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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청년회

[스크랩] 간증: 1405. [역경의 열매] 송순복 <1-10> 말단 직원에서 시작, 프랜차이즈 대표로

작성자종로사랑2|작성시간23.10.30|조회수16 목록 댓글 0



***간증: 1405. [역경의 열매] 송순복 <1-10> 말단 직원에서 시작, 프랜차이즈 대표로

 

미용사·싱크대 대리점·유통업 등 여러 직업 통해 다양한 기쁨 맛봐

 

송순복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제4회 기독여성리더십 영성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신년에 금식기도원에서 기도하며 받은 응답이 있다. 바로 111 기업목표다. 100개의 일터 기업을 세우고 100명의 일터 사도를 세우며 100곳의 문서선교를 후원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 중에는 콧방귀를 뀌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으로, 그것도 크리스천CEO로 사업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그럼에도 자신 있게 이 목표를 선포할 수 있는 건 지금껏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기쁨들 때문이다. 기업경영은 주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내게 많은 직업을 선물로 주셨다. 회사의 말단 직원을 시작으로 미용사원, 싱크대 대리점 사장, 유통업 및 제조업 CEO, 평신도 선교사, 일터 사역자…. 그리고 이들 직업을 통해 다양한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왜 이렇게 많은 일들을 나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셨을까. 내 삶의 열매는 분명 성경말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말씀에 순종하면 필요한 모든 환경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이뤄주셨다.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일터 사도로서 세상을 변혁시키고 일터 기업(교회)을 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확장하는 게 나의 비전이다.

 

이 일을 위해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쭈꾸쭈꾸아를 설립했고 2015년 9월 수원 영통에 퓨전 레스토랑 1호점(본점)으로 문을 열었다. 쭈꾸쭈꾸아는 일터 교회다. 주님의 말씀을, 복음을, 또한 주님이 주신 부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갈릴리호수다. 최근 서울 여의도점과 인천 연수점이 오픈하면서 전국 매장은 10곳으로 늘었다. 대부분의 지점들이 주일은 쉽니다로 고객들에게 무언의 전도를 하고 있다. 특히 본점에는 교회사역 사진과 다양한 기독서적들을 비치했다. 111 기업목표 가운데 10개의 일터 기업이 세워졌고 그 안에서 일터 사도의 비전을 선포하는 크리스천 CEO들이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다.

 

나는 또 부의 거룩한 이동(나침반)의 저자로 교회와 기업체 등에서 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1500회 넘게 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매번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난을 사명으로 주신 적이 없다. 하나님께선 신앙의 시작이 되는 믿음에 이미 물질의 복도 다 포함해 놓으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우리가 마음속에 믿음을 품는 순간 우리는 바라는 것의 실상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나누고 베풀기 위함이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삶의 위기 때마다 성경 안에 있는 이 같은 경제 논리를 깨닫게 하셨다. 이 말씀들로 인해 전업주부였던 내가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도 이끌 수 있었다. 나는 과정이 없는 간증은 신뢰하지 않는다. 좌절할 때면 격려해주심으로 한 단계 더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 [역경의 열매] 송순복 <1> 말단 직원에서 시작, 프랜차이즈 대표로

* [역경의 열매] 송순복 <2> 아버지의 사업 실패… 온가족 야반도주

* [역경의 열매] 송순복 <3> 임신 고민하자 "안수기도 받으라" 권유에 교회로

* [역경의 열매] 송순복 <4> "네 아들은 네 눈물의 기도로 구원을 얻었노라"

* [역경의 열매] 송순복 <5> 남편 전도 위해 섬김 실천… 내가 먼저 변화

* [역경의 열매] 송순복 <6> '세계선교' 비전 완성 위해 남편 퇴직금 털어 창업

* [역경의 열매] 송순복 <7> 투자 확대 와중에 날벼락같은 암 진단

* [역경의 열매] 송순복 <8> 신대원 졸업후 전도사역하며 '일터 사도' 비전

* [역경의 열매] 송순복 <9> '교회·성도 자립 발판인 일터' 비전 위해 새 도전

* [역경의 열매] 송순복 <10·끝> "하나님이 회장님… 그분 말씀 믿고 달려갈 것"

 

약력=△1962년 경기도 수원 출생 △2005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학대학원 졸업 △㈜푸드앤웨이브 쭈꾸쭈꾸아 대표 △국민일보 기독여성리더스포럼 사무총장 △㈔국민여성리더스포럼 부이사장 △수원순복음교회 협동전도사

