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12-20 /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야곱 ・ 2024. 10. 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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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7(목)■
(고린도전서 6장)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묵상/고전 6:12-20)
◆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모든 것이 가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언급한다.
복음을 깨달은 자들이 충격을 받음은 율법에서의 자유 때문이다.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는 말씀도 충격적이지만,
율법에서 벗어났으며, 자유를 선포하는 그 말씀이 어찌 충격이 아니겠는가? (롬 7:6, 갈 5:1).
이로써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완전히 내용과 방식이 다른 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를 방종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평소에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다가, 자신의 방종을 변호할 만한 구절이 나오면 열광한다. ‘담배 피워도 됩니까? ‘, ‘술 취하면 안 되지만, 한 잔은 어떨까요?’ ‘TV 드라마를 보는 것은 상관없나요?’…. 무수한 질문들이 있다. 죄냐 아니냐의 질문이라면 분명히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죄만 아니면 무엇이든 상관없는 삶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함은 아무리 죄는 아닐지라도 영적으로 유익하지 않으면
삼갈 수 있어야함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과 더불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 함은 대립된 말씀일까,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일까? 나는 이 두 말을 대립적인 말로 본다.
많은 사람이 자유랍시고 방종에 흐른다. 반면에 방종을 막고, 영적 유익을 위한답시고, 각종 규례를 만든다.
그런데 그 규례가 지나쳐서 율법화 되고, 자신만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든다.
결국 그것이 새로운 율법이 된다.
어느 교회는 TV 보는 것을 죄악시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무려 4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그 교회에 속한 어느 형제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데, 월드컵에 나간 한국의 시합을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월드컵 시간에 맞추어서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의 변명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월드컵 축구를 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였다. 쓸데없는 율법을 만들어서 인생이 피곤해진 예다. 영적 유익을 위해 만든 것이 율법화되면 곤란하다.
반면에 어떤 것도 율법화하지 않겠다고 해서, 아무런 원칙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영적 유익을 위해서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절대로 깰 수 없는 규칙은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 것이라 지키려고 노력한다.
어떤 형제는 아침에 제일 첫 번째 하는 것으로 기도와 말씀 묵상을 결심한다. 아름다운 원칙이다.
어떤 형제는 주일 예배를 충실히 드리기 위해서 토요일에는 인터넷이나 TV 시청을 삼간다.
어떤 형제는 매일 기도 시간을 정해서 기도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중심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유와 유익, 그리고 유익과 얽매이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대부분은 극단으로 치우침으로써 영적 생활을 망친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라. 범사에 절제할 수 있다면, 자유와 유익을 잘 적용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평생 자기 몸뚱아리 하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성욕, 식욕에 몰입하고, 모든 관심사가 그런 것에만 쏠려있다.
그런 사람들은 몸이 요구하는 것을 위해서 자기 몸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음식은 몸을 위해서 있건만, 식욕에만 충실하다 보면, 음식을 위해서 몸을 드리는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결국 다 없어질 것들이다. 평생 음식만을 추구하며 산 인생은 정말 허무한 것이다.
성욕도 식욕과 마찬가지다. 성욕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젊었을 때 성욕은 난제 중의 하나였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며 몸부림쳐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런 난제를 주셨을까 고민해본 적이 많았다. 이제 마른 고목처럼 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투쟁은 젊다는 증거였고, 그런 투쟁 속에서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과정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청년들이 그런 것을 잘 극복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보면 감동한다. 그런 청년들은 너무나 귀하고 보석 같다.
음행을 저지르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바닥까지 내려가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매우 독특한 지적을 한다.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18)
음행이란 죄가 도둑질, 살인 등과 다름을 말씀하셨다.
다른 죄는 몸 밖에 있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음행 죄는 몸을 오염시키는 죄인데, 특별히 더 악하고, 용서받기가 더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죄보다 훨씬 더 회개하기가 어렵고 떨쳐내기가 까다로움을 암시한 것이다.
음행하는 자들은 대부분 신앙을 버리고 타락한다. 교회당에 앉아있어도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음행 죄에서 돌이켜서 진실한 믿음을 회복한 사람은 다윗만큼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처럼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함(고전 9:27)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잘 안 되면 금식해라. 금식처럼 자기 몸을 복종시키는 데 유용한 것도 없다.
주님,
제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제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 것입니다.
이것이 입으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게 하소서.
절제의 힘을 주시고, 나의 눈을 주님께 고정하게 하소서.
[출처] 고전 6:12-20 /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