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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청년회

[스크랩] 간증: 1326. [역경의 열매] 정성자 (1-17) 하나님의 메시지였던 특별한 내 아이와의 만남

작성자종로사랑2|작성시간23.09.12|조회수65 목록 댓글 0



***간증: 1326. [역경의 열매] 정성자 (1-17) 하나님의 메시지였던 특별한 내 아이와의 만남

 

첫아들 조지프 낳은 날 마냥 행복… 하지만 얼마 안돼 가혹한 현실이…

 

지난 6월 장애우 일터인 조스테이블 커피숍 서울 극동방송 지점에서 포즈를 취한 캐나다 최대 교육그룹 PCV 정문현 회장과 정성자 권사 부부. 부부는 발달장애가 있던 첫아들 조지프가 곁을 떠난 뒤 조스테이블 사역을 시작했다. 강민석 선임기자여보 아들이야. 우리 첫아들이 태어났어. 하하하….

 

정말 신기하다. 이 손 좀 봐. 호호호….

 

남편과 내 얼굴엔 온종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 산부인과 의사가 우리를 쳐다볼 정도였다. 무엇보다 남편과 꼭 빼닮은 자식을 낳았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1980년 6월 23일 첫아들 조지프(한국명 정홍렬)는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다. 우리 가정에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선물로, 병실 가득히 웃음꽃을 흩뿌리며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날 우리 부부는 앞으로 펼쳐질 아이의 미래를 그리느라 마냥 행복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이 가득하길 기도했다. 인간의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불청객처럼 찾아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때론 축복이 시련과 고통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계획표와 달리 가혹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과 이후 그것을 보듬고 가는 과정에서의 아픔, 그리고 세상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 같았던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축복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하기엔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면 그 만남은 하나님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이 특별한 축복이었다고 간증하고 싶다.

 

국민일보 지면을 빌려 내 인생에 찾아왔던 그 특별한 만남에 대해 간증하려 한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벅찬 기쁨으로 찾아와 얼마 안 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나를 흔들었던 존재, 첫아들 조지프. 결국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답이 없어 그분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도록 끊임없이 나를 내몰았던 한 아이와의 시간들을 여기에 풀어놓으려 한다.

 

재미교포, 신실한 목회자 가정의 차남, 결혼할 짝을 구하러 2주일 휴가를 얻어 잠시 고국에 들른 월급쟁이 총각. 이것이 장차 내 남편이 될 청년 정문현씨의 당시 신상명세였다. 나는 그때 졸업을 몇 달 앞둔 음대생으로 서울 서교동 서현교회에서 예배반주자로 섬기고 있었다. 일찍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남편이 느닷없이 나타났던 그해에도 내 머릿속엔 피아노 공부 생각밖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과 독일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으로 제법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유학을 가려면 결혼부터 해라. 혼자서는 절대 해외에 안 보낸다.

 

이런 아버지의 엄포가 없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외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예배반주를 마친 뒤 어머니와 나는 담임목사님(고 박경남 목사)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쭉 살아온 한 청년이 미국이 아닌 조국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교회에서 짝을 찾고 싶어 우리 교회에 들렀다는 말씀이었다. 말하자면 목사님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중매를 서고 계셨던 것이다.

 

성자야, 한 번 만나 봐라.

 

지금 생각하면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낯선 남자와 맞선 자리에 나갔던 나도, 그런 나의 등을 슬며시 밀던 부모님도 무언가에 홀렸던 게 아닌가 싶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역경의 열매] 정성자 (1) 하나님의 메시지였던 특별한 내 아이와의 만남

* [역경의 열매] 정성자 (2) 첫 맞선 자리의 남편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 [역경의 열매] 정성자 (3) 맞선 1주일만에 '속성 결혼식'… 낯선 미국 땅으로

* [역경의 열매] 정성자 (4) "요셉처럼 돼라" 이름 지은 조지프가 자폐라니요?

* [역경의 열매] 정성자 (5) '자폐와의 전쟁' 고통의 나날에 찾아온 천사

* [역경의 열매] 정성자 (6) "첫아들의 병마저 하나님 계획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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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정성자 (11) 자폐증 자녀 둔 엄마들의 '베데스다 어머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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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정성자 (17·끝) "세상 모든 장애아를 아들로 여기며 살겠습니다"

 

◇약력=1955년 수원 출생.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졸업, 남가주대 음악대학원 석사,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대 명예인문학 박사. 이탈리아 카살마조레 국제음악캠프 아시아부문 감독, 태평양연안 음악아카데미 여름페스티벌 감독 역임. 2003년 베데스다어머니회 설립. 2013년 캐나다 장애인 지원단체 CLBC 와이드닝 아워 월드 수상. 현재 캐나다 밴쿠버 시온선교합창단 상임지휘자, 국제구호단체 GAiN 명예대사, 조스테이블(Joes Table) 공동대표, 캐나다 밴쿠버 그레이스한인교회 권사.

 

***[역경의 열매] 정성자 (2) 첫 맞선 자리의 남편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인생의 목적·선교사 삶에 대해선… 당돌한 질문에 하나님 뜻이라면

 

정문현 PCV그룹 회장과 정성자 권사 부부의 1978년 9월 5일 결혼식 사진. 서울 서현교회에서 고 박경남 담임목사의 주례로 올린 결혼식은 맞선을 본 지 일주일 만에 올린 예식이었지만 많은 친지와 친구의 축복 속에 진행됐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음…, 바로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맞선 자리에 나온 남자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열네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 이민을 간 뒤 스페인어와 영어를 주로 썼다는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의 강한 햇빛을 받았는지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그럴 듯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질문을 던지는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인생의 사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 번째 질문에 깜짝 놀랐다. 맞선 자리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여자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애써 여유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나 생각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끌림은 없었지만,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고국 땅까지 찾아온 교포 청년을 차갑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질문은 바로 몇 주 전 교회학교 중등부 공과시간에 내가 학생들에게 물으며 가르쳤던 내용이 아닌가.

 

인생의 목적요? 그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또 영원토록 그분을 즐겁게 하는 것 아닐까요.

 

성경공부 책에 나온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하는 내게 그 남자는 원하던 답을 얻은 사람마냥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원래 선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선교사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음…. 저는 앞으로 선교사를 돕는 후원자가 되기 위해 사업을 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물질의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면 저는 그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쓸 것인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황당했다. 이 남자는 이제 막 월급쟁이가 된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대학을 은행 빚으로 겨우 졸업한 사람이라던데…. 듣기에 따라선 맞선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허세로 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과대포장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믿음이랄까. 마치 부모가 자신을 위해 앞으로 이렇게 해주리라 철석같이 믿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물질 축복 많이 받으면요? 그러면 선교사를 돕고 살아야겠지요.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세 번째 질문은 뭔가요?