 

***[역경의 열매] 송순복 <2> 아버지의 사업 실패… 온가족 야반도주

 

리어카 끌던 아버지와 길에서 마주쳐 창피해 같이 있던 친구와 함께 달아나

 

송순복 대표가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를 치고 있다.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에 다닐 정도로 그는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나는 1962년 경기도 수원 연무동의 마당 큰 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청과물 상회를 크게 하신 아버지 덕분에 유복했다. 어머니는 그런 풍요와 행운이 우리 가정에 늘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비싼 돈을 들여 1년에 몇 차례씩 굿을 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던 큰오빠와 4살씩 터울인 둘째·셋째 오빠는 같은 날 합동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오빠들은 사업도 함께했다. 아버지는 그런 세 아들이 자랑스러워 초기 자본금도 대주셨다.

 

그러나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고 어떻게 또 넘기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전답을 팔았다. 결국 살던 집과 약간의 땅만 남게 됐다. 면목이 없던 오빠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잘 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뒤 오빠들은 망했고 빚쟁이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남은 재산으로 빚 청산을 하고 달구지 하나에 옷가지와 소지품 정도만 챙겨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나, 이렇게 네 식구는 야밤에 마당 큰 집에서 쫓기듯 나왔다.

 

교복과 가방을 달구지 위에 올려놓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더러워지는 게 싫다며 품에 안고 달구지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네 식구가 도착한 곳은 한 고아원의 문간방. 고아원은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벽에 박힌 못에 교복을 걸어놓고 얼마나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고아원 문간방 신세가 됐는데도 부모님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식구를 건사해야 했던 아버지는 고물장수가 됐다. 리어카에 가락엿이 담긴 봉지 한 개를 달고 엿장수용 가위를 치며 아버지는 아침마다 내 다녀오마라시며 출근을 하셨다.

 

나는 그리 담담하지 못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담벼락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물을 마시고 계셨다. 얼마나 창피했는지 친구 손을 꽉 잡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밤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 역시 입을 꾹 다물고 그날 밤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땐 절망뿐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싶었지만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고3이 되면서 취업을 하게 됐다. 한 회사 경리부에서 일했는데 차 심부름이나 하고 걸레질을 하는 내가 싫었다. 그 일이라도 하니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왔으나 기쁘지 않았다. 넋 놓고 창밖을 보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못 탄다며 상사에게 구박을 받는, 이런 바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때 막연하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 인생 좀 바꿔주세요.

 

미션스쿨이었던 중학교에서 종교부장을 맡았을 때 교목선생님은 순복이 너는 꼭 하나님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열아홉 살,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그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땐 신앙적으로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그분이 내 삶의 피난처가 되셨고 나를 이끌어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역경의 열매] 송순복 <3> 임신 고민하자 안수기도 받으라 권유에 교회로

 

임신됐지만 한약·부적 효과라 믿어… 기대 컸던 아들 식물인간으로 태어나

 

송순복 대표가 무당이 점찍어 준 날이라는 1984년 11월 11일 11시 이규두 장로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행복이란 무엇일까. 분명한 건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저 고난에 불과했던 것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된 순간 에너지로 솟아난다는 것이다. 주님은 때로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신다.

 

20대 초반, 나는 돈이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 말단 경리직원 일을 그만두고 친구를 따라 P화장품 미용사원으로 취직해 돈을 벌면서 행복한 삶을 기다렸다. 당시 미용사원은 고객을 만나 마사지를 해주고 화장품을 판매하며 실적을 쌓는 일종의 헬퍼였다. 입사 1년여 만에 매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한번은 남들이 쉬는 일요일에 사업체를 크게 운영하는 한 여성 고객을 만났다. 다과를 내오신 그분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우리 삶에는 이웃도, 재미도, 슬픔도, 돈도 두루두루 있어야 해요. 젊은 아가씨가 돈을 벌기 위해 일요일까지 일하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앞으론 일요일만큼은 아가씨 자신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필요하겠지만 그게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시 친구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재밌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질까.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고 4년 정도 연애를 한 뒤 1984년 11월 11일 11시에 결혼했다. 무당이 점찍어 준 날이다. 양가 어른들은 부귀영화를 누릴 사주팔자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큰딸을 낳은 뒤 시댁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살면서 시댁에 대해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대대로 무속신앙을 믿는 집안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굿하는 집안 분위기에 익숙했기에 그게 문제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시댁은 곳곳에 신당이 세워져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몸이 아픈 시어머니는 새벽마다 중얼거리셨는데 남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자식을 위해 신을 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름 모를 병으로 자주 아프시다고 했다. 그래서 신당을 차려놓고 매일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아들 손주를 봐야 내가 편히 눈을 감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손주를 못 보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시아버지는 종갓집 맏며느리니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더 세게 몰아붙이셨다.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만히 있어도 환청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성수 엄마가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으면 임신할 수 있다며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나를 전도하겠다며 매일 찾아오는 성수 엄마를 쌀쌀맞게 대하던 차였다. 그 말에 솔깃해 교회로 따라나섰다.

