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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제안 시리즈

[학습제안] (22)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한국형 이즘을 찾아라.<01> 위기의 보수, 위기의 진보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1.05.16|조회수4,058 목록 댓글 58

[학습제안] (22)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한국형 이즘을 찾아라.<01>

 

 

위기의 보수, 위기의 진보

 

1.

패자유언敗子有言

 

2011년 재보선 패배 후, 이재오 특임장관이 패배요인으로 “젊은 층이 한나라당을 그냥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후, 사이버 세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그의 정확한 워딩은 이랬다.

“(젊은 층을) 당연히 같이 안고 가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싫어하는 이유가 있으면 그 이유를 찾아서 없애면 되는데, 젊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은 그냥 싫다고 하니…이유를 찾아봐야지.”

 

이재오 특임장관이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변이 재미있다.

“그냥 싫다니요? 미운 거죠.”

“이유가 120개는 된다.”

“그런 사고방식이면 내년도 총선과 대선도 완패할 듯....”

 

‘천당天堂 아래 분당’이라던 한나라당의 아성에서 한나라당 강재섭이 패했을 때,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던 유시민이 패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짧은 글을 남겼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처절한 자기고백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을 향한 트위터리안들의 질타는 매서웠다.

"유시민은 이제 그만 노무현을 내려놓고 혼자서 길을 가라."

“노무현에게 있고, 유시민에게 없는 것. 노무현은 지는 길을 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유시민은 이길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럴까? 진짜 그것 때문에 졌을까?

 

도대체 이재오는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유시민은 무엇이 그리 죄송하고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일까. 이것을 알면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는 손바닥 안에 들어 올 것이다.

 

이번 4.27 재보선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분석은 아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2011년 4.27 재보선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정치는 적어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기회를 맞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 우리나라 우파 보수주의가 새로운 활로를 찾고, 우리나라 순수좌파 진보주의가 두꺼운 껍질을 벗어야 한다는 점만 충족된다면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는 현재보다 두, 세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문제부터 짚어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패배원인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또는 언론이 분석하는 것과 실제 패인은 다르다. 아무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을 뿐, 진짜 원인은 다른데 있다. 또한 유시민의 패배 원인도 유시민이나 유시민을 추종하는 자들의 분석과는 다르다.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의 표차는 고작 2.7%였다.(손학규: 51.0%, 강재섭: 48.3%) 필자에게는 분당 우파의 배신이니, 분당 좌파의 승리니 하는 것은 모두 어불성설로 들린다. 이재오 식의 평가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고 본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강재섭 후보가 패한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전대표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린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선거 며칠 전 한나라당의 원희룡 사무총장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자들의 지지가 있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지만, 돌아 온 것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박사모’의 ‘전혀 그럴 생각 없다.’는 차가운 반응이었다. 어떤 기사의 제목은 ‘강재섭 지원? 낙선운동 안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라.’였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에서 일부 완고한 박근혜 지지자들이 외면하는 한,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선거였다. 그 숫자가 고작 3%만 되어도 처음부터 지는 선거였다.

 

두 번째 패인은 강재섭 후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나라당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지난 재보선에서 이재오가 철저히 한나라당을 버린 것과 대조된다. 그 결과, 한나라당을 내세운 강재섭은 패배했고, 한나라당의 지원을 거부하고 나홀로 선거에 돌입했던 김태호는 이겼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김해의 경우를 보자. 유시민이 패배한 진짜 원인은 김태호의 위장술이었다. 김태호는 철저히 이재오식의 나홀로 선거전략을 따랐다. 선거기간 내내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나홀로 선거에 몰입했다. 김태호의 처절한 인간적인 면이 부각될 때, 이봉수는 철저하게 유시민에게 의존했고, 유시민은 김해를 떠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실세였던 이재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로 임했듯, 전직 경남도지사 나으리가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다른 의미에서 볼 때, 김태호의 박빙 승리는 한나라당의 승리와는 무관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이긴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구성원을 앞세우면 패배하는 정당. 이런 정당이 존재할 가치는 있는가. 전술하였듯, 그러나 이것은 작은 문제다. 진짜 큰 문제는 누구도 지적하지도 않고, 스스로 반성하지도 않는다는 부분에 있다.