 

이번엔 내가 질문을 재촉했다. 세 가지 질문을 하는 남자의 속내가 궁금해진이다.

 

아, 예. 저는 형제가 다섯입니다. 그런데 다 크고 보니까 다섯도 적적하네요. 많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음…. 저는 결혼하면 적어도 아이 다섯은 낳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 우리나라는 두 자녀 낳기 운동을 지나, 한 아이만 낳기를 권장할 정도로 출산억제 정책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계속 피아노 공부할 생각만 해왔지,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해 본적이 없었던 내게는 가장 어이없고 난감한 질문이었다.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하긴 해야 했다.

 

다섯요? 호호호, 하나님께서 주시면 낳아야죠.

 

반은 농담으로 대답한 내 말을 그 남자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길지 않았던 시간, 마치 면접이라도 한 것 같던 세 가지 질문과 답변들. 그것이 내 인생을 움직이는 세 가지 중심축이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맞선 자리를 끝내고 돌아와서 어땠냐?는 어머니의 물음에도 담담하게 말했다. 뭐, 그냥 싫지는 않았어요.

 

그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사람 정도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됐다. 싫지 않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3) 맞선 1주일만에 '속성 결혼식'… 낯선 미국 땅으로

 

믿음의 어머니 "기도 중에 보았던 네 남편 얼굴이 바로 그 청년이더라"

 

1980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도시인 다우니에서 첫아들 조지프를 낳은 정문현 PCV그룹 회장과 정성자 권사. 병원에서 퇴원할 때 간호사가 찍어 주었다.

 

맞선을 본 다음날, 남자 쪽에서 우리 집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는데, 결혼이 이리 급하게 이뤄질 줄 몰랐던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어머니도 결혼하라고 권유하셨다.

 

"성자야, 우리도 네가 그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과 결혼하면 너도 미국에 가 피아노 공부를 계속할 수 있지 않겠니?"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지 않으면 절대로 유학 보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 역시 별로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가 계속 생각났다. 확고한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그의 고백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만한 신앙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지도 몰라. 만약 정해진 짝이 있다면 혹시 이 사람이 아닐까.' 이 생각이 문득 떠오른 순간, 어머니는 마치 내 생각을 읽고 계신 양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자야, 엄마가 네 배우자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잖니.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할 때 환상 중에 보았던 네 배우자의 얼굴이 바로 어제 만난 그 청년이더라…."

 

자식의 앞길을 담보로 거짓말을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어머니는 모두가 인정하는 기도의 어머니셨다.

 

수요일에 남편을 처음 만나 맞선을 보고 그 다음주 목요일 전격 결혼식을 올린 데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만난 지 1주일 만에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오래전부터 준비된 결혼식처럼 마음이 편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위해 주야로 간구하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번갯불에 콩 볶듯 속성으로 치른 결혼식 후, 3∼4개월의 수속기간을 거쳐 바로 한국을 떠난 내게 미국생활은 힘들기만 했다. 우선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집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시어른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집안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기도와 목회, 노동으로 채워지는 시부모님을 바라보는 것도 갓 결혼한 새댁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일 다녀올 테니 오늘은 시금치 좀 무쳐 놓으렴."

 

며느리에게 반찬 몇 가지를 부탁하고 나가시는 시어머니를 배웅한 뒤 나는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결혼 전 부엌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했던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제대로 할 리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신혼시절 자잘한 실수와 시행착오들이 이어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밤마다 경영공부에 매진하는 남편은 또 얼마나 바쁜지. 가뜩이나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한 우리 부부에게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대화가 부족하기만 했다. 남편의 미국식 사고방식도 서로의 이질감을 부채질했다.

 

그런 상황에서 첫아이를 갖게 되자 그 기쁨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위해 가만히 기도하고 있노라면 이 가문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한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에 틀림없어요."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셨다는 남편의 조부모님, 부르심에 순종해 부와 명예를 버리고 빛도 없이 목회자로 사역하고 계신 시부모님, 그리고 선교사를 돕는 후원자가 되고 싶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남편을 생각하니 하나님이 이 가정에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고 싶어 하신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믿음의 계보를 이을 자,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드러낼 자, 그간 우리 부부의 눈물을 씻어주며 위로할 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시리라 믿었다. 열 달이 지난 후 분만실에서 첫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나와 남편은 함박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4) 요셉처럼 돼라 이름 지은 조지프가 자폐라니요?

 

낯선 땅 미국서 얻은 보석같은 두 아들 첫째 조지프에게 어느날 이상 증세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 목욕탕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는 첫아들 조지프(오른쪽)와 둘째 아들 홍민이.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부산스러워 엄마 속을 태우곤 했다.

 

첫아들 이름을 조지프 정(Joseph Chung·한국명 정홍렬)이라고 지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애굽의 총리가 된 성경 속 요셉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짙은 눈썹에 서글서글한 눈매, 부드러운 입술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닌 조지프는 내 아들이지만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기와 눈 맞추고 웃거나, 조그맣고 통통한 볼에 얼굴을 부빌 때의 뭉클한 기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느 가정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감격과 감탄의 연속만은 아니었다. 특히 첫아이를 키운다는 건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의 잠을 재우는 것도 힘들었고 또래보다 부산스러워 보이는 아이에게 차분히 뭔가를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지프는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리된 물건을 깨뜨리기 일쑤였다. 아이에게서 눈을 뗐다가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고 제 아빠 닮아서 그래. 애비도 어릴 때 꽤나 부산스러웠지 하시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둘째 홍민(미국명 사무엘)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태어난 둘째까지 돌보느라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한꺼번에 두 아들을 돌보기 힘들어 첫아들 조지프를 반나절 동안 돌봐주는 프리스쿨(유치원)에 등록시켰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왔다.

 

조지프가 좀 이상해요.

 

네? 조지프가 이상하다고요? 뭐가요?

 

당시만 해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노골적이던 때라 조지프가 혹시 동양인이란 이유로 차별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으로도 옮겨봤지만 조지프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수소문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아이에게 자폐 성향이 있습니다.

 

자폐요? 그게 뭐예요?

 

1984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이다. 조지프를 이리저리 진단하던 의사가 자폐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병인가 싶었다. 병이라면 빨리 고쳐야 할 텐데, 그럼 고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만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러면 뇌수술을 하면 되는 것인가요?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렇게 의사에게 반복해서 되물었다. 하지만 의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수술로 해결되는 병이 아닙니다라는 말뿐이었다. 또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세상에 치료 방법이 없는 병이 있나 싶었고, 내 아들에게 왜 그런 병이 찾아왔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좋은 특수교육 선생님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아이에겐 약물이나 수술보다 좋은 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이 예후가 좋습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떠올려 보니 더욱 막막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 집안에 저런 아이가 태어났을까. 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는 아이가 내게서 태어난 걸까.