 

지하 창고 같은 곳에서 목사님은 나를 위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기도해주셨다. 하지만 작고 초라한 교회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목사님 기도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이후론 성수 엄마를 모른 척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 기도대로 3개월 뒤 임신했다. 물론 그땐 목사님이 기도를 해서 임신이 됐겠어. 그동안 먹은 한약에 부적을 쓴 게 얼만데라며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 귀한 아들이 식물인간이 돼 세상에 나왔다. 믿음 외에는 표적을 구할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비로소 깨달았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4> 네 아들은 네 눈물의 기도로 구원을 얻었노라

 

새벽기도 중 예수님 음성 들어… 식물인간 아들에 회생의 기적 일어나

 

지난해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아들 이종혁씨 부부와 함께한 송순복 대표(왼쪽). 태어나자마자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씨는 비즈니스 선교사의 비전을 갖고 있다.여보, 아이는 또 낳으면 돼.

 

1987년 7월 4일 둘째를 낳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남편에게 들은 첫마디였다.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만촉진제를 5병이나 맞았는데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의료진이 펌프로 아이 머리를 잡아당겨 겨우 출산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응급실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내 팔뚝만큼도 안 되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식도와 옆구리에 호스가 꽂혀 있었고 눈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으며 온몸이 새카맸다. 뇌출혈이 발생해 식물인간 상태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울음이 터졌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위해 땀 흘리며 기도한 목사님을 무시했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도와주려고 한 성수 엄마를 문전박대했습니다.

 

남편은 성수 엄마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성수 엄마는 목사님을 모시고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을 본 순간 무릎을 꿇고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때 목사님은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자매님의 아들은 살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다들 아이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조차 살아나더라도 뇌성마비 장애를 안게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달랐다. 예수님께선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고 혈루병 여인도 고치신 분입니다. 그런 기적의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내게 보여준 사랑은 너무나 컸다. 성수 엄마는 아들의 쾌유를 위해 전심으로 중보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동네의 한 개척교회 목사님은 언제든 교회에 나와 기도를 하라며 열쇠 하나를 복사해줬다.

 

산후조리를 할 새도 없이 새벽마다 무릎기도를 드렸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바로 아들에게 달려가 인사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에 환한 빛을 봤다. 그 빛 가운데 예수님이 서 계셨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딸아라며 나를 부르셨다. 사랑하는 딸아, 네 아들은 네 눈물의 기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노라.

 

나는 찬양을 부르며 눈을 떴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도 나와 같은 기분일 거라고 확신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을 보러갔다.

 

의료진이 나를 보자마자 이 아기 어머니, 기적이 일어났다며 소리치는 게 아닌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던 내 아들에겐 이름도 없었다. 그저 이 아기로 불렸다. 이 아기가 발가락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 종혁이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보리차 10㏄를 먹었다. 촉감이 살아나고 발을 까딱였고 소변을 봤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첫 주에 해야 할 일들을 3개월이 돼서도 힘겹게 해냈다. 종혁이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퇴원했다.

 

종혁이를 품에 안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교회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짐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 아들을 기적같이 살려주신 하나님, 이제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 생명 다해 예수님을 전하겠습니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5> 남편 전도 위해 섬김 실천… 내가 먼저 변화

 

남편은 주일이면 축구·술에 빠져… 꾹 참고 섬기니 어느 날 교회 나가

 

송순복 대표가 2015년 겨울 남편 이규두 장로와 유럽여행 중에 찍은 사진.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뒤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각종 패물에 아이들 돌반지, 카메라, 보험금을 다 합친 800만원을 감사헌금으로 드렸다. 결혼할 때 부모님이 지참금으로 주신 1만4000평의 토지문서까지 그대로 드렸다.