 

한나라당의 진짜 큰 위기는 우리나라 우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개혁적 보수’라는 얼치기 누더기 조합 이념이 생존기반을 잃었다는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 되겠다면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구체적 행동전략을 세울 수 없는 빈약한 마인드도 마찬가지다. 서민과 중산층 70%를 위한다면서 하위 20%에 돌아 갈 몫이 실종되는 현상에 대한 본질을 꿰뚫는 치열한 고민도 없다.

 

밑천이 딸리다보니 화려한 수사를 앞세운다. 논다니의 진한 화장술이다. -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 ‘개혁적 보수’, ‘중도적 보수’, ‘열린 보수’, ‘국민통합적 보수’, ‘사회통합적 보수’, ‘합리적 보수‘.... 이제 더 갖다 붙일 단어도 없을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우파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일 뿐이다. 누가 ‘차가운 보수’, ‘더러운 보수’, ‘침체형 보수’, ‘닫힌 보수’ ‘분열적 보수’, ‘비합리적 보수‘를 지향하겠는가. 말장난도 이정도면 지나치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차가운 진보’, ‘더러운 진보’, ‘침체형 진보’, ‘닫힌 진보’, ‘분열적 진보’, ‘비합리적 진보‘를 지향하여 나태한 보수 정치계를 턱없이 기쁘게 해 주지도 않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화려한 수사 뒤에는 다음 선거에서 금배지 달 궁리만 가득하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가 봉숭아학당이 되고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보기 좋게 퇴출된 이유다.

 

그저 선거 때 유권자를 현혹시킬 방법에만 몰두하는 정당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유권자들도 상상 이상으로 똑똑해져서 이제는 더 속아 줄 사람도 없다. 누구나 예견하듯, 이대로 가면 전멸이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얼치기 누더기 좌파들이 곧 이합집산을 할 모양인데, 지금 그대로의 야합으로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여야가 공히 ‘헤쳐 모여!’를 해도 방법은 없다. 정치인들이야 원래 속이 시커먼 욕심 덩어리라지만, 이제부터라도 처절한 자기희생을 담보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시커먼 속이라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공히 죽어야 사는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생각, 즉 제레미 리프킨 교수가 말하는 ‘공감의 시대’를 진보와 보수 양 거대 축이 함께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이론적 무장이 취약한 보수진영에게는 말 할 필요도 없다.

 

2.

한국 보수우파의 실체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계층이 대부분 그리 부자가 아니라는 점과,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한 때 진보적 성향을 가졌었거나 추억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때 거리를 휩쓴 아스팔트 운동권(?)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정통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부터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6.3 동지회 멤버였고, 그의 정책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짬뽕이다.

 

그는 스스로를 중도실용주의자라 자처했지만 임기 초 광화문에 미국산 쇠고기 촛불이 타오르자 가스통을 들고 나온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등에 올라 타 버렸다. 청와대의 정책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갈팡질팡 정책에다 기회주의적 요소만 더해지고 커져갔다. 강부자, 고소영, 고환율, 부자감세.... 어쩌고 하더니 느닷없이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중소기업과 공유하자는 희한한 논리를 내밀고(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로 상장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겠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걸 두고 한나라당의 다른 쪽에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가하고.... 진짜 봉숭아학당이 울고 갈 판이다.

 