 

그간 조지프를 보며 단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의문들이 떠오르면서 아들을 보는 내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 보였던 조지프의 얼굴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듯했다. 방에 몸져누웠다. 나중엔 거동조차 힘들어 자꾸만 비틀거릴 정도였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5) 자폐와의 전쟁 고통의 나날에 찾아온 천사

 

첫아들 조지프(오른쪽)와 둘째 아들 홍민이. 하루 종일 말썽부리는 어린 아들들을 키우느라 힘든 날들이 계속됐다. 하나님은 멀어졌고 홀로 남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첫아들 조지프가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은 뒤 자폐 증상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길을 가다 아무 아이나 때리기 일쑤였다. 밥 먹는 것, 대소변 가리는 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갈 수도, 음식점에 갈 수도 없었다.

 

내 아이에게 이런 증세가 있다는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점점 방안에 숨긴 채 사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무엇보다 잠을 재우는 일이 문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조지프는 차 타는 것을 무척 좋아해 차 안에 있는 동안은 창 밖 경치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는 조지프와 둘째 아들 홍민이를 차에 태워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 일과가 돼 버렸다. 두 아이와 함께 교외로 나가 빙빙 돌다가 아이들이 지쳐 잠든 뒤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때 운전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나중에 주행거리를 봤더니 보통 사람이 4년 동안 달리는 거리를 나는 거의 1년 만에 달렸다.

 

저녁 9∼10시가 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로 남편의 퇴근을 맞곤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공부하던 남편의 귀가시간은 나의 일과가 끝나는 밤 10시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힘든 과정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묵묵히 전진했던 남편의 우직함이 존경스럽지만, 그땐 사업과 공부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단단히 한몫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아픔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또 하루를 보내지 하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하루빨리 아이들이 크면 이 폭풍 같은 삶의 고통이 마무리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혼자 동굴 속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남편도 우리 가족을 위해 함께 뛰고 있었고 주위의 도움도 받았지만 외로움과 고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계속 내버려 둘 수 없으셨는지 한 천사를 보내 주셨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목회하시는 윌셔 한인장로교회에 한 여전도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고 했다.

 

예언의 은사?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왜 예언이 필요하지?

 

당시 나는 예언이든 뭐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것일 뿐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려는 마음, 간구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도 희미해진 상태였다. 그런 내게 시어머니는 전도사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하니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함께한 식사가 끝난 뒤 갑자기 그 전도사님이 내게 말을 건넸다.

 

기도를 해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나에 대한 어떤 얘기도 나눈 바 없는 상태에서 그분은 갑자기 기도해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셨다.

 

네, 그러세요.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던 나는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분의 제안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저 어릴 때부터 교회 어르신들이 나를 붙잡고 기도해 주시던 그런 일반적인 기도를 해 주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나와 단둘이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한 전도사님에게서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기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도가 나오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6) 첫아들의 병마저 하나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여전도사님 기도에 마음의 평안 얻고 한없이 원망했던 주님께 감사 기도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평안을 되찾았고 대학 때 전공인 파아노 건반도 두드릴 수 있었다.집사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이 당하는 시련과 고통을 다 살펴보고 계십니다.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온 전도사님,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는 그 전도사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상처, 내 안에 가득했던 혼자라는 생각을 그 전도사님이 터치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도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도사님은 마치 내 일상을 다 꿰뚫고 계신 듯했다. 아들의 장애로 인한 가족관계의 갈등, 엄마와 며느리로서, 또 아내로서 겪는 아픔까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계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다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돕길 원하시는 영적 아버지이심을 기도 가운데 설명해 주시니 정말 거짓말처럼 힘겨운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비둘기 같은 평화가 밀려왔다. 그것은 평생 처음 느껴보는 영혼의 안식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 내어 울어댔다.

 

참 좋으신 하나님, 고맙습니다.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날 나는 작은 기적을 체험했다. 첫아들의 병을 알고 난 뒤부터 갖게 된 마음의 병, 막혔던 마음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날마다 나와 함께 계시는 분임을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기도하는 전도사님 입에서 축복의 약속이 쏟아졌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입니다. 인내하면서 견디어 나가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끝없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무너지고 있는 나를 위해 천사를 급히 보내셨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전도사님이 방문한 이후 나는 다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내 곁에 계신 그 하나님을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 판정을 받은 조지프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는데도 성장의 징표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증거인 언어발달이 현저히 더디게 나타났다. 급기야 아이에게 혼란을 없애기 위해 한국어 대신 영어로만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로 대화를 해도 조지프와의 소통은 쉽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언어로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행동도 어디로 튈지 몰랐다. 어쩌다 한번씩 이웃집에 놀러가도 맘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 이물질을 자꾸 집어넣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변기가 막히기 일쑤였다. 문제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때론 천연덕스럽게 밥을 잘 먹는 조지프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 이 아이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고 우리의 사명을 이뤄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 쳐도 저 아이의 삶은 뭔가요. 저 아이가 저렇게만 사는 건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 아닌가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못 찾고 있었다.

 

아득한 미로 속에서 혼돈과 무질서의 언어를 갖고 사는 듯한 조지프. 하나님은 과연 이 아이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나 뜻을 갖고 계시긴 한 것일까.

 

뿌연 안개처럼 걷힐 줄 모르는 이런 의문들 때문에 조지프를 바라보는 내 눈엔 수심이 가득했다. 조지프에게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도 수소문해 먹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조지프의 성장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 했다. 의사 말대로 이런 아이에게는 좋은 교육만이 좋은 예후를 가져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7) 뛰어난 기억력·글씨체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폐증 조지프, 놀라운 능력 보여줘 어느날 학교 폭력배에게 피투성이가…

 

첫아들 조지프는 특수학교 선생님의 정성스러운 지도를 받으며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중 알파벳 글씨체는 엄마가 보기에 무척 아름다웠다.

 

집에서 좀 멀긴 했지만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한 공립학교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알파벳 테스트를 해볼까요?

 

선생님이 단어를 부르면 그 단어를 받아 적는 알파벳 테스트를 조지프에게 실시한다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게 가능해? 말도 안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처음엔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고 보세요. 조지프는 글을 쓸 수 있게 될 겁니다. 또 책도 읽을 수 있고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까지 하게 될 테니까요.