 

또 1년에 300명을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모차에 아이 둘을 태워 온 동네를 돌며 전도지를 나눠줬다. 이웃들을 초청해 부침개를 함께 먹으며 예수님을 전하는 부침개 전도법도 실시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아파트 1층, 단독주택으로 수없이 이사도 다녔다.

 

급기야 남편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동안 아이가 아파서 교회 가는 것 뭐라 안했는데 더는 못참겠다. 동네 사람들이 당신 보고 교회에 미친 여자래. 부침개 나눠먹고, 누가 들으면 막걸리집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동네 창피하니 그만해라.

 

그럼에도 전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대놓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교회에 강사로 오신 목사님의 셔츠 다리는 일을 내가 맡게 됐다. 밤늦게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다림질을 하는데 그만 남편에게 들킨 것이다. 나를 보자마자 미쳤구나라며 닥치는 대로 집안 살림을 다 깨부쉈다.

 

하나님을 만나면 만사가 형통해진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일만 생기는 걸까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남편에게 설명할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섬김은 새로운 전도의 방법이었다. 생각해보니 과거 아들을 위해 기도해준 성수 엄마는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했음에도 내가 찾는다고 했을 때 섬김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섬김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실천이었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섬김을 실천하면 할수록 내가 먼저 변화되는 걸 느꼈다. 남편이 교회를 가지 말라고 하면 예전처럼 맞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말과 부탁하는 말로 교회를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남편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물론 속이 타들어갈 때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꾹 참았다. 주일마다 조기축구회를 나가는 남편을 위해 토요일 밤에 축구복과 양복을 미리 준비했다. 혹여 남편의 마음이 바뀌어 교회를 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거다. 남편은 주일 새벽이면 축구하러 나갔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 돌아왔다. 거룩한 주일에 술을 마신다고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방에 이불을 펴주며 한숨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정말 섬김의 과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들 종혁이가 다섯 살쯤 됐을까, 조기축구를 마치고 막걸리를 한두 잔 마신 채 집에 들어온 남편이 양복을 차려 입고 교회에 가자고 했다. 술 냄새를 풍기며 예배시간 내내 졸던 남편은 점심식사로 교회에서 주는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온전한 주일성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남편은 한걸음씩 예수님의 이끄심을 받았다.

 

그 생활을 2년쯤 반복하던 남편이 축구공이 아닌 성경을 먼저 챙기더니 교회에 가자고 재촉했다. 남편 이규두 수원순복음교회 장로는 최고의 동역자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6> 세계선교 비전 완성 위해 남편 퇴직금 털어 창업

 

십일조 50만원 드릴 수 있는 기업 예배… 매출 목표 세우고 기도 1년만에 달성

 

송순복 대표가 경기도 수원에서 백조싱크 대리점을 운영하던 시절 전화주문을 받고 있다.아들이 치유를 받고 불같던 남편이 순한 양으로 바뀌자 나는 더 큰 비전을 보게 됐다. 세계선교를 위한 믿음의 기업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나님은 새벽기도를 드릴 때마다 이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갖게 하셨다.

 

그러나 나 혼자선 결코 할 수 없는 일, 이제 겨우 믿음생활을 시작한 남편이 동의해줄지 걱정이었다. 남편에게 세계선교라는 엄청난 비전을 이루기 위한 계획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일단 사업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사업을 하는 거야 좋지만 아이디어가 없다는 이유로 망설였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먼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며 설득했다.

 

남편은 6개월 고민 끝에 사표를 냈고 우리 부부는 퇴직금 500여만원을 탈탈 털어 수원시 권선동에 16.5㎡(5평) 짜리 점포를 얻었다. 그리고 1992년 4월 5일 백조싱크 대리점을 오픈했다. 창업예배에서 목사님은 십일조 50만원 드릴 수 있는 기업이 되리라고 선포해주셨다.

 

그러나 첫 달 매출액이 50만원. 5만원의 십일조를 드렸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사람인지라 그 실망감은 어쩌지 못했다. 대리점이 쉬는 날이면 기도원에 가서 일·주간·월·상반기·1년 단위로 매출표를 만들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는 냉장고 책꽂이 싱크대 거울 등 집안 곳곳에 기도하며 작성한 매출표를 붙여놓았고, 눈만 뜨면 매일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매출표를 들여다보니 자연스레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에게 집중하게 됐다.

