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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미주본부

유우성을 신고한 탈북자 "그가 준 맥주 먹고 정신을 잃었다"

작성자sunnyoung|작성시간14.03.27|조회수74 목록 댓글 0
입력 : 2014.03.26 05:00  
                     

탈북자 색출 업무에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북한내 화교들

최근 탈북자로 위장 입국한 화교(華僑) 유가강(유우성)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재북(在北)화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북화교란 북한에서 외국인증을 발급받아 정착ㆍ생활하고 있는 중국 국적자를 지칭하며, 민족은 한족이다.

이들은 일제시대 북한에 간 중국인의 후손이거나, 6·25전쟁에 북한 지원군으로 참전했다가 북한에 잔류했거나,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정치적 탄압을 피해 북한으로 간 경우다. 이들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북경화인(華人)경제기술연구소가 발간한 ‘화인경제연감(1997~98년)’에 따르면 재북화교는 약 6000명으로 평양 350세대, 평북 300세대, 함흥 150세대 등 주요 도시와 북·중 접경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재북화교의 국적 취득은 부모가 모두 중국 국적자인 경우 자녀들도 자연히 중국인(외국인)으로 등록된다. 북한 전역의 대도시에 화교협회가 조직되어 있고 화교 자녀를 위한 화교학교가 따로 있다. 이들은 몸은 북한에 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서 보위부(우리의 국정원)의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논란과 관련해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 고검에 출석했다./이덕훈 기자
지난 12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논란과 관련해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 고검에 출석했다./이덕훈 기자
탈북자들은 재북화교 하면 한마디로 보위부의 ‘눈깔’(정보원·스파이)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있을 때 재북화교협회 함남도협회 부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함흥출신 탈북자 김모씨는 “북한에서는 화교를 양다리를 걸친 스파이로 부른다”며 “화교 10명에 9명은 보위부의 ‘눈깔’ 노릇을 한다”고 했다. 그는 “화교들은 1년에 2번 이상 중국에 들어가는데 사적인 일로 들어갈 때도 있지만 1년에 1번 이상은 반드시 공적인 일로 들어가야 한다”며, “공무로 들어가는 것은 중국 내 탈북자 색출 임무를 받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2011년 함남도 화교협회 부회장 동평이 공무로 중국에 갔는데 반탐(反探·대간첩업무) 부장이 탈북자 7명의 명단과 사진을 주면서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에 가서 이들을 색출해 잡아오라’는 임무를 주었다고 했다. 6개월만에 귀국한 동평은 탈북자 5명을 체포해서 보위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화교들은 탈북자 색출·체포 외에도 보위부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 나갔다 들어올 때면 보위부의 임무를 받고 반탐기재(핸드폰 전파 탐지기) 명목으로 물품을 구입해 보위부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보위부는 화교들을 북한 내부 반체제인사 색출에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교들은 중국이나 해외에 다녀와 자본주의 물이 든 북한주민들과 접촉해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함께 하면서 속을 타진해보고 그들이 북한체제를 비난하거나 외부세계를 동경하는 발언을 하면 보위부에 밀고한다.

화교협회 회장과 부회장들은 보위부가 충성도에 따라 임명하고 있다. 또 화교의 상당수는 대북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탈북자의 남한가족 연계 첩보를 입수해 보위부에 제공한다. 청진출신의 탈북자 김모씨(여)는 “몇 년 전 잘 아는 화교가 죽었는데 청진 보위부 간부들이 다 문상을 왔다”며 “’조국에 무슨 공을 세웠길래 저렇게 많은 보위부 사람들이 문상을 오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죽은 화교는 금 거래를 했는데 개별적으로 금을 거래하면 심한 처벌을 받는 북한에서 보위부가 뒤를 봐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초로 유가강을 간첩으로 신고한 탈북자

탈북화교 유가강이 간첩이라며 최초로 국정원에 신고한 사람은 탈북자 김경미(가명)씨다.

그는 지난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가강 사건은 탈북자들의 신고로 국정원이 조사를 한 것이지 국정원이 먼저 유가강의 혐의를 알고 조사한 것은 아니라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에서 김씨는 유가강네 가족과 친분이 깊었다고 한다. 김씨가 화교 유가강을 한국에서 처음 만난 것은 한 탈북자단체 모임에서다.
유우성씨 행적.
유우성씨 행적.
그녀는 유가강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유가강이) 원래는 엄청 삐쩍 말랐는데 살이 쪄서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며 “그래도 가강이 아니냐고 하니까 아니 난 유우성이라며 모르는 체 했다”고 말했다. 그후 유가강은 어떻게 김씨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누나 한번 만나자”고 했고, 집주소를 알려줬더니 집에 찾아왔다고 한다. 김씨는 유가강이 맥주를 사들고 왔는데 한 잔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가 순간에 정신을 잠깐 잃었다며 유가강이 맥주에 무슨 약을 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가강은 그동안 뭐하고 지냈냐며 김씨의 근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녀는 “얘(유가강)가 스파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몰래 휴대폰으로 유가강의 말을 녹음했다가 국정원에 간첩신고를 했다. 유가강은 이씨를 만나고 돌아간 뒤 장뇌삼 2뿌리를 선물로 보냈지만 김씨는 장뇌삼에 독이 들어있을까 두려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2010년의 일이다. 그는 “유가강의 여동생 유가려도 성형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유가강을 간첩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2001년에 탈북해 중국 싼허(三合)의 친척집에 살고 있던 김씨는 친척을 통해 북한의 부모들에게 소식을 내보냈다. 그런데 2002년 8월 유가강이 몰래 두만강을 도강해 중국으로 건너와 김씨를 찾아왔다. 김씨는 평소 동생처럼 가깝게 지내던 유가강을 반갑게 대해주고 돈과 물건을 사서 주었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며 휴대폰도 한 대 사서 유가강에게 주었다.

