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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청년회

[스크랩] 매일 성경나눔 예레미야 17장 23절 당신에게 하나님은 主이신가, 교훈을 주는 조언자인가?

작성자종로사랑|작성시간22.08.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예레미야 17장 23절

그러나 그들은 복종치도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그들의 목을 굳게 하여 듣지도 못하고 교훈을 받지도 못하였느니라. 23)

But they obeyed not, neither inclined their ear, but made their neck stiff, that they might not hear, nor receive instruction. 23)

instruction ① 교육 ② 지시 ③ 방법 ④ 설명

위 말씀에서 instruction을 교훈이라고 킹제임스 흠정역과 개역개정도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instruction의 사전적인 의미는 교훈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교훈으로 번역함은 원래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라고 여기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자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내 의지와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모두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교훈으로 받아들임은 좋은 견해 즉 참조로 여기는 것이됩니다. 이렇게되면 내가 주이고, 하나님은 좋은 교훈을 알려주시는 조언자가 됩니다.

"그들이 목을 굳게 하여 듣지도 못하고 지시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이렇게 번역함이 킹제임스1611을 번역함으로 맞다고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이 됩니다. 애매한 주의 뜻은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주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에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교훈으로 설명하신 것이 아니며, 모세에게도 주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꺼내오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를 하신 것입니다. 순종은 명확한 지시에 실행을 하는 것입니다.

O 나에게 '여, 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마태복음 7장 21절

이런 명확한 지시에 순종도 명확하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애매하게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내 모든 삶의 主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主의 지시를 교훈으로 참조하는 종은 없고, 그런 자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이처럼 교훈이라는 번역은 흠정역 킹제임스와 개역개정에도 쓰인 번역이지만 확실한 구분을 드러내기에는 적합한 단어가 아닙니다.

주의 뜻이 우리에게 간접적인 의미의 교훈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지시로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요즘에 제가 명확하게 느끼는 주의 지시는 백신과 짐승의 표의 진실에 대해서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각자에게도 여러분의 각자의 분량과 여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말씀처럼 주의 지시를 모든 사람이 듣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주의 뜻의 지시를 알게 되는 방법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주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위 말씀은 주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함을 지적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없었으므로 선지자의 외침과 선지자의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음이지만 성경이 주어진 우리에게는 성경말씀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는 것으로 주의 뜻과 지시가 명확하게 전달되어 올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권세가 사탄에게 넘어가 있는데도 이러한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다는 것은 사탄의 권세는 한정적이고, 하나님의 권세는 완전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교회에 출석을 열심히 함으로 설교로 말씀을 들으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있던 시기에나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으므로 설교는 참조용으로 받아들이고, 주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통로는 우리가 직접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는 없어도 되지만 말씀을 읽는 것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저의 매일 성경나눔도 사실은 참고용이지 성경을 직접 읽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성경나눔을 쓰면서 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고, 몰랐던 것을 발견합니다. 그 어떤 설교에서도 듣지 못하였던 내용이 직접 성경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매우 큰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나누고자 이 매일 성경나눔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과 직접 성경을 읽는 것은 상호보완적으로 주의 뜻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이지만 직접 성경을 읽는 것을 하지 않으면 수동적인 은혜에서 제외됨을 느낍니다.

수동적인 은혜란 인내와 절제가 저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의지로 어떤 것을 이겨내는 것은 매우 힘들고 오랜기간을 할 수 없습니다. 은혜로 그것을 이뤄야만 하는데 그것은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밀린일을 제쳐두고 쉬는 것은 마음이 힘들어지는 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주에 뜻에 순종하고 쉬는 평안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즉 같은 일을 느끼는 것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내는 누군가에게는 힘든 것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쁜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O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가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 고 하시더라.

마태복음 11장 28절 29절 30절

우리가 주의 지시를 순종하는 주의 종이됨은 곧 모든 일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주의 뜻으로 이뤄지고 그 결과도 주와 함께 함이 됩니다. 사람의 의지와 능력으로 되는 일은 그 결과가 책임이 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사람의 일은 한치앞을 볼수 없어서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주의 종에게는 모든 것이 두려울 것이 없으며, 평안하고, 인내가 힘든 것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은 매우 무겁고 힘들게 보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죽음에 순종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러한 것을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간접적인 교훈으로 받아들여 내 뜻을 먼저 구하지 말고, 직접적인 지시로 받아들여 순종함으로 예수님께서 인내 가운데 누리신 평안에 동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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