 

무엇이 필요하세요라는 질문보다는 고객의 하루 동안 주방 동선을 체크해 필요한 부분들을 제안하는 등 나만의 노하우로 주방 디자인을 하게 됐다. 그러자 우리 매장에 가면 싱크대가 아닌 맞춤형 주방을 갖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멀리서도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장을 오픈하고 1년여 만에 십일조 50만원을 드릴 수 있었다.

 

새해가 되면 전년보다 목표액을 높게 잡은 매출표를 작성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 통장 5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버는 능력만큼 중요한 게 돈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특히 세계선교를 위해 이 사업장을 세웠으니 더욱 철저하고 올바르게 하나님의 물질을 관리해야 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였다.

 

집안에 매출표와 함께 5개의 통장에 각각의 이름을 써서 번호순으로 매겨 붙여놓았다. 1번 십일조, 2번 선교헌금, 3번 종잣돈(씨앗돈), 4번 배가 재테크(투자 준비금), 5번 생활비. 통장에 붙은 숫자는 우선순위를 뜻한다. 모든 수입은 이 사업장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러니 세계선교 기업이라는 설립 목적에 충실하도록 십일조와 선교헌금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당연했다.

 

매월 정산 후 이 순서대로 돈을 입금했다.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명자로 거듭나자 돈의 흐름이 명확해졌다. 예전에는 10%의 헌금과 90%의 소비생활이 돈의 종착지였다. 지금은 나를 위해 사용하는 돈 30%, 나머지 70%는 헌금과 하나님의 사업장을 확장하기 위한 거룩한 투자금이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7> 투자 확대 와중에 날벼락같은 암 진단

 

환난 중 즐거워하라 말씀 새기며 이겨내… 외환위기 왔지만 사업에 기적 일어나

 

송순복 대표(왼쪽)가 해외 선교지에서 한 여성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암투병을 통해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1996년 4월은 싱크대 관련 비품들을 취급하는 하나산업 유통회사를 설립해 사업의 규모를 확장해가던 때였다. 백조싱크 대리점을 운영하며 차곡차곡 모아온 4번 배가 재테크(투자 준비금) 통장으로 싱크대 상판 및 비품들을 구입해 유통회사 창고를 꽉 채웠다. 세계선교 기업이라는 비전에 걸맞게 더 많은 이슬람 지역에 교회를 세울 생각으로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그렇게 신바람 나게 일하고 있는데 지인들은 오히려 내 안색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고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둘째 아들을 힘들게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고생한 것 외에는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10시간이 넘는 대수술 후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등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몸무게도 18㎏이나 줄었다. 지독한 구토에 시달리다 흉측한 몰골을 마주한 순간 그대로 바닥에 누워 숨만 헐떡이며 서럽게 외쳤다. 하나님, 저 좀 천국 데려가 주세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른 기도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주여, 나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통을 알게 하소서. 그러면서 골고다 길을 올라가시며 채찍질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그동안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비록 병과 고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오늘 나는 아픈 몸에 집중할 것인지, 언젠가 나을 것이라는 소망에 집중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후자였고 이전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됐다.

 

2년 가까이 항암제 치료를 마치고 일선에 복귀했다. 투병 직전 사업 규모를 키울 생각으로 자재들을 구입해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십일조와 선교통장 외에 나머지 3개 통장의 잔액은 바닥이었다. 남들처럼 마케팅비로 돈을 쓸 수는 없는 상황. 게다가 당시는 IMF 외환위기까지 겹쳐 곳곳에서 한숨만 터져나왔다.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거래처가 될 만한 곳들에 일일이 편지를 써 보냈다. 상황이 암울할수록 내겐 선명하게 다가오는 로마서 말씀이 있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IMF로 인해 싱크대 관련 자재들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없게 된 거래처들이 내 편지를 받고 쉴 새 없이 전화하기 시작했다. 그 어렵다는 IMF 시절 우리의 거래처는 100곳을 돌파했고, 제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나님은 우리 기업에 기적을 베푸셨다.

