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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때의 사진

작성자늘푸른 금수강산|작성시간16.06.21|조회수55 목록 댓글 0

6.25전쟁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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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이날은 전 세계 조선인들에게는 재난의 시작이였다.

북반부의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만반의 준비끝에 선제공격을

개시하였고 일거에 서울을 함락,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가 남반부의

이승만정부는 물론 온 나라가 혼비백산하고 길거리에 시체가 나 뒹구는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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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입성하는 북괴군 탱크, 탱크가 쏜 포화로 연기가 자욱하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적화는 

시간문제였었다. 그러나 미군의 성공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깃점으로 

얼마 못 가 서울을 다시 내 놓고 후퇴하게 되어 급기야 압록강까지

밀리게 되었다.이에 다급해진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매달려 결국

중공군의 참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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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주석과 주덕총사령이 한국전에 참전할 지원군 검열(사열)

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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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넘을 준비하고 있는 30만 중공군 

1950년 10월 26일 김일성이 압록강까지 쫓기자 중공군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중국은 팽덕회를 사령관으로 30만대군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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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투입될 기세등등한 중공군

장갑차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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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사령관 팽덕회와 김일성의 만남.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김일성은 중국 단동으로 사령부를

옮길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반도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무산된 역사적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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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중인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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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중 길거리에서 노숙중인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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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군의 폭격을 피해 숨어서 주먹밥을 먹고 있는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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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생사를 가를 육박전이 벌어질 직전 찰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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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속에서 공격하는 미군에게 집중 대응사격하는 중공군.

눈 덮인 산야에서 진군나팔소리에 돌진하는 중공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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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보급수송 철교를 보수하소 있는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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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전투기, 조종사는 미군기 네대를 격추시킨 중국조선족

리태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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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폭격으로 죽은 모택동 아들 모안영의 무덤

중국군 사량관 팽덕회는 모택동 아들의 전사로 북경까지 가서

모택동에게 빌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세계평화와 조선인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내 아들을 파견한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누가 전선에 나서겠는가"라며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이 두고두고 중국에 굽신거리게 된 데는 물론 패전찰나

모택동이 지원하여 구해 준 이유도 있지만 모택동 아들의 전사를

염두에 둔 때문으로 보인다.

아들까지 참전하게 한 모택동의 결단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한편, 미군 중에도 밴플리트장군의 아들이 한국

전에 미군조종사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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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위문공연 중 노래 부르며 춤 추고 있는 8살짜리 여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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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위문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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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경극단의 인민군부대 위문공연

이 사진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어느 중공군이 소장한 사진을

중국조선족 기자가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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