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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제안 시리즈

[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17) - 특사 순방국 (1) 네덜란드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1.04.17|조회수5,519 목록 댓글 79

[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17) - 특사 순방국 (1) 네덜란드

 

 

1.

지금부터 358년 전인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1척이 타이완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 태풍을 만나 실종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총 6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28명은 제주 인근 해역에서 익사하고 36명의 선원이 살아남아 제주도에 표착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관원이 이들을 체포해 보니, 파란 눈에 허여멀건한 피부에.... 이게 말로만 듣던 신기한 남쪽 오랑캐지만

당시 조선 관헌들의 기강은 엄정했고 처우는 공정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난파선에서 물건을 훔친 조선인들을 엄벌에 처한 것입니다.

 

이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이 자들 중 6명이 조선의 어선을 훔쳐 일본으로 달아나려다 붙잡혔습니다.

보자보자 하니, 이것들이 무엄하다. 감히 우리 배를 훔쳐? 게다가 우리가 이렇게 잘 해 주었는데 탈출?

(그 다음 순서야 뻔하죠. ^^) 여봐라, 저 미개한 것들을 매우 쳐라! 한 놈에 곤장 25대....

 

인정사정 두지 말고 매우 치랍신다! 예~이~~! 하나요, 빡! 둘이요.... 빡!

일행 중에 몸이 좀 부실한 사람은 이 곤장의 후유증으로 죽어버리고, 나머지도 엄중한 억압, 감시 하에 놓입니다.

그리고 10개월 후, 한양으로 압송.... 이 때도 두 발은 묶고, 한 손은 뱃전에 묶어서....

 

오랏줄에 꽁꽁 묶여 한양으로 압송된 이들은 황공하옵게도(?) 효종 임금님을 알현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효종에게 원래의 목적지인 일본의 나가사키로 돌려 보내 줄 것을 간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효종은 일언지하에 이들의 간청을 물리치고 어명을 내립니다.

 

"지금 기독교인에 대한 일본의 박해가 얼마나 심한지 모르느냐? 안전한 조선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하라."

남쪽 오랑캐에게는 파격적인.... 상당히 인도주의적인 배려로 보입니다. 거기에 효종은 한 술 더 떠서 이 관대한 어명을 더합니다.

"너희들이 가진 재주가 있으면 짐을 한 번 기쁘게 해 보라..."

 

별다른 재주가 있을리 없는 선원들이 국왕과 대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팔자에 없는 억지 노래와 춤을 연출했고

이 벽안의 오랑캐들이 선사하는 괴이한 동작과 음율에 국왕과 대신들은 꽤나 흡족해 했다고 하니... 거, 참....

 

2.

사실 조금 코믹해 보이지만, 당시 조선 조정이 저럴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효종은 병자호란의 원수를 갚고, 자신을 볼모로 끌고 갔던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들을 외국으로 돌려 보내면 국가적 일급 기밀이었던 <효종의 북벌계획>이 누설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저 네덜란드 선원들의 말은 누가 퉁역해 주었을까요?

적어도 저 정도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한국어와 네덜란드어.... 양 언어에 도사 급이 있어야 할텐데요....

사실 당시의 조선에는 이들보다 26년 전에 조선에 표류해 온 박연(Jan Janse Weltevree)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연은 원주 박씨의 시조로, 이미 조선에 귀화하여 조선의 여인과 결혼,

훈련도감 소속의 무관으로 총포 제작을 도왔으며 병자호란 때도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고,

당시 네덜란드 선원들의 말을 통역할 때도 조선의 관리로써 엄정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3.

그런데... 네덜란드의 배가 왜 타이완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고 있었을까요?

일본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제 아무리 쇄국정책을 취한다고 해도 손톱만한 숨구멍은 터 놓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막후의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도요토미의 아들과 부인을 죽이고 스스로 쇼군(將軍)의 자리에 올라 일본 천하를 손에 넣고 막부를 창립합니다.

 

이 막부의 쇼군(將軍)이 사실상 일본의 지배자가 된 셈인데, (당시 일본 천황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

일본은 쇄국정책을 취하면서도 서양의 문물인 총기와 대포 제작 기술의 수입에는 등한시 할 수 없었고, 

특히 식민지주의보다는 무역을 통한 상호 이익주의를 앞세우는 네덜란드와는 궁합이 맞았던 셈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항구는 봉쇄하되,

나가사키 항구의 '오란다 사완' 딱 한 곳만 개방하여 서양의 소식도 듣고, 새로운 문물도 흡수했던 것입니다.