이 정도면 정책의 일관된 흐름은 고사하고 경제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미래예측 가능성조차 보장될 수 없는 경제적 악조건을 한나라당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대체 왜 이럴까.... 한나라당 자체 내부에서부터 공감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과 공감하자고?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 중에 진짜 우파 보수주의자가 몇이나 있는가. 이재오, 김문수, 박계동, 원희룡, 신지호, 박형준, 정태근... 등은 아예 운동권 출신이거나 진보좌파 출신이고(친북 좌파 포함), 나머지 일부는 젊었을 때 운동권 주변을 기웃거리다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 주변만 서성거리던 사람, 그러면서도 보수주의자라는 말은 독하게 듣기 싫어서 사석에서는 운동권 출신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 술 한 잔 걸치면 자신의 이상은 진보적이라고 큰 소리 치는 사람, 남들 운동할 때 공부해서 고시 패스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언론사 기자가 되고 이렇게 저렇게 어영부영 하다가 젊은 피 수혈 어쩌고 하면서 기웃거리다가 턱 하니 한나라당 공천 받고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당선된 사람들 아닌가. 아, 물론 몇 사람 빼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을 찍어 준 유권자가, 대부분 (자신을 보수라고 자칭하는 유권자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볼 때,) 보수의 경제이념 중 하나인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크게 볼 수 없는 계층이라는 점이다. (‘강부자’로 대변되는 ‘강남우파’를 제외하고) 이들이 이른바 ‘가난한 보수’의 정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의 국보법 폐지반대 장외 집회나 보수진영의 국보법 사수 집회 때, 광화문 거리를 메운 우파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사람들은 좌파 운동권에 비하여 초라했다. 현수막 만들 돈이 없어서 지하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커다란 종이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나오지도 않는 매직펜으로 손수 적었다. 이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기적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움직이는 보수’의 실체다. 가난한 보수....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이렇게 많은 비율의 가난한 보수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래서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는 새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미국이나 유럽의 잣대로 한국 사회를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셋째는 연로한 분들이다. 약칭하여 ‘노년 보수주의자’라 하자. 이들은 6.25 전쟁을 직접 체험한 분들이거나 6.25 참전용사 또는 가족을 북한에 두고 온 실향민들이다. 이들은 죽는 날까지 절대로 좌파 진보주의자 편을 들지 않는다. ‘노년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친북좌파든, 종북좌파든, 심지어는 순수한 진보주의자들까지 모조리 자신들에게 또는 자신의 가족에게 엄청난 신체적 재산적 피해를 끼친 ‘빨갱이’로 보일 뿐이다.

 

‘노년 보수주의자’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이들은 친북/종북 좌파를 증오하고, 진보주의자들에게 이들은 극우보수나 수구꼴통으로 보일 뿐이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가족 또한 비슷하다. 사실,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한나라당이 이들의 가난을 외면하는 아이러니는 이해할 수 없다.

 

넷째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흠모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의 지지율은 75%가 넘는다.(2009.10.22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므로 략하되) 이들 또한 우파 보수주의를 자처한다. 물론 한나라당의 강력한 지지계층이다.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 중, 상당수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를 지지한다.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인 ‘박사모’에서 공개적으로 ‘박근혜는 사랑하지만 한나라당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표한 사실이다. 2008년 총선 때 친박 공천 대학살이 주된 원인이지만, 지도부에 젊은 층이 다수 포진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도 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가난하되 ‘깨끗한 보수’,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다. 이들 역시 ‘가난한 보수’인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사례 외에도 한국 사회에는 ‘가난한 보수’가 엄청나게 많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부자나 기득권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우파 보수주의를 지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의 정확한 현주소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배운 이론으로 한국의 보수사회를 재단하면 큰일 나는 이유다.

 

현대의 우파 보수주의는 경제적인 논리에서 나온다. 이른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여기서도 ‘노인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약간의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자유’는 신체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자신의 농토와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이 노력한 대가인 소출을 거대한 국가권력에게 착취당하지 않을 자유를 위미한다. 경제학적인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그들은 모른다. 막연하게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만약 경제적인 의미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 가난한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절망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고의는 아니겠지만)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안락한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가난한 보수’를 속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우파 보수주의가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차가운 면을 가지고 있다. 국가는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방임경제) 시장의 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인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국가의 역할인 복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과잉복지로 복지병을 앓고 있는 일부 유럽국가들이야 당연히 축소해야 되겠지만 아직 복지의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GDP 대비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은 OECD 회원국 중 거의 꼴찌에 가까운데, 불요불급한 4대강 공사 등에 투입되는 예산으로 나라 빚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이론을 전혀 모르는 ‘가난한 보수’들이 만약 이런 사실들을 정확하게 인지한다면 그래도 지금의 우파 보수주의 정당을 지지해줄까? 여기까지는 그렇게 공포에 휩싸일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도)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늘어나고 있으니까.

 

3.

새로이 편입되는 ‘젊은 보수’

 

<연평도 포탄은 20대를 쏘았다.> 이것은 한겨레신문의 제목이다. 진보진영의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 정확한 제목을 달았다.

