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내장산 1박
예정에 없던 박대통령의 내장산 1박
(이 글은 황인성 전 총리의 회고록 '나의 짧은 韓國紀行'에서 따온 것이다).
황지사, 잘하고 있소
내가 전북지사로 부임한 지 한 달쯤 된 1973년 11월22일 오후 3시에
대통령이 다음날 광주에서 거행될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호남고속도로 전주 I/C를 통과하여 광주로 갈 예정이니 지사는 가능하면
전주 I/C에서 배웅을 하고 뒤따라 광주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김현옥 내무장관의 연락이 있었다.
나는 지시대로 했고 마침 대통령 일행의 차량행렬이 경호차를 선두로 질주해 가기에
도로변에서 그저 머리 숙여 경례를 했다.
행렬은 그대로 통과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대통령 승용차가 급정거를 하더니
김정렴 비서실장이 차에서 내려 “황지사!” 하고 부르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비서실장이 운전대 옆자리로 옮겨 앉자 대통령은 반가운 표정으로
“황지사, 잘하고 있소?” 하며 옆자리에 타라고 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하였다.
아무 것도 보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그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큰 산을 가리키며
그 이름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만일에 대비해서 부임 후 공휴일에 비서와 함께 관내를 돌아보며 익혀둔 것이었다.
“저 산이 전봉준 장군이 태어난 두승산(斗升山)입니다.
저 산은 삿갓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입암산(笠岩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저곳이 정읍입니다.”
나는 중요치 않은 것들을 화제로 삼았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했다.
“지난번 각하께서 호남고속도로 준공식 때 광주만 다녀가셨다고 해서
이 고장에서는 좀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빙그레 웃르며 물었다.
“그래? 황지사, 정읍 내장산에도 호텔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손님들이 많이 있나? 호텔이 잘 만한가?”
대통령은 지방 나들이 때 흔히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 같은 데서는 유숙을 하였지만
전북은 대통령이 유숙할 만한 호텔 하나가 없어서 대통령이 유숙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대통령을 도내에서 한 번 모시고 싶은 욕심이 났다.
“예, 썩 좋은 호텔은 아닙니다만 관광객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이 화근이 되었다. 대통령은 金 비서실장에게 말하였다.
“김실장, 내일 광주에서 올라오면서 하룻저녁 내장산에서 자고 가면 어때?”
김비서실장은 대통령 말씀이니 “예, 그렇게 하시지요” 하였다.
“그럼 손님이 많으면 다음으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룻저녁 자고 갑시다.
광주에 가서 한 번 알아보시오” 하고 대통령이 지시하였다.
광주 관광호텔에 도착하자, 나는 전주에 있는 부지사한테 전화를 걸어
보안상 문제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은 말하지 못하고
내무국장 책임 하에 지금 즉시 내장산관광호텔에 가서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모든 준비를 갖추라고 말해두었다.
누추한 침실에 콩나물죽 대접
그런데 저녁 식사 후 金비서실장으로부터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황지사, 우리 경호답사팀이 내장산 호텔을 가보고 왔는데
그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여관만도 못하고 시설도 형편이 없어
도저히 대통령께서 유숙하실 수는 없다고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나는 바로 비서실장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자신이 없으니 그러면 내일 상경하는 길에
내장사나 잠깐 돌아보시고 올라가시도록 하시지요.”
이렇게 대안을 숙의한 후 대통령께 보고하여
내장산 호텔에서는 차만 한 잔 하고 내장사의 시찰을 하기로 했다.
나는 참 잘 됐다고 생각하고 한시름 놓았다.
당초 대통령일행의 계획은 대전 유성호텔에서 일박하게 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그 다음날 광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바로 내장산 호텔에 도착하였다.
대통령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차를 한 잔 한 다음 백지에 정읍시가지 약도를 그리며
정읍 우회도로를 건설할 것과 내장산 관광단지를 현 위치에 건설할 것,
그리고 지사 책임 하에 내장사의 복원사업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말하자면 지사 취임 후 대통령이 이 지역에 방문한 첫 선물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벌떡 일어나서 침실 쪽으로 가면서 “이 사람들이 여기가 어때서 못 잔다는 거야?” 하고는
침대방과 화장실까지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런 데 오면 아무데서나 자는 거지 뭐. 비서실장. 나는 여기서 자고 가겠어.”
당장 큰 낭패를 당한 것은 지사였다.
나는 한 시간 전에 먼저 내장산에 와서 보고는
그냥 한 번 돌아보고 가기로 결정난 것을 참 잘한 것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조그마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호텔에서 대통령 일행이 유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전주에서 요리사를 데리고 오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그 호텔 주방에서 준비한 일반 저녁식사를 대통령에게 대접해야 했다.
결국 朴대통령은 대통령 재직기간 중에 가장 험한 숙식을 대접받은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도 흔히 전주에서 하는 콩나물죽을 준비하여 조찬으로 때우니 지사로서는 몸둘 바를 몰랐다.
대통령은 그런 조찬을 드시면서
“솔직히 어제 저녁은 좀 시원치 않았는데 오늘 아침 콩나물죽은 맛이 있구먼” 하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새마을 노래 4절 작사
그날 밤 나는 대통령께서 주무시는 것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종종 밖으로 나가서 살펴보았으나 새벽 1시까지도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후에 알고 보니
그 날 밤에 새마을 운동을 위한 노래 4절을 그곳에서 작사하였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의 노래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절, 3절 생략)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후렴)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나로서는 참으로 엄청난 실수와 낭패를 당하였으나
훗날 생각해보니 대통령의 계획에 없었던 내장산 일박은
그 분이 나를 전북에 와서 만나니 무엇인가 부하에 대한 흐뭇한 애정을 갖게 되어
그 후에도 대통령은 나에게 각별한 신임과 총애를 주었다.
黃寅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