 

믿기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조지프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셈까지 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조지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조지프는 특수학교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기억력이었다. 영어 단어를 배우고 실시한 스펠링 테스트에서 조지프는 거의 만점을 받았다. 단어 찾는 게임 책을 갖고 다니며 게임을 즐기곤 했다. 조지프가 쓴 알파벳 글씨체는 매우 아름다웠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는 조지프의 영어 필기체는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조지프의 작은 능력은 자폐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조지프의 학교생활은 어려운 점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중학교에 들어가 보니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덩치가 큰 아이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 못한 조지프는 그날따라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누군가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어느 학생이 조지프를 발견해 선생님께 알렸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다. 머리 뒷부분을 열두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나는 너무 황당해 조지프에게 다그쳐 물었다.

 

누가 그랬어, 조지프? 누가 널 이렇게 했어?

 

아무리 물어도 조지프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물음에도 대답할 줄 모르는 조지프라면 화장실에서 맞을 때도 하지 말라는 저항 한마디 못했을 게 뻔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선생님은 궁여지책으로 학교에서 제일 말썽 피우는 아이들 몇을 불러 놓고 조지프에게 물었다.

 

이 중에 너를 때린 사람이 있니? 그 아이를 가리켜 보렴.

 

그러나 조지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으로 가리킬 줄도 몰랐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눈치마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딴전을 피울 뿐이었다.

 

나중에 조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학교 안의 갱 멤버가 되기 위해 조지프를 때려 눕힌 사건이라는 게 드러났다. 갱 그룹 그들만의 원칙에 따라 갱 멤버가 되려는 학생 한 명이 조지프를 지목하고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무지막지하게 때린 것이었다. 이런 일까지 일어나자 조지프의 앞날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자신을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조지프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참 막막했다.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안타까운 날들이 계속됐다. 생각날 때마다 조지프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조지프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이 믿음을 붙잡고 주일예배 피아노 반주자로 섬겼다. 찬송을 하다 보면 잠시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곤 했다. 사막 위를 걷다가 샘을 발견해 목을 축이는 것과 같았다. 고난 중에 차마 열리지 않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8) 3남2녀의 행복도 잠시 조지프가 물에 빠졌어요

 

美8군 사령관 지낸 지인의 결혼식날 자폐증 조지프의 사고에 다시 기도를

 

1990년 막내아들 홍식이의 백일 때 가족사진. 남편은 출장 중이라 함께 찍지 못했다.

 

줄곧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 조지프를 키우는 데 매달려 있는 동안 남편 사업은 점점 번성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말리부 해변으로 이사했다.

 

어느새 다섯으로 늘어난 3남2녀의 우리 아이들에게, 특히 첫아들 조지프가 뛰놀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진심으로 좋다, 아름답다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다섯 아이를 낳고 기르는 힘겨움에 지쳐 있었고, 언제 어떻게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는 조지프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리부 해변 집에선 크고 작은 모임이 열리곤 했다.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우리 집이 평소 남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각종 파티나 결혼식, 영화촬영 등을 위한 장소로 제공됐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조지프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임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이어졌다. 자폐아인 조지프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걱정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를 소개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미8군사령관을 지내고 우리와 오랜 기간 친분이 두터웠던 킹 커프만 사령관의 결혼식이 있었던 그날까지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장소를 제공한 안주인으로서 신경 써야 할 일이 꽤 많았다. 결혼식에 차질이 없도록 아침부터 서둘렀다. 조지프는 집 정원 한쪽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수영을 하며 행복해 할 조지프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지프에 대한 걱정을 접으려 할 때쯤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인근 병원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조지프란 아이가 물에 빠졌어요.

 

조지프가 왜요? 조지프가 물에 빠져요? 조지프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인데….

 

바다에서 정신을 잃고 떠내려가는 것을 윈드서퍼들이 발견해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고 하네요. 지금 조지프는 병원에 있고요.

 

오, 하나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윈드서퍼들이 발견했다면 조지프가 집에서 수영하다가 인근 해변까지 떠내려갔다는 얘기가 된다.

 

살아 있나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 질문에 병원 관계자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조지프가 물에 빠지다니. 내 아들 조지프가 병원에 있다니. 조지프, 죽으면 안돼, 조지프.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차가 있는 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결혼예식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실성한 여자처럼 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하객들은 넋 나간 내 모습에 사태를 파악하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조지프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차에 타 시동을 걸자마자 내 머릿속에 조지프와 함께했던 날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에게 첫아들이라는 기쁨을 안겨준 조지프, 머나먼 타향과 시집생활에 방긋 웃어주며 시름을 덜게 하던 조지프. 그러나 얼마 안돼 자폐 판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소외된 조지프의 모습이 아프게, 너무도 아프게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조지프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신음 소리 같은 탄식을 하며 죄인됨을 고백하고 있었다.

 

저는 조지프를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어미였습니다. 수백 번도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심지어 조지프의 생명까지도 내 맘대로 하려 했던 죄 많고 못난 어미였습니다. 그 순간 조지프가 자폐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돼 병원에 갔다가 병원 고층에서 내려다보며 조지프와 함께 뛰어내릴까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9) 물에 빠진 자폐증 아들을 다시 살리신 뜻은?

 

의료진 48시간내 못 깨어나면 위험 저는 죄인… 간절한 기도에 기적이

 

자폐 진단을 받은 첫아들 조지프는 물을 좋아해 수영장이나 해변 등에서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곤 했다.

 

하나님, 저는 살아 있는 아이를 죽은 아이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밖에 나가 뛰놀고 싶은 아이를 방 안에 꼭꼭 숨겨둔 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이 아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도 없었습니다. 조지프를 그저 동생들을 괴롭히고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 아이로만 여겼습니다. 너는 살아서 뭐 할까. 아무데도 쓸모없는 조지프 이렇게 미워하며 살아왔습니다. 이토록 무례하고 어리석은 저를 하나님은 품으시고 덮어주셨는데, 저는 조지프를 내 배로 낳은 아들인데도 받아들일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를 고백했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물에 빠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조지프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침내 기도 끝에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 우리 조지프를 살려만 주세요. 자폐는 안 고쳐주셔도 됩니다. 그거 고쳐지지 않아도 조지프의 그 상태 그대로도 너무나 감사해요. 조지프는 그대로 소중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병원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날은 마음이 급한지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조지프는 물을 너무 많이 먹어 임신한 여자처럼 배가 불러 있었다. 의료진 7∼8명이 급히 움직였다. 의식이 없는 조지프의 배에서 찬물을 빼고 또 뺐다. 배 속에서 나온 물 색깔을 보니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 있는 탁한 보랏빛이라는 게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부지런히 움직이던 의사들은 더 이상 손쓸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조지프를 입원실로 옮겼다.

