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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의, ‘친구에게 이익, 적에게는 해악을 주는 것’.

작성자영경|작성시간19.01.15|조회수60 목록 댓글 0

플라톤의 『국가론』은 정의관(正義觀)이 확실하다. 정의는 ‘친구에게 이익이 되고, 적에게는 해악을 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플라톤, 『국가론』, 박영사, 1988, 18쪽) 그러나 기술적 요소가 들어가면,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정치에 적용된 공학을 일반적으로 정치공학이라고 한다. 북핵 문제도 정의에 입각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요즘 핵을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을 공포의 독안으로 끌어간다. 핵은 대량살상 무기이다. 그 무기로 협상을 시도하는 자체가 정치공학이다. 그 생각에는 인권, 즉 생명, 자유, 재산을 보존해줄 생각이 없다.

 

한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 70년 역사를 볼 때, 전쟁 광란에서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정치 공학적이다. 핵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을 보면, 대한민국을 정의관에 입각하여 보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의 목적은 무력을 통한 남조선 해방이다.

 

문제는 386 청와대가 적(敵)에게 이롭게 하는 행위만을 일삼는다. 신인균의 《국방TV》에서 1월 14일,〈위험한 대북 짝사랑, 국민은 죽어도 좋나?〉라고 했다. 신인균 씨는 386 청와대가 더 이상 정치공학을 삼가도록 하는 논의이다.

 

한편 기술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을 한다. 문화일보 사설은 14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다음 달 중순 베트남에서 열릴 것이란 구체적 전망이 나오지만,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이 본질을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감지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미국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이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을 조약했다. 그리고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살아지고 말았다. 닉슨이 정치공학이 가져다 준 결과이다. 그 후 베트남에서는 엄청난 살상이 이뤄졌다. 사이공에 지금도 베트남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숙청되거나, 해외로 떠나는 ‘보팅 피플’이 되었다. 당시 1천만이 희생되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물론 내부의 부패와 갈등, 안일한 사고를 가진 국민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치공학에 대해 좀 더 논해보자. 동 사설은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한국 안보’를 희생양으로 삼을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1일 미⦁북 협상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위험을 어떻게 하면 계속 줄여나가는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논의 중’이라면서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말한 것은 결코 대충 넘길 애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기술에 대해 더 논의하자. 플라톤은 “모든 기술은 자기 이익을 수반하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 이익을 위해서 기술을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술의 목표합니다.”라고 했다(동서, 37쪽). 니체도 기술은 ‘권력에의 의지’라고 했다.

 

기술은 하나의 기술로, 또 다른 기술로 포장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 때 기술은 항상 진실(眞實)을 추구하는 노력이 있을 때에만 완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기술은 정의, 즉 동맹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찾을 때 완성을 찾을 수 있다. 아니면, 정치공학만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정치로 돌아와 보자. 동 사설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회견 때 북한의 구체적 조치로 ICBM 폐기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북한의 ‘핵 인정’을 자초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 2020년 북한의 핵탄두는 100개로 늘어난다는데, 문 정부는 북핵 묵인이라는 최악 사태를 부추기는 셈이어서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문재인은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로 미군 철수만을 주장했다. 그는 정치공학에 익숙한 사람이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는 중국과 북한에 사주 받은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은 〈제재 우회해 개성공단 재개? 국제사회가 용인 하겠나〉라고 했다 동 사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신년사를 내놓았을 대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이 많았다. ‘원인제공자’가 오히려 아량을 베푼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중단했다.

 

북한은 여행객 박왕자 씨를 피격했다.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 뿐 아니라, 북한은 남한 국민에 대해 언제나 폭력과 테러를 감행했다. 그것뿐이겠는가? 북한 내에서도 살상과 테러를 일상화되어 있다. 병영국가로 만들어 살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인권은 말이 아니다. 북한 핵무기도 따지고 보면, 대량살상 무기로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천부인권 사상’ 잣대로 보면 못할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정의를 국내 문제로 들어와 보자. 동맹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라면, 국내에서는 체제에 따라 다르다. 북한은 헌법 자체가 김일성 3대 왕조체제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의는 민주주의는 지배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이익을 주는 것이 정의이다.

분명 북한은 책무기로 공포를 조성하고, 교란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은 “북한 특유의 ‘우기기 전술’이 분명하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주장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우리 정부는 과속행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의 제기는 고사하고 김정은에게 맞장구를 쳐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제제재의 조속한 해결이 남은 과제’라고도 했다. 비핵화 행동의 진전이 없는데도 북한의 ‘통 큰 양보’가 나왔다며 국제사회에 제재 완화를 주문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기에 충분한다.”라고 했다.

 

또한 동 사설은 “가뜩이나 북한 비핵화에 역할을 못 한다는 평가를 받는 외교부가 재빨리 치고 나온 점도 우려를 키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주말 한 강연에서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으로 대규모 현금이 건너지지 않은 우회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 발언도 나왔다.”라고 했다. 그게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가 될 수가 없다. 헌법 정신에도 전혀 맞지 않다. 대한민국의 현 시점의 역사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극복하면 위대한 민족이 되고, 아니면 건설했다 망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더욱이 문재인은 국민의 안전에 관해 관심도 없다. 헌법과 전혀 다른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정당성이 있을 이유가 없다. 10일 연두 기자회견 때에도 문은 평양을 방문 했을 때 비핵화에 대해 정의도 물어보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비핵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물었는지 따졌다. 이어 프랑스 르 피가로 기자는 한반도 비핵화는 괌과 일본의 전술핵 배치도 포함하는 것이냐를 물었다. 그는 기본이 되지 않은 지도자임을 세계에 공포한 것이다.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식 전체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 즉, 그는 민주주의 아닌, 전체주의적 사고를 뼛속 깊이 묻어두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을 위한 지배자를 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위한 지배자를 둔 것이 된다. 물론 촛불민심은 ‘정치공학’에 넘어가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많은 젊은 그들, 즉 20∼40대 촛불 공학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촛불 정치공학 후 가장 많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이들 젊은 세대이다. 종북 세력의 기술적 선전, 선동이 주효했던 것이다. 나라가 어렵게 되었다. 정치 지도자는 먼저 자신의 자리를 내놓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그 때 미국도 도와줄 수 있다. 각성하지 못한 국민에게 어느 혈맹이 도와주겠는가? 혈맹도 같은 마음의 자세로 정의(正義)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공학은 ‘권력에의 의지’에 불과하다. 정치 공학 좋아했던 닉슨은 자기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1974년 8월 8일 워터게이터 사건으로 직을 버렸다. 그는 정의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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