 

사람은 당장 내일을 바라보고 안 되면 실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십 년 후, 영원을 예비하고 일하신다. 지금 각자 처한 상황이 막막한가. 훗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에 맞는 사람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고난의 훈련 과정을 지나고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8> 신대원 졸업후 전도사역하며 일터 사도 비전

 

실업인 담당 선교사로 3년간 사역 세상을 변혁시킬 교회 세우겠다

 

송순복 대표가 경제부흥 콘퍼런스에서 성경적 재정 축복의 원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2003년 5월 유방암이 재발해 또 다시 10시간 넘게 절제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는데, 12회차를 넘기면서 구토 등으로 고통이 너무 심해 결국 마지막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도 막상 떠나려니 남은 삶에 미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환한 빛 가운데 내가 서 있었고 누군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이제 온전히 죽은 몸이다. 그러므로 온전히 살리라.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은 순간 여보, 여보하며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꿈 이야기를 목사님에게 전했다. 한참을 듣던 목사님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명이라는 답을 주셨다. 입원기간 중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총회신학교에 입학했다. 언제 그렇게 고통 속에서 지냈는가 싶을 정도로 새털처럼 가벼운 몸을 하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그야말로 온전히 죽은 몸으로 온전히 살았다.

 

2007년 신대원까지 졸업한 나는 기하성 수원남지방회 소속으로 전도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분당성시교회에서 실업인선교담당 전도사로 3년간 사역을 하게 됐고, 이곳에서 더 구체적인 비전을 새롭게 세울 수 있었다.

 

분당성시교회 명성훈 목사님은 일터 사도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 첫 강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터를 교회로 섬기는 일터 사도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만 말씀에 순종해서는 안 되며 오직 자신의 교회만 생각하던 핵 교회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이를 위해 세상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영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이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 받으며 성장이 정체된 어려운 상황인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에서만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빛이 돼야 한다.

 

목사님은 마지막 강의에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터 교회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목사님의 이 같은 제안에 과감히 선포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터 교회를 제가 만들겠습니다. 일터 사도를 키우는 데 헌신하겠습니다.

 

한번은 공산국가인 A국에서 김모 선교사님의 사역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선교사님은 기업인 성도를 양성해 그를 통해 A국의 복음화에 힘쓰고 있었다. 일터 사도 사역을 통해 열매를 맺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집사님이 한국에서 3년간 분식 기술을 배워 여기에서 분식집을 냈습니다. 장사가 잘 돼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10분의 2, 3을 교회에 꼭 헌금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자기 개발을 후원하고, 성도는 그 기술로 번 수익금으로 교회를 후원하는 겁니다. 그러면 둘 다 자립할 수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 둘 다 자립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거야말로 바람직한 일터 교회, 일터 사도의 모습이 아닌가. 본격적으로 이 사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9> 교회·성도 자립 발판인 일터 비전 위해 새 도전

 

기존 사업 접고 음식점 프랜차이즈 시작… 누구도 배고프지 않게 돕기 사명 삼아

 

송순복 대표가 일터 교회 쭈꾸쭈꾸아 본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싱크대 제조공장 및 하나산업 유통회사를 경영하면서 이슬람권 외에도 베트남 등지에 교회를 세운 나는 일터 사역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공산국가인 A국에서 분식집을 하며 성도와 교회 모두에 자립의 발판을 마련한 일터 사도 김 집사님이 좋은 사례가 됐다.

 

김 집사님은 선교지에서 음식점 사업이 일터 사역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하고 한국의 대표 분식인 떡볶이 튀김 샌드위치 과일음료 등을 내세운 브랜드를 선보였다. 이들 메뉴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A국을 비롯한 18곳에 분점을 냈다. 매장 대표들은 수익금의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고 선교지 교회들을 후원했다. 덕분에 선교지 교회와 기업인들은 재정적으로 자립하게 됐다.

 

이 같은 경험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국내 성도들에게 부의 거룩한 이동을 창출해 보자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20년 동안 경영하던 사업체들을 정리했다. 어차피 나의 모든 것이 헐몬산의 이슬에서 시작됐고 그것을 모아 흘러 보내는 게 내 사명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 앞이라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기도하고 준비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란 말씀을 읽는 순간 확신이 생겼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남은 건 즉시 순종뿐이다.

 

2011년 음식으로 복음의 물결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푸드앤웨이브를 설립하고 자연 생국수 등 브랜드를 개발했다.