 

아직 의식이 없어요. 48시간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의사가 조지프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 의사가 병실에서 나간 뒤 나는 조지프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진심을 담아 기도해본 적이 또 있을까. 조지프를 깨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또 간구했다. 조지프의 손을 이렇게 만질 수만 있어도, 조지프의 얼굴을 따뜻하게 쓰다듬고, 조지프의 해맑은 눈을 보며 장난칠 수만 있어도 기뻐할 수 있겠노라고 고백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나도 있는 그대로의 조지프를 기뻐하며 사랑하겠노라고 했다. 조지프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길 몇 시간. 새벽녘에 잠깐 잠들었다 깨어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지프 하고 아들의 이름을 살며시 불러봤다. 아무 소리가 없었다. 다시 조지프의 입 안에 빨대를 살짝 밀어넣으며 조지프. 이거 물 삼켜봐라고 말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지프가 물을 한 모금 삼키는 게 아닌가.

 

아, 내 아들 조지프가 살아났구나. 기적이다.

 

반응을 해 주는 조지프가 고마웠다. 기쁜 마음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조지프에게 다시 물을 주며 그렇게 읊조리던 순간, 조지프는 살아났다는 보다 확실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 물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게 아닌가. 조지프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병실 밖 의사와 간호사에게 알렸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몇 시간 만에 기적처럼 깨어난 조지프를 보며 축하인사를 전했다. 조지프는 정말 예전처럼 그 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님, 조지프가 깨어났어요. 감사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식불명이던 조지프가 깨어나자 나는 하나님을 절로 찬양하게 됐다. 조지프가 숨을 쉬고 깨어나고 물을 마시는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인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0) 주님, 낫게 해주세요 조지프가 기도에 찬양까지

 

자폐증 아이를 살리신 하나님 사랑에 나와 가족은 물론 조지프에게 변화가

 

1989년 조지프에게 처음으로 글씨를 가르쳐 주신 미스 테이트 선생님과 같은 반 백인친구. 뒷줄 아이 아빠는 학교에 방문했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조지프는 물에 빠져 하늘나라로 갈 뻔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조지프는 하루 만에 이 세상으로 돌아와 주었다. 아들을 돌려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집에 오는 길에 놀랍고 신비한 체험을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 시각, 거리에 핀 꽃송이 하나하나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깨어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머. 저곳에 바다가 있었네. 바닷물이 어쩜 저렇게 파랗지?

 

바닷물이 출렁이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 아름답다. 어쩌면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달라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왜 나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일까.

 

달라진 건 내 마음만이 아니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무겁기만 했던 육체도 하룻밤 새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조지프를 간호하느라 밤을 꼬박 샜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라는 찬송가 가사가 내 삶에서 실제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조지프의 사고로 알게 된 나의 죄 됨과 회개,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조지프의 깨어남…. 하나하나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이 갑작스러운 일들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무슨 화학반응이라도 일으켰던 것일까. 나는 그날을 계기로 다른 눈, 다른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됐다. 무엇 때문인지 상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 벅찬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후 새 삶을 살게 됐다.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와 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살아 돌아온 말썽꾸러기 조지프를 보고 있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아마도 나는 그날의 사고를 통해 조지프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을 알게 되니 사랑이 없던 내게 사랑이 샘솟았고, 가는 곳 어디에나 기쁨이 충만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변하자 가족 모두에게 도미노 효과가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동시다발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가족 모두를 뒤덮었는지 모른다. 가족들은 이전보다 조지프를 더 사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조지프를 사랑하는 길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나는 그날부터 누가 우리 집을 방문하더라도 조지프를 불러 소개했다.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기에 누구에게든 조지프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장남 조지프입니다. 조지프, 인사 드려.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조지프는 위축된 엄마 마음 때문에 자기 방에서만 놀아야 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내게 있던 위축된 마음이 사라졌다. 이를 조지프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조지프는 이후 몰라보게 밝아졌다. 놀랄 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Hi, How are you? My name is Joseph. What is your name(안녕? 내 이름은 조지프야. 너의 이름은 뭐니)?

 

이때부터 조지프는 누구에게든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많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적인 아이를 내가 없는 듯 대했을 때, 조지프의 자존심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저리게 아팠다.

 

통제가 안 되던 조지프의 행동이 조금씩 차분해진 것도 이때였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조지프가 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곤 했다.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조금씩 늘어났다. 비록 발음은 어눌했다. 하지만 낫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됐다.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양도 신나게 불렀다. 학교에서도 하루하루 발전하는 조지프를 칭찬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1) 자폐증 자녀 둔 엄마들의 베데스다 어머니회

 

신문에 조지프 이야기 소개 계기로 장애우 이민가정 어머니들 모임 결성

 

베데스다 어머니회 회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장애우 이민가정을 섬기고 있다. 2008년 연말 캐나다 밴쿠버 집에서 모임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정성자 권사.

 

조지프가 열여섯 살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사를 했다. 교육사업을 하게 된 남편을 따라간 것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조지프를 위해 해변 쪽에 집을 얻었다.

 

자폐아들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이 안정을 찾아 갔다. 틈틈이 봉사활동에 나가거나 음악공부를 했다. 그중 하나가 밴쿠버 매시극장에서 열렸던 장애우를 위한 자선음악회였다. 소프라노 김영미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 교수의 참가가 예정된 이 음악회에서 나는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됐다. 음악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이 열렸고 두 분이 한국과 미국에 계신다는 이유로 밴쿠버 현지 신문기자의 관심이 내게 쏠렸다. 기자는 첫 질문으로 가족관계를 물었다. 예전과 달리 큰아들을 비롯한 자녀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놨다.

 

큰아드님이 스물한 살이면 대학에 다니겠어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우리 큰아들은 대학에 안 다녀요. 장애가 좀 있거든요. 특수학교만 졸업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은 제게 축복이고 우리 집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천사랍니다(호호).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기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조지프가 태어난 일, 장애를 알고 난 뒤 힘들었던 이야기, 아홉 살 때 물에 빠졌다 살아난 이후 나의 변화 등을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음악회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헌데 다음날 신문기사를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음악회 홍보가 나왔어야 할 그 신문에는 나와 조지프의 이야기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게 아닌가. 기자가 그저 개인적으로 궁금해 물어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가족의 이야기가 간증문처럼 실렸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자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분이 조지프의 이야기가 다른 가족들에게 누가 되진 않겠느냐는 걱정의 전화를 했다. 나는 당시 누나를 늘 따뜻하게 대해주고 영적 안내까지 해 주던, 미국 LA에서 목회를 하는 막냇동생 이규섭(현재 뉴욕 퀸스한인교회 담임)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 조지프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내 물음에 동생은 대뜸 이렇게 답했다.

 

누나, 나는 정말 기뻐.

 

응? 기쁘다고?

