 그래야 원래 길을 찾아가죠. 멍한 상태로 있으면 다른 것이 들어와 나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갈 수도 있잖아요. 항상 바짝 깨어 있는 것, 뚜렷한 의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 또한 자연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유, 반응, 변화도 여러 가지일 것 같아요.

가장 쉽게 저를 찾는 분들은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은 분, 삶에 지치신 분, 물어물어 오는 우울증 환자분들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다른 분보다도 우울증으로 찾아오신 분들에게  항상 죄송해요. 제가 아직 안정이 안돼서 그분들을 위한 마땅한 공간이 없어요. 그분들을 위해서 산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비용 얼마 안들이고 편안히 자연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분들과 맘껏 머물면서 밥도 짓고 된장국도 끓여먹고 잠도 자고 춤 명상·춤 요가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걸 못하고 몇 시간의 프로그램과 짧은 대화로 그치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일상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요즘 이렇게 일에 매여 있어서 지금은 거의 못 해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같아서는 제가 스스로 공부가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산 속에 들어가서 춤을 더 신랄하게 춰서 더 많이 깊어지고 싶어요. 우주가 허락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육십이 넘어서는 가능할까요. 그때를 위해서 더 처절하게 살고 싶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도 많고 다양한 말씀도 들었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요. 제 특성 중에 하나가 어제 일까지 다 까먹거든요. (웃음) 이렇게 앉아 있으면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에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들은 많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는 기억 안나요. 그저 그 분들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만 믿고 있어요.    


-다양한 명상법 중에 춤과 명상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보통 명상을 떠올릴 때는 나무 아래서나 벽을 마주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적인 명상은 우주의 에너지가 고요할 때는 가능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에너지가 미쳐 있어요. 그 미쳐 있는 에너지 속에 있는 우리 현대인의 몸도 당연히 미쳐 갈 수 밖에 없죠. 지금 우리가 정신없는 게 꼭 우리 탓은 아니에요. 이런 에너지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해요. 앉아 있으라고 하니까 왜 이리 정신 없는 생각들이 왔다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오히려 고요한데 말이죠. 평소엔 모르고 살다가 가만히 앉아서 진짜 안을 들여다보면 속이 뒤죽박죽이고 몸은 뒤틀리고 환장을 하는 거에요. 하지만 동작과 함께 들어가면 사람들은 동작과 함께 자기를 놔버릴 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 자체도 행동이에요. 움직이는 것도 행동이에요. 그 자체가 되어 버릴 때,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는 것만 할 수 있을 때, 춤을 출 때는 정말 춤만 추는 상태가 될 때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 음악이 왜 이러는 거야, 내 동작은 왜 이러는 거야, 집에 누룽지를 놓고 왔는데 누가 먹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없이 진짜 그 동작 자체일 때가 춤 명상이에요. ‘춤추는 자는 사라지고 춤만이 남는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앉아서 맑게 호흡하는 상태와 똑같이 춤추면서 명상 상태에 이르는 거에요. 현대인들이 앉아서 하는 건 굉장히 지루하고 힘들어 해요. 하지만 춤 안으로 들어가면 춤 속으로 쉽게 들어가집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동작으로, 춤으로 하는 명상이 훨씬 쉽고 편안해요. 우리는 원래 춤을 추게 되어 있어요.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동 자체가 춤이에요. 아이를 물속에 놓으며 사지를 움직이잖아요. 그것도 춤이에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몸짓을 하게 되어 있어요. 동작 하나하나가 일어나는 게 춤이에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과 함께 리듬으로 일어나는 것, 그 자체가 춤이에요. 모든 것이 다 춤이더라구요.


-왠지 춤추려면 공간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준비할 게 많을 것 같다. 일상에서 쉽게 춤을 출 수 있나요.