 

4.

여기서 잠깐, 40대 이후에게만 묻겠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칠성사이다' 광고를 아시나요?

어려웠던 시절.... 소풍 갈 때면 반드시 들고 갔던 사이다 한 병의 추억.

그 때 잊을 수 없었던 라디오 광고 카피... <화란 나르당의 천연향.... 칠성 사이다....>

 

여기서 '화란和蘭'이 바로 '네덜란드'라는 나라고, '나르당'은 당시 '네덜란드'의 향료 회사였다는 사실... 아시나요? ^^

당시의 칠성사이다 해봤자 탄산수에 설탕을 넣은 그냥 설탕물인데, 여기에 화란 나르당의 천연향을 넣어 맛을 더했죠.

아마 40대 이상이라면 어려웠던 시절의 그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팔까... 해서 슈퍼에 가 봤더니 칠성사이다는 파는데, 맛은 그 맛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귀소본능.... 어려웠던 시절의 맛은 되살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그런데 '네덜란드'가 어떻게 '화란和蘭'이 될 수가 있을까요?

네덜란드에 조화로운 난초蘭草라도 나나요? 아뇨.

네달란드의 다른 이름이 홀란드고, 이 홀란드가 중국어인 한자로 차음되면 화란和蘭이 되는 겁니다.

 

5.

다시 일본.

일본 이라는 나라의 문을 모조리 닫아 걸고 오직 한 곳만 열어놓았던 쇄국의 시기,

유일하게 개방된 나가사키 항의 통역사들로부터 서서히 네덜란드를 배우자는 바람이 일었습니다.

 

여기서 네덜란드(홀란드/화란和蘭)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난학蘭學입니다.

그리고 이 일본의 난학蘭學이 바로 일본 근대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재밌죠?

 

일본은 쇄국주의 시대에 이미 화란(네덜란드)를 통하여

서양지리, 서양과학, 화란어(네덜란드어), 의학, 종교, 본초학, 박물학, 항해술, 군사학, 천문학...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6.

참. 아까 조선에 흘러 들어왔던 네덜란드 선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 중에는 '하멜'이라는 선원이 있었는데,

결국 조선을 탈출하는데 성공,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갑니다.

 

고향에 돌아 가 보니. 빈 주먹....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하멜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합니다.

그동안 나는 동인도회사를 위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근무했다. 봐라. 조선에 대한 보고서. 일 했으니 월급 다오.

마침내 그는 밀린 월급을 타게 됩니다. 그리고 해피 엔딩..... 이 보고서가 바로 그 유명한 <하멜 표류기>입니다.

 

하멜 표류기 외에도 네덜란드와 우리의 인연을 역설하는 이야기는 참 많습니다.

네덜란드는 우리 6.25 동란 때 참전, 우리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려준 우방이기도 합니다.

 

보병 1개 대대와 군함 1척을 파견한 네덜란드군은

총 참전병이 5,322명으로 전사 120명 부상 645명이 희생을 치렀습니다.

자유의 나라에서 자유를 지키러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렇게 고귀한 희생까지 치렀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7.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날아들어 오겠군요.) 네덜란드가 그렇게 대국大國이었고, 강국强國이었나요?

네. 작지만 강한 선진국, 강소국强小國이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8.

전 세계를 향하여 열린 항구 도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여기에서 네덜란드 자유의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시내 한복판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유일의 합법 매춘의 거리, 암스테르담 홍등가.

밝고 발랄하게 조성된 이 거리는 섹스 박물관을 비롯하여 가벼운 마약을 파는 커피 숖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한 번은 남자 매춘부를 공개 모집한 적이 있었습니다.

감히 누가 나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기우... 8명 모집에 60명이 지원하여 대성황을 이루었고,

그날 이 남자 매춘부夫 거리에 매스컴과 여자 관광객들이 잔뜩 몰려 들었답니다.

