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아이들ㅡ

작성자하니|작성시간20.09.18|조회수50 목록 댓글 0
원수집안의 두 남녀 로미오와 줄라엣의 사랑은 로맨스인데, 원수 국가의 두 남녀의 사랑은 저주 대상ㅡ

사랑과 결혼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가 다스리는 것이라는 개념이 바로 전체주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책장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나치 독일군과 프랑스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다.
나치로부터 해방된 후 나치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이유로 삭발과 조리돌림을 당하는 프랑스 여인을 담은 유명한 사진이 말해 주듯이, 독일군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성들도, 그들의 자식들도 편안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삭발당한 여성의 수가 2만여명, 독일군과 프랑스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20여만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90~2000년대 이후였다.
조국을 짓밟은 원수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민족’의 관점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두고 ‘침실부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잘 생기고 품위 있고 멋진 제복의 이국인 청년 장교를 본 열여덟 살 프랑스 처녀의 가슴에 연심이 생기는 것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를 떠돌다가 모처럼 한숨 돌리게 된 청년들이 순박한 시골처녀에게 마음이 동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걸 제하고 본다면 말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단지 ‘독일놈의 씨’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동네에서, 심지어는 집안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왕따 당하고 학대당하면서도 그 이유를 몰랐던, ..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악마 같은 독일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아야 했던 그들의 신산(辛酸)스러움은...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세상사는 ‘저항’과 ‘부역’이라는 흑백논리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쳐 준다.
아울러 인간은 ‘국민의 적’이니 ‘국가의 적’이니 하는 낙인을 찍은 집단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기억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도... 전체주의의 논리가 창궐하는 광란의 시절에 뜻하지 않게 좋은 책을 또 하나 읽었다.

* 덧붙임) 한국이나 일본에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조선인-일본인 부부의 자녀들에 대한 연구가 있을까? ㅡ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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