 

신문에 그런 내용이 나왔다는 건 누나가 이제 조지프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그건 누나의 상처가 많이 치유됐다는 거잖아. 난 그게 정말 기뻐. 누나 참 잘했어.

 

힘이 좀 생겼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공개된 조지프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어 모르는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문을 보고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는 상대방은 밴쿠버로 이민을 와 자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였다.

 

많이 힘드시죠. 우리 만나서 얘기합시다.

 

그렇게 해서 기사가 나오고 전화를 주신 그분과 또 다른 두 분의 한국 엄마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20여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로 자폐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만나자마자 우리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헌데 신비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누군가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거기에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를 서로 금세 알아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만날 땐 몇 사람이 더 합류했고, 그 다음엔 또 몇 사람이 추가됐다. 그러다가 그 모임은 1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는 베데스다 어머니회로 발전했다. 장애우 이민가정을 섬기는 어머니들의 모임으로 1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2) 우리보다 더 아픈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자!

 

베데스다어머니회, 성경공부·세미나… 양로원·노숙인센터 찾아 봉사활동도

 

베데스다 어머니회를 설립한 정성자 권사(오른쪽 두 번째)와 회원들이 2010년 캐나다 밴쿠버 근교 양로원을 찾아 찬양하고 봉사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하나님 세상에 우연이 있을까.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늘 아버지가 허락하시지 않으면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하셨다. 2003년 10월 시작된 베데스다 어머니회는 조지프의 기사를 계기로 결성됐다. 이 땅 어딘가에 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엄마의 눈물을 씻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작은 자들의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베데스다 어머니회는 누구에게나 열린 모임이길 지향했다. 그래서 장애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모임을 하나님이 이끄셨기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삶으로 이끄는 모임으로 정착돼 갔다.

 

베데스다 어머니회 회원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성경공부를 하고 자폐 자녀를 위한 세미나 등을 여는 방식으로 모임을 계속했다. 회원들은 특히 양로원이나 노숙인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벌였다. 혹자는 왜 굳이 장애 아이 키우기도 힘든 엄마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도 있었다. 사실 자폐아 가정의 다양한 사연과 아픔을 보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폐강박증을 앓는 아이도 있고, 우리 조지프처럼 경기를 동반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유독 잠을 안 자서 부모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일반 통합학교에 다닐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이런 가정의 엄마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외로움까지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우리 베데스다 어머니회만큼은 우리의 약함과 고통에 대해 당당하게 풀어놓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임을 시작하고 나니 우리 모임은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의 화장실 문제, 밥 먹는 문제, 학교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 등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해결해야 할 아이의 여러 약함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그러면 엄마들은 이 얘기에 공감하고 또 다른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얘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문제를 풀려고 했다. 세상 모임과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주로 누가 더 자랑거리를 많이 가졌는가가 화제다. 누가 더 좋은 대학에 자식을 보내고, 누구의 남편 지위가 더 높은지, 누가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지에 대한 화제가 많다. 서로 경쟁하듯 그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제일 좋은 대학에 자식을 보낸 엄마나 제일 많은 연봉의 남편을 둔 아내가 그 모임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면 얘기에 동참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의 가슴엔 보이지 않는 상처만 남는다. 그러나 베데스다 어머니회에선 이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누가 힘든 얘기를 하면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것보다 더 심해요라고 말하면 그 엄마가 그날 우리 모임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그 얘기에 동참했던 다른 엄마들은 가장 힘든 고통을 겪는 그 주인공으로 인해 자신의 짐을 내려놓게 되고, 또 그 주인공을 위해 모두가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성경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린도후서 11장 30절)고 한 대로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또한 약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며 기도했다.

 

나는 우리가 특별히 약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지원과 도움도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아픈 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약한 우리가 아픈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은 눈물을 닦아줄 때 그들의 눈물도, 또 우리들의 눈물도 씻겨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3)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깨닫게 해준 조지프

 

노숙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해맑게 인사… 교만하기만 했던 내게 감동·축복 선물

 

비록 자폐를 앓는 아이였지만 아들 조지프는 교만했던 내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는 스승이었다.

 

조지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남편과 나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조지프 때문에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친구를 얻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남편은 사업상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번은 고위 정치인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남편은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조지프의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그러자 그분은 사춘기를 겪는 자녀의 이야기를 꺼내며 고민을 털어놨다. 그 일을 계기로 그분과 남편은 사업관계를 뛰어넘는 친구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분의 부인이 밴쿠버에 왔을 때 우리 집에 들러 함께 기도하고 격려할 만큼 온 가족이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나는 조지프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노숙자지원센터를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확한 주소도 없이 지원센터라는 이름만 듣고는 노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헤이스팅스 거리로 갔다. 대강 이 지점이려니 하고 차를 세운 채 간판을 찾았다. 겨울 오후 뿌옇게 안개 낀 밴쿠버 헤이스팅스 거리는 칙칙하고 음산했다. 그런데 조지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조지프가 어디로 갔지?

 

깜짝 놀란 내가 주변을 살펴보니 조지프는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있었다. 그곳에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들도 많이 섞여 있던 터라 덜컥 겁이 났다. 그분들을 섬기러 간 것은 맞지만 돌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보니 걱정이 앞섰다. 조지프가 두려움도 없이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한 노숙자 앞에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그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Hi! How are you? My name is Joseph. What is your name?(안녕? 내 이름은 조지프예요. 당신 이름은 뭔가요?)

 

그 모습을 본 나는 너무나 놀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뛰어가서 아들을 데려올까 싶으면서도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조지프와 그런 조지프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 사람 사이에 잠시 적막이 흐르는 듯했다. 자칫 시비라도 붙을 수 있는 순간, 내가 숨을 죽이며 바라보는 사이 그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아들이 내민 손을 잡고 말했다.

 

My name is peter.(내 이름은 피터야)

 

그 사람의 대답에 조지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조지프는 사명을 다한 사람마냥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고, 악수를 받아줬던 그 사람은 그렇게 걸어오는 조지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아, 조지프…. 해맑게 걸어오는 조지프를 보며 내 마음 안으로 무언의 메시지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조지프,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판단을 하며 사는지 몰라. 사람의 외모만 보고 저 사람은 내가 먼저 가서 얘기해도 될 사람, 혹은 얘기해선 안 될 사람으로 판단하곤 하지. 그런데 상대방의 외모가 어떻든 똑같이 다가와 먼저 손을 내미는구나. 그래 조지프, 그게 예수님의 마음이었어. 예수님도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서 말씀하셨지….

 

그런 감동이 밀려들자 조지프가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의 선물로 찾아온 아이인지 깨달았다. 조지프가 없었다면 완악하고 교만하기만 한 내가 지금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그저 내 안위와 성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다 끝났을지도 모를 내 인생, 조지프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도록 안내해 주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돌아온 조지프를 향해 말했다.

