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학습제안 시리즈

[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19) - 특사 순방국 (3) 포르투갈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1.04.21|조회수5,928 목록 댓글 96

[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19) - 특사 순방국 (3) 포르투갈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고, 여우가 곶감 먹던 시절에....

포르투갈의 '바르셀로스'라는 지방에 한 이방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이 지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재수없게도 이 이방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착한 사람이었으나 이방인인 탓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형이 집행되기 전, 이방인은 마지막으로 판사를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고 사람들은 그를 판사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 판사는 친구들과 만찬 중이었고 이방인은 다시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나는 무죄하오. 나를 죽이지 마시오."

판사는 감히 자신의 판결에 시비를 거는 이 건방진 이방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범인은 다 그렇게 주장하지." 판사는 명령했습니다. "이 놈을 끌고 가!"

 

그러자 이방인은 식탁 위에 있는 구운 닭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무죄한 나를 처형하면 저 구운 수탉이 일어 나 노래할 것이오!"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판사도 사람들도 모두 웃었습니다.

"구운 닭이 노래를? 춤을 춰도 안 돼! 끌 고 가!"

 

마침내 이방인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구운 수탉이 벌떡 일어나더니.... 가슴을 펴고 핫둘, 핫둘 목울대를 가다듬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꼬끼요오오오~~~"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놀란 판사는 형장을 향하여 나는 듯 달렸습니다. 

"멈추어라~~~ 즉시 멈추어라~~~!!!"

판사는 이방인의 목에 걸린 밧줄을 손수 풀어주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억세게 재수(?) 좋은 이방인은 성모 마리아의 은덕에 감사했고

몇 년 후, 다시 바르셀로스를 찾아 와, 'The Virgin and St. James(Sao Tiago)'라는 기념비를 세웠답니다.

 

방금, 이건... 말도 안 되는 전설.... 이라고 생각하셨죠?

아뇨. 그 이방인이 세운 'The Virgin and St. James(Sao Tiago)'라는 기념비가 당당히 남아 있는데요?

그럼 진실일까요? ㅋㅋ~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하여튼.... 

 

이.... 말도 안 되는 전설...인지, 사실인지 모를 이야기는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저 기적의 수탉은 화려한 수공예품으로 거듭 나 포르투갈의 가정마다 없는 집이 없고,

기념품 가게에서도 포르투갈의 상징으로, 행운의 상징으로 관광객들에게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끝!)

 

2.

유럽을 달려 서쪽 끝까지 가면 맨 끝에 포르투갈이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신트라고, 여기에 까보 다 로까 (로까 곶)이 있습니다.

여기가 지구의 서쪽 끝입니다.

 

로까 곶에서는 돈만 내면 지구의 끝에 왔다는 증명서도 발급해 줍니다.

아. 물론, 돈 안 내면 발급 안 해 줍니다. ^^ 지구 끝에서도 공짜는 없습니다. ^^

돈 없으면 지구 끝까지 가도 소용 없습니다. ^^ (* 12유로)

 

육지의 끝이니 바다가.... 대서양이 시작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포르투갈은 세계를 향하여 열린 나라라고도 합니다.

 

3.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먼저 찾아갔던 나라는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습니다.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를 찾은 콜럼부스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험난한 동쪽 육로가 아니라

서쪽 뱃길로 쭈욱 가면 인도에 이를 수 있고, 인도와 교역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당시 주앙 2세는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에 더 관심이 있어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도움으로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자... 결국 인도에 이른 쪽은 에스파냐의 콜럼버스였을까요? 포르투갈이었을까요? 

 

정답! 신대륙은 콜럼버스가 발견했지만, 진짜 인도항로를 개척한 것은 포르투갈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는 1497년 7월 8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출발, 11월 초 희망봉 근처의 세인트헬레나만에 도착한 뒤 1498년 5월 20일 인도의 캘리것에 입항하였습니다. <- 이게 진짜 인도항로였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그가 발견한 곳이 인도인 줄 알았지만, 정작 인도의 후추나 향료는 꿈만 꾸다 말았습니다. 

 

4.

1450년.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넓은 땅에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원주민인 브라질 인디언들은 포르투갈인들의 노예가 되면서 언어조차 상실하고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게 됩니다.

(현재 포르투갈 인구는 고작 1000만명 남짓한데, 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브라질, 모잠비크, 앙골라, 상투메,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등 1억 5천만명이나 됩니다.)

 

5.

1543년.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 앞 바다에 떠 있는 섬 다네가시마(種子島).

섬나라 일본인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옷차림에 파란 눈....

희한한 인간 종자(?)가 난파선에서 기어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손에 한 가지 물건을 휴대하고 있었다. 길이는 두세 척(尺), 길쭉하고 속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밑동은 밀폐되었고 옆쪽에 불이 통하는 구멍이 있었다. 사용할 때에는 묘약(妙藥)을 넣고 조그맣고 둥근 납덩이를 채운다. 구멍에다 불을 붙여서 쏘면 벼락 치는 소리가 나서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으나 조그만 표적조차 영락없이 맞힌다. (중략).

