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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에게 국화를 바치며

작성자미미엔바비|작성시간13.11.21|조회수20 목록 댓글 0

 

 

 

 

 

 

 

 

 

 

 

 

 

 

 

 

                                      

 

 

 

 

 

 

 

 

 

 

 


                                어머니에게 菊花를 바치며

 

 

 

 

 

                                                                                                                                                  - 여강 최재효

 

 

 

 


   紫布岩乎邊希(자포암호변희)   -   자줏빛 바위가에

   執音乎手毋牛放敎遣(집음호수무우방교견)   -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하시고,

   吾?不喩??伊賜等(오힐불유참힐이사등)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花?折叱可獻乎理音如(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향찰鄕札로 쓰인 위 노래는 1300년 전 신라 성덕왕聖德王(재위 : 702~737)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되어 가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점심

먹는데, 그의 아름다운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절벽 위에 피어 있는 철쭉을

보고 누가 올라가 꽃을 꺾어올 사람이 없느냐고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선뜻 나

서지 못하였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절벽 위에 올라가 꽃을 꺾기

전에 수로부인水路夫人을 향해 부른 노랫말 이다.


 비록 문헌文獻 속 전설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우옹牛翁의

지고지순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노인의 한 없이 인자하고 자상함에 감복

하였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지탄指彈받던 고려가요의 노골적인 면

도 보이지 않고, 경기체가景幾體歌처럼 유림儒林의 도도함도 느낄 수 없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사춘기思春期 한가운데 있었다. 이성異性에 대

호기심은 가장 가까운 대상에게 집중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

대상은 바로 어머니와 누이들이었다. 아무리 나이든 신라의 늙은 견우牽牛라

하여도 남남자 아니던가?


 해주최씨 가문에 칠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나는 여인 천국에서 왕자처럼

대우를 받았다. 나중에 추가로 세 여인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나는 정말로 왕자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병약病弱하여 죽음의 문턱을 수

시로 넘나들던 나의 이력履歷으로 인하여 여인들의 애처로운 시선과 연민憐憫

의 정을 다른 형제들 보다 많이 받은 탓일 게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나를 늘 가시권可視圈에 두고 있었

다. 하루 세끼 식사를 챙겨 주시며 원기소나 과자를 챙기고 강한 햇볕이나 비바

람을 막아주셨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까지 다락방에는 내가 복용한 빈 약병들

가득했었다.


 어느 봄날 오후, 최씨 집안의 두 살 배기 아가는 잠에서 깨어나 방에서 엉금엉

기어 나와 툇마루에 놓여 있던 양잿물을 마시고 말았다. 사색死色이 된 채 여

인은 뻣뻣하게 굳어가는 막내아들을 들쳐 업고 읍내 의원으로 뛰었다. 의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가 심장에 청진기를 대기도 하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며

가망이 없다고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여인은 울며불며 파랗게 식어가는 아들을 업고 수원행 동차動車를 타고 용하다

고 소문난 K 병원으로 갔으나 그곳 의사들 역시 아가에게 청진기 몇 번 대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절망한 여인은 하나님과 부처님 그리고 조상님을 부

르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미약한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아들을 업고 여인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들에게

큰소리로 기도를 하며 밤늦게  여주 읍내로 돌아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의원을

찾아 다녔다.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一念으로 봄비를 맞고 읍내를 이리저리

헤매며 의원을 찾았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때 여인은 막 문을 닫으려는 약국을 발견하고 막무가내로 아들을 살려달라

고 초로初老의 의원에게 매달렸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은 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지 않았다. 최씨 집안 어른들은 아기가 죽은 줄 알고 여인이 돌아오면

아기를 선산인 청마루에 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그 아기가 파리한 중년의 모습으로 하늘 부르심을 받은

그때 그 여인에게 하얀 국화를 바치고 있다. 늦가을 양광陽光이 은은하면서도

따뜻여 봄볕 같기도 하다. 미수米壽의 어머니는 화려한 꽃가마를 타시고 온

갖 꽃로 단장한 아름다운 옷을 입으셨다. 18년 전 하늘소풍을 떠나신 아버님

곁에 어머니는 수줍게 누우셨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하고 나서야 두 분은 새롭게 신방新房을 꾸몄다. 다섯 남매

는 붉은 봉투와 파란 봉투에 두 분의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담긴 단자單子를 넣

고 어머님 가슴에 넣어 드렸다. 두 분의 합방合房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나는

공손히 술잔을 올리고 가을 향기 은은한 국화로 심산深山에서의 첫날밤을 보

낼 신방을 아름다운 문양으로 꾸며드렸다.  


 자식들과 며느리 손자손녀 그리고 조카들이 차례로 두 분께 국화를 올릴 때

나의 양 볼 위로 뜨거운 액체를 흘러내렸다. 나의 볼만 젖은 것이 아니었다.

누이들은 속으로 흐느끼고 며느리들은 가늘게 떨며 ‘아버님, 어머님’을 외쳤

다.