저는 춤이 일상과 이어지게 하기 위해 굉장히 단순한 것부터 훈련을 시켜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10분간 어떻게 할 것인지, 잠들기 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차를 마실 때 어떻게 마실 것인지… 그런 일상적인 것부터 시작해요. 수업을 하고 난 뒤 차 마시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도 차에 바로 들어가서 생활과 이어지게 합니다. 보통 명상하고 돌아가면 집에서 다 잊어버리잖아요. 저는 일상과 연결돼서 춤과 명상이 생활화가 되길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 몸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린 감각을 다 잊어버렸잖아요. 우리 몸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경도 안 쓰고 살잖아요. 몸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날 좀 바라봐줘! 나 왜 이래?’라면서 말을 하는데 우린 안 듣고 딴 짓만 하고 있잖아요. 몸을 느끼게,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훈련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지 말고 잠깐 동안 눈을 감고 느끼기는 방법을 수업 시간에 계속 반복하게 해요. 실제로 집에 돌아가서 다음 날 아침에 세포 하나하나, 실핏줄 한 줄 한 줄, 근육 가닥가닥이 의식과 같이 일어나기를 느끼게 해요. 내 몸 안에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대고 있거든요. 그것들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거에요. 끊임없이 그게 연장이 되면 하루 종일 내 몸과 이야기가 가능해요. 지금도 저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몸의 세포와 소통하고 있어요. 계단을 올라갈 때도 통통 튀는 느낌이 들어요. 힘들 때는 세포가 늘어지는 게 느껴지구요. 춤을 세 시간 정도 추고 나면 세포들도 하나하나 살아나서 금세 탄력이 생기죠. 죽어 있던 세포들까지 살아나는 게 느껴져요. 저는 맨발 산행을 하는데, 처음 적응하는 삼십 분 간은 힘들지만 그 뒤로는 날아다녀요. (잠들기 전 5분은 세포들을 같이 재우는 건가요?) 네. 잠들어 가는 세포를 느끼는 거죠. 세포들이 잠들어 가는 느낌이 얼마나 황홀한 지 아세요? 모든 잡념이 사라져요. 세포들과만 대화하면 제 존재 속으로 잠이 들어가요. 원래 우리는 수면 층에 푹 담가서 나오면 2시간만 자도 충분해요. 하지만 보통 우리들은 깊이 담가지지 못하고 위에서 반짝반짝 잠이 드니까 열 시간을 자도 피곤하죠. 진짜 수면 층에 들어가 푹 자고 나와야 해요. 세포들을 잠재우면 그런 깊은 수면이 가능해요.


-몸에 대해 언제부터 인식을 하게 됐는지요.

제가 여자 누드를 그려요. 여자 누드를 그리려면 모델이 없으니까 제 몸을 이리보고 저리 보거든요. 어느 날 제 몸을 보다가 ‘춤을 왜 추지 않는 거야.’ 혼잣말을 하게 됐어요. 가슴은 작고 힙 있는 부분은 크니 춤추기에 알맞은 몸이란 생각이 든 거죠. 인도를 가면서 명상을 하니 뭐니 아무 생각 없이 갔어요. 떠나기 마지막 날 한 말이 ‘나 인도 가면 춤이나 실컷 추고 올래.’였어요. 실제로 인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을 추면서 계속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보게 된 거죠. 제가 몸으로 직접 겪고 좋으니까 인도에서 돌아와서 사람들과 같이 나눠주는 느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지, 이걸 가지고 명상을 만들고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께 소개하고 그분들도 몸으로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춤 명상 전의 여자와 지금 그리고 계시는 ‘붓다가 되고 싶은 여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처음 누드를 그릴 때는 임산부 누드를 그렸어요. 처음에 ‘산다는 것’ 시리즈를 계속 그렸거든요. 그러다가 인간들이 꿈을 잃어가는 상태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여인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생각이 부족해서 여자들이 아이를 가지면 자신의 꿈을 버리는 거라 생각하며 임산부 누드를 그린 거에요. 몸은 부풀어 가면서 얼굴은 고통에 마귀처럼 일그러져 가는 여자들을 그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임산부가 너무 아름다워지는 거에요. 밉게 그리려고 해도 너무 예쁘게 그려지는 게요. 제가 임신이 하고 싶었던 거에요. 제 안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싶었던 거죠. 삶이 힘들고 우울증이 극에 달해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까 제 안의 새 생명을 품으면 살 수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이 자랐었나 봐요. 인도에 가서 춤을 추고 명상을 하면서부터는 제 그림 속의 여자들도 달라졌죠. 지금 ‘붓다가 되고 싶은 여자’를 보면 여자 몸에 생모시를 조각조각 기워요. 그게 그녀의 삶이에요. 상처투성이의 삶이 누덕누덕 기워지지만 그게 다 완성이 되었을 때는 아름답게 전체를 이뤄가요.


-명상을 하다가 춤이 저절로 튀어나왔다던데, 그 순간이 궁금해요.