     도키타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여 만금(萬金)을 주고 두 자루를 샀다. 그는 화약 제조법을 가신(家臣)에게 배우도록 한 뒤 스스로 사격술을 익혀 백발백중의 기량에 도달했다. (중략).
     도키타카는 휘하의 대장장이 몇 명에게 명을 내려 똑같은 물건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밑동 부분(=방아쇠를 가리키는 듯)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듬해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의 대장장이가 있어 도키타카는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1년여 만에 수십 자루의 철포가 만들어졌다.”
                                                                                                    ...... 선승 난포분시(南浦文之)의 <철포기(鐵炮記)>


포르투갈 상인이 전해 준 화승총.... 

이 총으로 일본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고,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이 총으로 우리나라를 침략,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본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당시 조선 최고의 무장武將인 신립 장군을 보냈고, 신립은 충주의 탄금대에 진을 쳤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뎃뽀(鐵炮:화승총)로 무장했고, 조선군은 무뎃뽀(無鐵炮)로 덤볐습니다. 물론,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어쨓든 이것이 포르투갈인이 전해준 화승총을 통한 포르투갈과 우리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 후 1593.12.27. 천주교도였던 왜장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요청으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우리 땅을 밟았고, 

이것이 한국과 천주교와의 첫 접촉이기도 했습니다. (세스페데스: 스페인의 마드리아에서 태어난 포르투갈 국적의 신부)

 

또한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를 우리나라에 전래한 것도 임진왜란 때의 포르투갈인들이었습니다.

그 전의 우리 김치는 백김치나 동치미 등 절임 김치 수준이었다가

고추가루로 인하여 우리 김치가 더욱 풍성한 맛을 자랑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같습니다.

 

6.

1543년 최초 조우가 한참 지난 뒤, 포르투갈의 선박들이 일본에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일본 물건을 사서 유럽에 팔고, 유럽 물건을 사서 일본에 팔았으나 이익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일본에 팔만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의 제조업은 전반적으로 아시아에 비해 기술 수준이 낮았고, 노동력도 풍부하지 않아 가격경쟁력조차 없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식민지에서 가져온 은銀으로 결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이 은銀의 생산국이자 수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은銀을? <- 우리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은銀 제련술은 세계적이었습니다.

16세기 중엽 일본은 우리에게서 은銀 제련술을 배워갔는데, 지금 다시 봐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실래요? ^^)

 

은銀광석을 캐면 온갖 불순물이 다 묻어 있습니다. 흙, 돌, 철. 등등등....

그 원석을 부숴서 납을 섞어 함께 태우면 납과 은銀이 함께 녹아 나옵니다. 일단 그걸 식혀서 굳히고....

 

이렇게 은과 납이 섞인 것을 재가 담긴 냄비에 담고 탄(炭)을 가득 채우고 풍구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납은 녹아 재에 스며들고 은만 재 위에 뜹니다.

간단하죠? 우리 조선의 선진기술.... 심심하면 한 번 해 보세요. ^^

 

당시 세계의 화폐였던 일본에 은銀이 오히려 풍부하니 포르투갈 상인들이 환장하겠죠?

영악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으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왜구들이 중국 해안을 하도 괴롭혀서 그 벌罰로 중국 황실은 아예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해버렸거든요.

 

위기는 기회!!! 바야흐로 당시 일본은 중국 물건이라면 뭐든지 사족을 못 쓰던 때였으니....

중국의 무역 파트너가 된 포르투갈 상인은 일본상인과 중국상인을 대신하여 거래를 시작하고

중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삼각 중계무역을 하게 된 겁니다. 장사꾼들.... 진짜 영리하죠?

 

이렇게 해서 포르투갈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상권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겁니다.
당시 막대한 이익을 올린 포르투갈 배의 선장들은 파이프를 물고 흑인 노예를 데리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렸고

헤프기로 유명한 일본 하류 논다니들의 몸값까지 올려 놓았으니.... ^^;;

 

7.

포르투갈은 해양 강국이었습니다.

한 때 전 세계 바다를 헤집고 다녔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보유했습니다.

 

그런 나라의 포르투갈 해군이 운영하는 해양 박물관에는 우리의 거북선도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1592년 세계 최고의 전투함이며,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무찌른 배'라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해양 강국 대한민국....

우리도 과감하게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포르투갈은 2면이 바다지만, 우리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니까요.

 

8.

해양강국. 광할한 식민지에서 약탈한 엄청난 금은보화를 포르투갈로 실어 날랐는데, 왜 포르투갈이 가난해졌을까요?

금金이 곧 화폐였던 시절, 금이 넘쳐나다 보니 오히려 쏟아져 들어오는 금 때문에 나라가 몰락한 겁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 낸 것과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결과야 뻔하죠. 돈 가치가 떨어지거나, 물가가 치솟거나.... ^^ (결국 같은 말이지만....)