그런데 김씨의 어머니가 유가강네 집에 가서 유가강을 만나 핸드폰을 전달받고 집에 가다가 보위부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항일투사의 유자녀이자 병원 의사로 존경받던 어머니가 자기 동네에서 체포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더욱이 김씨의 아버지는 현직 당 간부였다고 한다.

김씨의 어머니는 보위부에 체포돼 2개월간 조사를 받았고 아버지는 사상투쟁무대에 섰다가 직위에서 해임됐다. 탈북 당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던 김씨가 살아서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 보위부에 발각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족말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유가강 밖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유우성씨가 검찰 출석에 앞서 변호인단과 함께 검찰청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지난 12일 유우성씨가 검찰 출석에 앞서 변호인단과 함께 검찰청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2개월 후 보위부에서 풀려난 김씨의 어머니는 딸에게 “유가강을 믿지 말라”는 편지를 인편에 보냈다. 얼마 후 평양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언니도 해임돼 집으로 내려왔다. 북한 회령세관에서 3개월간 실습을 한 경험이 있는 김씨는 “화교들은 보위부 지도원들과 수시로 만나 정보를 준다며 중국과 북한에서 양다리를 친다”며 “화교들은 자기가 불리하면 이쪽에 붙고 저쪽에 붙는다”고 했다. 김씨는 4대째 북한에서 살았다는 유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탈북자 박모씨는 “화교는 아무리 북한에 오래 살아도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중국인”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과 북한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씨가 4박5일간 북한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2004년 한국에 입국한 유가강이 북한에 들어간 시기는 2006년으로, 2년간 북한을 떠났으면 화교자격이 박탈되고 보위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도 아니고 4박5일간 북한에 머물다 무사히 나온 것은 보위부의 비호를 받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자기가 다니던 병원에도 화교가 있었는데 보위부 스파이노릇을 하면서 중국을 오가며 돈을 벌어 사람들로부터 ‘쓰레기’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협회 회장은 “화교는 북한에 살아도 북한 국적이 없다. 거류증은 있어도 공민증(신분증)이 없다. 그 이유는 조선민족이 아닌 북한에 사는 중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족부터가 다른 그가 탈북자 대우를 받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단일민족을 중시하기 때문에 공민증(우리의 주민등록증)에도 조선사람이라고 분명히 명기한다며,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임신해서 북송되면 북한당국이 외국놈의 씨라며 강제유산시키는 이유도 단일민족의 고유성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유가강이 4박 5일간 북한에 들어가 무엇을 했는지 행적을 다시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며 “2만 7000명의 탈북자들은 부모가 사망해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만일 무단 방북을 방치할 경우 2만7000여 탈북자가 너도나도 북한에 들어가게 되고,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한번 주민번호를 바꾼 사람들은 얼마나 시끄럽고 절차가 번거로운지 잘 알고 있다”며 “아무리 탈북자라도 주민등록번호를 2번이나 바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름도 4번이나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강의 여동생 유가려가 가혹행위 당했다는 주장은 거짓”

탈북자들은 유가강의 여동생 유가려가 합동심문센터에서 고문을 받고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도 부인하고 있다. 합심조에서 간첩으로 오해받아 6개월 넘게 조사를 받았다는 탈북자 김씨는 “원래 한국에 올 생각이 없었고 고향에 가족들이 남아 있기에 거짓말을 계속 했다”며 “조사관들이 의심스러웠지만 고문을 하거나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 공무원 출신인 김씨는 “북한에서 남산지하실에 가면 절반쯤 죽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조사관들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다”고 했다. 간첩혐의로 1년 넘게 합심조 조사를 받은 다른 탈북자도 “군관(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농장원이라고 거짓말을 하다가 소속중대 군인이 탈북해와 대질심문을 해서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며 “반복해 물어보고 거짓말 탐지기를 쓰는 것 외에는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했다.

在北 화교의 탈북자 위장 입국 사례

재북화교는 탈북민과 같이 북한의 사회실상을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탈북민 신분으로 위장 입국할 경우 적발하기가 극히 곤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는 1999년 6월 28일 입국한 재북화교 주차히(48세)씨 적발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유가강 남매를 포함, 총 72명의 재북화교를 적발했다.

이들 중 합동신문센터 신문 도중 적발된 56명은 강제추방하도록 법무부(출입국사무소)에 신병이 인도됐다. 나머지 16명은 탈북민으로 사회 배출되어 우리 국적까지 취득했으나, 추가 첩보 등을 통해 화교신분임이 드러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자로 법적 처리된 뒤 추방절차가 진행되기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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