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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작성자영란|작성시간12.11.14|조회수38 목록 댓글 3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내린 사학(私學)기관이다,조선중종37년(1542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위하여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 서원이라하였다, 명종5년(1543)에는 풍기군수 이황(퇴계)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중종39년(1544)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補)를 제사지냈고 인조11년(1633)에는 주세붕을더하여 제사지냈다,서원의건물은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듯하다,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서원의 일반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 ,서 재를 두는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 구분하였다,사당은 명륜당의서북쪽에 따로 담장을 쌓은 담장안에 있다,서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통일신라때 절인 “숙수사”가있었는데 그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때 살아남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소수서원의 정문광장에 단풍이예쁘게 물들고

수령500년의 (추정)은행나무 사진기에 다담을수가 없습니다

숙수사 절의흔적으로 남은 당간지주(사찰임을 알리는 깃발등 표시를 매다는돌)

경(敬)자바위, 세조3년(1457)에 이곳순흥에서 금성대군과 의사들의 단종복위거사 계획이 탄로나면서 당시세조가보낸 관군들에 의해 순흥도호부가 혁파되었다,당시의 난으로 숙수사도 불타버리고 백운담 소에는 그때휘생된 의사들의 시신이많이 수장되었으며, 의사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죽계계곡을 타고10여리흘러 몆은곳은 지금도 피끝마을이라는 동네가 있다,뜻을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이들의 혼이 밤만되면 울기를90년뒤인 중종37년(1542년)서원 창건후 까지 이어졌다,주신재 선생이 돌에 경(敬)을 각하시고 그원혼을 위로하고자 붉은글씨로 덧칠한 후로는 영혼들의 울음이 그치고 편히잠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렴정 입니다,경렴정은 유생들이 시를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마음의여유를 찿던공간이라함니다

소수서원의 정문

백운동은 교수들의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문성공 위패를 모신 사당

 

 

일영대(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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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덕보체육관 | 작성시간 12.11.14 영란 누님 감사합니다, 좋은곳 다녀 가셨내요,
  • 작성자墨 客(산절로)! | 작성시간 12.11.15 잘봤네요 !! 서원이나...고댁 종가댁등등은....고려 시대 절터를....조선에와서.....억불 숭유로....
    절터에다가....???
  • 작성자만송 | 작성시간 12.11.21 최초의 사액서원 사진설명과 단종복위 운동역사를 소상히 설명해 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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