 

조지프, 너는 정말 최고야. 너는 엄마의 진짜 스승이야.

 

엄마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조지프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조지프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편 채 씩씩하게 거리를 걸었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권사 (14) 조지프, 자폐증에도 하루 7시간 성경쓰기 도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하듯이 요한복음·시편 한 자 한 자 써내려가

 

아들 조지프가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쓴 시편 노트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왼쪽은 조지프의 성경필사 노트.

 

내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벽기도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할 무렵 조지프는 조지프대로 성경 쓰기를 하며 하나님께 다가가고 있었다. 조지프의 글씨는 엄마가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학교와 교회 선생님도 격려해 주셨다. 어린이성경을 쓰는 것에서 시작한 조지프의 성경 쓰기는 요한복음에 이어 150편에 달하는 시편 쓰기로 이어졌다.

 

조지프가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됐다. 성경 쓰기는 조지프에게 무리인 듯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속도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느렸다. 글씨를 쓰는 동작도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조지프는 시편을 한 자, 한 자씩 쓰고 마침표 하나를 찍는 것까지 정성스레 잘 써내려갔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시편을 읽고 따라 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성경 쓰기에 몰두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손 아파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7시간 성경 쓰기는 무리인 듯 하루에 한 페이지씩만 성경을 쓰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조지프가 무언가에, 그것도 지루하게 느낄 법한 성경 쓰기에 몰두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성경말씀을 쓰다가 행여 잘못 쓴 게 발견되면 그것을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는 조지프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거기엔 뭔가 특별한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있는 듯했다.

 

더욱이 조지프는 그 즈음에도 경기(발작)를 일으키면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소위 간질 증세인데 잠자는 도중에도 몇 번씩 경기를 일으킬 때도 있었다. 경기를 일으킨 다음날이면 피로감 때문에 성경 쓰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조지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름 정자세로 어김없이 시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그런 날이면 영어 스펠링이 삐뚤삐뚤하고 다른 때보다 많이 틀렸다. 말씀도 몇 구절 빠뜨리기 일쑤였다. 썼던 말씀을 다시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조지프가 쓴 성경 노트에는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흔적이 많았다.

 

조지프는 왜 이토록 힘든 몸에도 시편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 몇 시간씩 성경 쓰기에 집중하는 조지프를 지켜보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깊은 위로를 경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미치광이 노릇을 해야 했던 다윗이 시편을 쓰며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하나님 앞에 토로했듯이 말이다. 조지프 역시 평생 장애로 인해 표현할 수 없었던 외로움과 고통을 다윗의 시편을 빌려 토로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지프의 영혼은 기쁘고 행복했으리라. 조지프는 상한 심령을 싸매시고 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스런 손길을 경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개한 꽃과 같은 청춘의 그 시절, 청년 조지프는 그렇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던 다윗의 시편을 필사하는 것으로 보내고 있었다.

 

2012년 봄, 조지프는 마침내 총 150편의 시편 필사 작업을 완성했다. 시편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반 만이다. 한 자, 한 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듯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 써내려간 조지프의 시편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런 조지프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보다 적극적으로 조지프의 경기를 고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수술 가능 여부를 알아봤다. 병원에선 뇌의 발작 부위가 여러 곳에 퍼져 있어 수술을 하기엔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진단을 내렸다. 혹시나 하고 조지프의 회복을 기대했던 마음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마음을 다시 추슬렀다. 조지프에게 맞는 새로운 약을 찾아 경기를 잡아보자는 주위 분들의 조언에 힘을 얻은 것이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5) 또 물에 빠진 조지프 주님, 이게 끝은 아니지요?

 

안전요원이 인공호흡 중 갈비뼈 골절… 부러진 뼈가 허파 찔러 피투성이가 돼

 

2010년 1월 15일 둘째 아들 홍민이 결혼식 때 조지프는 들러리를 서며 나와 함께 입장했다. 남편이 뒤따라 입장하고 있다.

 

오늘은 스페셜올림픽 수업을 시작하는 첫날이어서 조지프의 기분이 만점이에요.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오후 조지프를 돌봐주는 분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수영을 좋아하는 조지프는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교실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날도 조지프는 물속에 들어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 아들 조지프는 오늘도 신났겠네.

 

그날 저녁 웨스트밴쿠버의 어느 가정집에서 열린 모금을 위한 음악회에 참석하면서도 나는 조지프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음악회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내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모님, 조지프가 물에 빠졌어요!

 

조지프를 돌봐주는 선생님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조지프가 경기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물에 빠져서 어떻게 됐어요?

 

건져냈습니다.

 

건져냈다니 다행이었다. 수영을 잘하는 조지프가 그냥 빠졌을 리는 없을 테고, 물속에서 경기가 와서 그렇게 됐다고 해도 얼른 조지프를 건져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조지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뭔가 석연치 않게 대답하는 말을 듣자 아무래도 서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조지프를 병원에 데려갔을까 싶었다. 조지프의 병은 발작을 일으키는 순간엔 위험하지만 깨어난 뒤엔 병원에 가도 별다른 조치를 해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데려가 안정을 취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차가 막혀 1시간이면 도착할 병원까지 1시간30분이 걸렸다. 그사이 다음날 한국 출장을 위해 짐을 싸고 있던 남편도 병원으로 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말에 나는 당신은 오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이제 곧 집으로 갈 텐데라고 만류했다. 그만큼 조지프에게 별다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은 단 1%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들을 찾는 내게 의사들은 천천히 보여준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아무도 내게 조지프를 보여주지 않았다, 도대체 조지프의 상태가 어떻기에 이러나 싶어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제야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와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1시간쯤 떨어진 다운타운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남편과 나는 그저 조지프가 깨어나길 기도하며 초조하게 그 자리를 서성거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는 우리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조지프가 지금 응급실에 있는데 이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다른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환자가 위급한데 손을 쓸 수 없다니. 의사의 말에 다급해진 나는 조지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조지프, 조지프.

 

아들의 이름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조지프에게 가 보니, 조지프는 수십개의 튜브를 온몸에 연결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었다.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게 누군가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물속에 빠져 있는 조지프를 건진 뒤 인공호흡을 하던 안전요원이 어떻게든 조지프를 살리려고 가슴 압박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졌고 그게 허파를 찌르면서 몸 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고.

 

아 조지프. 하나님 이게 끝은 아니지요? 하나님 조지프를 살려주세요.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역경의 열매] 정성자 (16) 떠났구나 조지프, 천국으로… 굿바이 인사도 없이

 

갓 세수를 한 미소년 모습으로 작별

    

조지프 장례식은 살아생전 조지프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찬양을 좋아했던 조지프의 천국환송 예배인 만큼 장례식 내내 찬양이 은혜롭게 울려 퍼졌다.

