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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뿌린 ‘원전 수출의 씨앗’

작성자숫골사랑|작성시간13.02.15|조회수47 목록 댓글 0

2009-12-28
▲1971년 3월 고리 원자력발전소 기공식 참석한 박 대통령이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 정부기록사진집

47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원전 선진 6대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원전의 설계부터 가동까지 원스톱으로 수출하는 한국은 이제 신성장 시대의 나래를 활짝 펴게 됐다. 이 성공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30년 전 전직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와 주당 80시간 넘게 일한 연구원들의 땀방울이 결합한 과거로부터의 후세에 대한 선물인 셈이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1971년 3월 경남 양산군 기장읍 고리에서 한국 최초의 원전 기공식이 열렸고 그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 연구원)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시로 헬기를 타고 연구소를 드나들었다.

석유 한방울도 나지 않는 척박한 영토에서 그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택했다. 그 당시에는 화력발전이나 제조업 구상에만 관심이 있던 때였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고도 경제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원전의 필요성은 한국 경제에는 숙명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1978년 한전은 고리1호기 상업발전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전 보유국이 된 순간이다.

장인순 대덕클럽 회장(전 원자력연구소장)은 “고리 원전의 건설비가 당시 정부 한 해 예산의 4배나 됐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밀고 나갔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원자력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매주 연구소에 들러 연구원들에게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내놓으며 격려했다고 한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 고리 원자력본부

UAE 초대 원자력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정근모 한국전력 원자력 고문도 “기술도 없고 자금도 없고 전문가도 없었던 한국 원자력 시대 초기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집념에 감복한 연구원들은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연구에 매진했다고 정 고문은 덧붙였다.

과거의 땀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6년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울진 원전 3호기를 우리 손으로 건설하는 신기원을 아로새겼다.

원자력은 녹색성장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다가왔다. 원전은 ㎾h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g으로 석탄(991g), 석유(782g)보다 현격한 장점이 있고 태양광 발전(57g)에 비교해도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선 흠잡을 데가 없다.

정부 관계자는 “집권자의 의지와 전문가들의 헌신은 ‘한강의 기적’의 산 증거인 원전개발을 낳았다”며 “이제 한국인 특유의 독창성과 순발력으로 신성장동력으로써 원전의 발전을 완성시켜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

출처 : 아주경제 200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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