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언론재벌 Jimmy Lai 이야기>

작성자하니|작성시간20.08.26|조회수22 목록 댓글 0
<홍콩 언론재벌 Jimmy Lai 이야기>

1960년,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1958~1962년)'으로 대기근을 불러왔고, 중국 국민 3,600만명이 굶어 죽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12살의 Lai는, 어선 밑바닥에 숨어들어서 당시 기회의 땅이었던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한 달에 8천원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배고픔의 걱정으로부터 벗어났기에 너무도 행복했다.

33살이 되던 해, 그는 '지오다노'를 설립했다.
수십 년간 검은 옷, 흰 옷, 파란 옷 밖에 없던 중국 본토사람들은 지오다노의 밝은 색상에 열광했고, 사업은 번창했다.

41살이 되던 해, '천안문 사태(1989)'가 발발했고,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죽인 공산당에 저항하는 의미로 지오다노 티셔츠에 여러 구호를 넣어 입었다.

중공은 곧 복수했다.
지오다노의 영업권을 박탈해버렸고, Lai는 본토에서의 지분을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47살이 되던 해, 그는 Apple Daily 신문을 창간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큼직하고 화려한 사진을 싣고, 명사들의 칼럼란을 만들고, 부자들 및 권력자들의 가십거리를 기사화했다.
가격은 단돈 300원.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Apple Daily 덕에 Lai는 60살이 되던 해에 자산 1조원을 넘기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홍콩에는 억만장자와 백만장자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중공의 억압에 침묵하거나, 혹은 중공에 부역했다.
본토에서의 사업에 악영향을 받을까 하는 우려가 컸기에.

그러나 Lai는 Apple Daily를 통해 공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중공을 비판하며, 그들의 추악한 실상을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위가 있을 때마다 후원했고, 본인이 시위의 맨 앞줄에 서서 중공을 규탄했다.

중공은 또 복수했다.
Lai를 '중국의 제1 원수' 및 '조국의 배신자'라고 규정했다.
미국 CIA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는 거짓뉴스를 퍼뜨렸다.
홍콩의 모든 기업들을 압박해서, Apple Daily에 광고를 싣지 말라고 강요했다.
Lai의 재산은 줄어들었고, 억만장자 반열에서 탈락했다.

생명의 위협도 자주 받았다.
자택에 차량이 돌진했다.
택배를 열어보면 도끼나 칼이 들어있었다.
시위 도중 가격을 당했다.
자택과 신문사 본사에서 폭탄이 발견되었다.

체포와 구금도 수차례 당했다.
가장 최근엔 지난 8월 10일이었다.
Lai와 두 아들, 그리고 여러 직원들이 '외국과의 공모' 혐의로 체포되었고, 보석금을 내고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냥 편안하게 살면 안되냐고.
왜 부(富)와 목숨을 걸고, 가족들의 안위까지 위협받아 가면서 그렇게 싸우냐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자유를 잃습니다. 자유를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됩니다."

홍콩사람들은 그런 Lai에게 지지를 보냈다.
Lai가 체포되던 날, Apple Daily의 판매부수는 50만부를 기록했다(평소엔 7만부).
또, Apple Daily의 모기업 Next Digital의 주식을 사서 지지를 표현했고, 시가총액은 3조원을 상회하며 홍콩 최고의 언론사로 자리매김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본권인 '자유'의 가치를 과연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 '자유'를 위해 손해를 감내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고 마는지.


대한민국의 Jimmy Lai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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