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격다짐으로 박 의장과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이 기자는 자연스럽게 박 의장을
단독 인터뷰하게 된다.
그 이후 이 기자는 여러 차례 박 의장을 만났고
그의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에 대한
구상을 들었으며 그 집념에 매료됐다.
“이런 분이 우리나라를 적어도
4년이나 8년을 맡아주면 달라지겠단 생각이
자꾸 들더라니까.”
그러던 1963년 추석날 밤.
그는 박 의장을 돕기로 결심하고 직접 만나
대통령 선거를 돕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제가 도와 드리겠다고 하니까 이 양반이 깜짝 놀라며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더라고.
왜 박 의장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국민 앞에
밝힐 기회를 달라고 하니까 박 의장이 그 자리에서
이후락 씨에게 전화를 하고 그 즉각 유세 멤버로 합류해
전국 유세를 그때부터 다녔어.”
1963년 10월 15일 치러진 대선의 개표 상황은
초반에는 박 후보에게 불리했다.
초반 열세는 전남 목포시와 신안군의 투표함이
개표되면서 극적으로 역전했다.
대통령이 된 박 의장은 그 후 이 기자를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했고
제6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 이만섭이
정치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전 의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그때 보수 세력들은 전부 윤보선 후보를 찍고
진보적인 세력은 전부 박 후보를 찍었어.
박 대통령은 결코 보수가 아니에요. 민족주의자야.
박 대통령이 날 영입한 것이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갔다니까.?”
[글, 옮김, 編: 定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