 

잠시 숙연한 헌화의식獻花儀式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청천靑天에 흐르는 흰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나 한번 왔다가 가는 운명의 삶. 그 운명이 마치 저

구름 같다고 생각했다. 지상에서 액체 상태인 물로 존재할 때는 깨끗한 곳, 더

러운 곳 가리지 않고 정화시키고 햇볕이 나면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고 허공

으로 훨훨 날아가서 저렇게 하얀 구름이 되어 한때 존재했던 지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경주정씨慶州鄭氏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 해주최씨海州崔氏 가문에 시집

셔서 한 평생을 물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나는 이 순간 좋은 일, 궂은 일 마

하지 않고 온몸으로 간난艱難의 시대를 산 여인이자, 내 어머니에게 국화를

치고 있다. 어머니에게 꽃을 헌화하면서 나는 신라의 우옹牛翁을 상상했다.

 

 험난한 언덕에 핀 꽃을 꺾어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친 노인. 그 견우

牽牛의 마음에는 직녀織女에 대한 그리움과 연정戀情이 배어 있을 터다. 잦은

병고病苦로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변한 막내아들의 마음도 신라의 노옹老翁

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심성心性을 혹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에 빗대어 연결

하는 우愚 범하는 이는 없으리라. 어머니는 나에게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여

이며, 누이이며, 연인이며, 여신女神이며, 영원한 고향의 아늑한 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엄부嚴父와 자모慈母 사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다른

형제자매와 달리 잔약孱弱하여 유난히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그 크신 은혜를 백분지일도 갚지 못한 자식의 회한悔恨을 저 산새들이 알고

있을까. 이 순간에 막내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혈루血淚 이외

두 분의 유택을 곱게 단장할 수 있는 하얀 국화 송이가 전부다.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디에 계신지요?”
 “성녀聖女여, 죄인이었던 어머니 열제리悅帝利는 천상에 태어난 지 이미

삼일이 지났습니다.” 바라문의 딸과 지옥의 무독귀왕無毒鬼王의 대화는 지

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장보살은 각화정자재

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께서 열반하신 뒤인 상법시대像法時代에 인도의 어

느 바라문婆羅門 딸로 태어났다.

 

 그 바라문의 딸은 여러 생에 걸쳐 선행善行을 많이 행하여 하늘의 보호를 받

있었다. 어머니 열제리는 삼보三寶를 무시하고 악행을 저질러 죽어서 무간

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딸의 지극한 선덕善德과 효성孝誠

으로 어머니 열제리는 하늘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목

존자木蓮尊者의 효성孝誠에 관한 전설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지옥에 빠진 어

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수없이 지옥에 뛰어는 목련존자의 이야기는 늘 나의 가

에 무거운 숙제로 남아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백년을 사는 동안 늘 어머니에게 근심과 걱정거리를

드린 것 말고는 특별히 기쁨을 드린 일이 없는 탕자蕩子나 다름없는 불초不肖

아닌가? 이승을 달리한 부모라 할지라도 이승의 자식들 행동에 따라  피안彼岸

의 부모도 영향을 받는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설화說話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부모나 지인이 세상을 뜨면 모든 인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한다.

위험천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을 세상에 나오

한 선인先人이 있다. 어느 한 시점에서 한 사람의 존재를 살펴 볼 때 두려움

동시에 인연의 그물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태어나기 이미 수천, 수 만 년 전에 현재의 탄생 원인이 제공되었다.

또한 어느 사람으로 인하여 수천, 수 만 년 후 태어날 그의 후손은 태어날 이유

가 존재하게 된다. 위로 100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사람 모두가 한 형제

이며, 한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다.


 칠백 년전 중앙아메리카 아즈텍의 잔인한 축제에서 인신공양人身供養 의식의

일환으로 태양신에게 바쳐진 전쟁 포로도 알고 보면 나와 무관하지 않고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폭군暴君 네로도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현생인류의 시초

初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후손들 아닌가?

 

 최근에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깊고 깊은 계곡에서 수천 년 동안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소녀가 온난화溫暖化와 빙하氷河의 이동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녀의 유전인자를 분석해보면 현생인류의 그것과 같다. 빙하의 소녀가 나와 같

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면서 인연의 연속성에 숙연해

지기도 한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다.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두려운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 복을 쌓지 않으면 그 가문에는 불행만 있다는 말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부모님께서 선행善行을 베풀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가을 단풍이 봄꽃처

럼 아름답게 선산을 치장한 날 햇볕이 억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아들, 손자, 며

느리들이 모여 가시는 길에 국화를 올릴 수 있겠는가. 

 

 돌아가신 뒤 산해진미를 태산같이 쌓아 놓고 제사를 모신들 그 무슨 소용이 있

으랴. 살아 계실 때 고기 한 점이라도 드시게 하는 게 자식 된 도리로써 마땅한

일 아닐까 싶다. 이제는 영정影幀 사진 속에서 만나 뵐 수 있는 고인故人이 되

어머님.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바치고 노래를 하던 신라의 우옹牛翁의 심정

으로 명부冥府에 드신 어머님을 위하여 다양한 경로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하

고 두 분의 생전 업덕業德에 흠이 되지 않도록 근신謹愼하면서 못다 부른 사모

思母曲을 불러보려고 한다.

 

 어머니 유택을 만드는 동안 국화향이 두꺼운 옷에 진하게 배었다. 어머니 영정

사진을 들고 고향집에 도착할 때 까지 헌화가獻花歌로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목

의 눈물’을 속으로 독창獨唱하면서 또한 생전에 어머니를 좀 더 자주 찾아뵙지

죄인임을 자책하면서 울고 싶다. 

 

 

                                                                                                           - 창작일 : 2013.11.3. 청마루에서
                                                                                                                           어머님 장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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