 

 

십 수 년 동안 전교조 교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20대의 친북/진보 세뇌교육이 북괴의 연평도 포탄으로 한 방에 날아 가버린 것이다. 한겨레신문이 인용한 아래의 막대그래프를 보면 연평도 포탄으로 인한 20대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알 수 있다. 누구도 전교조 교사들에게 세뇌당한 20대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을 것이다.

 

이때부터 조용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연평도 피폭 이후, 12월의 해병대 모집에 3488명이 지원해 3.5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3월 26일의 천안함 사건 이후 4월의 지원 경쟁률이 1.8대 1 이었으니까 얼마나 엄청난 차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해병대 수색대가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해병 속의 해병이 바로 이 수색대다. 빡세기로 유명한 해병 수색대에는 11명 모집에 231명이나 지원했다. 무려 20대 1이 넘는 경쟁률이다. 심지어는 해병대 지원율이 서울대 지원율 보다 높다고도 한다. 연평도 도발로 인한 20대 젊은이들의 오기가 묻어났다. 아래는 당시 해병대 지원자들의 말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나의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피하고 싶지 않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로 나와 같은 동년배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북한의 실체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민간인을 향해서도 도발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어떻게든 내가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해병대 인사관계자)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뒤 부모님이 걱정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는데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는 사람은 아니다. 처음에는 군대에 편히 가고 싶어서 카투사를 지원했다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기왕에 해병대에 갈 거라면 힘들다고 소문난 수색병과에 지원하고 싶었다. 연평도 사건은 잠깐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지만 오히려 지원 의사는 확고해졌다.” - 최준식(19·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1년 /중앙일보)

 

결국 연평도 포탄은 20대를 쏜 것이 아니라, 일부 전교조의 세뇌교육을 쏘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연평도 포탄은 20대만 쏜 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쏘아 청와대 지하벙커 속의 병역미필자들을 날려버렸다. 물론 한나라당 대표인 행불상수 안상수도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전 국민을 웃기다가 한 방에 날아갔다. 큰 이변이 없다면 안상수는 차기 재선조차 어려울 것 같다.

 

그럼, 2012년 4월의 총선에서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몇 석이나 건질 수 있을까? 10석 이내일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민주당에서 나도는 말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도는 예상치다. 보수의 대변인 격인 한나라당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정답은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다.

 

연평도가 불바다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첫 일성이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명령이었다고 하니, 이 나라 대통령이 자국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포기한 셈이다. 즉시 MB의 지지율은 무섭게 폭락해버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그 이후 국방부 장관이 날아가고 관련 별들이 수없이 떨어졌지만 그 책임의 귀결점이 대통령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대통령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연평도 포탄은 그동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면했던 일부 비겁한 사이비 보수를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수구 보수의 대명사라 불리던 조갑제 같은 분이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쳤겠는가.

 

또한 연평도 포탄은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던 당시의 손학규도 날려버렸다. 진보세력만으로는 야당은 할 수 있지만 집권은 못한다며 보수 색채를 내걸었던 그가 연평도가 불바다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확전은 피해야 한다.'면서 MB와 같은 뉘앙스의 대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지지율은 즉시 반토막이 났다. 그러자 아차!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손학규는 "햇볕정책이 모든 것을 다 치유하고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고 다시 보수 쪽 눈치를 보는 발언을 하자, 이번에는 집토끼(진보진영 지지자)가 달아나 버렸다.

 

갑자기 보수와 진보를 왔다 갔다 하는 박쥐가 되어버린 셈인데, 그러자 손학규의 지지율이 5위로 뚝 떨어져 버렸다. 대저 일국의 대권을 논하는 자로써 <자기 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주는 일이었다. 만약 그가 분당 재보선에 도전하여 강재섭을 꺾지 못했더라면 그는 영원히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될 뻔 했다.

 

그 당시 만약 손학규 대표가 당시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냐. 국민이 죽어나가고 나라의 영토가 불바다가 되고 있는데, 저게 대통령으로써 할 소리냐. 당장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라고 일갈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손학규 대표가 연평도가 포격당하는 즉시 그랬더라면 지지율이 적어도 두 배는 뛰었을 것이고 지금은 서너 배는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평도 포탄은 김정일, 김정은 세습체제를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300만명의 인민이 굶어 죽어도 눈도 깜빡거리지 않는 사람들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세습체제에 필요한 돈줄이 막히는 데에는 장사가 없을 것이다.