 

이제는 가망이 없습니다. 오셔서 작별인사를 해 주세요.

 

네? 작별인사요?

 

갑자기 작별인사를 하라는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조지프에게 다가서자 의사가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모든 신체 기능이 다 멈췄습니다.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조지프가 옆에 조용히 잠들어 있지 않은가. 온몸은 피로 뒤범벅이 돼 있었지만 얼굴만큼은 갓 세수를 하고 나온 미소년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내 아들 조지프….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조지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조지프의 왼쪽 눈가에 눈물방울이 말라 있는 게 보였다.

 

조지프, 너 울고 있었구나.

 

눈물자국을 보니 누군가 내 심장을 찌르는 듯 아팠다.

 

조지프, 눈 떠봐. 엄마를 봐야지. 사랑하는 엄마가 여기 왔잖니. 엄마한테 하이(Hi)하고 인사해야지. 조지프, 조지프.

 

마음속으로 조지프의 이름을 수차례 부르며 조지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지고 모든 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우는 소리,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조지프, 조지프 위로 흰 천을 덮는 사람의 모습도 모두 영화 속 일처럼 느껴졌다.

 

2012년 9월 27일 0시30분, 내 첫아들 조지프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 맑고 아름다운 눈으로 엄마인 나를 한번 쳐다봐주지도 못하고, 평소처럼 마음속으로만 말을 가득 담은 채 조지프는 굿바이라는 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조지프가 가다니, 이 엄마를 두고 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나는 내가 먼저 죽으면 남겨진 조지프를 누가 돌볼까에 대해서만 고민했지 단 한번도 조지프가 나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 이메일 도착 신호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중국 선교사님의 메일이었다.

 

조지프에게 좋은 일이 있나봐요.

 

첫 문장을 본 나는 기가 막혔다, 선교사님은 왜 하필 그날 그 시각에 이런 메일을 보냈던 것일까. 병원에서 조지프의 사망선고를 들은 뒤, 아직 가족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조지프 얘기를 하지 않은 터에 선교사님은 조지프에게 좋은 일이 있느냐는 안부를 묻고 있었다.

 

제가 어젯밤 꿈을 꿨는데 조지프가 멋지게 밤색 양복을 차려 입고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엄마인 권사님도 얼마나 기뻐하시던지요.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조지프와 포옹하시더군요. 꿈속에서 조지프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엄마, 그동안 나 때문에 참 수고 많았어하고 말이죠. 권사님, 조지프에게 뭐 좋은 일 있어요? 혹시 조지프가 결혼이라도 하나요?

 

평소 꿈이라고는 한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선교사님이 왜 그 새벽에 뜬금없이 꿈 이야기를 하며 이메일을 보내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교사님의 꿈이 맞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지프의 죽음이 결코 비극적인 끝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이라는 것에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게 됐다.

 

그래, 우리에겐 지금 슬픔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조지프는 하늘나라 천국 잔치의 현장에서 정상의 얼굴로 밤색 양복을 입은 채 밝고 환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기 시작했다.

 

갔구나. 조지프, 천국으로. 조지프가 갔어. 천국으로.

 

***[역경의 열매] 정성자 (17·끝) 세상 모든 장애아를 아들로 여기며 살겠습니다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자립을 위해 조지프의 이름 딴 조스테이블 설립

 

조스테이블에 담긴 조지프의 꿈과 하나님의 손길이 널리 전해지길 소망한다. 최근 캐나다 조스테이블 1호점에서 CTV 기자에게 조스테이블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정성자 권사.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니 고통이 뒤따랐다. 내가 인도하던 베데스다어머니회 엄마들 역시 내가 더 이상 베데스다 아이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장애 아이들을 보면 조지프가 떠오를 테니 자연스레 이 모임을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조지프가 떠난 뒤 내게 지금까지는 장애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세상의 모든 장애 아이들을 아들로 생각하며 살라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다.

 

정말 신기했다. 그때부터 장애 아이를 보면 내 아들처럼 느껴졌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조지프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못다 이룬 일을 완수하려는 듯 장애인을 위한 일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한마음으로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자립을 위한 커피숍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커피숍 이름의 첫 글자는 조지프의 조(Joe)와 커피를 뜻하는 속어 조(joe)에서 따왔다. 그리고 테이블(table)의 알파벳 첫 글자인 티(t)가 십자가 모양이고 이어지는 글자가 가능하다는 뜻의 에이블(able)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조지프가 모든 능력을 주시는 십자가(t)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able)는 의미를 담아 조스테이블(Joes Table)이라고 지었다. 조스테이블의 설립 목적은 장애인에게 일터를 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과 일반인을 함께 고용해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것을 고용 원칙으로 정했다. 판매 전략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 아닌 커피 맛의 우수함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2013년 6월 23일, 캐나다 밴쿠버 버나비 지역에 조스테이블 1호점을 열었다. 사람들이 커피숍을 찾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빵 맛이 특별해서, 커피 맛이 좋아서 찾아온다는 손님이 줄을 이었다. 특히 조스테이블이 생긴 유래를 전해 듣고 조지프의 꿈과 하나님의 손길에 감동받아서 찾아온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 조스테이블 2호점과 3호점을 열었다.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신사옥 안 커피숍이 2호점이고,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사랑의교회 안 커피숍이 3호점이다.

 

나와 남편은 조스테이블이 4, 5, 6호점으로 계속되길 소망하고 있다. 캐나다와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나아가 동포들이 사는 북한 땅, 그리고 예수님이 명령하셨던 땅끝까지 조스테이블이 들어가 장애인이 꿈을 펼치는 일터가 마련되길 기도하고 있다. 조스테이블을 방문하는 이들에겐 예수님의 사랑과 화해, 용서의 메시지를 받는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천국에 있는 조지프도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리라 생각한다.

 

조지프는 비록 장애를 갖고 살았지만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준 아들이었다. 조지프를 키우지 않았으면 몰랐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메시지를 아들을 통해 받게 됐으니 말이다. 조지프를 신앙으로 키우는 동안 남편은 41개의 직업전문대학과 2개의 종합대학을 운영하는 캐나다 최대의 교육그룹 PCV(옛 CGI)를 설립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나는 지난 3월 캐나다 장애인 지원 단체인 CLBC가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와이드닝 아워 월드(WOW)상도 받았다.

 

이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지금까지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국민일보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나님은 지금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사랑을 알았으니 이제 너도 가서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며 섬겨라. 그 작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의 사랑을 전하라. 그들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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