 

남자 매춘부夫들은 쇼윈도우 안쪽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섹쉬~한 눈빛을 보내고

거리에는 그 광경을 보러 온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그 순간, 한 여성이 용감하게 '에라~ 한 번 해 보자'면서 한  매춘부夫의 가게로 돌진....,

이어지는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 쩝.

 

참. 암스테르담에서 최고참 매춘부의 나이는 몇 살 일까요?

정답은 72세. 직접 쇼윈도우 안에서 영업은 하지 않고, 전화 예약만 받는다는군요.

그런데 누가 그런 늙은이에게 갈까요?라는 우문에 현답은... 뭐든지 오래 해 본 사람이 잘 한다는 대답. 쩝.

 

세금 낼 것 다 내면서,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하는 개인사업자 매춘.

그러나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암스테르담 홍등가로 몰리는 이유는 매매춘이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눈으로 즐기는 관광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유....

어떤 일이든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열린 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면 엄정한 법 적용으로 유명한 나라.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도 여자끼리 사랑할 자유가 있다면서 동성간의 결혼이 허용되는 나라.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 않은 죽음 선택의 자유를 위하여 안락사를 세계 최초로 허용한 나라.

아기를 떼고 말고는 아기를 가진 당사자가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낙태 자유의 나라.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지나친(?) 자유의 나라,

개인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더 나은 개인이 탄생할 것을 믿는 나라, 네덜란드.

넓게 보장된 자유 하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로 빠져 들어가지 않는.... 방종하지 않는 개인.

 

9.

네덜란드가 저렇게 폭 넓은 자유의 정신을 가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산업혁명 이전 1300년대에 유럽에서 가장 방직공업이 발달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지역입니다.

유럽 전체의 왕족과 귀족들이 입는 고급 옷감은 모조리 플랑드르 지역에서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국만 해도 양털을 깍아 플랑드르 지역에 수출하는 것이 주요 수입원이었으니까요.

 

자. 상업과 공업, 무역이 발달하면 뭐가 따르죠? 예. 부자가 생기고, 시민의식이 자랍니다.

돈을 좀 번 상인들이나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들은 아예 영주로 부터 토지를 사버렸죠.

오히려 돈 없는 귀족이 개털 되는 건 시간 문제,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미 시민의식이 싹이 틉니다.  

 

이어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구교(카톨릭)와 신교가 대립하게 됩니다.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에 종교의 자유를 갈구하는 바람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카톨릭 국가인 에스파냐가 총독을 파견하고 군대를 보내 네덜란드를 식민지화 해 버립니다.

 

당시 에스파냐(스페인)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는 다 아실 것입니다.

무적의 함대 아르마다.... 하면 어느 나라나 벌벌 떨었죠.

그런 큰 나라 에스파냐를 상대로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독립전쟁을 벌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면서....

 

보통 독립전쟁...하면 몇 년이나 치를까요? 5년? 10년? 20년?

땡~~! 틀렸습니다. 1568년부터 1648년까지 80년!!!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독립전쟁에 나섰습니다. 대단하죠?

 

10.

1588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에스파냐(스페인)의 무적함대(아르마다)는 바다의 패권을 두고 맞장을 뜨게 됩니다.

이때 네덜란드는 영국 편에 가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꺾고 영국과 나란히 새로운 바다의 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깜짝 놀란 에스파냐는 네덜란드에 12년 간의 휴전을 제의, 네덜란드에 모처럼 평화의 기간이 주어지게 됩니다. 

 

실력으로 자유를 얻었다는 자부심. <- 약자에게 이것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12년 간의 황금같은 휴전..... 드디어 네덜란드는 본격적으로 세계로 향합니다.

신대륙인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것도, 뉴질랜드를 발견한 것도 네덜란드 함대였습니다.

 

후추, 차, 설탕.... 돈 되는 동방무역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네덜란드가 유럽 제일의 강자로 뜨게 되자 휴전 중이던 에스파냐가 다시 시비를 겁니다.

 

이어 30년 전쟁.... 그 결과 네덜란드는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하여 당당히 독립국이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스위스와 함께 영세중립국 임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힘 없는 중립"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나중에 네덜란드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에게 정복당하니까요)

 

11.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 바다의 왕자가 둘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네덜란드가 동방무역을 독점하다시피하자 한 때 동맹국이었던 영국이 그냥 둘리 없죠.