 

당시 김정은이 깜짝 놀랄 발언을 했다.

"3년 내에 국민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는 생활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이게 현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김일성도 돈이 없어서 이루지 못한 꿈이 바로 ‘이밥에 고깃국’아니었던가.

 

그런데 연평도에 포탄을 쏘아 스스로 돈줄을 막아버렸다. 물론 개성공단에서 넘어가는 돈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남북교역 대금이 끊기고, 금강산 관광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니 스스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인 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백두산에 이어 우리의 영토를 중국에 팔아먹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시 북한이 압록강의 위화도와 황금평 2곳을 100년간 중국에 임대 형식으로 넘긴다는 뉴스가 나왔다.

 

북한은 홍콩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만, 중국은 영국과는 다른 나라다. 만약 중국이 영국과 같은 나라라면 간도협약도 100년이 지났으니, 홍콩처럼 간도를 우리에게 넘겼어야 하는데, 중국은 입 싸악 닦고 넘어 갔다. 만약 북한이 압록강의 위화도와 황금평을 중국에 넘기고 나면 그것이 끝일 것이다. 백두산처럼.... 그래도 그 돈 받아봐야 중국돈 몇 억 위안 밖에 안 된다. 코끼리 코에 비스킷이다. 결국 김정은은 돈에 굶주리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돈줄에다 대고 포탄을 날려버렸으니, 연평도 포탄은 김정일, 김정은 세습체제를 당분간 엄청나게 힘들게 만들 것이다.

 

이런 논란들이 대중적 화제 꺼리가 되면서 우리 사회를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연평도 포탄으로 우리 사회는 적어도 대북문제에 관한 한, 급격히 보수화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싱싱한 20대의 젊은이들이 적어도 대북문제나 안보에 관한 한, 대거 보수층으로 새롭게 진입한 것. - 젊은이들의 우상인 특급스타 ‘현빈’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서해의 외로운 섬, 최전방 백령도에 자대배치 받아 근무에 들어갔다. 이 일은 시시각각 최고의 이슈가 되면서 젊은이들의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정도면 우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춤을 추어야겠지만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분단국가에서 우파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국가안보마저 친북좌파적 성향을 띠거나 안보능력마저 의심받게 되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 군 미필 대통령에 이어 안상수 대표마저 ‘보온상수’, ‘미필상수’로 둔갑한 것은 심각한 비극이었다. 정작 유연성을 보여야 할 곳은 다른 데 있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헷갈려서는 답이 없다.)

 

이렇게 멋진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에도 한나라당의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젊은 층이 한나라당을 (이유도 없이) 그냥 싫어한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재오를 비롯한 구 한나라당 최고지도부는 이렇게 제 발로 기꺼이 찾아 모여드는 <젊은 보수>를 제 손으로 밀어 내 버린 꼴이다.

 

이재오는 정말로 (그동안 보수화 된) 젊은 층이 왜 한나라당을 싫어하는지 모른다는 말일까? 이런 인식으로 한나라당의 실세 노릇을 했으니, 그동안 한나라당이 제대로 굴러갔을 리가 있나. 쟈스민 혁명까지 불러일으킨,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주역인 SNS와 젊은 층의 참여를 두려워하는 정당이 무슨 존재가치가 있나.

 

이는 모두 한국의 보수적 국민들의 실상과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재적 지지자를 포함하여 한국 보수우파와 그 지지자 대부분은 기득권층이나 수구보수, 보수꼴통이 아니다. 강남 우파와도 다르다.

 

4.

