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때의 사진
1950년 6월 25일, 이날은 전 세계 조선인들에게는 재난의 시작이였다.
북반부의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만반의 준비끝에 선제공격을
개시하였고 일거에 서울을 함락,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가 남반부의
이승만정부는 물론 온 나라가 혼비백산하고 길거리에 시체가 나 뒹구는
판이었다.
서울에 입성하는 북괴군 탱크, 탱크가 쏜 포화로 연기가 자욱하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적화는
시간문제였었다. 그러나 미군의 성공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깃점으로
얼마 못 가 서울을 다시 내 놓고 후퇴하게 되어 급기야 압록강까지
밀리게 되었다.이에 다급해진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매달려 결국
중공군의 참전이 시작되었다
모택동주석과 주덕총사령이 한국전에 참전할 지원군 검열(사열)
을 하고있다.
압록강을 넘을 준비하고 있는 30만 중공군
1950년 10월 26일 김일성이 압록강까지 쫓기자 중공군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중국은 팽덕회를 사령관으로 30만대군을 보냈다.
한국전쟁에 투입될 기세등등한 중공군
장갑차부대
중공군사령관 팽덕회와 김일성의 만남.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김일성은 중국 단동으로 사령부를
옮길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반도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무산된 역사적 현장이다.
이동중인 중공군
이동중 길거리에서 노숙중인 중공군
미공군의 폭격을 피해 숨어서 주먹밥을 먹고 있는 중공군.
이제 곧 생사를 가를 육박전이 벌어질 직전 찰나라고 한다.
참호속에서 공격하는 미군에게 집중 대응사격하는 중공군.
눈 덮인 산야에서 진군나팔소리에 돌진하는 중공군 병사들
미공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보급수송 철교를 보수하소 있는 중공군
소련제 전투기, 조종사는 미군기 네대를 격추시킨 중국조선족
리태영이라고 한다.
미군의 폭격으로 죽은 모택동 아들 모안영의 무덤
중국군 사량관 팽덕회는 모택동 아들의 전사로 북경까지 가서
모택동에게 빌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세계평화와 조선인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내 아들을 파견한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누가 전선에 나서겠는가"라며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이 두고두고 중국에 굽신거리게 된 데는 물론 패전찰나
모택동이 지원하여 구해 준 이유도 있지만 모택동 아들의 전사를
염두에 둔 때문으로 보인다.
아들까지 참전하게 한 모택동의 결단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한편, 미군 중에도 밴플리트장군의 아들이 한국
전에 미군조종사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사례가 있다.
전선위문공연 중 노래 부르며 춤 추고 있는 8살짜리 여자 아이
전선 위문공연단
중국 고전경극단의 인민군부대 위문공연
이 사진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어느 중공군이 소장한 사진을
중국조선족 기자가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