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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항상 오금이 저렸다”

작성자숫골사랑|작성시간13.02.15|조회수39 목록 댓글 0

2012-02-28
▲1964년 단양시멘트공장 준공 당시 공장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을 맞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 부부. 박 대통령이 기업인을 독대하고 또 그 부부와 기념촬영을 한 사례는 정주영 외에 볼 수가 없다. ⓒ 정주영사이버박물관

10.26 이후로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게 멋처럼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난 묻고 싶다. 지금 이만큼 먹고 사는 게 저절로 된 줄 아냐고.

박 대통령의 결단과 신뢰를 생각하면, 내가 감히 게으름 피우며 대충 일할 맘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구 하나 찬성하는 자가 없던 상황이었다. 오일 달러가 들어오면 인플레가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밥벌레’ 같은 경제학자들도 드글거렸다.
내 계획을 믿어주신 분은 오직 박 대통령뿐이었다. 듣자하니 나와 현대를 질시하여 뒤에서 많은 나쁜 말이 오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란 거목이 없었다면 우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단지 일에만 몰두해도 바늘구멍 지나가는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우린 둘 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진 않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날 믿어 주셨고, 난 단순한 장사아치가 아니라 나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뭣보다도 우린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서로 믿고 도우며 몇가지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있소?”
“네, 각하.”
계획안을 가져가면 항상 오금이 저리곤 했다.
박 대통령은 회계 하나 하나를 살피며 이것저것을 따져묻는데 웬만한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기획 참모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정씨를 믿겠어. 함 해보세요.”
이 한마디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시어미처럼 까탈스럽지만, 일단 결정하면 사람을 확실하게 믿고 밀어주는 타입이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항상 보고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이 알고는 방안을 마련해놓곤 했다.
결코 찾아가서 상황을 조밀조밀 따져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박 대통령 이후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긴 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다. 그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무리 큰 성공을 해도 기뻐하지 않고 항상 다음 계획에 골몰하였으며,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법 없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였다. 머리란 쓰라고 달려 있는 것인데, 그분만큼 머리 달린 값을 한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더러 악바리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박 대통령은 나보다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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