한국 진보좌파의 실체

 

대한민국은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보기 드문 나라다.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 건 산업화 세력과 ‘독재 타도’를 외쳐온 민주화 세력의 양립과 갈등은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지금도 한국적 보수우파와 한국적 진보좌파로 남아 대립하고 있다. 한국적 보수우파가 특이하듯 한국적 진보좌파는 더욱 기형적인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때로는 한국에 현대적 의미의 진정한 진보좌파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민주화 세력의 원조는 4.19 세대일 것이다. 그러나 4.19 세대가 외친 것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와 독재타도였지, 한반도의 적화나 공산주의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참한 6.25 동족상잔을 몸소 체험한 세대로써 그들은 김일성의 스탈린-레닌주의적 또 다른 독재를 수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던 박정희 대통령 치하에서의 학생 운동권 역시 사상적 투쟁의 면에서 볼 때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당시의 주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독재타도였지, 맑스-레닌이나 김일성-스탈린주의적 혁명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운동권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그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만악萬惡의 근원은 제국주의적 미국과 한국의 우익이다.”

 

이렇게 스스로 설정한 확신으로 그들의 생각은 신념화되었고, 이 때 형성된 신념은 그들이 저주하는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독선과 배타성을 그들 스스로에게도 부여했다. 여기에 북한의 대남전략이 스며들었다. 학생 운동권은 맑스-레닌에서 시작하여 황장엽이 창안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이것이 386세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987년 전두환 정권의 6.29 선언으로 절차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가 완성되자 이들은 서서히 소멸되어 갔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도 이들의 발전을 제약했다. 더 이상 시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할 방법도 명분도 사라진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적극적인 사회진출을 모색했다. 민중운동, 통일운동, 합법운동을 내걸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했다. 명문대 출신들이 앞장 서 법조계, 전문직, 정치권, 언론계, 문화계에 대거 진출했다. 드디어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들이 한국적 진보좌파의 실체다. 아무리 부인해도 한국적 진보좌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친북 또는 종북 좌파였던 셈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나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이들이 북한의 주체사상과 연계되지 않고, 서유럽 선진국들의 진보나 복지선진국의 사민주의에 몰입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훨씬 더 품격 있는 사회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극좌(친북좌파)와 극우(반북우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무슨 국가적 품격이 배양되겠는가. 대체.... 부-자-손 父子孫 3대로 이어지는 세습 왕조 독재국가, 식량조차 없어 자기 국민을 굶겨 죽이는 무능력 국가, 핵무기로 우리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호전적 국가인 북한이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일부라고는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친북좌파와 반북우파로 나뉘어져 대립해야 한다는 말인가. 민족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면 북한의 인권을 말하는 우파에게 3대 세습독재자의 편에 서서 우파를 공격하는 좌파의 논리가 훨씬 더 빈약하다.

 

그래도 한 때, 우리 국민은 진보좌파 세력에게 기대를 걸었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깨끗함>에는 그래도 수구/기득권세력보다야 조금 낫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는 전두환, 노태우의 경직성에 이은 김영삼 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인하여 분명히 이유 있는 기대였다. 당시 기득권으로 비친 보수우파 세력에게도 큰 책임이 있지만, 실험적 의미에서 볼 때 나름대로 무의미한 역사적 선택은 아닐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했다. 특히 지역적 계층적 소외계층의 한풀이를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그래도 절차상 정상적인 방법이었다.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선택은 역사적으로 그 현명함이 증명된다.

해방 후 그 어지러운 정국에서 김일성의 친소련, 친중 공산혁명을 선택하는 것 보다 이승만의 친미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훨씬 나은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고, 완벽한 민주주의는 잠시 유보하거나 양보하면서 산업화를 위한 개발독재를 선택하여 5천년 가난의 악순환 고리를 끊었으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에 유혈流血 무임승차한 전두환의 독재는 거부했다.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10년의 진보좌파 정부 또한 역사적 순리였고 필연이었다. 우리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절묘했다.

 

보수사회에서는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보수주의 사회의 중심에 있는 필자의 견해로는 솔직히 ‘얻은 것도 많은 10년’이었다. 물론 분배 철학의 재인식 같은 것도 얻었지만, 그 때 우리 국민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진보좌파의 부패와 타락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사의 제목만 일부 인용하면, “DJ처남 이상호 구속, DJ 첫째아들 김홍일의 구속, 둘째아들 김홍업의 구속, 셋째아들 김홍걸의 수감 중 형집행 정지로 석방, 박지원 비서실장 구속, 임동원 국정원장 구속, 이기호 경제수석 구속, 이근영 금감원장 구속,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 구속, 박주선 전 법무수석 구속, 권노갑 동교동계 수장 구속,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 구속, 황용배 아태재단 후원회사무처장 구속, 김은성 국정원 2차장 구속, 신광옥 법무차관 및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 이남기 공정거래 위원장 구속, 구속, 구속, .....” 연일 터지는 DJ 정권의 비리와 부패 기사는 TV와 신문 매체를 뜨겁게 장식하면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확 바꾸어놓았다.