전쟁이 터지고, 영국이 이깁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12.

좁은 땅의 네덜란드. 네덜란드 국민의 땅에 대한 의지는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 말고는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드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산도 없는 나라에서 흙으로 바다를 메울 수는 없는 노릇.

둑을 쌓고 바닷물을 퍼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10년, 20년, 100년, 수백년.... 풍차를 돌려 바닷물을 퍼 냈습니다.

 

그 결과 해수면보다 낮기는 하지만, 엄청난 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의 영토 중 25%가 바다보다 낮다고 하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3.

이런 나라에 만약 바다를 막은 제방이 무너지면?

여기 동화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서쪽 바닷가 마을 할렘 스파른담에 한스 브링커란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마을에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왔다.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던 한스는 우연히 제방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할수 없이 한스는 자신의 작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았다.

   곧 사람이 오겠지....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구멍은 점점 커져, 손으로 막다가 팔뚝으로 막다가 마침내 온몸으로 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곧 제방이 무너질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새벽녘 일터로 나가던 마을 아저씨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됐다. 제방에 난 구멍을 어린 소년이 온몸을 다해 막고 있는 것이었다.

   “저 소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마을은 물바다가 됐겠구나!” 그는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어린 소년이 제방의 구멍을 막고 있습니다! 어서 소년을 도우러 갑시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제방 붕괴는 막았지만 한스의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한스의 헌신과 용기를 기려 동상을 세웠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스 브링커의 동상을 찾아 소년을 추모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각국의 교과서는 물론,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아직도 진짜라고 믿는 분이 계시겠죠?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미국의 동화작가 메리 도지(Mary Mapes Dodge)가 1865년에 쓴

<한스 브링커, 혹은 은빛 스케이트>란 동화였습니다.

 

덴마크의 인어공주처럼 동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스의 동상이 만들어 졌습니다.

한스의 동상 제막식에는 네덜란드의 정부인사와 여왕, 공주 등 왕실가족까지 참석했습니다.

 

14.

저는 그림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지만,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대가 빈센트 반 고흐는 참 좋아 합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다 간 사람입니다.

  

 

위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십시오. 진짜 진품일까요? ㅋ~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이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물론 농담이고, 위 그림은 진품이겠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만한 명작은 없다는 이야기를 반증하는 것이 바로 이런 보도일 것입니다.

 

제 어릴 적, 밤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들.... 별이 사라진 시대에서 자란 요즘 아이들은 모를 겁니다.

별이 쏟아질 때 얼마나 엄청난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잠을 설치면서 밤 하늘에 뜬 별을 하나, 둘..... 헤는 마음을

빈센트 반 고흐는 화폭에 그대로 옮겨담았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위대했습니다.

 

15.

좁은 땅에 비하여 많은 인구.... 네덜란드의 인구밀도는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비하면 고목나무에 매미...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나마 서울 등 대도시에 인구가 몰려, 서울의 인구밀도는 OECD 국가중 최고입니다.

이에 비하면 네덜란드는 오히려 한산한 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 부처가 모조리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네덜란드가 좋은 사례가 되겠네요.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입니다. 그러나 행정수도는 헤이그입니다.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들고 왔던 이준 열사가 순국한 곳. 헤이그.

당연히 행정부, 국회, 여왕의 왕궁까지 모조리 헤이그에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국가 수도는 암스테르담, 행정수도는 헤이그....라 해서 국력이 낭비되거나

비능률이 발생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이나 네덜란드처럼 경제수도와 행정수도는 구분되어야 오히려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가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저는 국회도 세종시로 가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서울 수도권의 경쟁력은 더욱 여유로워질 것이고, 전 국토의 고른 발전으로 전 국토의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며,

부수적으로 부정과 부패도 줄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소국 네덜란드를 보고 배울 점이 있으면 과감히 배워야지요.

 

16.

네덜란드에서 배울 점은 참 많습니다.