 

한번은 최 집사님이란 분이 절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연 생국수를 하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고민이라고 했다. 집사님이 사는 경기도 광명에 가보니 16.5㎡(5평)의 조그만 상가에서 마구잡이로 과일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었다.

 

3일 시간을 드릴 테니 50% 세일을 해서라도 과일을 전부 정리하고 작정기도를 하라고 했다. 집사님은 멀쩡한 과일을 모두 싸게 팔았고 이틀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사흘째 되던 날 지인이 보험약관 대출로 830만원을 도와줘 5평에서 자연 생국수 매장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도 최 집사님은 성공적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뤄주셨다고 고백한다. 최 집사님처럼 교회나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넉넉한 후원자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볼 때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온다.

 

새로운 브랜드 직화불쭈꾸미 전문점 쭈꾸쭈꾸아도 출시했다.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 쭈꾸쭈꾸아 프랜차이즈로 탄생시켰다. 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불쭈꾸미 세트 퓨전 요리를 개발해 경기도 수원시 영통에 330㎡(100평) 규모로 본점을 운영하고 있다.

 

쭈꾸쭈꾸아는 일터 교회다. 이 땅의 누구도 배고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 또한 성경 말씀이 일터에서 살아 움직이고 삶에서 실천됨으로써 예배당뿐 아니라 일터, 세상에서 리더가 되도록 돕는 것이 쭈꾸쭈꾸아, 바로 우리 기업의 사명이다.

 

***[역경의 열매] 송순복 <10·끝> 하나님이 회장님… 그분 말씀 믿고 달려갈 것

 

국내외서 1500회 가까이 강의… 주님 섬기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와

 

지난 3월 아들 결혼식 때 송순복 대표 가족이 함께한 모습.나는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토대로 국내외에서 1500회 가까이 강의를 했다. 일터 사역을 주제로 한 강의부터 현재 기업을 운영하는 크리스천 CEO들을 위한 일터 리더 세미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소개했다.

 

강의의 주제는 성경적 재정 축복과 일터 사도의 정의다. 성경적 재정 축복과 일터 사역은 일맥상통한다. 성경적 재정 부흥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복이고, 일터 사역은 그 복에 이르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비전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10계명을 정해 실천하고 있다. ①하나님이 부요하게 하심을 믿어야 한다(삼상 2:7) ②맡겨진 일에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마 25:21) ③온전한 십일조의 축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말 3:10) ④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잠 3:9∼10) ⑤부요하게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마 7:7∼11) ⑥겸손해야 한다(잠 22:4) ⑦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눅 6:38) ⑧형통과 부요를 선포해야 한다(잠 18:21) ⑨부지런해야 한다(잠 10:4) ⑩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잠 16:1∼3)는 것이다.

 

나는 평범한 여성이다. 아니 사실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세상의 기업인들처럼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돈을 쌓아가는 투지가 내겐 없다. 그저 내 중심엔 하나님 한 분만 계시다. 하늘 아버지가 회장님이시고 그분 말씀을 믿고 달려갈 뿐이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첫째는 성경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내 앞의 모든 소유와 자산, 그리고 가능성은 오직 성경말씀에서 시작됐다.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평생 붙들고 살면서 부의 거룩한 이동에 스스로 참여하는 첫 걸음을 떼보길 권한다.

 

둘째는 가족이다.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의외로 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참 많다. 대부분의 인생을 오직 잘 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인생의 후반기에 그간 못 누린 가족 간의 정을 나누려니 그게 잘되지 않아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면 가정의 행복은 절로 받게 된다.

 

나도 한때는 친정과 시댁을 예수 가족으로 만들려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무당을 불러 굿하기를 좋아했던 부모님을 전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주님의 일에 충성했다. 열심히 일하며 사는 모습에 결국 부모님이 마음을 움직였고 새벽기도의 일꾼으로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셨다.

 

온유한 큰딸 효선이는 음악을 전공하고 성악가 남편을 만났다. 예쁜 딸 수아를 낳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뤄 살고 있다. 둘째 종혁이는 주변에서 다들 기적의 아들이라 부른다. 태어날 때 위기를 넘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과연 잘 커줄까를 염려했던 그 아들이 키 186㎝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지난 3월에 결혼했다. 온전히 힘든 과정을 함께 극복해준 남편 이규두 장로는 지금도 최고의 동역자이고 후원자다. 나는 그런 남편을 존경한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수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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