 

국민은 한 번 더 진보좌파의 <깨끗함>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386 운동권의 변호사, 인권 변호사로 알려졌던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나라당의 차떼기에 이은 노무현 후보의 티코떼기가 시작이었다. 뒤를 이어 생수회사 장수천, 나라종금 사건, 썬앤문 불법자금, 서민의 등골을 빼먹은 ‘바다이야기’, 오일 게이트, JU그룹, 노무현 대통령의 형님 노건평, 세종증권 매각비리, 노건평의 처남 민경찬, 김대업, 박연차....

 

게다가 그들이 입만 벌리면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에서, 그것도 5.18 전야에, 386 운동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송영길, 박노해(노동시인), 정범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우상호.... 등의 386 국회의원들이 여자를 끼고 노래 부르고 놀다가 임수경과 정통으로 한 판 붙어버린 사건에 이르러서 386의 실체는 적나라하게 공개되어버렸다. 이미 진보좌파를 팔아 기득권화 되어버린 그들에게 정치적, 도덕적 순결을 상상했던 것부터 애초 기대난망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반미 좌경화가 가장 피크를 이룬 때는 아마 2002년 효순이-미순이 추모 촛불집회에 이어 2004년 탄핵정국,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 정도일 것이다. 만약 아직도 그 때의 친북/종북 좌파가 남아있다면 이번에는 어디를 찾아다니고 있을까? 물론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 사회적 이슈이긴 하지만, 감히 예견하자면 88만원 세대, 상위 20%가 부의 80%를 독식하고 국민의 80%는 그들이 남긴 20%를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야 하는 20대80의 사회, 신규진입 세대들의 생존권에 관한 것들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잡다한 전력을 가진(가졌던) 한국적 진보좌파에게 우리 국민이 다시 정권을 안겨 줄까? 유시민이 패배하고 손학규가 승리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진보좌파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4년 탄핵정국을 통하여 탄생한 국회의원을 '탄돌이'라고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선방으로 탄핵 등의 이슈가 사라지자 ‘탄돌이’들의 종말이 다가왔다. 이런 현상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식의 나태한 보수주의가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한나라당의 봉숭아학당 현상으로 조금 남은 지지율마저 다 까먹고 말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보수는 기득권일 뿐이라는 것을 국민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자국민의 생명조차 포기한 병역미필 보수는 보수주의라고 말하기도 창피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양심적 건전보수마저 이 덜 떨어진 병역미필 보수들의 패착으로 함께 추락해버린 것이 가장 큰 비극일 수도 있다. 그 뿐인가. 젊은 층이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재오의 독백. 만약 이런 인식이 계속된다면 지난 시절의 ‘탄돌이’들처럼 이번에는 수도권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조리 날아 갈 것이다.

 

중도실용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다. 중도실용은 지난 대선, MB의 무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들고 나오지만 않았어도 이게 마지막 이즘이 될 수도 있겠지만, MB로 인하여 중도실용은 신념 없는 기회주의자 같은 이미지만 풍길 뿐이다.

 

사이비 보수도 죽고, 얼치기 진보도 죽고, 중도실용도 죽었다. 국민의 신뢰를 강타할 새로운 이즘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외로운 ‘국민’ 뿐이다. 2012년 대선에서 국민은 누구를 무엇을 왜 선택할까. ‘국민’은 2012년 총선에서 서울/경기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을 전멸시키고,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의 손을 들어 준다는 분석기사가 있었다. 이런 류의 분석은 너무 많아서 ‘흔해빠진’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보수우파는 안심할 수 없다. ‘국민’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5.

보수도 진보도 외면당한다면....