어느 날 명상을 하고 있는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거에요. 이게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신기했어요. 손이 계속 움직이는 거에요. 그때부터 리듬을 타기 시작한 거에요. 이 손 동작이 사실은 우주의 언어에요. 부처님 수인, ‘무드라’라고. 우주와 내 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도록 허락을 해줘야 해요. 제 손 끝 한번 잘 느껴보세요. 뭐가 탁탁 걸리죠. 물속을 유영하는 손처럼, 허공에서도 공기가 똑같이 걸려요. 이렇게 공기 속에 있는 것들을 느껴요. 몸이 열리면 손끝까지 생생하게 세표들이 살아 움직여요. 세포들이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이글이글하는 게 생생히 느껴져요. 제가 춤출 때 문어 같아요. 뼈도 안 느껴지죠. 기운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거에요. 내가 사라지고 우주와의 합일 상태, ‘마하 무드라’. 우주와의 완전한 합일상태의 오르가즘이 ‘마하 무드라’에요. 춤이 터져 나올 때 뭔 말인지도 모르고 ‘마하 무드라’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어요. 그때의 나는 명상은 그저 맑은 것이겠거니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상태였어요. 나중에서야 ‘마하 무드라’가 뭔지 알아보니까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구나 다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아니요. 누구나 다 가능해요. 제가 특별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특별해 보이시는데요.) 아니에요. 저는 특별한 게 아니라 절실했을 뿐이에요. 다른 분들은 저만큼 절실하지 않을 뿐이에요. 그것 역시 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상태로 살아지기 때문일 거에요. 하지만 저는 살 수가 없을만큼 절실했어요. 진짜 숨도 못 쉴 만큼 못 살았어요. 세상에 더 이상 살 수가 없었어요. 의욕을 다 잃고 죽음 상태로 가고 싶은데 죽을 수도 없었고 너무 절실했어요. 숨을 쉬어야만 했어서 뭐든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상태로 절실하면 누구나 같은 걸 느낄 수 있어요. 그 차이일 뿐이에요. 특별한 게 아니라 절실한 것. 뒤돌아보면, 그렇게까지 극한 상태로 갔다 올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잠자는 시간도 침대 위에서 춤을 췄어요. 몸이 막 뒤틀리는 거에요. 몸에서 뭔가 풀어내야 하니까 사지가 디글디글 끓어대고 눈은 충혈 되어 있고 얼굴엔 뭐가 일어나고, 대단했었어요. 24시간 명상만 하고 다른 사람하고 눈 한번 안 마주치고 제 안으로 들어갔던 시간, 그 2년간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자연으로 돌아가기’란 너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져요.

이 도시에서, 일상에서 자연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숲과 강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매 순간 행동 그 자체가 되는 것이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기에요. 매 순간 어디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거기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에요. 예술 작품을 만들라고 하면 그 작품에 최선을 다하듯이 매 순간 모든 행동을 예술 작품 만들듯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역시나 어려운 걸요.) 그럼, 쉽게 이야기해볼까요. 똥 쌀 때는 똥만 싸세요. (웃음) 항문에서 변이 쫙 빠져나가는 쾌감을 느껴보세요. 신문도 읽지 말고 잡생각도 하지 말고 창자가 꿈틀거리면서 똥을 밀어낼 때 항문에 온 의식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근육 하나하나를 느껴보세요. 변이 나올 때 그 쾌감이 기가 막히잖아요. 오줌을 눌 때도 방광이 꽉 차 있다가 요도를 통과할 때의 쾌감을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우린 그 분명한 순간의 기쁨들도 다 놓치고 살지 않나요? 그러니까, 똥 누는 순간에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가 있어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것 같아요.

대답을 하려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네요. 솔직히 요즘은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 줄었거든요. (웃음) 제가 요즘 마음이 아파요. 생활 속에서 어울리면서 너무나 이중적으로 사는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감사하는 마음이 주네요. 이렇게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어요. 가슴을 숨기고 머리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통째로 내 놓고 사는 저는 어김없이 상처를 받아요. 왜 이면에 또 다른 게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나는 보이는 게 전부인데…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신은 어디 계신 걸까. 삶이 절망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그 말씀에 공감하는 요즘이에요. 절망 속에 부딪히고 신뢰가 사라지고 더 이상 관계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 것, 진짜 관계가 사라져 버린 것이 가슴 아파요. (진짜 관계란 어떤 걸까요.) 신뢰로 사는 것이 진짜 관계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조금 믿었다가도 상대가 약간 다른 행동만 보이면 바로 돌아서잖아요. 저 역시 그런 걸로 상처 받아요. 다른 사람을 더 신뢰할 수 없는 제게서 상처 받기도 하죠.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어떤 배신을 하든, 저는 묵묵히 바라보고 신뢰해야 할텐데 어느 순간 저 자신마저 절망해서 신뢰의 끈을 놓아버리는 모습을 볼 때 제 스스로 깊은 상처를 받아요. 그런 슬픔을 조금씩 느끼면서 도대체 삶이란 어떤 건지 의문이 잠깐 잠깐 다시 고개를 들어요. 얼마 전에는 뭐든지 전체가 다 감사였는데 이렇게 고비고비 넘더라구요. 제가 아직 완성이 된 게 아니니까. 지나가는 과정이니까요.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신가요.