또 금이 넘쳐나다보니 왕실과 귀족은 흥청망청.... 필요한 물건은 모조리 외국에서 수입하게 되니, 국내 산업이 다 죽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많던 금은보화조차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것은 개털....

 

이런 현상을 보고 아담 스미스는 '지나친 중상주의 정책은 오히려 해롭다.'면서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이고 개인의 건전한 이익추구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 때, 포르투갈이 그 많은 금은보화를 국내산업 부흥을 위해서 썼더라면....

지금의 포르투갈은 완전히 달려져 있을 겁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물건을 내다 판 대신에, 포르투갈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금은보화를 모조리 내다 판 셈입니다.

제조업이 강한 영국이야 제조업이 살아있는 한 얼마든지 내다 팔 물건이 있었지만, 약탈해 온 금은보화는 금새 동이 나버리고 결국 포르투갈은 몰락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 몰락한 또 다른 원인을 보면, 공산주의자가 그렇게 혐오하는 부르주아의 실종에 있습니다.

유럽 각국이 부르주아의 발흥으로 시민계급(중산층)이 성장했던데 비해,

포르투갈은 왕족, 귀족을 제외하면 모조리 평민.... 사회의 0.1%가 국가의 부를 대부분 차지해 버린겁니다. 


지금 포르투갈의 경제 수준은 유럽에서는 최하위입니다.

게다가  포르투갈발發 재정위기는 유럽을 경제위기로 몰아 넣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웃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 전염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9.

옛날 일은 옛날 일이라 치고, 지금의 포르투갈 경제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갑작스럽게 재정위기의 ‘폭탄’을 맞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와 달리 포르투갈의 위기는 서서히, 그리고 오랫동안 심화되어 온 것입니다.  

과거 포르투갈의 주력산업이었던 섬유공업은 이미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갔고, 코르크 수확 같은 전통적 산업으로는 국가경제를 부양할 수 없습니다.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포르투갈 위기의 가장 큰 이유는 낙후된 교육 시스템과 낮은 교육 수준 때문입니다.

가장 열심히 일할 나이인 25~64세 인구 중 28%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 비율은 독일 85%, 체코 91%, 미국 8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아일랜드 역시 한 세대 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교육분야에 집중 투자했고 짧은 시간 내에 유럽에서 가장 숙련된 기술인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볼 때, 그런 아일랜드가 경제기적을 이룬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금융권 부실화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유럽의 부국 중 하나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아시나요?

그 자신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자 출신이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나라 안밖으로 비난을 받으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계층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그 결과 극빈층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늘어납니다.

무려 1260만명에게 지급한 생활보조금이 소비시장에 유입되면서 오히려 생산을 자극합니다.

그는 그의 임기 8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던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룰라 대통령의 저소득층 생계지원 프로그램에는 딱 한 가지 엄격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한 푼도 주지 않겠다."

 

물론 포르투갈에 초등학교도 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정신만큼은 포르투갈이 옛날 자신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시급히 배워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을 너무 우습게 보지는 마십시오. 유럽의 최하위일 뿐, 1인당 GDP는 우리와 비슷하니까요.)

 

10.

포르투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죠? 축구!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에우제비우, 대표팀의 호나우두....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유럽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합니다.

 

포르투갈 축구는 유럽의 브라질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고, '슈페르리가'라는 리그가 있습니다.

여기에 정병민, 정민호, 김동현 등의 한국 선수가 뛰었거나 뛰고 있다고 합니다.
더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이 찾아보세요. ^^

 

11.

포르투갈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입니다.

아래는 네이버에서 찾은 자료입니다. 참고하십시오.

 

     한국과는 1961년 4월 국교를 맺어 1973년 6월 포르투갈 한국대사관이 개설되고 1988년 8월 주한 포르투갈대사관을 개설하였다. 북한과는 1975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1978년 6월 포르투갈 북한대사관을 개설하였다가 1995년 3월 폐쇄하고 1999년 현재 스웨덴 북한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양국은 1977년 무역협정, 1979년 사증면제협정, 1985년 경제산업협력협정, 1990년 문화협정, 1996년 투자보장협정, 1997년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였다. 

     삼성전자(주), 삼성전기(주), 한라공조(주) 등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자동차, 전자·전기 제품 등의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8년 현재 대한수입 2억 9250만 달러, 대한수출 1200만 달러로서 주요 수출품은 코르크, 자동차 부품, 대리석, 수입품은 승용차, 디지털식 집적회로, PCB, 상용차 등이다. 
                                                                                                                                               ...... <출처 :네이버>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 포르투갈을 방문한 인사는 1987년 노신영 총리, 1989년 김재순 국회의장, 1999년 김종필 총리, 2002년 전윤철 부총리, 2006년 한명숙 총리 등이며, 이번에 박근혜 대표님이 대통령의 특사로 포르투갈을 방문, 아니발 카바코 실바 포르투갈 대통령을 만나시게 됩니다.  

 

.......................

 

[학습 제안] 박근혜의 꿈 - <특사 순방국>.... 시리즈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11.04.21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 본 글은 홍보용으로 복사와 스크랩을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