그 특이한 예가 바로 노사협력 체계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실업률 12%, 청년실업률은 30%에 달했던 지난 1980대 초반 네덜란드는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물가상승분만큼 임금도 오르는 ‘물가연동 임금제’로 고임금 구조가 고착돼 새로운 고용 창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를 공감한 노사 대표는 1982년 서부해안가 바세나르에서 만나 ‘임금 동결과 일자리 분배를 통한 고용유지 및 확대’에 극적으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이 ‘바세나르 협약’ 이후 네덜란드는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 우등생으로 거듭났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노조의 양보와 결단을 어떻게 끌어냈냐는 점이다.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 16년간 400만원을 유용했다는 사실이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 될 만큼 깨끗한 공직사회에 대한 믿음이 정부정책에 호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두번째 이유는 사회적 안전망에 있다. 설령 임금이 동결돼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대타협과 경제 기적을 만든 바탕이다. (인터넷 한국일보 2009/02/11 17:12:41)

 

17.

이번에 우리나라가 구제역으로 된통 당했죠?

마침내 백신을 주사했는데, 이 구제역 백신을 제조, 수출하는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 밖에 없습니다.

별 걸 다 수출하는 나라가 네덜란드네요. 

 

참! 네덜란드는 전기도 수출합니다.

무려 1400만 마리의 돼지와 400만 마리의 소를 기르는 낙농, 축산국답게
수출용 전기는 풍력발전과 함께 소, 돼지 배설물을 발효, 거기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태워 발전, 수출하기도 합니다.

 

ING보험/금융, SHELL, 필립전자, 하이네켄 맥주....

1인당 GDP가 48,222 달러(2009년)로 우리의 두 배가 훨씬 넘지만

국토는 우리의 절반, 인구는 우리의 1/3 밖에 되지 않는 강소국, 네덜란드.

 

튤립과 풍차의 나라, 자유와 개방의 나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되, 국가는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하겠다는 나라,  

인접 유럽국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진보적인 나라. 네덜란드에 

 

우리가 사랑하는 근혜님이 대통령 특사의 자격으로 다녀오시게 됩니다.

박근혜 대표님, 안녕히 다녀 오십시오.

 

18.

매년 4월 30일은 네덜란드의 가장 큰 축일인 네덜란드 <여왕의 날 Queen's day>입니다.

현 베아트릭스 여왕의 생일은 1월이지만, 할머니인 줄리아나 여왕의 생일인 4월 30일을 축일로 삼았답니다.

아마 이 날을 전후해서 박근혜 대표님이 베아트릭스 여왕을 만나시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날 네덜란드에서는 입헌군주국답게 전국적으로 큰 축제가 열리는데,

특히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의 프리마켓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각종 경제용어 외우느라 정신 없을 때,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은 왕궁 앞 마당에 난전을 펴고 실물경제(?)를 익히느라 정신 없습니다.

사실 네덜란드 어린이들의 경제관과 근검절약 정신은 이렇게 직접 몸으로 익히도록 어른들이 유도한다는군요. 

 

마지막으로 팁 하나.

네덜란드인은 누구나 대부분 2개 국어 이상 한다는 사실! 택시 기사부터 아이들까지 영어가 통하니

영어 조금만 하면 네덜란드 여행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답니다.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다녀 오십시오. ^^

 

감사합니다.

 

 

2011.04.17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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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참! 네덜란드인으로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히딩크 감독. 요즘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죠?

스포츠서울의 보도를 옮깁니다.

 

   거스 히딩크 터키 대표팀 감독이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첼시 감독직 제안을 거절하면서 마르코 반 바스텐 전 아약스 감독을 차기 첼시 사령탑으로 밀고 있으며. 역시 친분이 있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전 바르셀로나 감독도 그의 추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 언론 ‘데일리 메일’ 등이 17일 보도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이 초읽기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히딩크 감독은 매일같이 승부의 책임을 져야 하는 클럽 감독보다는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서울 2011.04.17)

 

장사 수완...하면 첫째는 유대인, 두번째는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이 손해 보는 짓은 안 하겠죠?

 

 

 

<* 본 글은 홍보용으로 복사와 스크랩을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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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연개소문제베 | 작성시간 11.04.21 존경하는 회장님,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충성!~
  • 작성자파란무지개 | 작성시간 11.04.23 일찍히 알지못했던 몇가지 사항을 추가로 알겠되었네요~~회장님 건강하세요~~홍보차 퍼갑니다~
  • 작성자남쪽 바다 | 작성시간 11.04.28 저도 퍼갑니다. ^^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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