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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청년회

[스크랩] 3.저항값과 회로 / 김도일

작성자종로사랑2|작성시간23.03.04|조회수17 목록 댓글 0

3.저항값과 회로

  • 기자명 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2.12.22 10:02

  

◇ 미국 공장에서 종일 검사하던 나를 누군가 찍어 준 사진.

 

   자동차 정비소에서 돈을 벌어 부모님께 드릴 수 있었던 즐거움은 잠시였다. 서너 번 받아온 주급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고 외견상으로는 자진 퇴사의 절차를 밟아 퇴사하였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영어를 못하고 차를 고치는 기술도 없는 직원이었기에 주인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잘린 거였다.

 

훗날 그 사장님도 그리 오래 사업하지 못하고 그만 암을 얻어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때 그분으로부터 무능력한 종으로 평가받아 가차 없이 잘려봤던 충격이 그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객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나의 형편을 고스란히 직면할 수 있었고, 부모님 밑에서 학교만 다녔을 뿐 군 제대를 했어도 여전히 아무런 기술이 없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그즈음 다니던 나성영락교회에서 어떤 선배가 자신이 엔지니어로 있는 회사에 한번 지원해 보라는 제안을 해 주었다. 생산된 부품을 검사하는 일이었다. 선배는 나중에 목사가 되어 미국장로교에서 시무하였지만, 당시에는 엔지니어였다. 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다 큰 청년이 집에서 마냥 밥만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밤낮으로 일하며 어렵사리 공부하는 두 동생의 낯을 볼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재봉공장에 다니시는 어머니와 새벽마다 일어나 미국 공장에서 인공위성 접시안테나 표면을 깎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송구스러웠다. 어머니가 병약하시니 막내 여동생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고, 바로 밑의 남동생은 집 근처 2년제 시립대학을 다니며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면서도 낮에 요시노바라는 일본식 고기덮밥 가게에서 일해야만 했다.

 

결국 동생은 내가 훗날 다니게 된 바이올라대학교에 들어가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학점까지 잘 받아 버클리대학에 성공적으로 입학허가를 받는 경사도 있었지만, 동생은 교회 대학부 회장을 맡게 되어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버클리까지 올라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성 가까운 곳의 UCLA로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사십 대 중반, 미국에 이민 오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생활 능력이 탁월했기에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으셨다. 서울에서는 늘 가정부를집에 두고 사모님으로 불리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런 어머니가 머나먼 타국에서 곤궁한 삶 때문에 손에도 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겹고 고단했으리라.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았고 음식솜씨도 출중한 분이었다. 거기에 패션감각도 남달라서 어머니가 사 오는 옷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예민하고 꼼꼼하셨던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운전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영어도 웬만해서는 배우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추측하기로는 전쟁통에 학령기를 보내야 했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데서 연유한 것 같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터라 유독 어머니에게 있어 영어는 심각한 울렁증을 일으켰다.

 

아무튼 동생들과 아버지가 영어를 빠른 시간에 습득해서 어머니는 굳이 영어를 말하거나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어머니의 독립성과 자립성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이민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편 안쓰럽고 안타깝기까지 했던 어머니는 결국 평생 침대 근처에서 떠나기 힘든 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 직장에서 만난 프랑스 출신 매니저 잭과 함께

 

    그에 비하여 아버지는 이북에 고향을 둔 피난민으로 홀로 지내던 총각이었지만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나 이른바 데릴사위로서 사업을 일으키고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잘나가는 사업가로 성공을 경험한 분이었다. 그러다가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의형제의 연을 맺은 동안교회에서 장로가 되셨고, 훗날 목민교회를 김동엽 목사와 함께 세운 김승태 장로와 힘을 합쳐 한 회사의 공동 대표를 지낸 바 있는 경영인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미국이민 길에 올라 갖고 있던 돈을 다 써버리고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과거의 처지를 뒤로하고 미국 공장에 취직하여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 불평하지 않고 은퇴 시까지 성실을 다 하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민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의 금전 스캔들로 인해 투자(?)했던 돈을 모두 날려버린 사건에 기인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살다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한국전쟁에 투입되었고, 총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남한에서 포로가 되어 거제도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분이다. 그러다 호주 출신 옥호열 선교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심하였고, 다시금 대한민국 육군에 지원해 두 번째 군대 생활을 한 분이다.

 

   아버지는 매일 4시에 일어나 미국 공장에 출근하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만 51세였다. 나성에서 공장이 있는 디소토(Desoto)라는 작은 도시까의 거리는 만만치 않게 멀었다. 아버지는 집안에 한대 밖에 없던 말리부를 끌고 지각이나 결근이 없이 공장에 다니셨다. 결국 아버지는 만 65세에 은퇴하실 때까지 인공위성 접시안테나를 만드는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부서에서 성실을 다하셨다. 백인들이 거의 전부였던 공장의 전 직원은 아버지의 은퇴 날에 나성 한인타운의 고깃집에 모여 은퇴를 아쉬워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 공장에서 근무하던 동양인의 은퇴 일에 전 직원이 모여 축하를 해준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나는 정비소에서 쫓겨난 후 며칠 동안 집에서 눈칫밥을 먹다가 선배 엔지니어가 알려준 미국 공장에 입사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문제는 공대 출신이지만 주로 학내 시위 현장에만 있었던 나는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전자의 저항값 내지는 회로 읽는 법을 거의 모른다는 데 있었다. 그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선배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김재환이었다. 그는 당시 버클리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이미 유수한 미국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소식을 성경공부반에서 듣고 찾아와 자신이 도와줄 터이니 한두 시간만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그와는 감사하게 아직도 우정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동생 김경환 목사도 나의 절친이 되었다. 과연 버클리공대를 나온 그 선배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쳐주었고, 나는 당당히 미국 공장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아버지와 나는 새벽 4시에 같이 일어나 번갈아 운전하면서 위치가 비슷한 미국 공장에 각각 다니게 되었다.

 

   출근 첫날부터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맞이해준 잭이라는 프랑스 출신 매니저의 영어는 스페인어만큼이나 해독이 어렵고 악센트가 심한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출근 첫날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장에 들어선 나는 “하이, 킴”하며 큰소리로 맞이해주는 멕시코 출신의 아주머니들이 끝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에 몹시 놀랐다. 아마도 수백 명은 족히 넘었으리라. 파란 제복을 입고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작업하고 있다가 나를 환대해준 그분들의 함성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첫날의 두려움을 가볍게 만들어준 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부터 이년 정도 그 공장에서 제품의 성공 여부를 검사하기 위한 테스트 기계를 돌리는 일에서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출근부터 퇴근까지 검사에 검사를 거듭했다. 내가 이십 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정녕 이렇게 매일 공장에서 일하며 사는 인생으로 점철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한숨짓곤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새벽 일찍 일어나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던 미국의 한 공장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걸음을 너무도 성실하고 세심하게 인도하고 계셨다.

 

 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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