저는 ‘원래(原來)’를 향해 가고 있어요. 이런 의문이 다 사라진 상태. 제가 춤출 때의 환희스러움 그 상태, ‘마하 무드라’ 상태. 어떤 사람을 봐도, 어떤 상황을 만나도 심연의 그 상태로 있는 것을 향해 가고 있어요. 지금은 파도가 일렁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이런 자리에 있으면 보통 자신이 어디까지 가 있는 상태만 보여줘요. 자신은 지금 여기쯤에 가 있어서 흔들림 없다고. 그래서 저 밑에서부터 오는 사람들이 절망을 느끼는 거에요. 자기는 항상 뒤죽박죽인데 언제 저 높은 상태가 되나. 하지만 제가 겪어 보니까 모든 과정은 시루떡 같이 층층이 고비가 있어요. 그곳을 향해 가는 일은 더러운 유리창을 닦는 것과도 같아요. 시커먼 유리창을 처음에는 아무리 닦아도 계속 더럽죠. 하지만 어느 순간 살짝 밖이 보여요. 다시 열심히 닦지만 또 다시 더러워지기도 하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닦아내면 어느 틈에 밖이 보여요. 닦고 또 닦고 하다보면 깨끗한 면이 넓어지며 시야가 트이죠. 원리는 다 똑같더라구요. 마음도 똑같구요. 맑아졌다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라 또 다시 흐려져요. 그때마다, ‘나 또 왜 이래?’ 하면서 절망하곤 하죠. 저 역시 그 과정 속에 있어요. 저 역시 매 고비마다 삶이 왜 이런가, 왜 이런 슬픔이 오는가, 질문을 던지곤 하죠. 모두 과정 속에 있어요. 저 역시 공부하면서 힘들었기에 과정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매 과정마다 신랄하게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투명하게 저를 까발리고 싶어요. 솔직하고 싶어요. 수행자는 이파리 떨어뜨린 겨울나무처럼 서 있지 않으면, 그렇게 진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을 가르치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인도에 가서 깨달은 ‘방법’을 가지고 계속 치고 들어가면서 그 방법 안에서 나를 바라봤어요. 그리고 나서는 방법을 놔버렸죠.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고 와야지 땅을 걸으면서도 배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건 어리석은 일이잖아요. 처음의 ‘방법’을 놓고 삶 속에서 그냥 사는 거에요. 저는 철저히 삶으로 돌아가고 있거든요. 삶 안에서 저한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삶 전체가 저의 스승이 되어 살고 있어요. 처음에 인도에서 돌아와서 그 방법을 소개하고 안내하고 같이 공유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돌리고 같이 놀아주는 일상이 더 많은 걸 제게 가르쳐줘요. 일상적인 삶 속에서 깨어서 또렷이 바라보고 있어요. 커피를 마실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사람들과 얘기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정확히 깨어있어요. 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그때그때 솔직히 보고 있어요. 화가 날 때는 분노로 있고, 슬플 때는 슬픔으로 있고, 기쁠 때는 완전히 기뻐하면서 지금 이 순간 그 상황에 그대로 반응하고 그대로 있는 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자연으로 있는지 아닌지 항상 지켜보는 제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네모 칸 채우기 놀이를 해볼까요?

(몸은  ⃞  ⃞ 다.) 몸은 보물이죠. 몸속에 지도가 숨겨져 있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나, 그 보물지도가 숨겨져 있어요. 몸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 그 답을 만날 수가 있어요. 제가 요즘 조금 헤매고 있거든요. 춤을 예전만큼 못 추고 있어서 그래요. 춤을 추면 항상 명쾌해지거든요. (춤은  ⃞  ⃞ 다.) 춤은 삶이다. 정말 삶이죠. 모든 상황에서 춤처럼 살고 있어요. 춤을 출 때 전체를 다 던져버리고 추듯이, 살 때도 오로지 살아야 해요. 차 마실 때는 차만 마시고 얘기할 때는 얘기만 하고 모든 걸 자연스럽게! (자연은  ⃞  ⃞ 다.) 자연은 우리의 원래 근원이다.


춤추는 여자, 박태이. 그녀는 말씀마다 하나의 詩를 완성해 놓곤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남겨주셨다. ‘온 몸의 세포가 자연의 리듬에 젖어 춤추게 하라. 꽃이 피어나듯 삶이 네 안에서 피어나게 하라.’ 춤은 몸으로 쓰는 시가 아닐까. 삶 자체가 춤이라고 하니 우리네 삶 역시 제 각각 한 편의 시일 것이다. 춤추는 여자, 그녀를 통해 내생을 기다릴 것도 없이 현생에서 춤추는 여자로 살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깨닫는 순간이다.


인터뷰_황다은

사진_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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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여자 박태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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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무진 23:38 new
수행자는 이파리 떨어뜨린 겨울나무처럼 서 있지 않으면, 그렇게 진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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