 

흔히 SNS, 즉 스마트 폰으로 무장된 트위터를 젊은 층의 특징으로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빠르다는 장점과 편하다는 장점으로 무장한 스마트 폰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통신수단 교체와 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의 일체화 물결은 전 세대를 한꺼번에 휩쓸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포를 느끼고 야권이 새로운 무기로 인식하는 SNS.... 그러나 2012 총선과 대선에서는 스마트폰이냐, 아이패드냐, 구닥다리 PC냐 등의 확산수단보다는 각자 세대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집중할 지도 모른다. 보수우파에게도 진보좌파에게도 눈에 뜨이는 공감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규 사회진입 연령인 20대에게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88만원 세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묘책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고, 30~40대에게는 보다 나은 삶의 질, 신혼세대에게는 출산과 양육-교육, 노령화세대에게는 안락한 노후, 전반적으로는 20대 80 사회의 해결 등이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경제발전과 복지의 관심 대상이 세대별로 구분되고, 세대별로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 투표한다면? 그렇다고 없는 돈으로 뭘 어떻게 저렇게 세분화된 이익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보수든 진보든 해답은 있는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대~한민국' 세대의 향방이다. 보수도 진보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번 연평도 포격에서 나타난 20대의 반응이다. 진보진영에서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이다. 특히 친북 또는 종북좌파들이야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일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갑자기 보수화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짜 격세지감인데, 그렇다고 기존의 보수정당이 혜택을 받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아무리 많은 젊은 보수가 새로이 보수사회에 진입한다고 해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수로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나. 그들은 기성세대의 해묵은 논리에 넌더리를 낸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보수화되는 젊은이들을 몸으로 막고 서 있는 형국이니 답이 없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기성세대가 누리던 직업선택의 행복했던 자유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기성세대는 대학 졸업시 F학점만 면해도 룰루랄라 거리며 대기업에 취업했다. 상고만 나와도 은행에 취업했고, 공고를 나오면 각 기업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가 났었다. 취직이 안 되면 오퍼상이라도 하면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경제 지표상으로 성장해도, 상시 고용은 확대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동화되었고, 모든 것이 정보화 되었다.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지고 비정규직의 현실은 비참하다. 알바? 외국인 노동자보다 못한 수익이 보장될 뿐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은 점점 더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있고,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결혼 기피는 출산율 감소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 문제는 김대중 정권도, 노무현 정권도, 이명박 정권도.... 누구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런게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로 풀릴 일인가.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우리나라보다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일본에는 동일 직종에는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그런대로 지켜지고 있다. 정규직은 변형된 종신고용제로 인한 혜택이 있을 뿐, 실질 임금에는 우리나라처럼 엄청난 차이는 없다. 그래서 알바 생활만으로도 생계는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아예 종신고용을 원치 않는 ‘프리터’까지 생겨났다.

 

어렵더라도 20세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 있고, 독립하지 않아도 부모님께 자신의 하숙비를 드린다. 20세가 넘었는데도 부모가 자식의 생계비까지 부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알바비 만으로도 조금 어렵긴 하지만 그런대로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20세의 어린 것(?)이 알바비로 차비나 충당하고, 부모님께 용돈이나 타 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일본은 이 정도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비정규직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머리를 싸매도 풀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라고 다를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니까 더하겠지? 2010년 정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사자가 2006년 이후 4년 만에 4만명을 넘어섰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부터 정규직 정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정부가 정규직 정원은 줄여놓고 그 공백을 고용과 해고가 비교적 손쉬운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었을 뿐이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탄생시킨 문제다. 진보진영의 좌측 끝에 있는 민노당의 지지세력인 민노총에서 비정규직들을 조합원으로 받아주지 않아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즉 진보진영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는 약과다. 베이비 붐 세대가 노년층에 진입할 때는 저출산에 따르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것들은 단일 사안이 아니라 '고용 없는 성장'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적 문제다. 보수, 진보 모두 이런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표만 달라고 한다. 누가 준대?

 

 

2011.05.16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1장'을 마칩니다. 본 칼럼은 계속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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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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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진사 | 작성시간 11.05.20 많이 깨닫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노을에 | 작성시간 11.05.22 ^^ 보수, 진보 모두 이런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표만 달라고 한다. 누가 준대? ㅎㅎ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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