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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청년회

[스크랩] 수월스님 - 물레방아 돌확에 머리를 넣고 잠들은 수월스님

작성자*혜공*|작성시간15.11.19|조회수38 목록 댓글 0

수월이 천장암에 들어온 지 꼭 세 해가 되던,

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이 되던 해 겨울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수월은 하루 일을 다 끝내고 절 아래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내려가 방아를 찧고 있었다.

저녘 예불을 마치고 곧바로 내려간 것이다.

겨울밤인지라 별빛은 터질 듣이 초롱 초롱 빛나고

서산 앞바다를 스쳐온 찬 바람은 아늑한 솔밭 속으로 끝없이 젖어 들었다.

 

수월은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모든 것들이 그들의 소리와 모습을 묻어두고 사라지는 밤, 특히 겨울밤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겨울밤은 한 해 가운데 어둠이 가장 짙고 고요함이 가장 깊은 밤이 아니던가.

 

천장암 물레방아는 "물레방아", 곧 물을 가두었다가 그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돌리는 방아였다.

절에는 방아 찧을 일이 많았다.

식량으로 쓸 알곡식을 만드는 일이며, 밀가루, 콩가루, 떡가루,고춧가루를 만드는 일들을

수월은 혼자서 도맡아 했는데,이 날은 모처럼 쌀 방아를 찧게 되었다.

머지않아 맞게 될 새해 설날에 쓰기 위한 것이었다.

해가 짧은 겨울철인지라 수월은 방아 찧는 일은 늘 밤에 하곤 했는데,

방아 찧을 거리가 많으면 첫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다.

" 쿵, 쿵! " 정해진 장단에 맞춰 방앗공이가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수월은 머리를 숙이고

돌확 안에 손을 넣어 곡식을 고루 저었다.

 

그 시절 수월은 일하는데 별다른 맛을 느끼고 있었다.

천수다라니를 지송 하는 일과 방아 찧고 나무하는 일이 마치 물과 소젖이 어우러지듯 한몸이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들어도 그의 삶을 내던진 천수다라니의 푸른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연암산 제비바위에 앉아 바다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아도,

나뭇짐을 지고 오다 발을 헛디뎌 곤두박질을 쳐도,

심지어는 그렇게 혼을 뒤흔들던 스승 경허를 보아도 성스러운 수월의 다라니 강물은 유유히 흘러만 갔다.

손발은 얼어터지고 몸은 마른 수수깡처럼 말랐지만 그의 빛나는 눈빛은 하루하루 관음의 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수월이 방아를 찧던 그날 밤, 천장암 주지인 태허는 일이 늦어져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절로 돌아왔다.

태허는 절 들목에 있는 물레방앗간을 지나다 참으로 희안한 일을 보았다.

방앗간 안에서는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물은 세차게 물레방아에 떨어지고 있건만,

웬일인지 방앗공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방앗간으로 뛰어들어간 태허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앗공이는 금방이라도 내리찍을 듯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수월은 돌확 속에 머리를 박고 아기처럼 잠들어 있지 않은가!

태허는 단숨에 달려가서 수월을 끌어냈다.

그 순간 방앗공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다시 "쿵,쿵!" 소리를 내며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다음날 태허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수월을 위해 수계식을 열었다.

드디어 수월은 예비 승려인 사미승이 된 것이다.

사미란 법어인 "스라마네라"의 소릿말로, " 악을 그치고 자비를 행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오랜 행자 생활을 끝내고 정식으로 가사와 장삼을 입고 부처님 앞에 향을 사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수월은 태허를 은사로 삼고 "음관"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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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단군선원 천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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